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스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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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디오스코로(Dioscorus)
세속명
없음
출생지
실전됨
사망지
로마
생몰년도
? ~ 530년 10월 14일
재위기간
530년 9월 22일 ~ 530년 10월 14일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교황 보니파시오 2세에 대항한 대립교황.


2. 행적[편집]


본래 알렉산드리아 성당의 집사로, 단성론을 단호히 배척하는 입장을 취했다가 506년 단성론 지지자들의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로마로 피신했다. 당시 로마에서는 교황 직을 놓고 심마코라우렌시오간의 대립이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단성론과 칼케돈파간의 화합을 꾀하고자 동로마 황제 제노가 반포한 헤노티콘(Henoticon)을 받든 라우렌시오보다는 이를 배격하는 심마코 쪽이 교황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라벤나에서 이탈리아 전역을 통치하고 있던 테오도리크 대왕을 찾아가서 심마코를 유일한 교황으로 삼아달라고 요청했다.

마침 테오도리크 대왕은 동로마 제국을 적대하고 있었기에, 그의 의견에 따라 라우렌시오를 로마에서 영구 추방했다. 그 후 심마코의 뒤를 이어 교황에 오른 호르미스다의 중용을 받았고, 콘스탄티노폴리에 있는 동로마 황제 유스티누스 1세에게 사절로 찾아가서 아카키오스 분열을 해소시키는 데 공헌했다. 교황 펠릭스 4세의 재임 기간 동안에는 친 동로마 정파의 수장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펠릭스 4세는 전임 교황 요한 1세가 동로마 제국과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반감을 품은 테오도리크 대왕에 의해 강제 퇴위된 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일을 떠올리고, 자신이 죽으면 이 일로 인해 교회가 분열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보니파시오 2세를 차기 교황으로 내정했다. 그러나 다수의 로마 교구 사제들은 고트족 출신인 보니파시오 2세가 교황이 되는 것에 반감을 품었다. 530년 9월 22일 펠릭스 4세가 사망한 후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선거가 열렸을 때, 대다수 사제들이 디오스코로를 새 교황으로 세웠다. 이에 보니파시오 2세의 지지자들은 바실리카 율리아 성당에서 보니파시오 2세를 교황으로 선출했다.

이리하여 로마 교황직을 놓고 두 정파간의 갈등이 불거졌지만, 디오스코로가 3주 후인 10월 14일에 사망하면서 논쟁이 종식되었다. 보니파시오 2세는 공의회를 개최한 뒤 디오스코로를 지지했던 인사들로부터 순종 서약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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