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그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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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그랜트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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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34번
마이크 크루코
(1983)

마크 그랜트
(1984)


바비 무어
(1985)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47번
데니스 리틀존
(1979)

마크 그랜트
(1984)


프랭크 윌리엄스
(1984~1986)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46번
마이크 제프코트
(1985)

마크 그랜트
(1986~1987)


존 펠만
(1987)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52번
테리 멀홀랜드
(1986)

마크 그랜트
(1986~1987)


러스 스완
(1989)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55번
마크 뎀프시
(1982)

마크 그랜트
(1987)


키스 콤스톡
(1987)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번호 52번
짐 스틸스
(1987)

마크 그랜트
(1987)


데이브 레이퍼
(1988~1989)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번호 55번
루이스 데레온
(1982)

마크 그랜트
(1987~1990)


안드레스 베루멘
(1995~1996)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55번
브라이언 스니커
(1988~1990)

마크 그랜트
(1990)


케이시 켈리
(2016)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50번
테리 테일러
(1988)

마크 그랜트
(1992)


밥 아이롤트
(1993)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번호 47번
롭 머피
(1992)

마크 그랜트
(1993)


C.J. 니코스키
(1998)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55번
팀 창단

마크 그랜트
(1993)


조 그라헤
(1995)




파일:mark-grant.jpg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지역방송 해설자
마크 앤드류 그랜트
Mark Andrew Grant

출생
1963년 10월 24일 (60세)
일리노이 주 오로라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학력
졸리엣 카톨릭 아카데미
신체
188cm / 89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1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0번 (SF)
소속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84, 1986~1987)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87~1990)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90)
시애틀 매리너스 (1992)
휴스턴 애스트로스 (1993)
콜로라도 로키스 (1993)
퉁이 라이온스 (1996)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
2. 경력
3. 여담



1. 개요[편집]


미국의 우완 투수 출신 방송 해설가.


2. 경력[편집]


데뷔 초에는 나름 촉망받던 유망주였다. 90마일 중후반대의 묵직한 직구와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싱커를 구사했던 무게감이 있던 투수였다. 아쉬운 것은 유리몸이었다는건데, 이러한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트레이닝을 했던 탓도 있고, 잘 하지 못해서 부상이 많았다는 점이다. 결국 이리저리 팀을 옮겨다니면서 커리어를 쌓아나갔고, 결국 1993년 시즌을 끝으로 30살의 이른 나이에 선수생활을 마쳤다. 그래도 선수생활은 짧았지만, 방송가의 생활은 거의 30년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이유는 말주변이 대단히 좋아서 그렇다. 선수 시절 인터뷰 할 때도 익살스러운 입담으로 리포터와 아나운서들의 배꼽을 잡기 바빴을 정도. 중계방송 시작 전에는 세이버매트릭스를 참고하면서 준비하는만큼 새로운 트렌드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1][2] 이 점이 장점이 되어서 현재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지역방송 채널에서 해설자로 롱런하고 있다.


3. 여담[편집]


  • 투수 출신이다보니 교체 타이밍이라든지 심리적인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는 예측을 잘한다. 그래서 감독들이 그랜트의 말을 좀 들었으면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3]

  • 2014년에는 밀워키 브루어스 중계진에 들어와서는 House of Pain의 Jump Around[4]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도망갔다. 장난기도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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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 만큼 선수생활은 화려하지 못했지만, 통계를 보는 눈에 도가 튼 토니 그윈 주니어와 야구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는다고 하며, 나이 어린 선수들과도 허물없이 지낸다.[2] 이는 자신만의 철칙이 있기에 가능한 것인데, 젊은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같이 일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커다란 자기계발이 된다 믿고 있다. 이는 실제로 연구 결과로 존재하는 이론이다.[3] 김선우의 경우도 투수출신이다보니 교체 타이밍 등을 정말 잘 맞추고 있다.[4] 참고로 이 노래는 위스콘신 대학교 학생들이 모교 미식축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일명 "Jumpimg Time"이라고 하는 동작에 맞춰 격렬하게 뜀뛰곤 한다. 쿵쿵거리는 소리 때문에 원정팀 선수들도 죽을 맛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