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듀크 패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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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듀크 패틀 (Marmaduke Thomas St. John Pattle : 1914년 7월 3일~1941년 4월 20일)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투기 조종사.

2. 상세[편집]


그의 콜사인 "팻"을 붙여 보통 팻 패틀(Pat Pattle)로 알려진 마마듀크 토마스 세인트 존 패틀(Marmaduke Thomas St.John Pattle)은 영연방 국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2차 세계 대전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펼친 전투조종사였다. 어렸을 때부터 조종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1932년 7월에 18세가 되자마자 남아프리카 공군의 모병소로 달려가 지원 입대를 하려고 했지만, 너무 어려 거절당했다. 실망한 패틀이었지만 단념하지 않았다. 4년 후,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단기사병 모병소를 통해 기어코 RAF에 입대했다. 사실, 조종사가 되려면 링컨셔(Lincolnshire)에 있는 영국공군사관학교를 통해 장교가 되는 것이 가장 빨랐지만, 대학을 다니지 않은 그에게는 사관학교 편입이 허가되지 않았던 탓에 사병에서 하사관으로 진급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공군에 입대하기 1년 전에 나치 독일베르사이유 조약 파기를 선언했고, 1936년에는 라인란트를 재무장시키는 바람에 영국으로서는 군대를 보강하며 전쟁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패틀은 즉각 조종사로 편입되었고, 1937년까지 기초 군사교육과 조종 훈련을 받게 된다. 1939년 9월에 전쟁이 터지자 그는 이집트에 전개해 있던 제80스쿼드론에 배치되었다. 1940년 6월, 삼국동맹의 일원이 된 이탈리아추축국의 편에서 전쟁을 시작했고 그는 이탈리아 공군(Regia Aeronautica)을 상대로 전투를 시작하게 된다. 마마듀크 패틀이 첫 격추를 경험한 것은 이탈리아가 이집트를 침공하자 이에 맞설 때였다.

이탈리아 침공 후, 그의 비행대는 1940년 11월에 그리스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패틀은 그가 일군 승리의 대부분을 성취했다.

"이번이 지휘관으로서는 내 첫 번째 임무다. 난 그걸 성공적으로 만드려고 한다. 귀관들은 사막에서 잘 싸웠지만, 좋은 편대는 아니다. 좋은 편대는 똑똑해야만 한다. 귀관들에게서 서투른 결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내 기준에 비춰보면 귀관들의 비행 솜씨는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오늘부터, 비행 훈련은 활주로에서 택싱를 시작하면서 엔진을 끌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장차 귀관들은 지상에서의 활주부터 이륙, 편대 구성, 착륙에 대하여 다시 배울 것이고 얘기치 않은 비상 사태에 대처하는 법까지 모두 가르쳐 주겠다."


패틀은 이 전역에서 20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했고 1941년 3월에는 비행대대장으로 진급되었다. 이탈리아군이 패주하면서 독일군이 개입하자 패틀은 14일 동안 이전보다 더 격렬한 전투를 치르면서 24대였던 스코어를 50대까지 올려놓게 된다. 이 시기, 패틀의 활약은 1일 에이스를 세 번이나 달성하는 등 그야말로 눈부시기 짝이 없었다. 특히, 4월 19일에는 Ju 88 폭격기 3대와 그것을 엄호하기 위해 독일 에이스 쿠르트 우벤이 모는 Bf 109 전투기를 1회의 임무에 잡아버리는가 했더니, 이어진 출격에서도 2대를 더 잡고 SM.79 폭격기에 불을 붙여 격퇴시켰다. 이날 그는 하루에 6대의 적기를 격추시키면서 자신의 경력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다음 날, 서방 연합군 조종사 최고의 스코어를 기록하고 있던 팻 패틀은 과로와 수면부족,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아테네 근처에서 발견된 독일 공군 ZG 26의 전폭기들과 싸우기 위해 명령을 무시하고 호커 허리케인으로 이륙했다. 작전 공역에서 비행하던 지미 케틀웰(Jimmy Kettlewell : 1916~2007 / 5킬)과 아일랜드 출신의 에이스 파일럿 팀버 우즈(Eric "Timber" Woods)에 의해 그가 마지막으로 여러 대의 Bf 110 구축전투기들과 뒤얽혀 싸우는 모습이 목격되었는데, 이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가 탄 허리케인은 치열한 전투를 펼치다가 결국 피레우스(Piraeus) 항구 앞바다로 추락했고, 패틀은 다시는 물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마마듀크 패틀은 가장 높은 격추수를 기록한 영연방 조종사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전과에 관해 제기된 모든 주장이 정확하다면, 그의 격추수는 51대 이상이 될 수도 있다. 패틀의 최종 합계 스코어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40대를 넘겼고 그와 함께 날았던 조종사들은 입을 모아 그보다 훨씬 많은 적기를 쳐부쉈다고 증언했다. 40대라는 스코어는 임무를 마치고 실시한 디브리핑 보고와 지상에서 격추를 목격한 경우만을 인정한 것이며, 그의 비행대대에 소속된 조종사나 정비사들은 패틀의 격추수가 60대에 가까울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패틀에게 격추된 조종사 중에서 26명은 이탈리아 공군이었는데, 그중에서 15명은 구식 복엽기인 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로 격추된 것이며 나머지는 호커 허리케인에 의한 것이다. 그는 평소에 뛰어난 조종사가 되려면 부단히 끊임 없는 비행 연습을 통해 머리보다 몸이 조종술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네들은 공중에서 공격적이어야 하지만 무모하면 안되네. 항상 주도권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공격은 적기가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 때만 해야 하지. 자네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본능적으로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최상으로 유지시킨 경우에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네. 우선 좋은 눈! 그리고 손발의 완벽한 조정이 필수적이야. 실전에서 기체를 조종하는건 자동적이어야 한다네. 마음은 무엇을 해야 할지 자유롭게 생각해야 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여유가 없으니까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흐려져서는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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