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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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카페 왕조 제12대 국왕
루이 10세
Louis X


파일:Louis X of France.png

출생
1289년 10월 4일
프랑스 왕국 파리
사망
1316년 6월 5일 (향년 26세)
프랑스 왕국 발드바른
재위기간
나바라 국왕
1305년 4월 ~ 1316년 6월 5일
샹파뉴 백작
1305년 4월 ~ 1314년 11월 29일[1]
프랑스 국왕
1314년 11월 29일 ~ 1316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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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카페 가문
아버지
필리프 4세
어머니
호아나 1세
형제자매
마르그리트, 필리프 5세, 블랑슈, 샤를 4세, 이자벨, 로베르
배우자
마르그리트 드 부르고뉴[1]
(1305년 결혼 / 1315년 사망)
헝가리의 클레망스[2]
(1315년 결혼)
자녀
호아나 2세, 장 1세
종교
가톨릭
별칭
완고왕(Le Hutin/The Stubborn)


1. 개요
2. 생애
3. 그 외
4. 대중매체



1. 개요[편집]


프랑스 왕국의 국왕. 카페 왕조의 제12대 왕으로 '미남왕 필리프 4세나바르호아나 1세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었다.

첫 프랑스-나바라 동군연합의 왕이다.


2. 생애[편집]


왕자 시절 부르고뉴 공작 로베르 2세의 딸 마르그리트 드 부르고뉴와 결혼해서 딸 잔느를 낳았다. 하지만 1314년 마르그리트가 동생 필리프 5세의 친구인 필리프 드 오네이와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3], 그녀를 동생 필리프 5세의 아내인 부르고뉴 여백작 잔, 샤를 4세의 아내인 블랑슈 드 부르고뉴와 함께 감옥에 가두었다.[4] 그나마 부르고뉴 여백작 잔은 동서들의 불륜을 알고도 방관하기만 해서 죄상이 가장 가볍다고 인정되어 잠깐 유폐되었다가 다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불륜을 저지른 마르그리트와 블랑슈는 머리를 삭발당하고 내연남들이 교수척장분지형으로 끔찍하게 처형당하는 걸 직접 목도한 뒤 지하에 감금되었다.[5]

그렇게 마르그리트를 유폐시킨 후 1314년 부왕 필리프 4세가 사망하자 뒤를 이어 프랑스-나바라 왕국의 왕이 되었다.[6] 그래서 프랑스 왕으로는 '루이 10세'지만 나바르 왕으로는 '루이스 1세'가 된다. 즉위 당시 딸 잔느가 살아있었지만 위에서 서술한 마르그리트의 불륜 스캔들로 친딸인지 확실치조차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재혼을 위해 1315년 4월 30일 왕명으로 마르그리트를 교살했고 이후 두 번째 부인으로 헝가리의 클레망스와 결혼했다. 하지만 즉위한 지 고작 2년도 채 안 된 1316년 6월 3일 테니스를 치다가 포도주를 마시고 3일 만에 2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7] 그의 이른 죽음이 카페 왕조 몰락의 단초가 되고 말았다.

자녀로는 전 부인 마르그리트에게서 얻은 잔느(1312~1349)[8]와 둘째 왕비 클레망스에게서 얻은 장 1세가 있었다. 루이 10세가 사망할 당시 장은 클레망스의 뱃속에 있다가 유복자로 태어났지만 고작 5일 만에 죽어 왕위 계승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났다. 딸 잔느는 《살리카법》 때문에 프랑스의 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1328년 샤를 4세의 죽음으로 나바라의 왕위를 상속받아 호아나 2세로 즉위했다. 나바라 왕국은 호아나 2세를 거쳐 여러 번 모계 계승을 거쳤지만 핏줄은 단절되지 않았고, 그 후 부르봉 왕조앙리 4세의 모계 조상이 되었다.


3. 그 외[편집]



  • 테니스라면 몸도 돈도 마음도 시간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4. 대중매체[편집]


  •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 죽기 전날인 1316년 6월 4일로 날짜를 맞추면 장녀인 잔만 있고 클레망스는 장을 임신하지 않은 상태다.
  • 저주받은 왕들》에서도 주연 중 하나로 등장. 무능하고 성급한 성격으로 등장하며 역사대로 매우 한심한 모습을 보여준다. 1권 이전 시절부터 호아나 2세는 사실상 사생아가 거의 확실한 것으로 나온다던가, 숙부인 샤를 드 발루아에게 휘둘린다거나, 3권에서 필리프 5세의 장모인 마호트에게 독살당한다던가하는 역할로 나온다. 그나마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필리프 5세의 손에 독살당하지 않고, 아들인 장 1세도 살아남는다는 것에서 미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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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하며 샹파뉴 백국이 프랑스 왕령(王領)으로 편입된다.[2] 마르그리트의 내연남 필리프 드 오네이와 블랑슈의 내연남 고티에 드 오네이는 형제 지간이었다. 그러니까 동서들끼리 친형제와 나란히 불륜을 벌인 셈. 정황상 마르그리트와 필리프가 자신의 동서와 친형의 연애를 주선했을 확률이 높다[3]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1313년 영국에 시집갔던 필리프 4세의 딸 프랑스의 이자벨이 친정에 방문하여 오빠들인 루이, 필리프, 샤를 형제에게 비단 주머니를 선물했고 그들은 이걸 자신들의 아내에게 선물했다. 필리프의 아내 잔은 그 주머니를 소중히 간직했지만 마르그리트와 블랑슈는 내연남인 필리프 드 오네이와 고티에 드 오네이[2]에게 선물했고, 오네이 형제는 마르그리트와 블랑슈보다 더 어리석었는지 이자벨이 참석한 연회에 보란듯이 이 주머니를 착용하고 다니는 미친 짓을 저지른다. 당연히 이걸 보고 매우 놀란 이자벨은 아버지 필리프 4세와 비밀리에 접선해 오빠들의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보고했고 필리프 4세가 비밀리에 조사하면서 며느리들의 불륜 사실을 알아낸 것.[4] 이 일은 딸 잔느가 필리프 드 오네이의 사생아라는 의혹을 받아 필리프 5세에게 왕위를 빼앗기는 명분이 되었다.[5] 이 필리프 4세의 며느리들의 단체 불륜 스캔들을 통칭 넬탑 사건이라고 부른다. 마르그리트와 블랑슈가 오네이 형제들과 밀회를 즐기던 곳이 넬탑이었기에 붙여진 이름. 이후 마르그리트는 간통죄로 탑에 유폐된 채로 살다가 남편에게 교살, 블랑슈도 샤를과의 혼인이 무효화되고 수도원에 평생 유폐된 채 살다가 사망했다.[6] 나바라 왕위는 이때 전인 모친 사망시 물려받았다.[7] 공식적인 사인은 폐렴으로 인한 늑막염이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테니스 같은 구기종목을 활발하게 하던 사람이 폐렴이 악화되어 죽었다는 것으로 보아 독살 의혹이 제기된다.[8] 단 루이 10세는 독주를 마시고 사망하기 직전에 잔느를 혈육으로 인정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