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모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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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샤를 모라스(1868년 - 1952년)는 프랑스 제3공화국 시절 활동했던 프랑스 작가이자 극우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모라스는 보수주의적 중산층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톨릭 고등학교에서 공부했고, 1885년에 파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890년대에도 프랑스 사회에서는 1871년 보불전쟁에서 독일을 상대로 패배한 기억 때문에 강력한 반독감정이 팽배해 있었고 알자스 로렌 지방을 되찾자는 실지회복주의를 주장하는 정치 운동가들이 있었다. 1894년부터 유대인 출신 프랑스 장교인 드레퓌스가 독일에게 군사기밀을 넘겨주었다는 드레퓌스 사건이 터지고 프랑스 사회가 드레퓌스가 유죄라고 주장하는 파무혐의라고 주장하는 파로 나뉘었을 때, 샤를 모라스는 전자에서 활약한다. 반자유주의, 반유대주의자였던 모라스는 오를레앙주의 기반 극우정당인 악시옹 프랑세즈 (Action Française)에 가입하고 1908년부터는 동명의 기관지에서 기자로 활동한다. 그는 프랑스를 왕정으로 융합하고 1789년 프랑스 혁명부터 프랑스가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통합민족주의 (Nationalisme intégral)라는 사상의 주요 사상가가 된다.

1922년에는 베니토 무솔리니와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고, 1934년 프랑스 폭동에 참여하며 1936년에 유대인 출신 국무총리 레옹 블룸을 살인 협박했다. 비시 프랑스 시절 레지스탕스와 연합국을 비판했다. 1945년에 나치 협력자들과 함께 재판장에 서고, 공민권을 박탈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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