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건창/선수 경력/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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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건창의 연도별 시즌 일람
2020년

2021년

2022년

1. 시즌 전
2. 페넌트레이스
2.1.1. 4월
2.1.2. 5월
2.1.3. 6월
2.2.1. 7월
2.2.2. 8월
2.2.3. 9월
2.2.4. 10월
3. 포스트시즌
4. 시즌 총평
5. 시즌 후



1. 시즌 전[편집]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취득한다. 시즌 전 자진하여 연봉까지 대폭 삭감한 만큼 선수 본인이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지가 중요 할 듯. 특히 김하성의 이적과 김혜성의 유격수 이동으로 비어버린 2루수 자리에서 자신이 풀타임 수비까지 가능한 2루수라는 점을 보여주어야할 것이다.

2. 페넌트레이스[편집]



2.1. 키움 히어로즈 시절[편집]



2.1.1. 4월[편집]


11일 사직 롯데전에서 6타수 3안타(2타점)으로 활약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14일 고척 LG전에서 1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역대 159번째로 1000경기 출장을 달성하였다.

29일 고척 두산전 최원준을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신고했다.


2.1.2. 5월[편집]


15일 고척 한화전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본인의 초교 시절 은사인 박태범 감독을 시구자로 초청하였고, 이날 경기 4타수 3안타 1타점 3득점을 기록하며 활약하였다. 팀은 1회 대거 10득점을 앞세워 15대 1 승리.

18일 대구 삼성전에서는 2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하였다. 팀은 6회초 대거 9득점을 앞세워 15대 3 대승.

현재 페이스 상태를보면 작년시즌 시작과는 다르기 매우 좋은 타격감을 뽐내고 있다. 안타개수, 특히 장타의 수가 리드오프로 출장할때 많이 나왔으며 홍원기 감독도 이를 의식했는지 종종 4번타자로 내세우는 모습도 보일 만큼 좋은 활약을 해주고있다.

그러나 5월 말부터 타격감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수비에서도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며 부진을 겪고 있다.

30일 잠실 LG전 2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3타수 1안타를 기록하였으나 2회말 수비 상황 오지환의 평범한 내야 땅볼을 뒤로 빠트리는 실책을 저질렀다. 이 실책으로 인해 팀은 2회말에만 5점을 내주었고 결국 8대 2로 패배하였다.


2.1.3. 6월[편집]


6일 고척 삼성전에서는 2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5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였고 득점권 상황에 번번히 범타로 물러나며 팀의 3대 1 패배에 일조하였다. 개막 초 그 좋던 타격감은 어디로 갔는지 의문이다.

8일 대전 한화전 역시나 2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5타수 1안타를 기록하였다. 4회말 1사 2루 수비 상황에서는 1,2루간의 깊은 타구를 잘 따라 갔으나 송구가 살짝 빗나가는 실책을 저지르며 한 점을 헌납하였다. 팀은 6회말 김혜성의 송구 실책과 3이닝 연속 잔루만루를 앞세워 4대 2 패배. 사실상 이제 타격은 기대하지 않는게 좋을 수준.

11일 문학 SSG전에서도 5회말 2사만루 상황에서 뜬공으로 물러나며 잔루만루.

12일 SSG전에서는 시즌 처음 9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하였다. 안타는 없었으나 볼넷은 2개를 골라나갔다. 이젠 지명타자로도 쓰기 어려워졌다. 차라리 투수를 9번 자리에 쓰는 내셔널리그 방식도 나쁘진 않을 듯 하다.

6월 13일까지의 성적은 258 382 320 702 wRC+ 98.2 WAR 0.96이다. 스탯티즈로 보면, 공격이 아예 안 되는 김상수는 수비로라도 밥값을 하는데, 이 쪽은 수비도 안 된다. 정말 미칠 지경. 김상수 다음으로 많이 출장하고 있는 데도 RF9가 4.90으로 5가 채 안 된다.[1]

6월 16일 LG전에서 진해수을 상대로 오랜만에 홈런을 쳤다.

7월에 송성문이 돌아올 예정인데, 2루수로 주로 출장하고 있다고 한다. 2군에서 OPS가 1.000을 넘어가는 중이라, 여차하면 백업 내지 출장을 못 하게 생겼다. 여기에 문찬종이 RF9가 5.48을 기록하며, 백업으로서 리그 탑급의 수비력을 보여주는 중이라, 입지까지 줄어들 예정.

25일 KIA전 이민우을 상대로 홈런을 때렸다.

27일 KIA전 장현식을 상대로 솔로홈런을 쳤다.


2.2. LG 트윈스 시절[편집]



2.2.1. 7월[편집]



파일:서건창 이적.jpg


7월 27일에 투수 정찬헌1:1 맞트레이드되어 12년 만에 다시 LG 트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기사 2루가 급한 LG가 여기저기 손을 벌리다 마침 투수 셋이 시즌아웃된 키움과의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그러나 서건창 개인에게는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닌데, LG로 트레이드 되면서 비 FA 선수들중 연봉 순위 3위 이내에 들게 되어 내년 FA때 A등급이 되게 생겼다. 지난 시즌 종료후 자진해서 연봉 삭감을 요구하며 다음 시즌 FA를 B등급으로 만들어서 FA때 좀 더 유리한 협상을 노려봤으나, A등급이 되면서 괜히 연봉만 더 깎은 셈이 됐다. 반대로 키움 입장에서는 시즌 후 B등급을 보내고 FA보상 받아봤자 정찬헌 급의 선수는 뽑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이득을 봤다. 다만 서건창이 올해 fa에서 힘들다고 말하기는 힘든데, 올해 FA에는 리그 2루수 투탑인 박민우-안치홍이 모두 풀려서 서건창의 입지가 상당히 좁았는데, 박민우는 징계로 FA가 미뤄지고, 안치홍은 시즌 중 계약이 연장되면서 FA시장에서의 입지가 크게 올라갔다.

또한 수비는 주전 유격수는 수비력 만큼은 정평이 나있는 오지환이라 어느 정도 커버가 이뤄지며 하락세인 올 시즌 성적도 리그 2루수 3위의 WAR이며 역대 LG 2루수 9위이자 4위 페이스에 해당한다. wRC+도 100을 넘기며 볼삼비나 선구안은 여전하다. 당장 서건창의 현 시점 WAR이 정주현의 통산 WAR을 채우고도 남는 수준이다.

허나,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낮아지는 출루율과 점점 줄어들고 있는 수비범위 때문에 우려를 표하는 시선이 있는 건 사실이다. 실제로 서건창은 부상 이전에도 수비를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고 십자인대 부상 이후로는 수비범위가 더 줄어들어 현재는 정면 타구 아니면 잘 잡지 못하는편 이다. 더군더나 고척의 인조잔디 이상으로 잠실의 내야 그라운드의 상태는 헬게이트라서 안그래도 인대 부상 이후 풋웍이 좋지 못한 서건창이 잠실 내야의 강한 땅볼을 감당할지도 팬들이 걱정하는 부분. 이런 문제는 기록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감안해도 정주현보다는 훨씬 나은 선수이기 때문에 LG팬들은 일단 정주현만 안 봐도 되니까 괜찮다는 반응이다.[2]

그리고 2021년 KBO 리그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겪으면서 가뜩이나 민심이 바닥을 치던 키움 팬층은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팬들의 성향에 따라 평가가 매우 갈리는 트레이드인데, MLB에 익숙한 팬들은 오히려 잘 팔았다고 좋아하는 한편, 넥센 황금기 (2012 ~ 2014) 시절 유입된 팬이나, 선수를 보고 유입된 키움 팬들은 이 트레이드에 대해 굉장한 비판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팀에 몸담은 프랜차이즈 선수를 조금 이득 챙기자고 냅다 보내버렸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3]

등번호는 히어로즈 시절과 똑같은 14번. 원래는 신민재가 14번을 사용했으나 서건창이 이적하면서 14번을 양보했다.[4] 한국으로 돌아온 뒤 후배에게 번호를 받고 답례로 후배에게 시계를 선물한 추신수처럼 서건창도 신민재에게 선물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만일 서건창이 남은 경기를 모두 출장하게 되면 KBO 리그 최초로 한 시즌 145경기를 소화한 선수가 된다.[5] 키움에서 76경기를 뛰었는데 LG는 69경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2.2.2. 8월[편집]


후반기 첫경기인 8월 10일 SSG전에 3번 2루수로 선발출장하였다. 첫 두타석은 범타로 물러났으나 5회말 세번째 타석에서 복귀 후 첫 안타를 신고하였다.[6]

8월 11일 경기에서도 3번 2루수로 선발 출장. 멀티히트를 때려내며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였다.

8월 14일 경기에서는 2볼넷과 기습번트 안타로 3출루했다.

8월 15일 경기에서는 만루에서 우전 2타점 적시타를 기록하며 LG 이적 이후 첫 타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견인하였다.

이적 후 1주일간 성적은 타/출/장 0.238/0.304/0.238 ops 0.542. 기대보다 많이 낮은 성적을 기록하였다.키움과 달리 LG는 2할 초반은 쳐 주면서 수비는 좋은 내야 백업 요원이 넘쳐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타격이 반등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서건창도 B급 대수비 요원과 별반 다를 게 없으므로 타격의 반등이 절실하게 되었다.

8월 17일 경기에서는 3타수 무안타 1볼넷 1삼진에 그쳤다. 이날 1번 홍창기와 4번 보어까지 무안타로 침묵하며 타선은 응집력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5-1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5-5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타율과 같은 기본적인 스탯을 보면 당연히 3번 타자로 적당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는데도 3번 타순으로 쓰는 것은 데이터는 장식에 불과하고 트레이드 성과를 홍보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억지 추측까지 나오는 상황.

8월 19일 경기에서는 4타수 2안타로 멀티히트를 때려내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9회 초 선두타자로 나와 2루타를 때려내며 찬스를 만들었고 뒷타자 김현수의 적시타로 홈을 밟으며 이날 팀의 유일한 득점을 기록하였다.

22일 경기에서도 3번 2루수로 선발 출장, 4타수 2안타 1홈런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4회에는 LG로 복귀 후 첫 홈런을 신고하였다. 팀은 3-4로 패배하면서 빛이 바랬다.

이적 후 10경기 타출장옵 0.256, 0.310, 0.359, 0.669에 wOBA 0.315, wRC+는 85.0을 기록중이다. 냉정히 말하면 키움 때 보다도 저조한 성적이다.

하지만 갈수록 멀티히트,타점 등을 나름 만들어주면서 나쁘지 않다는 평가도 보이는 중이다. 출루율이 급감했다는 건 걱정거리지만.

8월 성적은 타/출/장 0.279/0.343/0.361 OPS 0.704. 표면적인 성적도 성적이지만, 타선에서 맥 커터를 맡은 전임 2루수와 달리 경기 초반이나 중요 상황에서 안타를 뽑아내는 능력을 보이고 있다.


2.2.3. 9월[편집]


11일 두산전에서는 2루수 2번타자로 선발출장하였다. 앞선 4타석에서 계속 범타로 물러나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9회초 4-5 2사 1루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동점 2루타를 때려내며 팀을 패배에서 구해냈다. 동점까지 가긴했지만 결국 이 날 경기는 무승부로 끝.

대체로 나쁘진 않지만 바빕이 0.296으로 운이 지독히 없는 상황.

슬슬 정주현과 성적 차이가 거의 없는 수준으로 수렴하면서 여론도 덩달아 나빠지고 있다. 일단 근본적으로 정찬헌과 비교해서 서비스 타임이 1년 더 짧고, 설령 둘다 잘해도, 혹은 둘다 망해도 기본적으로 투수가 타자보다는 더 가치가 높기 때문에 서건창이 적어도 OPS 8할에 wRC+ 100 이상은 찍어줘야 만족하는 트레이드가 될텐데, 정찬헌이 더 잘해주고 있으니 비교가 될 수 밖에. 거기에 개인 팬덤까지 LG로 끌고 왔다.[7]

21일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22일 4타수 2안타 1사사구 1타점 2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23일 경기에서는 1회부터 병살타를 날리고 간신히 빗맞은 내야 안타 하나만 추가하며 기어이 wRC+가 정주현보다 낮아졌다.

작전수행이나 클러치 능력은 분명 좋지만 내야안타 비중이 높고 타구도 땅볼이 많기 때문에 클린업에 배치시킬만한 타격은 분명 아닌데 트레이드 성과를 홍보하려는건지 주구장창 3번타자로 나오고 있다.[8][9]

25일 9회초 마지막 득점 기회를 날려버리는 병살타를 날렸다.


2.2.4. 10월[편집]


하지만 9월 후반부터 서서히 타격감을 끌어올리더니, 10월들어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물론 그래도 욕은 똑같이 먹고있다.

10월 2일 키움전에선 1회, 2회에 2루타 두개를 때려내며 친정팀에 비수를 꽂는 맹활약을 했다. 상대는 다름아닌 정찬헌. 근데 세리머니를 틀리는 바람에 또 커피쏘기에 당첨됐다...

최근 10경기 15안타로 타격감이 살아났다.

8일 KIA전에서 3타수 1안타 2타점 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후 페이스가 급락하여 선발에서 제외되거나, 하위타선으로 나오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정도로 부진하냐면, OPS가 4할대이다. 팬들은 서건창을 어느새 좌타 정주현으로 부르고 있다.

수비 역시 키움 시절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좁은 수비범위와 늦은 공빼는 속도로 인해 실책이 아니지만 실책성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병살성 타구를 아웃 하나만 잡는다거나 다이빙캐치로 막을 수 있는 타구를 안타로 만들어준다거나 하는 사례들이 종종 보인다. 딱 인조잔디에서 천연잔디로 바뀐 만큼만 나아진듯 하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출루율도 낮아지고 있다는 것. 나이든 타자가 가장 늦게 하락하는 요소가 선구안인데[10] 출루율도 심각하다.

26일 한화전에서는 간만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멀티도루까지 성공시킨건 덤.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롯데전에서 멀티히트를 쳤다.

3. 포스트시즌[편집]


김현수, 박건우에 가려져서 크게 부각되지 않은 것 같지만, 통산 포스트시즌 성적이 김현수 보다도 훨씬 나쁜 선수다. 포스트시즌 45경기 가량 출장하여 통산 WAR -0.09, wRC+ 65를 기록중이다.

혹자들은 히어로즈가 박병호, 강정호, 유한준, 서건창 등을 들고 왜 14년, 19년에 우승하지 못했냐고 하는데 그 선수들이 부진해서 우승을 못 했다. 박병호는 결정적인 홈런 때문에 가려졌지만 가을야구에서 기복이 매우 심했다.[11] 강정호도 2014년 플레이오프 뺴면 타격이 안 됐고 한국시리즈에서도 1차전에서 홈런을 쳤고 이 덕에 이기긴 했지만[12], 뒤이은 경기들을 히드랍더볼 실책으로 다 이긴 경기를 말아먹었고, 서건창은 아예 가을야구 통산 WAR가 음수다.[13] 김하성은 한국시리즈에서 강정호와 똑같은 히드랍더볼 실책으로 다 이긴 경기를 말아먹는가 하면 타격에서도 극도로 부진했다.[14][15] 가을에도 꾸준히 잘한 히어로즈 중심타자는 이정후 뿐이다.[16] 물론 김하성이나 강정호는 유격수로서 지나치게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등 야수로서의 혹사 논란이 있긴 하다.[17]

21년엔 어떨지 관심이 모아졌다...

3.1. 준플레이오프[편집]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2번 2루수로 출장했다. 2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했고, 7회 좌투수 이현승이 나오자 대타 이형종과 교체되며 물러났다. 이후 대수비 정주현이 게임을 터트리며 재평가를 받았다.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 선발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 1삼진으로 침묵했다.[18] 다만 수비에서는 3회말 노련한 판단으로 켈리의 2루 견제를 유도해 페르난데스를 견제사 시키는데 기여했다. 팀은 김민성의 4안타 3타점 대활약쇼에 힘입어 승리했다.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내야안타 포함 멀티히트, 두번의 볼넷으로 총 4회 출루하며 오랜만에 충분한 활약을 했다. 그러나 팀은 홍창기[19]와 김현수의 부진으로 무기력하게 물러나며 가을야구에 탈락했다.

플레이오프 총 성적은 8타수 2안타 3볼넷. 타율만 보면 평범했으나 준수한 출루율을 보였고 수비에서 크게 터트린것이 없어 무난하게 활약 했지만 팀이 탈락해서 묻혔다. 팽팽했던 1차전, 크게 이겼던 2차전에서는 침묵했고, 대패한 3차전에서 날아다녔기 때문에 스탯상으로는 준수한데[20] 체감으로는 딱히 눈에 띄지 못했다.

4. 시즌 총평[편집]


정규시즌 성적
이적 전 : 키움에서 76경기, 0.259/0.372/0.354 OPS 0.725, wRC+ 105.4, WAR* 1.70, WPA 0.43
이적 후 : LG에서 68경기, 0.247/0.323/0.332, OPS 0.655, wRC+ 82.1, WAR* 0.76, WPA -0.29

포스트시즌 성적
준플레이오프 : 0.250/0.455/0.250, OPS 0.705, wRC+ 84.9, WAR* 0.05, WPA -0.01

2021년 KBO 최악의 트레이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LG는 서건창 영입으로 원하고 기대하던 모든 것들을 실패했고 이루지 못했다. 반면 키움은 정찬헌의 활약에 힘 입어, 안우진, 한현희가 빠진 공백을 최소화해, 가을야구 진출 목표를 이루고, 그 뒤 한현희를 복귀시켜 와카 2차전까지 끌어갔던 키움과 대비되는 부분이다.[21]

LG와 차명석은 두산과의 함덕주-양석환 트레이드에 이어 키움과의 트레이드에서도 참패했다. 아니 이 정도면 올 시즌 LG의 트레이드는 서건창의 결과로 인해 빼박 대참패.

평가가 어느 정도로 떨어졌는지, 오죽하면 키움과 LG의 3연전에서 키움 팬들이 서건창의 골 빠진 수비를 보며 즐거워할 정도. 과거 소속팀 팬들에게까지 절호의 찬스 취급을 받고 있는데, 이 정도면 선수 본인에게도 대굴욕이다. 차라리 백의종군하며 FA 행사를 미루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시즌 후 FA 재수를 택했다.

시즌 2루수 WAR는 4위를 기록했으나 통산 2루수 war로는 딱 100위에 위치하고 있다. 올 시즌은 2루수에 아웃라이어가 없었기 때문에 2루 자체의 WAR이 낮은편. 분명 준수하지만 특별할 것은 없는 성적이다.

나이든 교타자가 에이징커브에 들어서면 어떻게 서서히 성적이 하락하는지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시즌이 되었다. 뭐, 팀내에 서서히가 아니라 급격하게 하락하는 경우도 있다.[22]

여담으로 정규시즌 145경기 출장에는 실패했다. 백신접종으로 1경기를 결장했다. 다르게 보면 체력적 문제가 작용한 게 아니냐 볼 수 있겠지만, 다음 해 성적을 보면 꼭 체력적 문제라 보기도 애매하다.

5. 시즌 후[편집]


FA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러나, LG 이적 후의 성적도 냉정하게 말해 좋지 않았던데다가 A등급이라 전망이 밝지는 않았는데, 본인도 이를 인식했는지 FA 선언을 미루고 재수를 선택하였다.

결과적으로 시즌 전 연봉 자진 삭감은 본인 인생 최악의 선택이 되고야 말았다. 사실 자진 삭감을 발표하자마자 이는 곧 서건창 야구 인생의 전부와도 같았던 히어로즈를 떠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물론 선수 측은 이같은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바로 "팀을 떠나려는건 아니다" 라고 발표했지만, 히어로즈 팬들의 민심도 잃게 되었고 삭감창이라는 굴욕적인 별명[23]도 얻게 되었으며, 결국 이는 후에 트레이드 명분이 되었다.

서건창의 개인 팬덤은 히어로즈 구단이 그동안 자팀 선수 대우를 안 해줘 이를 대비하고자 B등급을 선택했다고 하는데, 사실 히어로즈가 돈이 없어서 외부 FA는 커녕 내부 FA 조차 전부 지키지 못한 건 맞다.[24]

그러나 팀 내 정치적인 문제로 떠난 김상수 정도를 제외하면, 잡을 수 있는 선의 FA 선수를 대놓고 후려친 사례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25][26]

오히려 저연차 비 FA선수들에겐 거의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연봉을 퍼주고 있고[27], 서건창 본인도 무려 9500만원이나 삭감했어도 LG트윈스 같은 대기업 팀에서 조차, 비FA 선수 기준 3년간 누적 연봉 순위 3위에 드는 고액연봉자였던 것이였다.

순리대로 연봉 조정해서 A등급으로 나왔다해도 아무리 돈이 없는 히어로즈 구단이라 할지라도 서건창 급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함부로 대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해 FA 시장이 미쳐돌아가면서[28], 서건창의 이름값에 적절한 활약만 있었다면 돈방석에 앉을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리게 됐다. 지금까지 결과적으로 보면 서건창은 이 해에 fa를 신청했어야 했다.

시즌 종료 후 박병호가 적은 액수에 kt로 이적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키움 측이 박병호를 잡을 생각이 아예 없어보였던 정황이 포착되자 연봉 자진 삭감으로 런각을 재고 있던 서건창이 의문의 재평가를 받기도 했다. 물론 진지하게 재평가 한다기 보단 키움 프런트를 욕하기 위한 것에 가깝다.

[1] 쉽게 말하면, 유격수로 뛰던 김하성 보다도 수비 포지션에서 휴식이 보장되었다.[2] 올 시즌 정주현은 타격이 심하게 안되고 수비에서도 불안하기 때문에 LG팬들에게는 구멍 취급받고 있다.[3] 한국 야구팬들은 필요하다면 프랜차이즈고 MVP출신이고 재깍재깍 팔아버리는 MLB식 운영에 아직 거부감이 만연하다. 팬들이 페이롤이나 구단 사정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프랜차이즈'에 대한 집착도 MLB보다 큰 편이라 과감한 트레이드나 시즌을 버리다시피 하는 탱킹 등에 굉장히 부정적이다. 사실 서건창이 프랜차이즈만 아니었다면 트레이드 자체는 합리적인 결정이다. 하락세가 완연하고, 잔여 서비스타임이 적으며, 팀 내 고연봉자고, 포지션 활용도도 애매한데다, 팀을 떠나겠다는 의지까지 보인 선수를 그대로 끌고 가기도 쉽지 않기 때문.[4] 이에 따라 신민재는 함덕주가 달던 53번으로 바꿨고, 함덕주는 정찬헌이 쓰던 11번을 물려받았다.[5] 출장 경기 수가 팀당 전체 경기 수보다 많은 케이스는 126경기 체제하에서 127경기를 출장한 1998년 김실이 있다. 그해 도중 쌍방울에서 OB로 트레이드되었는데 당시 OB가 잔여경기가 많았기 때문에 발생된 일이었다.[6] 세레머니에 대한 구단 컨텐츠에서 여담을 풀어주었는데, 신고식을 해야할 것 같아서 일부러 안했다고 한다. https://youtu.be/T6UPyTHWOys?t=586 [7] 팀 입장에서 팀보다 선수 개인을 중시하는 개인 팬덤은 득될 것이 없다. 선수가 잘할 때는 상관없지만 선수가 나이가 들고 퇴물이 될수록 개인 팬덤은 팬 여론을 분열시키는 악재가 된다. 이미 이병규박용택으로 LG는 두번 데인 적이 있다. 물론 스타 선수가 있는 이상 개인 팬덤을 막을 길은 없지만... 그리고 박용택은 말년에도 지타만 차지해서 그렇지 타격에서 짐이 되는 선수는 아니었다.[8] 단 이는 반론이 있는데 당장 서건창을 3번에서 뺀다치면 누가 3번을 친단 말인가? 원래 3번인 김현수는 타격부진에 시달리는 데다가 3번 후보중 한명인 이형종은 역대급으로 부진하고,채은성은 팀 사정으로 인해 4번 타순에 설 때가 많고, 이천웅 역시 부진한데다가 3번 타순에 서기에는 장타력이 좋지 않다. 문보경은 아직 덜 여문 신인에 불과한 데다가 오지환도 올해 영 부진하다. 결국 그 중 클러치 능력이 있는 서건창이 3번을 칠 수밖에 없는 것. 다만, 김현수가 득점권 타율이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결승타는 1위이므로, 강한 타자가 많지 않은 LG에서 무리하게 똑딱이 서건창을 3번 타순으로 기용하면서까지 김현수를 2번으로 올리는것보단, 타격능력이 많이 떨어진 서건창을 2번이나 하위타선으로 돌리고 김현수를 3번으로 기용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다.[9] 서건창 대신 3번을 칠 수 있는 타자는 아주아주 많다. 9월 26일 현재 서건창의 LG 소속으로 기록한 wRC+는 78.4로, 팀내에서 주전으로 출전하는 그 어느 선수보다도 낮은 수치다. 서건창이 들어오며 2군으로 이탈한 정주현의 wRC+가 75.2로 서건창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 이름 가려놓고 정주현 급 타자가 3번타순에 들어오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올해 타격 부진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는 김민성이나 이형종, 유강남 등도 서건창보다는 훨씬 좋은 타격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기록상으로 9번 이외엔 들어갈 자리가 없는 선수가 반등도 없이 꾸준히 팀의 득점력을 저해하는데도 변함없이 클린업을 맡기고 있으니, 프런트의 전시행정성 기용이라는 의심을 당연히 살 수 밖에 없다.[10] 오히려 나이가 들어 경험이 쌓이고 적극성이 떨어지면서 선구안이 개선되는 경우도 많다.[11] 어쨌든 아예 활약을 못하던 서건창에 비해, 매년 가을야구 경기에서 한 번은 잘하고, 한 번은 엄청 못 하는 등으로 오르락 내리락 한다. 2019년부터는 나름 활약해서 준플레이오프 MVP를 거머쥐기도 했다. 그 준플 상대가 하필이면 LG 트윈스. 참고로 박병호의 통산 가을야구 성적은 0.241/0.368/0.494 OPS 0.863, wRC+ 120.3, WAR* 0.93 12홈런 30타점으로 의외로 꽤 준수한 편이다.[12] 참고로 강정호는 15경기 WAR -0.06 wRC+ 50 3홈런 8타점인데, 2014년 플레이오프에서는 5할대의 타율로 LG를 떡실신 시켰다.[13] 2018년, 2019년 성적이 나쁘진 않아보이지만, 사실은 지명타자로 나간 덕이다. 보통은 지타 슬롯을 타격생산성 좋은 타자에게 맡기지만, 그렇다고 수비가 안 좋다고 타격이 나쁘지 않았던 서건창을 안 낼 수는 없기에, 당시 히어로즈 코치진이 생각해낸 궁여지책이였다.[14] 다행히도 김하성은 34경기 WAR 0.29, wRC+ 82.5 3홈런 14타점으로 선대자보단 조금 나은 수준이다.[15] 사실 유한준도 가을 가면 부진하는 부진히어로즈 아니랄까봐, 4홈런 13타점 WAR -0.42, wRC+ 41.9로 심각하게 못 하긴 했지만, 가을야구 내내 수비로 밥값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타 코스를 다 잡아내며 최형우가 허탈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주는 등 수비에서는 폭풍을 일으키며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2014년 플옵, 코시, 2015년 와카 빼고는 양수를 기록한 가을야구 시즌이 단 한 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16] 이정후가 가을에서 유일하게 음수를 찍으며 부진했던 경기는 자신의 첫 가을야구 시즌이던 2018년 준플레이오프가 전부고(그나마도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무리하게 슬라이딩 캐치를 시도하다가 관절와순이 손상되는 치명상을 입으며, 플레이오프는 출장하지 못 했다.), 2019년 플레이오프에서는 그야말로 이정후 시리즈 그 자체를 만들어놨다.(참고로 준플 MVP는 박병호.) WAR 음수를 찍어본 적이 없다.[17] 그 박병호 조차 2015년부터는 백업 1루수로 서동욱이 나가거나, 지명타자 또는 대타로 나가는 등으로 약간의 휴식이 있었다.[18] 타수가 적은 이유는 두번의 희생번트가 있었기 때문이다.[19] 1회초 잘 친 타구가 정수빈한테 잡힌 것이 아쉬웠다.[20] 사실 몇타석 되지도 않는 표본이라 의미를 두기는 어렵고, 그 마저도 출루율만 좋고 wRC+나 wpa 같은 세이버 스탯은 좋지 못했다.[21] 그리고, 정찬헌12월 2일, '2021 프로야구 올해의 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재기상까지 수상하며, LG 트윈스 팬들을 또 한 번 눈물짓게 했다. #[22] 이천웅의 20시즌 성적이 올 시즌 서건창 성적과 비슷하다.[23] 그 외에도 썩은창 같은 멸칭이 있긴 하다.[24] 유한준, 손승락이 그 예.[25] 유한준에게도, 손승락에게도 4~50억 정도의 금액을 제시했었으며, 김민성은 팀에서 잡기 곤란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손해를 감수하며 사트로 길을 터주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슈퍼스타급 선수들은 일찍이 해외 진출을 도와 선수와 구단 모두에 윈윈할 수 있는 방향으로 FA전략을 조율해서, 포스팅비를 알뜰살뜰하게 챙겼다. 히어로즈가 앞장서서 선수 앞길을 막는 구단은 아닌 것이다. 애당초 히어로즈 만큼 신인급 선수들을 적극 기용하는 팀은 한화와 함께 유이할 정도이다.[26] 물론 이지영은 3년 18억에 FA계약으로 저렴하게 잡았고, 프랜차이즈인 오주원과, 두산 출신의 이성열은 후려치긴 했다만. 오주원, 이성열은 무슨 자신감인진 몰라도, 구단이 계약금액을 제시한 걸 거부하고, FA 시장 나갔다가 미아 되어서 돌아와 제대로 후려쳐버린 케이스이다. 오주원은 원래 3년 13억인데 이를 거부했다가 2년 7억으로 후려쳐버렸다. 여러모로, 박한이랑 비슷한 케이스.[27] 사실 FA를 못 잡아서 그렇지, 김하성, 이정후 같은 저연차 선수들은 타팀 동연차가 기록한 고액연봉을 모두 갈아치울 정도로 고액연봉자들로 이뤄져 있다.[28] 100억대의 초대형 계약만 4건이 넘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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