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량(치어리더)/대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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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타 치어리더
3. 소속 팀들과의 관계
3.1. 롯데 자이언츠
3.2.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1. 개요[편집]


치어리더 박기량의 대인관계에 대한 문서

2. 타 치어리더[편집]



2.1. 김연정[편집]


파일:박기량 김연정. 2013.jpg
2013년 1월 27일 창원 LG 세이커스 구단 주최 '클럽 데이' 에 참석한 박기량, 김연정

김연정과는 복잡한 관계이다. 둘 다 치어리더계의 라이벌로 평가받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상당히 많이 꼬여있다. 사이가 나쁘다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친한 사이는 절대 아니다. 유럽축구로 따지자면 김연정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박기량을 리오넬 메시로 비유하면 얼추 관계가 들어맞는다.[1] 그러나 박기량과 김연정 모두 치어리더의 대중적 인기 상승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고, 실제 두 사람 모두 서로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엄청 받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치어리더 역사를 논할 때 이 두 사람을 빼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07년 9월이다. 당시 두 사람은 부산 거리에서 따로 픽업되어 울산 모비스 피버스 치어리더로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당시만 해도 팀 막내였고, 이미경 치어리더가 선배였기에 두 사람은 별다른 의견차이나 활동 없이 1년만 같이 뛰다가 결별하게 되었고, 이 후 박기량은 2009년 RS COMPANY로 회사를 옮겨 롯데 자이언츠 치어리더로, 김연정은 에스컴으로 회사를 옮겨 한화 이글스 치어리더로 활동하며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이 다시 해우한 것은 2011년 말이다. 당시 김연정은 에스컴에서 잠시 나와 새로운 소속사를 찾고 있었는데, 이 때 박기량이 같이 하자며 김연정을 스카우트했다고 한다. 또한 RS COMPANY 역시 내심 김연정을 노리고 있다가 김연정과 에스컴 간의 계약기간이 끝나는 2011년까지 기다렸다가 끝나마자 제의를 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김연정은 RS COMPANY와 계약을 맺고 입사하게 되었으며, 곧바로 롯데 자이언츠 치어리더팀에 합류한다. 당시 박기량은 최현진에 뒤를 이어 롯데 자이언츠 치어리더 팀장으로 이미 임명되어 있었고 김연정은 박기량 밑에 팀원이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2012 시즌부터 롯데 자이언츠 치어리더로 함께 활동하게 되었고 이 두 사람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박기량, 김연정은 신소정과 함께 국민적인 유명인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롯데 관계자에 따르면 두 사람의 몸값만 1억이 넘었다고 하며, 광고모델과 CF 촬영 제의 등 여러 매니저먼트에서 제의가 수없이 들어왔다고 한다.[2]

이 때만 해도 두 사람의 사이는 상당히 좋았다. 두 사람이 같이 방송에 나올 때면 손을 붙잡고 다니거나 밥을 먹을 때도 같이 수다를 떨고, 두 사람 서로에게 칭찬을 해주는 등 친한 사이로 보기 충분할 정도였다. 가을 시즌이 되면서 두 사람의 무대는 야구 단상에서 농구 코트로 옮겨졌고, 창원 LG 세이커스 치어리더로 활동하면서 또 다시 팬들에게 사랑받게 되었다. 2012년 11월 23일 박기량이 직접 케이크를 들고 코트에서 김연정의 생일을 축하해준 적도 있었다. 2013년 1월에는 신화방송에 같이 출연하여 멤버들에게 치어리딩을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김연정은 2013년 3월 RS COMPANY를 나와 다시 에스컴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신생팀 NC 다이노스의 응원단 랠리 다이노스로 가게 되면서, 박기량과 결별하게 된다. 이 때 두 사람의 결별에 관한 많은 루머가 돌기 시작했는데, 두 사람이 싸워서 갈라졌다는 루머가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2013년 7월 박기량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김연정과 싸우지는 않았지만 미묘한 속앓이를 했었다며, 갈등이 있었던 것을 시인했다. 롯데 관계자 역시 박기량과 김연정 두 사람이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경쟁심이 있었다며, 두 사람이 어떤 갈등을 빚었다는 것을 밝혔다. 아무튼 싸워서 헤어진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결별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두 사람의 위치 싸움 때문인 것이 크다. 박기량, 김연정 모두 팀내에서는 개척하지 못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려다보니 의견충돌이 생기고 그 충돌 때문에 결국 결별하게 된 것. 박기량은 2016년 3월 토크콘서트 화퉁에 출연하여 "팀원들의 세세한 부분을 보살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라고 밝히며 이 일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두 사람은 이 후 다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김연정은 NC 다이노스로 옮겨 2016년까지 활동하다가 2017년에 다시 한화 이글스로 돌아갔고, 박기량은 여전히 롯데에 잔류 중이다. 김연정은 2014년까지는 팀원이었으나 2015년부터 팀장으로 승격되어 한화로 옮긴 현재까지도 팀장직을 맡고 있다.

2013년 3월 결별한 이후 두 사람은 현재까지도 서로를 언급하는 것을 상당히 자제하고 있다. 박기량의 경우에는 김연정에 대한 언급이 나올 때마다 단답식으로 답하거나 답을 피했으며, 김연정은 박기량을 몇 년간 언급하지 않다가 MAXIM 화보 촬영을 하며 4년만에 언급했다. 그러나 이 답도 "섭외는 내가 먼저 왔다" 라는 짧은 답으로 대신하면서 확실히 두 사람의 사이는 거의 틀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 때 같은 팀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스타그램 맞팔도 되어있지 않고, 박기량의 자선콘서트 <박기량과 친구들>에서도 김연정을 비롯한 랠리 다이노스는 불참했다.

다만 합동공연은 한 적이 있다. 2014년 4월 2013-2014 프로농구 시상식에서 두 치어리더팀의 합동공연이 있었으며, 2016년 12월 15일 V리그 클래식전에서 한 번 더 펼쳐졌다.

파일:박기량김연정이수진.jpg

두 사람이 결별 이후 매체에 같이 등장한 것은 2014년 9월 KBO 야구 안전 영상 'SAFE' 에 같이 출연한 것. 이수진 치어리더와 함께 출연해 '흡연 금지' 를 외쳤다.

결별한 이후 몇 년동안은 서로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안 좋았으나 2018년 이후로는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해 언급도 하고 응원도 해주는 등, 갈등이 많이 풀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2.2. 이수진[편집]


파일:박기량 이수진.jpg

같은 야구장 3대여신으로 불리는 이수진의 경우 박기량과도 상당히 가깝고 친한 사이이다. 축구로 따지면 메시와 수아레즈라고 보면 쉬울거같다.박기량은 2007년, 이수진은 2013년 데뷔해서 아무래도 실력으로 같은 라인에 놓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수진도 춤 실력으로는 치어리더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이고 팀 내에서도 꽤 고참의 위치에 있음과 동시에, 같은 야구장 3대여신으로서 자주 비교대상이 된다. 두 사람 모두 댄스 스타일이 파워풀하다보니 스타일도 잘 맞는 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응원팀 모두 최근들어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다는 점까지 똑같다.

롯데와 삼성의 더비 클래식 시리즈에서 두 사람은 자주 댄스 합동 공연이나 배틀을 펼치곤 한다. 2016년부터 시작되었으며, 2017년에도비슷한 형식으로 공연을 했다. 서든어택 2에서 같이 모델을 한 경력도 있고, 박기량은 자신이 원정갔을 때 이수진이 치어리더 팀에게 잘 대해줬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수진 역시 박기량이 사직구장 특유의 분위기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며 답례를 했다. 현재도 자주 만나고 연락을 하는 친한 사이인 듯. 2018년에는 클래식 시리즈가 롯데 측의 사정으로 무산되었으나 올 2019 시즌에는 재개된다고 하니 올해도 기대해보자.


2.3. 강윤이[편집]


파일:DF1FC55C-C023-46EE-978C-1263324E11A2.png[3]

강윤이와도 잘 아는 사이이다. 일단 두 사람 다 데뷔년도가 2007년으로 같고, 업계가 좁은 치어리더 특성상 두 사람도 꽤 오래 전부터 알아왔던 것으로 보인다. 박기량이 2012년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 강윤이는 그 시기 야구 무대에 섰다. 또한 강윤이 역시 박기량-김연정이 만들어낸 치어리더에 대한 인기와 관심을 이어받아, 2013년부터 두 사람을 위협하는 인기 치어리더가 되었다.

2017년 7월, 롯데와 SK의 더비인 항구 시리즈에서 함께 응원을 했다. 두 사람 다 댄스 배틀도 하고 합동 무대도 하면서 팬들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박기량과 강윤이의 댄스 스타일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박기량은 안무 스타일 자체가 파워풀하고 부드러운 안무들도 파워풀하게 바꿔서 추는 편이지만, 강윤이는 여성스럽고 절제된 춤을 잘추며 파워풀한 동작에서도 큰 움직임은 하지 않는 편이다.[4] 그래서 박기량이 같은 동작을 할 때도 더 튀어보이는 경향이 있다.

2014년 11월, 나는 남자다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2.4. 안지현[편집]


파일:박기량 안지현.jpg

신예 치어리더인 안지현과도 많이 비교된다. 일단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5살이 넘고, 데뷔 년도도 8년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박기량과 안지현을 같은 세대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안지현은 박기량의 전성기였던 2012~ 2014년을 보고 자랐던 세대일테니까. 안지현이 2015년 데뷔 후, 2016년 초반부터 '여고생 치어리더' 라는 이름으로 SNS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인기 치어리더가 된 뒤, 박기량의 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2017년부터는 넥센 히어로즈 치어리더까지 맡게 되면서, 두산의 서현숙, 이나경과 함께 야구장 3대 여신의 2세대, 치어리더 3대장이라는 케미까지 만들게 된다. 이로 인해 박기량과 비교되기 시작했으며 제2의 박기량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일단 두 사람은 상당히 절친한 사이이다. 고고스 프레밀리 여자연예인 야구단 멤버로 함께 뛰고 있고, 거주지가 서로 떨어져 있음에도[5] 자주 밥을 같이 먹는 사이라고 한다. 박기량이 한창 위리그에서 방송을 많이 할 때 안지현의 인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했고,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기도 했었다. 게다가 안지현 본인도 박기량이 자신의 친언니보다 더 언니같다고 했는데 실제로 형제관계가 박기량은 여동생 1명만 있고, 안지현은 언니 1명만 있다.

춤 실력은 말 그대로 두 사람 다 끝판왕. 박기량이야 원래 춤 잘 추는 걸로 유명한 사람이고, 안지현 역시 치어리더 3대장 중 가장 댄스 실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기량의 전성기였던 2010~2012년 초반까지의 댄스 실력은 박기량이 훨씬 월등하지만[6], 2016년 말부터 박기량의 댄스 스타일이 과거보다 많이 절제되게 변하면서, 현재는 안지현이 훨씬 동작이 크고 파워풀하다. 물론 박기량 역시 전성기의 기량만 잃었을 뿐이지 현재도 춤 실력은 탑급이라는 것을 알아두자.

아마 박기량이 은퇴한 뒤에는 안지현이 이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많은 팬들이 예측하고 있다.

2018년 1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아서 아리아리걸스라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함께 활동했다. 섹션TV 연예통신에도 출연했고, 해외 행사까지 다녔다.

2018년 4월 30일, 비행소녀 박기량 편에서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등장했다. 박기량은 안지현을 볼 때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며 더욱 더 애틋하다고 했고, 자신이 은퇴한 이후 안지현이 치어리더계에서 중심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안지현이 위리그 태도 논란에 휘말렸는데, 장성우 사생활 폭로 사건에 휘말렸던 자신을 회상하며 기운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2019년 1월 25일 안지현이 롯데 치어리더로 이적한다는 루머가 돌면서 잘하면 박기량과 한솥밥을 먹을 수 있다. 그러다가 2월 롯데로 온다는 기사가 뜨면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7] 2019 시즌에는 박기량 기존 팬과 안지현의 팬들까지 합쳐져 잘하면 2012년에 버금가는 인기를 다시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예상대로, 2019 시즌이 시작되고 안지현과 박기량의 동반 인기에 힘입어 올 시즌 롯데 응원단은 오랜만에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8] 특히 박기량은 2015년 이후 사실상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20년에는 CF도 함께 찍었다. 그리고 2020년 10월부터 안지현이 SK나이츠의 치어리더로 돌아오면서, 둘의 호흡을 서울 SK 나이츠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2.5. 배수현[편집]


배수현과의 개인적인 점접은 별로 없으나[9], 박기량을 이야기할 때 배수현 역시 언급될 만한 회자다. 배수현은 2003년 데뷔한 이후 2000년대 중반 팬클럽 회원수만 1,000명이 넘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치어리더였다.[10]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점점 어린 치어리더들이 들어오며 그 자리를 빼앗겼지만, 지금도 SK 응원단의 상징처럼 남아있으며 여전히 준수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

춤 실력 역시 두 사람은 막상막하다. 2000년대 중반, 날아다니던 시절의 배수현과 2012년~ 2015년 초반 전성기의 박기량은 치어리더 역사상 가장 춤 실력이 뛰어난 치어리더였다. 지금은 둘 다 많이 힘을 잃기는 했지만, 지금도 춤 잘 추는 치어리더하면 자주 언급되는 치어리더 중 1명이다.

배수현은 2016년 인터뷰에서 편견이 심했던 치어리더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을 없애준 박기량과 김연정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적도 있다.


2.6. 이미경[편집]


박기량을 치어리더계로 입문시켜준 사람이 이미경 치어리더이다. 그 시기 이미경은 박기량에게 치어리더로 입문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 누구보다 박기량을 아꼈던 인물이다. 이미경은 박기량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면서, 어린 고2 여학생이 춤 실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이미경은 박기량을 바로 피버스 걸에 투입시켰다.

2009년부터 박기량이 회사를 옮기면서 두 사람은 결별했고, 이미경이 은퇴할 때까지 같은 팀 치어리더로 활동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박기량이 밝히길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고, 항상 조언을 아끼지 않는 언니라고 한다. 팀장으로서 힘들 때면 이미경과 광안리에서 대화를 자주 나눈다고 한다.

장성우 사생활 폭로 사건으로 박기량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이미경이 많은 힘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박기량의 앨범 발매를 누구보다 반대했는데, 이유는 연예인 한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말린 것이였다. 아무튼 이미경은 박기량의 치어리더 인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 중 하나이다.

일부에서는 박기량의 치어리더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김연정이나 강윤이가 아닌 이미경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2.7. 남궁혜미[편집]


파일:남궁혜미.jpg
박기량의 자선콘서트에서 공연하는 남궁혜미

LG 트윈스 치어리더 남궁혜미 치어리더와도 친한 사이이다. 남궁혜미는 박기량을 '량이' 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2016년 자선콘서트에도 참여했다.


2.8. 정다혜[편집]


2018년 현재 LG 트윈스의 치어리더 팀장을 맡고 있는 정다혜 치어리더와도 친한 사이이다. 남궁혜미와 마찬가지로 2016년 자선콘서트에 참여했고, 고고스 프레밀리 야구단에서 박기량, 안지현과 같이 활동하고 있다.


2.9. 금보아[편집]


2016년 금보아가 RS ENT로 이적하며 함께 활동하고 있다. 금보아는 김연정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치어리더이고, 박기량에게 넘어오면서 염지원 다음 가는 치어리더 팀의 높은 직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박기량이 모비스에서 kt로 이적한 이후에는 센터로 활동하고 있다.


2.10. 서현숙[편집]


파일:박기량 서현숙.jpg

2016년 7월 15일, '박기량과 친구들' 자선콘서트에서 인연을 맺었으며, 2018 자카르타 장애인 아시안 게임에서는 국가대표 치어리더로 함께 활동했다.


2.11. 조지훈[편집]


조지훈은 치어리더는 아니지만, 응원단장이고 치어리더들과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함께하기 때문에 기재한다. 조지훈은 박기량이 데뷔하기 이전인 2006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장으로 활동했고, 2009년 박기량이 들어온 이후 9년째 함께 활동하고 있다. 박기량이 처음 들어왔을 당시 조지훈은 부산에서 이름 가는 응원단장으로 롯데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박기량은 인기는 커녕 치어리더 응원단 자체에 팬들이 무관심했기 때문에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2년 박기량이 인기 치어리더로 뜨게 되면서 조지훈과 박기량은 롯데 자이언츠를 대표하는 얼굴로 자리잡았고, 각종 롯데 자이언츠 관련 홍보 영상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한편 배트걸 신소정 사건 당시 두 사람 다 큰 타격을 입을 뻔 했지만, 나중에 무고임이 밝혀지면서 일단락되었다.

3. 소속 팀들과의 관계[편집]




3.1. 롯데 자이언츠[편집]


그야말로 박기량의 상징 같은 팀이자 박기량의 커리어의 대부분을 함께했던 팀. 박기량의 치어리더 커리어를 논할 때 롯데 자이언츠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이 팀을 통해 박기량이 치어리더로서 엄청나게 높은 커리어를 달성하였다. 2008년 여름 우연히 롯데 경기를 보러 갔다가 당시 롯데 응원문화에 매료되어 그 해 연말 오디션을 보았고, 그 다음 해인 2009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치어리더로 데뷔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박기량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된다.

2011년 말부터 사직구장에서 춤 실력이 좋고 미모가 뛰어난 치어리더로 일반 대중들에게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다가, 2012년 김연정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이루며 말 그대로 대박을 터트려냈다. 8888577 이후 제리 로이스터 - 양승호로 이어지는 2008~2012년 롯데 전성기의 상징 중 1명. 당시 사직구장은 롯데의 높은 성적 + 응원단 인기로 표를 구하기 힘들 정도로 좌석 점유률이 대단했고 특히 응원단장 석 앞은 2~3주 전에 예매해야만 겨우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었다. 이를 통해 박기량의 롯데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고 치어리더로서 제대로 유명세를 얻었다.

김연정이 떠난 2013년 이후에는 김연정과 둘로 나누어먹던 롯데 치어리더팀 인지도를 혼자 독식하며 2015년까지 전성기를 이어나가다가, 2016년부터는 여러 비평에 휩싸이며 현재는 후배들을 주로 띄워주는 중이다.

롯데 팬들에게 박기량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자 상징, 그리고 애증의 존재. 실제 박기량이 팀을 옮긴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난리가 날 정도로 롯데 팬들로부터 박기량이 받고 있는 지지도는 엄청나다. 특히 롯데가 2013년 이후로 계속 하위권을 맴돌면서 롯데 팬들이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박기량과 응원단이었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애증의 존재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 박기량이 2016년 가수 데뷔 논란과 문재인 캠프 합류, 페미니즘 논란을 일으켰을 때 롯데 팬들은 박기량을 비판하면서도 차마 심하게 욕은 못 하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박기량도 롯데에 대한 애정이 상당해서, 겨울 팀들은 3~4년에 한번씩 바뀌고 있지만 야구만큼은 다른 팀으로 옮기지 않고 10년째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는 소속사인 RS ENT 대표가 롯데 응원단 실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3.2.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편집]


박기량의 마음의 고향과 같은 팀으로 박기량은 이 팀의 치어리더로 처음 데뷔를 했고,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피버스 걸의 치어리더 팀장으로 재직하며 인기를 끌었다. 피버스 걸은 롯데 자이언츠에 이은 박기량의 또 다른 커리어 하이 팀으로, 여기서도 박기량은 가장 높은 커리어를 달성하였다. 현대모비스 잡지에도 여러 차례 등장해 인터뷰했었고, 그가 있었던 2013~2015년 사이 모비스가 최전성기를 누리는 성적을 기록하면서 박기량 역시 울산 팬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장성우 사생활 폭로 사건이 터졌던 당시 활동하고 있던 팀이기도 하다. 당시 일부 취재진들이 박기량을 인터뷰하기 위해 울산동천체육관에 찾아갔다가 비난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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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9 19:08:37에 나무위키 박기량(치어리더)/대인 관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메시와 호날두 또한 성격이 완전 반대다.[2] 그러나 박기량과 김연정은 제의를 모두 거절했고 그 분 만이 수락해 '야구 9단' 광고를 찍었다.[3] 나는 남자다에 같이 출연했을 때 모습. 강윤이는 1차 은퇴 전 마지막으로 출연한 방송이 나는 남자다였다.[4] 이건 강윤이의 발목 상태와도 관련이 있다. 발목 부상으로 은퇴하고 복귀하면서, 과거의 절제되었던 춤선이 더욱 절제된 상태로 진화하였다.[5] 박기량 부산, 안지현 수원[6] 이 시기 박기량의 댄스 실력은 역대 치어리더들 중에서도 따라올수 있는 사람이 몇명 없다. 과거 2000년대 중반의 배수현 정도다.[7] 실제로 박기량이 영입했다고 한다.[8] 하지만 정작 롯데 성적은 처참했었다. 15년만에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치어리더만 영입이 좋았다는 비아냥을 듣게 되었다.[9] 나이차이도 많이 나는 선후배에 활동팀도 달랐다.[10] 특히 청각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장애를 극복한 치어리더' 라는 애칭까지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