육군종합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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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역사
3. 출신 인물
4. 교가


1. 개요[편집]


육군종합학교(陸軍綜合學校)는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발발 이후 단기 장교 양성을 위해 설립된 사관학교이다.

파일:구동래여고.jpg
육군종합학교가 창설된 장소였던 舊 동래여고. 해당 건물은 학교 이전으로 1987년에 철거.[1]

2. 역사[편집]


1950년 8월 15일 대한민국 육군이 부산의 동래여자고등학교[2]동래고등학교를 징발해 개교했다. 초대 교장은 독립운동가 출신의 김홍일 소장이었다.

1950년 9월 당시 육군보병학교에서 교육중이던 갑종간부후보생들과 정규 육사 생도 2기생[3] 일부가 합쳐져서 '육종1기생'으로서 9월 4일 입교했다. 그리고 육사 생도2기 주력은 '육종 2기'가 된다.

휴전회담이 개시되던 1951년 8월 18일까지 6주 내지 9주의 훈련을 받은 장교들이 총 32기까지 임관했다.[4] 전체 인원은 보병 4757명을 포함해 7288명이었다.[5]

휴전 후에도 임관자의 36%, 즉 2600여 명이 군에 남아 대위, 중위로 진급했고 중대장, 대대참모, 연대급 이상 참모장교로 근무했다. 한국 전쟁 참전자들 중 400여 명이 소령 이상 진급해 1967년 베트남에 파견됐다.

9기 김홍환 장군을 포함해 총 127명이 장군을 달았다. 육종 출신 장교는 1985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는 모두 퇴역했다.


3. 출신 인물[편집]





4. 교가[편집]


유구한 반만년의 정기를 받아

뛰어난 대한의 젊은이들이

강건한 장교기백 양성하고자

모여든 이곳이 육군종합학교다

나가자 우리 앞에 초목도 떤다

가는 곳 승리며 전진뿐이니

대한의 자랑 천하의 무쌍

우리 육군종합학교

삼천리 금수강산 단일민족이

조국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

너도 나도 모여든 용사들이니

교육과 훈련에 온 힘을 다하자

나가자 우리 앞에 초목도 떤다

가는 곳 승리며 전진뿐이니

대한의 자랑 천하의 무쌍

우리 육군종합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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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종합학교가, 최홍희 작사 이홍렬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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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06보충대의 전신인 제2보충대 5중대도 여기서 창설하였다.[2] 1987년에 금정구로 이전하면서 철거되었고 현재는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가 위치하고 있다.[3] 4년제를 목표로 1950년 6월에 입학 했다가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소총수로 일선으로 끌려 갔다. 그러다 장교의 자질을 갖춘 이들을 재교육 시켜 아예 장교로 만들자는 생각에 의해 다시 소집되어 육군종합학교로 오게 되었다. 이들은 김홍일 장군이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입교한 기수이기도 했다. 반면 1년제를 목표로 1949년 7월에 입교한 정규 육사 생도 1기는 전쟁이 터지자 그냥 장교로 임관 시켜 버림. 1955년 이들은 육사 10기로 인정 받았다.(생도 2기는 기수 인정 못 받음)[4] 일선에서 소총수로 뛰던 정규 육사 생도 2기들이 한 두명씩 개별적으로 육군종합학교에 오는 바람에 3기 이후에도 전 기수에 골고루 섞여 있었다.[5] 육종 1기생이 임관한 것이 1950년 10월경으로 중공군 개입한 때였다. 중공군 2차 공세로 인한 1.4 후퇴, 뒤이은 국군-UN군의 재반격기에도 육종 출신 초급 간부들이 많은 피를 흘렸다. 약 7300명에 달하는 임관자들 중 1300여명이 전사했고, 230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사상률이 거의 절반에 가까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