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남조)/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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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劉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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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년 ~ 479년

파일:북위-유송.png

국성
팽성 유씨(彭城 劉氏)
창건자
고조(高祖) 무황제(武皇帝) ,(420 ~ 422),
말황제
순황제(順皇帝) ,(477 ~ 479),
수도
건강(建康)
국호
송(宋)
1. 개요
1.1. 역대 황제
1.2. 추존 황제(존령)
1.3. 비정통 황제
2. 가계
3. (초대) 고조 무황제 유유의 건국
4. 막장 황실사
4.1. (2대) 소황제 유의부
4.2. (3대) 태조 문황제 유의륭
4.3. (4대) 세조 효무황제 유준
5. 전폐제와 후폐제
5.1. (5대) 전폐황제 유자업
5.2. (6대) 태종 명황제 유욱
5.3. (7대) 후폐황제 유욱
5.4. (8대) 순황제 유준, 그리고 유송의 비참한 종말
6. 제 명에 죽지 못한 황족들
7. 황실이 이렇게 된 원인



1. 개요[편집]


송서(宋書)》에 명시된 공식 계승(繼承)은 무제(武帝)부터 순제(順帝)까지 8대(八代)이다. 특이점이라면 역대 황제 중 창업군주 무제, 그나마 내정을 제대로 하여 국가의 기틀을 잡은 문제,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였던 마지막 군주 순제를 제외한 모든 황제가 무슨 저주라도 걸린양 암군폭군으로 도배가 된 최악의 막장 황실이었다.


1.1. 역대 황제[편집]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비고
1대
고조(宋高祖)
무황제(武皇帝)
유유(劉裕)
영초(永初) 420 ~ 422
420 ~ 422
초녕릉(初寧陵)
파일:송무제 유유.jpg
2대
-
-
,<소황제(少皇帝)>,
,<영양왕(營陽王)>,
유의부(劉義符)
경평(景平) 423 ~ 424
422 ~ 424
-

3대
태조(宋太祖)
송 중종(宋中宗)[1]
문황제(文皇帝)
경황제(景皇帝)[2]
유의륭(劉義隆)
원가(元嘉) 424 ~ 453
424 ~ 453
장녕릉(長寧陵)
파일:attachment/유의륭/36.송문제.jpg
4대
세조(宋世祖)
효무황제(孝武皇帝)
유준(劉駿)
효건(孝建) 454 ~ 456
대명(大明) 457 ~ 464
453 ~ 464
경녕릉(景寧陵)
파일:유송 효무제.jpg
5대
-
-
,<폐황제(廢皇帝)>,
유자업(劉子業)
영광(永光) 465
경화(景和) 465
464 ~ 465
-
파일:유송전폐제.webp
6대
태종(宋太宗)
명황제(明皇帝)
유욱(劉彧)
태시(泰始) 465 ~ 471
태예(泰豫) 472
465 ~ 472
고녕릉(高寧陵)

7대
-
-
,<폐황제(廢皇帝)>,
,<창오왕(蒼梧王)>,
유욱(劉昱)
원휘(元徽) 473 ~ 477
472 ~ 477
창오왕묘(蒼梧王墓)
파일:후폐제(유송).jpg
8대
-
순황제(順皇帝)
유준(劉準)
승명(昇明) 477 ~ 479
477 ~ 479
수녕릉(遂寧陵)



1.2. 추존 황제(존령)[편집]


묘호
시호
성명
능호
비고
-
북평부군(北平府君)
유응(劉膺)
-
무제 추존
-
상국연부군(相國掾府君)
유희(劉熙)
-
무제 추존
-
개봉부군(開封府君)
유욱손(劉旭孫)
-
무제 추존
-
무원부군(武原府君)
유혼(劉混)
-
무제 추존
-
동안부군(東安府君)
유정(劉靖)
-
무제 추존
-
효목황제(孝穆皇帝)
유교(劉翹)
흥녕릉(興寧陵)
무제 추존


1.3. 비정통 황제[편집]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비고
-
-
,<원흉(元兇)>,
유소(劉劭)
태초(太初) 453 ~ 453
453 ~ 453
-

-
무창현후(武昌縣侯)
유혼(劉渾)
영광(永光) 455년
455년
-

-
-
,<진안왕(晉安王)>,
유자훈(劉子勛)
의가(義嘉) 466년
466년
-



2. 가계 [편집]


  • (1) 고조 무제 유유 (363 ~ 422)
    • (2) 소제 유의부 (406 ~ 424)
    • 유의진 (407 ~ 424)
    • (3) 태조 문제 유의륭 (407 ~ 453)
    • 유의강 (409 ~ 451)
    • 유의공 (413 ~ 465)
    • 유의선 (415 ~ 454)
    • 유의계 (415 ~ 447)


3. (초대) 고조 무황제 유유의 건국[편집]


363년 ~ 422년, 재위 420년 ~ 422년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킨 반역자인 초왕 유우의 먼 후손으로 전한 시기에 가세가 망해서 평민 출신이지만 동진의 실권을 손에 넣고 내란을 진압한 후 북방의 영토를 크게 차지하고 정권을 강화했다. 황위에 간신히 오른 후 치세 2년 동안 나름 검소한 생활에 정치를 잘했지만 동진 공제 일가를 참살했다. 후손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전에 죽었지만, 유유의 누이들은 생각보다 제정신 박힌 이들이었고 그 장남은 확실히 또라이였지만 밑의 바로 아래 자식들은 유의륭을 비롯해서 그럭저럭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장남 밑의 차남 유의진도 막장이다. 장남과 차남 밑의 자식들이라고 해야 맞다. 유의진은 12살 나이에 장안 일대를 맡게 되었는데 개막장짓거리를 일삼고 백성을 못살게 굴어서 북하의 혁련발발에게 몇 개월 만에 장안 일대를 모두 빼앗기고 추격까지 당해 죽을 뻔했다. 아버지 유유가 얻은 땅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것이다. 때문에 굳이 가정교육을 문제 삼는다면 유의륭이 나눠서 져야 할 것이다.


4. 막장 황실사[편집]



4.1. (2대) 소황제 유의부[편집]


406년 ~ 424년, 재위 422년 ~ 424년

이미 태자 때부터 소인배를 가까이하고 놀기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해져서, 유유가 폐위시킬 생각을 내심 했을 정도였다. 다만 측근들이 잘 보좌하면 별일 없을 거라고 간언하여 내버려두었던 것인데, 즉위해서 정말이지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했다.

그리고 낙양이 북위에게 함락된 것도 유의부가 통치할 때이다. 이때 사주 일대는 북위에게 넘어간다. 이렇게 유유가 수복해놓은 두 수도 중 낙양은 장남 유의부, 장안은 차남 유의진 때문에 북위에 빼앗긴다.

결국 바로 그 측근들이 폐위해서 죽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여기까진 별 문제가 없었으나, 유의륭이 형을 폐위시키고 자신을 옹립한 바로 그 측근들을 위험하다고 여겨 또 다시 주살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것이 유의륭의 치세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4.2. (3대) 태조 문황제 유의륭[편집]


407년 ~ 453년, 재위 424년 ~ 453년

유송의 정치 체제를 안정시키고 '원가의 치'를 이룩했으며 유송 존속 기간의 반을 통치한 명군이다. 치세는 항목 참조. 이 사람이 그나마 내부 정치는 제대로 한지라 이런 막장 왕조가 60년이나 이어진 것이다. 이런 뚜렷한 명군도 없던 송나라 이후의 제나라는 24년밖에 못갔다. 그나마 그 이후 들어선 양나라도 제나라 왕족 방계출신이라 합쳐보면 그래도 55년이긴 하다만 그건 양무제빨이 있는지라.

하지만 유의륭 역시 46세 나이에 비명횡사했으니 중국 황제 역사상 최초로 황제 아버지를 태자 아들이 죽여버리는 패륜이 발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셋째 유준이 아버지를 죽인 형 둘을 주살하고 황제로 오른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역시 아버지 유유처럼 첫째, 둘째가 막장이었다는 것이다. 유의륭의 형이자 유유의 장남, 차남인 유의부와 유의진은 막장으로 유명하며 둘다 비명에 갔다. 마찬가지로 유의륭의 장남이자 황태자였던 유소(劉劭)는 동생인 차남 유준(劉濬)(시흥왕)과 함께 부황을 살해하고 황제가 되었다가 3개월 만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 딜레마를 피하려고 했는지 몰라도, 그는 무능한 태자 유소(劉劭)를 폐하고 둘째 시흥왕 유준(劉濬)을 주살하려 했지만, 역으로 그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역시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것은 셋째 무릉왕 유준(劉駿)이었다. 이 유준은 둘째 유준과 다른 사람이다. 한자로는 다른 이름이지만 한글로는 같은 음이라 한자가 안 붙어있으면 구분이 안 간다.


4.3. (4대) 세조 효무황제 유준[편집]


劉駿, 430년 ~ 464년, 재위 453년 ~ 464년

나름 능력자인지라 촉망도 받고 아버지의 원수도 갚았으며 나름 군권을 장악하고 중앙 집권화도 추진했지만 근본적으로 황족을 주살하고 사치 향략 속에 빠져 살던 인물이었다. 근친상간 의혹을 강하게 받는다.


5. 전폐제와 후폐제[편집]


본격적인 폭군의 시대가 문을 열어제낀다. 보통 한 왕조에서 한명꼴로 있을 폐제가 이 왕조엔 둘씩이나 있다. 이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한 명은 전폐제, 또 한 명은 후폐제라고 한다.


5.1. (5대) 전폐황제 유자업[편집]


劉子業, 449년 ~ 465년, 재위 464년 ~ 465년

유자업의 행각은 재위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5.2. (6대) 태종 명황제 유욱[편집]


劉彧, 439년 ~ 472년, 재위 465년 ~ 472년

나름 천수를 누렸지만 이 자도 여러 가지로 막장이었다.


5.3. (7대) 후폐황제 유욱[편집]


劉昱, 463년 ~ 477년, 재위 472년 ~ 477년

중국사 최악의 폭군을 꼽아보라면 반드시 들어가는 인물로, 유자업과 달리 이 자는 극악한 살인 행각을 지속적으로 보였다. 결국 황족 간의 내분을 틈타 권력을 장악해 온 실권자 소도성에게 처단되었다.


5.4. (8대) 순황제 유준, 그리고 유송의 비참한 종말[편집]


劉準, 469년 ~ 479년, 재위 477년 ~ 479년

말 그대로 꼭두각시 황제로서 유송은 멸망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6. 제 명에 죽지 못한 황족들[편집]


유유의 일곱 아들 중 막내 아들 유의계(415 ~ 447) 외에는 모두 제 명을 누리지 못했다. 장남 유의부(406 ~ 424)는 황제였지만 막장으로 놀다가 폐위된 후 피살, 차남 유의진(407 ~ 424)은 폐위에 휘말려 같이 피살, 3남 문제 유의륭(407 ~ 453)도 황제였지만 계승 문제로 아들 유소에게 피살, 4남 유의강(409 ~ 451)은 불안하던 유의륭에게 피살, 5남 유의공(413 ~ 465)은 난폭한 유자업을 폐위하려다가 그에게 피살, 6남 유의선(415 ~ 454)은 자신의 딸을 후비로 삼아버린 유준에게 대적했다가 살해당하고 오직 막내 7남 유의계만 술병으로 일찍 죽었는데, 요절한 걸 보면 결코 이 자도 제 명을 누린 건 아니다.

또 다른 황족 대부분은 내란에 휘말려 살해당했고 순제가 선양한 후 순제와 그나마 남은 황족들은 소도성이 모두 멸족했다. 그나마 유자업 때 핍박을 받아 북위로 망명한 문제의 8남 유창은 대대로 북위에서 살았다.

선양한 망국의 황제는 제 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전통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유준의 증조 할아버지 유유가 동진의 마지막 황제 공제에게 선양받고 그를 죽여버린 것부터 시작되었다. 당연히 마지막 황제인 순제 유준도 어린 나이에 살해당하니 칼로 일어난 자 칼로 망한 것.


7. 황실이 이렇게 된 원인[편집]


유송의 황제들 중 폭군들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일단 그들의 개인적 특성에 의한 것인 가능성도 있지만, 그 외에 다른 것도 영향을 많이 주었다.

  • 즉위한 황제들이 대부분 나이가 어려서 경험과 자질이 부족했다. 다만 유송의 마지막 황제의 사례를 보듯 어려도 얼마든지 괜찮아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어린 게 경험과 자질의 부족함의 필요조건일 순 있지만 그렇다고 충분조건은 아니다.

  • 시조 유유는 능력은 있었지만 애초에 학문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라 자기부터 제왕학 공부를 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나마 즉위한 뒤 그럭저럭 제왕의 길을 배우긴 했지만 그걸 갖고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치기도 전에 병으로 죽었다. 결국 나이가 어린 황제들 중에 제왕학을 뼈대있게 배운 사람들이 없었고 여기에 온갖 패륜을 보고 자라면서 그나마 있는 윤리의식도 저 멀리 달아났으니 막장이 되는 건 당연지사다. 후폐제 유욱 같은 사이코패스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는 명제 유욱과 유자업이 해당하지 세포조차 미친 유욱은 해당하지 않는다.

  • 사실상 신하들에 의해 꼭두각시가 된 황제만 있던 동진의 교훈을 받아들여 주요 지역의 군사령관은 반드시 유씨 성을 가진 황족만 임명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던 게 이렇게 할 경우 서진팔왕의 난에서 보듯이 황제가 될 수 있는 정통성을 가진 사람에게 군권까지 준 셈이 되므로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앙 정부에 있는 황제는 지방의 황족보다 군대가 조금 더 많고 직접 다스리는 땅이 더 넓은(+ 조금의 권위) 사람에 불과하므로 억지 행동을 통해서라도 위신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강력한 관료제였다. 명군이 즉위하여 점차 중앙 정부 조직을 확실하게 갖추어 다스리는 전한(서한)식의 운용 체제를 되살리는 것. 그러나 애당초 무장 출신 유유 본인과 유의륭 등 일부를 제외하면 즉위한 황제부터가 막장인 데다, 선비족 등의 북조가 황하 이북에 버티고 있고, 귀족들 역시 동진의 황족들을 몰살하는 등의 행태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정통성도 없었으니 이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강력한 황제권 + 성공적인 관료제를 완수한 중국사의 끝판왕은 명나라, 청나라 가서야 나왔으니 조금 가혹한 평가일 수도 있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비판은 유효하다.

  • 유유가 회복한 중원 지역의 영토를 상실했다. 야금야금 뺏기다가 466년에 확실하게 상실했으니 그래도 나름 오래 지킨 편. 물론 송이 남조 중 가장 큰 영토를 자랑했다지만 이후 남조 국가들이 놀고만 있진 않았으며, 북조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완 달리 매번 총명한 군주가 집권하고 늘 유능한 장군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북벌 성공으로 권위를 얻어 사마씨에게서 왕조를 뺏어낸 황실의 권위가 다소 실추되는 원인은 되었고, 무력으로 영토를 회복할 가망이 적었고 또한 오히려 패해서 돌아오기도 했기에,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전폐제, 후폐제가 아니라도 숙청은 밥 먹듯이 했다는 것이 증거.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안해도 유송의 역대 황제들이 좋지 않은 의미로 매우 기이한 인물이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으며, 이는 그들의 왕조가 오래 지속될 수 없게 하는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당장 명군이었던 유의륭의 치세가 나머지 황제들의 모든 치세와 맞먹는 것만 봐도 그렇다. 여기에 뒤를 이은 제, 양 두 나라 모두 상황이 좋지 못했다. 양나라는 양무제 시기에는 융성하긴 했는데 양무제가 죽자 거짓말처럼 무너져내렸다.

[1] 송 효무제 즉위 후 중종에서 태조로 변경.[2] 송 효무제 즉위 후 경황제에서 문황제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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