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 윌리엄스(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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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ert Williams.jpg
이름
버트 프레데릭 윌리엄스
(Bert Frederick Williams, MBE)
생년월일
1920년 1월 31일
사망년월일
2014년 1월 19일 (향년 93세)
국적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출신지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빌스턴 브레이들리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178cm | 77kg
소속팀
월솔 FC (1937-1945)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1945-1957)
국가대표
24경기 (1949-1955)



1. 개요
2. 생애[1]
2.1. 어린 시절
2.2. 선수 생활
2.3.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4. 수상
4.1. 클럽
4.2. 개인



1. 개요[편집]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2][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윌리엄스는 자신이 다니던 빌스턴 스쿨에서 축구를 접했다.

14세에 학교를 그만둔 윌리엄스는 톰슨 공장에 입사해서 공장 노동자들의 축구팀에서 뛰었다. 그러다 윌리엄스는 당시 월솔의 감독이었던 앤드류 윌슨에게 발견되어 월솔에서 뛰게 되었다. 윌슨 감독은 윌리엄스를 리저브 팀에 넣고 공장팀에서도 계속 뛰면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2.2. 선수 생활[편집]



2.2.1. 클럽[편집]


1937년 4월, 월솔과 프로 계약을 맺은 윌리엄스는 그해 10월 16일에 브리스톨 시티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선수 생활 초창기는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중단되었다. 그는 전쟁 기간에 RAF의 체육 교관으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나고 윌리엄스는 1945년 9월부터 울버햄튼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원래 이때의 윌리엄스는 처음 그에게 관심을 보였던 첼시 이적을 더 선호했지만 그의 영입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 팀은 울버햄튼이었고 그렇게 이적이 성사되었다. 그는 울버햄튼에서 당장 주전감으로 인정받았고 공식적으로 전쟁 이후 재개된 1946년 8월 31일의 1부 리그 첫 경기에서 울버햄튼은 아스날을 6대1로 대파했다.

1949년, 울버햄튼은 FA컵 우승을 차지했고 이는 윌리엄스의 커리어에서 첫 메이저 트로피였다. 이후 울버햄튼은 1954년 처음 1부 리그 우승에 성공했고 윌리엄스도 팀의 주전 골키퍼로 공헌했다.

윌리엄스는 1957년에 은퇴했고 울버햄튼에서 381경기 리그 출전과 38경기 FA컵 출전 기록을 남겼다.


2.2.2. 국가대표[편집]


울버햄튼FA컵 우승으로 윌리엄스는 잉글랜드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윌리엄스의 대표팀 공식 데뷔전은 1949년 5월 22일에 있었던 프랑스전이었고 잉글랜드는 3대1 승리를 챙겼다. 그해 11월 30일에 있었던 이탈리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윌리엄스는 무실점을 기록했고 이 경기를 통해 그는 이탈리아 기자들로부터 고양이같다는 찬사를 들었다.

윌리엄스는 잉글랜드가 최초로 출전한 월드컵의 주전 골키퍼로 참가했고 3경기에서 모두 골문을 지켰지만 잉글랜드는 결선 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이 3경기에는 FIFA 월드컵자이언트 킬링 역사에 영구 박제될 미국전의 0대1 패배도 포함되어 있다.

윌리엄스는 대표팀에서 총 24경기에 출전했다.


2.3. 이후[편집]


선수 은퇴 후 윌리엄스는 스포츠 용품점을 운영했으며 2002년에 그의 아내가 사망하고 치매 재단을 설립했다. 2007년에 윌리엄스는 경력 동안 모인 개인 사진을 바탕으로 "늑대 옷을 입은 고양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윌리엄스는 그의 2010년 생일에 축구와 자선 활동에 대한 공로로 대영 제국 훈장 5등급에 서훈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친정팀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윌리엄스는 2014년,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잉글랜드의 최초 월드컵 대표팀 멤버 중 최후의 생존자는 로이 벤틀리였지만 윌리엄스는 벤틀리보다 17일을 더 살아 최장수 멤버로 기록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윌리엄스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즐겨서 운동 능력이 좋은 골키퍼였다. 윌리엄스의 울버햄튼 시절 동료 론 플라워스에 따르면 윌리엄스는 100야드 달리기를 10초대에 주파할 수 있었다고 인터뷰하면서 어쩌면 윌리엄스가 당시 잉글리시 풋볼 리그에서 가장 빠른 선수였을지도 모른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의 포지션이 골키퍼인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윌리엄스는 종아리를 강화하고 반응 시간을 줄여 보다 효율적인 세이브를 하기 위해 집에서 훈련장까지의 수 마일 거리를 자주 걸어다녔다. 그는 부상에서 회복하는 동안 자신의 부상 회복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던지기도 했고 자신의 키 문제를 인지한 후 문틀에 매달려 몸을 풀어 키를 키우려고도 노력했다.[3]

이런 노력으로 윌리엄스는 선수 시절 당시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최고급 골키퍼로 인정받았다. 그는 체격에서 이점을 갖지는 못했지만 동시대 공격수들의 거친 도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만큼의 용기와 힘이 있었고 화려하고 아크로바틱한 선방을 보여줄 수 있었다. 윌리엄스는 또한 팀의 공격으로 바로 연결시킬 수 있는 효율적이고 정확한 던지기도 구사할 수 있었다. 윌리엄스의 대표팀 후배이자 올타임급 골키퍼 중 한 명인 고든 뱅크스는 윌리엄스의 운동 능력, 민첩성, 골문 구석으로 빨려드는 공을 처리하는 능력에 감탄했다고 회고했다.


4. 수상[편집]



4.1. 클럽[편집]




4.2. 개인[편집]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김영광도 자신의 키를 더 키워보고 싶은 마음에 철봉에 자주 매달려봤지만 커지라는 키는 안 커지고 팔만 길어졌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래도 골키퍼의 신체적 특성상 팔이 짧은 것보다는 긴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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