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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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선묘.jpg

1. 개요
2. 전승
3. 기타


1. 개요[편집]


선묘(善妙)는 《삼국유사》와 《송고승전(宋高僧傳)》의 부석사 건립설화에 등장하는 여인이자 (龍)이다.

신라승려 의상(義湘, 625 ~ 702)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의상과 선묘에 대한 설화는 화엄사상과 함께 일본에 전해졌고, 이후 사찰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다. 일본 교토에 있는 고잔지(高山寺)에는 13세기 때 그린 <화엄연기>에 선묘의 일화가 그려져 있다. 당시 일본은 센코쿠 시대로 인해 심한 고통을 받으며 살았는데, 선묘의 정신을 본받고자 승려 명혜(明惠, 묘에쇼닌)가 구상하고 에니지보조인(惠日房成忍)이 그렸다. 이 그림은 지금은 국보로 지정되어 교토국립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지금도 부석사에는 선묘를 기리는 사당인 선묘각이나 선묘의 진영이 남아있으며,[1] 무량수전 앞마당에는 부석사를 수호한다고 전해지는 선묘룡이 석룡의 형태로 묻혀있다.

2. 전승[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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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년, 의상이 불교 공부를 하고자 승려 원효(元曉, 617 ~ 686)와 함께 당나라유학을 떠났다. 처음에는 요동을 통한 육로를 이용하려 했으나, 도중에 고구려 초병에게 첩자로 오해받아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의상은 이에 굴하지 않고 661년, 당항성[2]의 해로를 통해 유학길에 올랐다. 원효는 중도에 깨달은 바가 있어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에 머물렀다.
당나라에 도착한 의상은 등주(登州)의 한 신도의 집[3]에서 식객으로 있었는데, 그 집에 살던 선묘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만난다. 선묘는 의상이 머무는 동안 그에 대한 연모의 정을 쌓아나갔고, 의상도 아름다운 선묘의 모습에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4] 그러나 승려라는 신분상 의상은 선묘의 마음을 받을 수 없어 매번 선묘의 마음을 거절하였다. 의상의 단호함에 결국 선묘는 의상의 불법 성취를 기원하도록 마음을 고쳤다. 의상은 당나라의 수도 장안성으로 가서, 대표 화엄종 사찰인 지상사(至相寺)에서 불법을 공부했다.
10년 후, 당나라신라의 사이가 나빠지자, 의상은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발길을 돌렸다. 도중에 의상은 선묘의 집에 들렀으나, 때마침 선묘가 자리를 비운 터라 끝내 얼굴을 보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이를 들은 선묘는 의상을 보지 못하고 보낸 것을 아쉬워하며, 이 되어 의상을 지키겠다는 기도와 함께 황해에 몸을 던졌다.
선묘는 마침내 거대한 용이 되어 신라로 돌아간 의상을 보호하였다. 676년, 의상이 봉황산[5] 근처에 을 세우려 하자, 다른 종파의 승려[6] 수백명이 반대하며 위협하였다. 의상은 자신을 위협하는 승려들 앞에서 부처님에게 기도를 드리니, 갑자기 하늘에서 이 나타났다. 용은 사방 1리에 달하는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위아래로 위협하니 승려들은 모두 달아났다. 의상은 이를 선묘의 도움으로 알아차리고 무사히 사찰을 완성하였다. 바위는 지상에 내려앉아 사찰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이 사찰이 바로 무량수전(無量壽殿)으로 유명한 부석사(浮石寺)'이다.

3. 기타[편집]


승려를 사랑하게 된 여성이 (이무기)이 되어 쫓아오거나 하는 설정은 키요히메 설화와 유사한 점이 있다.[7] 단지 차이가 있다면, 키요히메 설화는 집착이 독이 되어 안 좋게 끝났고, 선묘설화는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좋게 결말이 지어졌다는 차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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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묘 진영은 조사당에 걸려있다.[2] 경기도 화성시 남양만 서신면 당항포[3] 신라인들이 모여살던 동네라는 설이 있다.[4] 판본에 따라서는 의상은 끝까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고도 하고, 아예 의상은 선묘의 마음을 몰랐으며 선묘의 짝사랑일 뿐이었다고도 한다.[5] 경상북도 영주시 태백산[6] 타 종파 승려가 아니라 그냥 사이비종교(…) 신도들이었다는 설도 있다.[7] 사실 동북아시아 문화권에는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괴로워하던 사람이 뱀이나 이무기, 악룡이 되었다는 설화가 드물지 않으며 이런 것을 상사뱀 설화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