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몬 체이스

덤프버전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 펼치기 · 접기 ]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알렉산더 해밀턴
올리버 월콧 Jr.
새뮤얼 덱스터
앨버트 갤러틴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조지 캠벨
알렉산더 댈러스
윌리엄 크로포드
리차드 러쉬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새뮤엘 잉엄
루이스 맥레인
윌리엄 듀언
로저 토니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리바이 우드베리
토마스 유잉
월터 포워드
존 스펜서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조지 빕
로버트 워커
윌리엄 메러디스
토마스 코윈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임스 거스리
하웰 콥
필립 프랜시스 토마스
존 아담스 딕스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살몬 P. 체이스
윌리엄 페선던
휴 맥컬로치
조지 부트웰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윌리엄 리차드슨
벤자민 브리스토우
로트 M. 모릴
존 셔먼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윌리엄 윈덤
찰스 J. 폴저
월터 Q. 그레셤
휴 맥컬로치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다니엘 매닝
찰스 페어차일드
윌리엄 윈덤
찰스 포스터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존 카라일
라이먼 J. 게이지
레슬리 쇼
조지 B. 코텔류
제45대
제46대
제47대
제48대
프랭클린 맥비
윌리엄 매커두
카터 글래스
데이비드 휴스턴
제49대
제50대
제51대
제52대
앤드루 멜런
오그덴 밀스
윌리엄 H. 우딘
헨리 모겐소 Jr.
제53대
제54대
제55대
제56대
프레드 M. 빈슨
존 웨슬리 스나이더
조지 험프리
로버트 B. 앤더슨
제57대
제58대
제59대
제60대
C. 더글러스 딜런
헨리 파울러
조셉 바
데이비드 케네디
제61대
제62대
제63대
제64대
존 코널리
조지 P. 슐츠
윌리엄 E. 사이먼
W. 마이클 블루멘탈
제65대
제66대
제67대
제68대
G. 윌리엄 밀러
도널드 리건
제임스 베이커
니콜라스 F. 브래디
제69대
제70대
제71대
제72대
로이드 벤슨
로버트 루빈
로렌스 서머스
폴 H. 오닐
제73대
제74대
제75대
제76대
존 W. 스노우
헨리 폴슨
티모시 가이트너
제이콥 루
제77대
제78대


스티븐 므누신
재닛 옐런






[ 펼치기 · 접기 ]
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존 제이
존 러틀리지
올리버 엘즈워스
존 마셜
로저 터니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새먼 체이스
모리슨 웨이트
멜빌 풀러
에드워드 더글라스 화이트
윌리엄 H. 태프트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찰스 에번스 휴즈
할란 스톤
프레드 빈슨
얼 워런
워렌 버거

제16대
제17대
윌리엄 렌퀴스트
존 로버츠




살몬 체이스
Salmon Chase



파일:Mathew_Brady,_Portrait_of_Secretary_of_the_Treasury_Salmon_P._Chase,_officer_of_the_United_States_government_(1860–1865,_full_version).jpg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생
1808년 1월 13일
미국 뉴햄프셔 주 코니쉬
사망
1873년 5월 7일
미국 뉴욕 주 뉴욕
학력
다트머스 대학교
직업
제25대 미국 재무장관
제6대 미국 연방대법원장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파일:$10000 front.jpg
1934년 1만달러 지폐 속 초상화
살몬 체이스는 미국의 정치인이자 연방 대법원장으로 연방 상원과 제23대 오하이오 주지사, 그리고 남북 전쟁 동안 제25대 재무장관 (1861년 ~ 1864년)을 지냈다.


2. 생애[편집]


노예제 폐지론자였던 체이스는 변호사로서 자신의 초기 경력을 빈번히 도망친 흑인 노예들을 변호한 것으로 유명하며 "도망친 노예들을 위한 검찰총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그는 1855년부터 1859년까지 오하이오 주지사를 지냈다.

1860년 대선 공화당 경선에 나섰다가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패배했다. 이는 그가 민주당-자유토지당 출신으로 당시 공화당 주류인 북부 휘그당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계파 안배 차원에서 재무 전문가가 아니었음에도 링컨 정권의 재무장관으로 발탁된 체이스는 남북 전쟁 동안 재정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고 국내 은행 제도를 설립하여 지폐 통화(그린백)를 발행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전반적으로 역할을 잘 해내고 전쟁 수행에 기여했다고 평가되지만, 재무장관의 역할 범위를 넘어 전쟁 수행 방침에도 관여하고 싶어했으며 대통령직에 대한 야심을 숨기지 않아 링컨과 불편한 관계였다. 여러 차례 사임을 요구했으나 그가 차기 대선에 경쟁자로 나설 것을 우려한 링컨에 의해 반려되었다. 1864년 6월 마침내 재무장관직에서 사임한 그해 후순에 대법원장 로저 터니가 사망하자 링컨에 의해 미국 대법원의 연방 대법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873년 사망할 때까지 이 직위를 지냈다. 대법원장을 지내면서도 1868년 민주당, 1872년 자유공화당 대선후보를 노렸지만 모두 실패했다.


3. 여담[편집]


  • 미국의 주화에 표어 'In God We Trust(우리는 신을 믿습니다)'가 새겨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체이스였다.

  • 이 사람의 이름이 굉장히 의외인 곳에 남아있는데 바로 JP모건 체이스. 재무장관을 역임할 정도로 경제에 바삭한 인물이 은행 하나 정도 세워서 거기에 자기 이름이 들어가도 이상할 것 없지 않나 싶겠지만, 의외인 이유는 바로 체이스는 위의 은행과 하등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체이스 연방인가은행(Chase National Bank) 설립 당시 창립자가 그를 기리기 위해서 끌어다 썼다고.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2 13:27:22에 나무위키 살몬 체이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