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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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복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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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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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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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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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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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군

*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지 않는 미수복 지역은 자치 기능이 없는 명목상 행정 구역이므로 실질적인 기초자치단체가 아니다.



1. 개요
2. 고려시대
3. 조선시대
4. 일제강점기, 북한
5. 대한민국


1. 개요[편집]


속초의 연혁, 마을을 소개한 블로그(#).

2. 고려시대[편집]


역사적으로 고려시대 이래 양양군의 일부였다.


3. 조선시대[편집]


속초라는 이름은 조선 영조 36년(1760)에 편찬된 여지도에서에서야 처음 등장한다.


4. 일제강점기, 북한[편집]


일제강점기에 양양군 도문면과 소천면의 속초리가 , , 나아가 로 승격되면서 속초라는 지명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

속초(束草)라는 이름의 유래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울산바위에다 새끼줄을 둘렀다는 옛 전설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설악산에 울산바위라는 바위가 있음을 알고 울산을 지배하는 사또가 울산바위 근처에 있는 신흥사의 주지에게 "우리 바위가 거기 있으니 너희들이 우리에게 바위세를 내라." 라고 강요했다. 그리하여 울며 겨자먹기로 몇 년 동안이나 바위세를 바쳤는데, 신흥사의 동자승이 "우리도 울산바위 때문에 농사도 못하고 불편하다. 사또께서 우리에게 세를 내든가, 아니면 다시 바위를 가져가시오!" 라고 반박했다.

결국, 반박을 하지 못하고 말문이 막히면서 논리가 궁색해진 울산 사또는 "재로 꼰 새끼줄로 바위를 묶는다면 바위를 가져가겠다." 라고 억지를 부리지만, 동자승은 마을 사람들을 사서 '청초호'와 '영랑호' 에서 자라는 해초로 새끼줄을 꼬아서 소금물에 푹 절인 뒤 울산바위를 묶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소금물이 마르자 새끼줄에 불을 붙였는데 소금기 때문에 안은 멀쩡하고 겉만 새까맣게 타버렸다. 이후 울산 사또에게 "자! 우리가 사또의 요구대로 했으니 어서 바위를 가져가시오!" 라고 재촉하자, 울산 사또는 스스로 졌다면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간 뒤 더 이상 바위세를 요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건 이후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의 지역을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 자를 써서 "풀을 엮다" 라는 뜻의 '속초(束草)' 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서울 강서구에 있는 광주바위도 도로 가져가라는 비슷한 내용의 후일담 격의 설화가 있다.#

또한, 다른 설은 속초의 지형이 가 누워서 있는 형상이라 풀을 묶어서 먹여주어야 한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이다. 결초보은에서 비롯된 속초가 가장 유력한 설이다.

원래 양양군 도천면(대포리, 현 대포동 소재)이었다가 1937년 면소재지가 되면서 속초면으로 개칭되었다.

1942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 때, 노리(蘆里)에서 도리원리(桃李源里), 이목리(梨木里), 척산리(尺山里)를 분할했다.

해방 이후 북한 통치기의 속초 일대는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흥미로운 지역이기도 하다. 당시 그곳의 거주민은 일제시대를 경험하였고, 이후 공산 정권을 경험하였으며 수복 이후에는 한국 사회에 편입되었다. 우리의 현대사에 있어서 북한 체계가 민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하여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강도 높은 토지개혁으로 기존 지주와 지역 유지들, 이른바 흰 패의 몰락을 기도하였다. 흰 패들은 자신의 경제적 기반을 빼았김과 동시에 여러 사회적 페널티를 부과받았으나 한편으로 전통적 봉건 질서는 그럼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 붉은 패와의 갈등 또한 내재적으로 존재했다. 한국전쟁과 수복으로 인해 이러한 갈등은 흰 패의 승리로 귀결되지만 전쟁 시 일대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흰 패는 전후 속초-양양일대의 경제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속초의 피난민들을 위주로 한 신흥 유지가 등장하였으며 이는 1963년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던 속초의 시 승격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북한 체계는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북한은 교육을 강조하여서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동시에 강력한 문맹퇴치운동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교육 중시 풍조는 주민들에 대한 흡입 요인이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상교육 등 북한 체계의 우월성을 선전하기도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남한 체계 하 속초의 높은 교육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북한 통치시절에 강압적으로 사람들이 소년단, 민청에 가입 당하여 동원당했으며, 전쟁기에 인민군으로 강제로 징집되어 낙동강에서 숨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곳 동명항이 남침 병력을 운송하는 기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 이외의 동해북부선 등 북한군의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될 여지가 다분한 곳들이 많이 소재하였으므로 생활권이던 대포, 낙산사역-양양역 일대가 항공 폭격 및 함포 사격 등으로 파괴되었다.

전황의 변화에 따라 속초의 주인은 바뀌어갔지만 피해를 입은 것은 속초 사람들이었다. 변장한 인민군과 국군의 선발대, 서북청년단은 사상검증을 통해 학살을 자행하였고, 1.4후퇴 당시 국군은 소개령을 내린 뒤 가옥에 불을 질러서 많은 사람들이 주거지를 상실하였다. 당시 국군의 시각에서 ‘적산’인 지역 여성들에 대한 유린도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전한다.


5. 대한민국[편집]


1951년, 북한에서 남한으로 수복되어 대한민국 국군에 의한 군정이 잠시 실시되었다.

1954년, 민정으로 이양되었다. 군정을 실시할 때에 토성면 장천리, 사진리(장사동)를 편입했다가 1954년에 다시 토성면으로 환원했으며, 부월리(扶月里)에서 온정리(溫井里)를, 논산리(論山里)에서 청대리(靑垈里)를 각각 분할했다.

파일:속초시 시기(1963-2002).svg
1963년 1월 1일 속초시로 승격되어 양양군에서 분리되었다. 위 이미지는 1963년 속초시 승격 이후 2002년까지 사용한 속초시의 깃발.

1966년 1월 1일, 속초시 조례 제95호
구 법정리
신 법정동
속초리
영랑동(1구), 동명동(2구), 중앙동(3구), 금호동(4구), 청호동(5구), 청학동, 교동(이상 6구)
부월리, 온정리, 논산리, 청대리
조양동
노리, 도리원리, 이목리, 척산리, 신흥리
노학동
대포리, 외옹치리, 내물치리
대포동
상도문리, 중도문리, 하도문리
도문동
장항리
설악동

1966년 1월 1일, 으로 전환했다. 이후 양양군에 있던 경찰서를 옮겨 왔다.

1967년 6월 5일, 설악중학교가 개교하였다.

1973년, 고성군 토성면 장천리, 사진리(장사동)를 편입했다.

1983년, 양양군 강현면 상복리 일부를 편입하여 현재의 시역(市域)이 되었다.

1998년에 북한 잠수정이 침투했으나 어선의 그물에 걸려 발각됐다. 승조원들은 모두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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