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욱(삼국지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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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4 27화)
서주 대학살
(시즌 5 16화)
하비성 전투
(시즌 6 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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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순욱 시즌 7 29화.png
파일:삼톡 빈찬합.png
관도대전
(시즌 6 121화)
적벽대전
(시즌 7 29화)
말년
(시즌 8 31화)

1. 개요
2. 캐릭터 묘사
2.1. 외모
2.2. 캐릭터성
3. 작중 행적
3.1. 시즌 4: 군웅할거
3.2. 시즌 5: 협천자
3.3. 시즌 6: 관도대전
3.3.1. 초반( ~ 하비 전투)
3.3.2. 중후반(축록 사건 ~ )
3.4. 시즌 7: 적벽대전
3.5. 시즌 8: 입촉, 그리고...
3.5.1. 최후
3.5.2. 사후
4. 인물 관계
5. 여담


1. 개요[편집]


네이버 웹툰 삼국지톡에 등장하는 순욱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2. 캐릭터 묘사[편집]



2.1. 외모[편집]


안경을 쓴 중성적이고 이지적인 미남으로 그려진다. 여담으로 이는 역사서에도 기록된 고증. 재미있게도 위촉오 창업자들의 오른팔인 순욱, 제갈량, 주유 모두 미남이란 기록이 있다. 아래 서술된 대식가 설정의 연장선상인지 의외로 키는 꽤 큰 편. 주로 빨갛거나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조조 진영 인물들 중 유일하게 파스텔톤 하늘색 니트를 입고 다닌다.[1]


2.2. 캐릭터성[편집]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초반에는 원소 진영의 참모로 등장한다. 순욱이 원래 원소의 부하였다는 설정은 삼국전투기가 원조이고 네이버 삼국지 웹툰의 선배이기도 하므로 아마 거기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2] 실제 역사에서는 한복이 순욱을 초청하자 자신의 사람들을 이끌고 그에게 갔는데, 가는 동안에 한복이 원소에게 망했고, 원소는 순욱을 귀하게 대접하였다. 순욱의 가족과 지인인 순심, 곽평, 신평 등은 원소에게 등용되었으나, 순욱은 원소라는 사람이 믿음직하지 않다 여겨 조조에게로 가게 된다. 즉 손님으로서 대접받은 일은 있지만 원소 밑에서 일한 적은 아예 없다.

본작에서는 정사를 반영해 진궁이 조조의 제1책사이던 시절이 나오기 때문에, 순욱이 조조의 제2책사로 행세하는 희귀한 장면을 볼 수도 있다. 순욱을 조조의 으뜸 가는 책사로만 알던 삼국지 팬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기해 보이는 장면.

엄청난 대식가라는 설정이 붙었다. 조조와 첫 만남 때는 편의점 도시락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타나서 조조가 그걸 혼자 다 먹냐고 놀라자 '남들 두 배는 먹어야 머리가 돌아간다'고 대답했고(문서 최상단 사진), 정말로 조조에게 약간 나눠준 걸 제외하고는 혼자서 뚝딱 먹어치웠다. 이게 인상에 남았는지 두 번째 만남에서 조조는 그를 대번에 먹보라고 불렀다. 대식가 설정은 작가들이 작정하고 던진 고인드립성 떡밥으로, 독자들도 '어떻게 이렇게 잘 먹는 사람한테 빈 찬합을 보낼 수 있느냐'고 마음 아파하며 조조를 원망했다.

또 내정 담당 스페셜리스트고 전쟁 쪽은 전문이 아니라는 설정을 볼 수 있는 대사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조 세력이 어느 정도 커져 순욱이 내정을 전담하기 전까지 곽가의 역할은 순욱이 맡았던 것으로 보이며, 본진 담당을 하게 되며 조조가 전장에서 순욱의 역할을 대신할 인재를 찾자 순욱이 추천한게 희지재, 곽가, 순유이다. 아마 본작에서는 이미지가 겹치기 쉬운 순유와의 차별화를 위하여 순욱은 내정, 순유는 군사 쪽으로 특화되었다는 이미지를 부여한 듯하다.[3]

3. 작중 행적[편집]



3.1. 시즌 4: 군웅할거[편집]


시즌 4 27화에서 첫 등장. 처음에는 원소 진영의 책사였다는 설정이다. 원소의 연회에 얼굴만 비추고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 조조를 찾아와 함께 식사를 한다. 조조를 두고 "환관의 손자이면서 부패한 십상시를 치고, 동탁의 은혜를 입고도 직접 총구를 겨누고, 반동탁 연합 때도 몸소 싸우다가 죽을 뻔한 인물"이라 말하자 조조는 자신이 "그 지X들을 하고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또라이"라 자조하며, 하늘이 자신을 미워하니 가서 어깨에 소금이라도 치라고 대꾸한다. 이에 순욱은 하늘을 겁내다니 어르신 성함이 울겠다며 순자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4] 이어 "하늘은 감히 사람을 휘두르지 못하며, 당신이 실패를 거듭한 건 하늘에 버림받아서가 아니라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아서이니 하루빨리 원소에게서 독립하라"고 권유한다.[5] 그리고 그때 자신을 불러 준다면 굶으면서 야근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이어 29화에 재등장. 진궁의 공으로 연주자사에 취임한 조조를 직접 찾아와, 원소 대신 조조를 따르겠다는 포부를 밝힌다.[6] 진궁이 "프린스가 월급도 더 주는데 뭐 하러 왔느냐, 조조에게 협박이라도 당했느냐"며 놀라자 조맹덕씨! 당신 이 도련님 협박했구나?! 자신이 먼저 들이댔다고, 언젠가 조조가 큰 일을 하리라 믿고 왔다고 답한다. 이에 진궁이 보통 또라이가 아니라며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조조가 크게 환영하며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 선생이 내 장자방이다"라 반겨주자, 순욱은 조조에게 지인인 정욱, 만총, 여건, 모개 등의 책사들을 대거 소개해 인재 풀을 넓혀 준다. 다만 다른 책사들도 인정하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곽가는 무수한 삶과 죽음을 책임 지기엔 22살은 너무 어리단 이유로 보류한다.


3.2. 시즌 5: 협천자[편집]


도겸의 부하에게 조조의 가족이 살해당하자, 다급하게 뛰어와서 조조에게 그 소식을 전한다.

서주 대학살 이후 돌아온 조조는 순욱의 얼굴을 보고 왜 자신이 돌아왔는데 기뻐하지 않고 원망하는 얼굴이냐며 속으로 묻는다.[7] 이후 순욱은 조조에게 크게 실망한 진궁과 달리, 곧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이 조조를 바로잡겠다는 결의를 보인다. 조조에게 기반을 다져준 자신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8]

이후 진궁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연주를 빼앗기자, 정욱과 목숨을 걸고 연주의 관할구역 중 견성과 동아, 범현 세곳을 지켜낸다.[9] 그러나 황충 떼로 인한 식량난 때문에 예민해진 조조가 황건적을 쳐서 식량을 마련할 계획을 짜면서 서주로 갈 의사를 은근슬쩍 내비치자, 또다시 피를 보려는 거냐며 안된다고 직언을 했다가 조조에게 '배신자 진궁처럼 불만있냐'는 살벌한 경고를 받지만, 곽가의 중재로 다행히 무마되자 바로 무릎을 꿇고 사과하며 조조에게 황건적이 주둔한 곳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조조를 이용해 한 황실을 재건하고자 한 자신의 목적을 다시금 자각하고, 마침내 연주를 되찾자 조조의 목줄을 잡을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여 협천자를 제안한다.


3.3. 시즌 6: 관도대전[편집]



3.3.1. 초반( ~ 하비 전투)[편집]


여포에게 당해 조조에게 의탁한 유비를 경계하며 정욱과 함께 유비를 죽여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서주의 영웅이라는 명성이 있는 유비를 받아들여 서주 대학살로 잃은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는 조조와 곽가의 반대로 무산된다. 이후 유비를 만난 자리에서 유비가 조조를 공격할 듯 하자 정욱과 함께 바로 조조 앞을 막아 지키는 충심을 보이며 유비의 황손 선언 발언에 한방 먹고 매우 당황한다.

조조가 완성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오자 조조를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본다.[10]

그럼에도 여전히 조조를 위해 일하고 있으며, 수춘 전투 때는 우여곡절 끝에 원술이 달아나며 버린 수춘성을 점령한 후 도망간 원술을 마저 쫓으려고 하자, 문자로 조조를 뜯어말린다.[11]

조조가 양성 전투에서 장수에게 반격할 때 조조의 연락을 받지 않았는데, 이후 조조가 장수에게 역습당해 퇴각할 때 급히 연락을 해와 '원소가 허도 인근에 군사를 주둔시켰다'는 소식을 전하며, 돌아온 조조에게 원소가 이제 어르신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결단을 내릴 때라고 말한다.

하비 전투 때는 조조가 원정을 나가면 수도에 남아 후방 지원을 해주던 평소와 달리 조카 순유와 정욱, 곽가와 종군한다. 하지만 수 개월이 지나 눈까지 내릴 정도로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군량까지 점점 떨어지면서, 정신적으로 몰린 조조가 퇴각까지 결심할 정도로 몰리자 진궁을 회유하려다 되려 위협 화살만 맞는 사고가 벌어지는데, 이때 조카 순유가 어떤 작전을 짜고 조조에게 브리핑을 하러 가려고 하자, 급한 보고인 건 알겠는데 일단 주군의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하라며 만류한다. 하지만 순유가 자신의 작전대로라면 100% 우리가 이긴다며 짠 작전을 보여주자 크게 놀란다. 사실 다른 책사들이 여포를 이길 마땅한 계책을 내놓지 못하고 고생하던 동안, 순유는 홀로 하비성을 둘러싼 기수와 사수의 물이 흐르는 방향을 체크하고 있었는데, 바로 두 강줄기의 둑을 터뜨려 하비성을 물바다로 만들어서 여포를 망하게 만들자는 작전을 짜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순욱은 그렇게 되면 하비성의 백성들도 수해를 입는다며, 전쟁에도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다고 만류한다. 그러나 순유는 '전쟁에서 책사가 해서는 안되는 일은 주군을 패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일축하며 아마추어인 숙부는 내 영역인 외정에는 신경 끄고 맡은 내정이나 잘하라며 일축하고, 그리고 안그래도 추운 날씨에 군사들도 지쳤고 식량도 다 떨어진 지금 상황에서 이 작전대로 해야만 우리가 이긴다며 입장을 고수한다. 그래도 순욱은 여포를 물리쳐야 맘놓고 원소와 싸울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하비 백성들도 우리 백성들이 될 텐데 더 나은 작전을 생각해보자며 다시 한 번 설득해보려 했지만... 뒤에서 이를 듣고 있던 조조는 그대로 이 작전을 채택해 버린다.[12]


3.3.2. 중후반(축록 사건 ~ )[편집]


여포 토벌이 끝나 허도로 돌아간 후 한동안 출연이 없다가 88화에서 조조가 믿었던 유비에게 속았음을 깨달으면서 갑자기 도진 두풍으로 두통을 느끼고 진통제를 먹으려 할때, 돌연 하후연과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이를 막는다. 당황한 조조는 간 떨어질 뻔했다며 대체 왜 그런 거냐고 따지지만, 사실 조조가 먹을 뻔한 약은 바닥이 그슬릴 정도로 지독한 독약이었고, 순욱은 조조에게 '황제와 거기장군 동승이 길평병원 원장 길태와 결탁해 어르신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99화에서 다시 간만에 출연. 조조가 유비의 반란을 진압한 후 관우를 다시 데려왔다가, 관우가 원소와의 전쟁에서 안량을 베는 활약을 벌이고 빚만 더 갚고 떠나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음을 장료가 톡방으로 알리자, 조조에게 지금 상황에서 우리에게 관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관우를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고 첨언한다. 그러면서 지금 문추가 내려왔는데, 그 일행에 유비가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그러나 관우는 결국 떠났고, 그후 120화에서 다시 원소와 관도에서 전면대치하게 된 조조가 주둔지 주변에 흙성을 쌓아놓고 화살비를 퍼붓는 원소로 인해 병사들을 대거 잃고 식량까지 바닥난 상황에 완전히 자포자기 해서 '목숨만 붙어있으면 어떻게든 될 테니 이번 싸움은 포기하고 허도로 돌아가서 후일을 도모하자'고 하소연해오자, 순욱은 조조에게 보이스톡을 걸고는 정녕 죽고 싶은 거냐고 일침을 가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조조는 '나보고 여기서 개죽음 당하라는 거냐, 주군이 철군한다 하면 잔말말고 따라야하는 거 아니냐, 이 시체 구덩이에선 내가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따지지만, 순욱은 단호하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보통은 한 번 넘어져도 다음 기회가 찾아오지만, 어떠한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 식량이 없어 우리도 힘든 상황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근거지를 떠나 멀리 원정나온 원소군도 상황이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확신에 찬 조언을 주고 전화를 끊는다. 덕분에 순욱의 말을 곱씹던 조조는 그제야 원소에게 만큼은 내 평생 쌓아온 모든 걸 양보할 수는 없다며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다.


3.4. 시즌 7: 적벽대전[편집]


10화 곽가의 장례식장에서 머리를 포마드 헤어로 넘겨 이전보다 더 성숙해지고 가운 하나를 더 걸친 모습으로 등장. 조조가 곽가의 예상대로 요동으로 도망친 원상과 원희를 쫓지 않음으로써 요동의 지배자인 공손강을 자극하지 않은 덕에 공손강이 알아서 원상과 원희의 목을 바쳐오면서 자연스럽게 원씨 가문의 모든 핏줄을 멸망시키게 되었으나 정작 이를 마지막으로 곽가는 죽어버렸고, 헌제 내외와 식사 자리를 갖고 뒤늦게 도착한 순욱은 공손강으로부터 원상과 원희의 목을 받고 곽가의 장례식에 가서 힘없이 누워 있던 조조와 만났다. 조조가 곽가를 향해 '이렇게 될 것까지 다 예측하다니 참 신통한 녀석이었다.'면서 허탈해하자, 순욱도 '곽선생 다운 천재적인 책략이었다.'며 감상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곧이어 조조가 뭐든지 다 알던 천재가 정작 자신의 수명은 알지 못하고 요절한 것, 천하를 주름잡던 그 프린스 원소의 자식들은 방석 하나 얻지 못하고 뒈진 아이러니에 실소하며 몸을 일으키더니, '인생은 이렇게 덧없는 것이니 이제 연극은 그만하자'며 돌연 다가서서는 '요새 왜 내 전화를 피하시나, 내게 불만있냐'며 섭섭함을 토로하면서, 안그래도 조조를 멀리하고 헌제와 자주 접촉하던 행동을 책잡혀 조조가 아닌 한 황실에 충성하는 신념을 들키고 말았다.

갑작스런 조조의 떠보기에 순욱은 당황해 얼버무리며 일단은 넘어갈 수 있었지만, 조조에게 '부디 잊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내게 먼저 다가왔던 건 선생이었고, 당신 상상과 달라도 지금의 내 모습이 젊은 날 선생이 날 보며 꿈꿔 온 참된 리더'의 모습이라며 경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곧 자신을 걱정해주는 순유로부터 조조가 곽가의 유족을 신경 써서 챙겨줄 것을 명하면서 "세상에 내 편은 곽가 뿐이었다."고 말했던 것을 듣게 되자, 순욱의 생각은 뻗어나가는 것이라 한 번 부딪히면 서로 멀어질 뿐이라고 독백하며 이제 자신은 평생 조조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이 날을 기점으로 순욱과 조조의 사이에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던 균열은 점점 더 커지게 되었다.

29화에서는 조조가 일손이 부족하지 않겠느냐 하며 7년 전 순욱이 추천했던 젊은 인재를 영입할 것을 지시한다. 조조의 회상에 따르면 7년 전 당시에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핑계로 못 오겠다고 했던 모양. 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조조는 이번에도 싫다고 하면 감옥에 가두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30화에서는 사마의에게 전화를 걸어 스카웃 제의를 하는데 거절하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조조의 말을 전달했는지, 사마의는 '부족한 사람을 두 번이나 찾아주어서 감사하다, 심을 다해 승상을 모셔보겠다'고 대답한다.

이후 등장은 없으나 순유가 적벽 대전에 출전하러 갈 때, 군복 말고 한 황실의 신하로써 예복을 입고 갈 것을 지시했다. 순욱 입장에서는 조조에게 천하를 자기 손에 쥐기 위함이 아닌 한 황실의 신하로서 질서를 지키러 가는 것임을 상기시키기 위한 조치였으나, 도리어 조조가 적벽에서 패하면서 조조에게 찍힐 위험에 처했다.[13]


3.5. 시즌 8: 입촉, 그리고...[편집]


적벽에서 패배하고 돌아온 조조가 동작대를 완공한 기념으로 잔치를 벌이지만, 황제의 신하로써 근무시간에 나랏일 팽개치고 놀 수 없다며 일부러 불참했다고 순유를 통해 언급되며, 정욱은 순욱이 자꾸 조조에게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걱정한다.

결국 30화부터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조조가 서량 연합군을 진압하고서는 관중 땅을 손에 넣고 연합군의 대장 마초의 아버지인 마등과 그 일가를 참수해 정의를 지켰다며 황제에게 보상으로 위공의 자리를 줄 것을 청하자, 이를 정면에서 반대하며 막아선 것. 이 시점에서는 머리에 남아있던 푸른 브릿지가 완전히 다 빠져 검은 머리만 남았다.

그럼에도 조조는 의외로 별말 않으며 서로의 딸과 아들을 맺어주는 것으로 사돈 관계를 맺으며 사이를 돈독하게 하자는 듯 했으나, 실상은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 눈에 나는 행동을 더이상 하지 못하게끔 감시하려는 속셈이었다. 거기다 여전히 뒤끝이 남아있었던 조조는 순욱을 상서령에서 해고하고서 광록대부로 좌천시키고는, 자신의 옛 고향집이 있는 패국 초현으로 데려가 그대로 순욱을 유폐시켜 버린다. 물론 조조의 속뜻은 그곳에서 과거 자신이 거병 이전 고뇌하며 치밀하게 공부하고 나라를 바로 잡고자 했다는 흔적들을 보고 진심을 알아달라는 뜻이었으나, 순욱은 조조 당신은 그때의 젊은이와 같은 사람이 아니잖냐며 분통을 터뜨리더니 명령을 어기고 조조를 만나러 간다.

그시각 조조는 동소를 보내 헌제에게 위공직을 하사하게끔 협박하고 있었는데, 순욱은 수춘까지 달려가 기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조조의 위공 책봉을 만류한다. 이에 조조가 보는 눈을 신경 써 일단 보류하자, 진심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말을 듣고 멈춰준 것만으로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기뻐하며 조조를 다시 바른 길로 이끌고 꿈을 이루게 해주겠다고 다짐하지만... 이미 조조는 면류관까지 준비해가며 기대에 찬 상태라는 게 문제였다. 직후 조조는 "내가 큰 실수 할 뻔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하더니 끼니 챙겨 드시라며 유효기간이 다 지난 도시락 기프티콘을 보내주면서 관도대전 당시 받은 영양제[14][15]를 언급한다. 이로써 사실상 토사구팽, 즉 자살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3.5.1. 최후[편집]


이후 수춘성 부근 영빈관에서 몸을 추스르던 순욱은 지금은 죽은 공융을 비롯한 종요, 진군, 왕랑 등의 문무백관들에게 고대의 형벌인 육형[16] 을 부활시키자고 주장하면서 범죄자도 사람인데 어찌 그런 끔찍한 소리를 주장하느냐는 공융의 말에 "피해자이자 선한 백성들이야말로 사람입니다. 반성할 자라면 처음부터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며 자격 없는 자에게 기회를 줘봤자 기껏 세운 질서를 어지럽힐 뿐. 저는 어떠한 악(惡)도 용서할 생각이 없습니다"고 소신을 밝히며[17] 토론을 하던 시절의 꿈을 꾸다 일어나는데, 자꾸 산 사람보다 먼저 간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었다고 독백하며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 이때 순욱은 조조가 준 영양제를 가장한 독약을 이미 먹은 상태였고, '나는 내 스스로의 소신이 옳다고 믿고 거리낌도 없었기에 이 난세를 끝내기 위해 많은 피를 흘렸다, 산 사람의 코와 다리를 잘라서 평화를 살 수 있다면 싸디싼 대가가 아니겠냐'고 한이 맺힌듯 독백하다가 곧 독기가 온몸에 퍼지면서 각혈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순욱은 영빈관 천장에 새겨져 있던 조조의 성씨이기도 한 曹자를 바라보며, 스스로 한나라를 위해 일했다고 믿어왔던 자신도 결국 조조라는 괴물을 만든 또 다른 괴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그동안의 모든 일이 허튼 꿈이었다는 현실을 깨닫고는 절망 속에 흐느낀다.

저주 받아라... 저주받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라!

나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라...

조조는 역적이다!


이윽고 순욱은 마지막 힘을 다해 핸드폰을 들고서는 공용 드라이브에서 자신이 그동안 조조를 위해 해왔던 모든 업무와 관련된 자료들을 전부 삭제해 버린 후, '역적 조조의 모든 것은 저주받아 사라져 버리라'는 저주를 남기고서 한 맺힌 삶을 마감한다.[18]

해당 편에는 앞서 세상을 떠난 진궁과 비교하는 반응이 많았다. 과거 조조가 여백사 일가를 살인한 일로 조조라는 인물에 회의를 갖다가, 끝내 서주대학살을 목도한 후 조조에게 경멸을 느끼고 배신해 조조를 치려 했으나 자신 역시 이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이 되었음에 자괴하며 끝내 조조를 치는데 실패하자, 살 길을 스스로 버리고 지조와 신념을 지키는 명예롭고도 초연히 죽음을 택한, 한때 조조의 오른팔로서 그에게 패왕의 도를 가르친 인물다운 비장한 최후를 맞았던 선배 진궁과 달리, 순욱은 마지막까지 조조에게 기대를 걸고 그를 바른 길로 이끌려다 실패한 것도 모자라 비참하게 버려지자, 이미 괴물이었던 조조를 위해 자신 역시 괴물이 되었음에 자괴하며 마지막 순간에 조조를 저주하고 자살하는 비참한 최후였다는 것. 특히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며 초탈한 표정으로 최후를 맞는 진궁과 검붉은 배경에 바닥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리며 최후를 맞는 순욱의 묘사도 완전히 대비된다.


3.5.2. 사후[편집]


이후 순욱의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조조를 포함한 수많은 조문객들이 몰려서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들 중 순욱을 존경하고 그를 통해 조조군에 입사했던 한 신입 참모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순욱의 시신이 실려나가는 광경을 지켜본다. 조조 역시 비록 그를 죽게 만들었지만 오랫동안 그와 함께했기 때문인지 살짝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모두가 슬퍼하는 분위기 속에서 조조의 장남 조비만은 조조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내리고 있는 비는 자신이 죄다 맞으면서까지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려고 안달을 낸다. 순욱의 죽음에 대해 기자들에게 이미 이야기를 해두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평소에 그를 고깝게 보았는지, 죽은 순욱을 향해서 아껴주신 은혜도 모르고 아버님 얼굴에 똥칠이나 하려 들다니 못돼처먹었다고 비웃는다. 하지만 조조는 조비에게 순욱이 먹었던 영양제를 가장한 독약과 똑같이 생긴 알약을 억지로 먹인다. 당연히 조비는 자신이 먹은 것이 순욱 때와 똑같은 독약인 줄 알고 경악하여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그러나 조조는 그건 진짜 영양제라며 "보스가 책임감이 있어야지 그렇게 쉽게 죽으면 쓰냐며 어떤 실패도 널 죽이지 못하게 해라. 그게 아랫사람과 대장의 차이다"라고 조비에게 충고한다.
어찌보면 처음부터 순욱을 우롱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관도대전 때 식량난으로 포기에 기울어가던 자신에게 '어떤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라고 다그치던 순욱을 떠올리며 한 말일 수도 있기에 미묘하다면 미묘한 대목.

이후 조조는 자신이 순욱을 토사구팽한 사실을 숨기고자 순욱의 벼슬은 아들 순운에게 물려준다. 또한 순욱에게 시호를 경후(敬侯)로[19] 내려주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순욱에게 '미안합니다 순 선생. 선생을 잃은 것은 순전히 내 실수야.'라고 말하면서도,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울 것임을 선언하며 순욱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후 사마의는 순욱의 사망 루머[20]에 대해 경후라는 시호를 하사한 것을 이유로 들며 '아무리 그래도 조조가 순욱 어르신을 죽게 했겠느냐'며 독살설을 부정하는 뉴스 댓글을 보면서 논어의 구절을 읊는데, 조조가 하사한 경후라는 시호의 속뜻에 '어버이는 주군이고 자식은 신하나 다름없으니 싫어도 고분고분 따랐어야지'라는 뜻이 담겨있었다는 걸 제대로 간파한다. 결국 사마의는 '조조가 죽은 순욱을 끝까지 모욕했다'라고 판단하고, 원통함과 조조에 대한 원망이 담긴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흘린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사마의는 순욱을 통해 조조군에 입사할 정도로 순욱을 존경했는데 전부터 조씨 일가를 독사라고 일컬을 정도로, 조조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이 토사구팽 사건을 계기로 순욱의 유지를 이어받아 조씨 일가를 완전히 밀어버리기로 결정하게 된다.

더불어 순욱의 자살을 막아보려 했던 조카 순유도 조조로부터 "하비 공방전 때 강둑을 터뜨려 여포를 망하게 만들자는 작전을 세웠던 건 선생이었고, 그렇게 수많은 목숨을 바쳐서 이뤄낸 걸 순욱이 막으려고 할 텐데 괜찮겠냐"는 책임 전가를 받자 결국 아무 말 못하고 그의 죽음을 관망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순유는 내심 순욱을 원망하며 나는 당신과 다르다는 생각으로 건강을 해쳐가면서까지 조조를 위해 일하려고 했으나 이와중에 후계자 쟁탈전에서 입지를 지키려는 조비의 언론 플레이에 이용당하자, 결국 자신들이 조조를 위해 이뤄낸 것들은 이제 욕심 많은 짐승들, 다시 말해 조조의 자식들이 노리는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걸 깨닫고 이런 비참한 현실에 한탄하며 그제서야 순욱의 심정을 이해하고 홧병으로 사망함으로써 그의 뒤를 따른다.

4. 인물 관계[편집]


순욱은 한때 원소 밑에 있었으나 스스로 그를 떠나 조조에게 왔다. 원소는 세상을 가지려 할 뿐 바꿀 의지가 없는데 조조는 옳다고 믿는 일에 몸을 던진 사람이라고 보았기 때문. 조조는 순욱의 임관 당시 그를 자신의 장자방이라 칭했다.
그러나 서주 대학살을 기점으로 관계가 약간 틀어졌다.[21] 조조는 순욱이 자신에게 강하게 반발하자 살벌하게 협박한 전적은 있지만 여전히 그를 크게 신임하고 있는데, 순욱은 조조에게 목줄을 채워 자신이 제어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순욱은 조조라는 인물 자체나 그의 이상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며, 정반대로 자신이 가진 이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조조를 선택한 것에 가깝다.[22]
결국 적벽대전 시점부터 조조의 본성을 눈치채고 그와 반목하기 시작했다. 끝내 위공 즉위 시점에서는 조조의 눈 밖에 나 좌천에 유폐까지 당했으나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조조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었지만, 비참하게 버림받아 사실상 자살하라는 명령을 받자 독약을 먹고 그를 저주하며 자살하고 만다. 그나마 조조가 그의 시신 앞에서 한 독백에서 그의 죽음에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었지만, 이미 위공으로 오르기로 결심한 이상 그의 야망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 되어있었다.

친누나.[23] 원소를 떠나 조조에게 갈 때 누나와 함께 가고 싶어서 열심히 설득했지만, 순심은 '프린스 원소와 달리 아마추어인 조조는 권력을 잡으면 그저 앞뒤 분간 못 하고 신나서 칼을 휘두를 위인'이라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이후 서주대학살이 벌어지자 순심은 '나는 분명 경고했는데 걔(순욱)가 자초한 일'이라며 순욱을 아둔하다고 비웃었다.[24]
사실 이 둘은 친남매인데도 엮이는 장면이 많지 않아서 관계를 파악하기 힘들다. 더구나 순심이 동생을 어떻게 보는지는 한 번 나왔어도 순욱이 누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직접적으로 나온 적이 전혀 없다. 두 사람이 정치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고, 추측을 좀 더하자면 순심이 살갑고 다정한 누나는 아니라는 것 정도.

항렬로는 조카지만 나이는 이쪽이 위인지라, 순욱은 순유를 '조카님'이라 부르며 공대하고 순유는 그냥 '숙부'라 부르며 반존대를 한다. 순유가 굉장히 과격한 작전을 내놓고 순욱은 반대하는 것을 보아, 이 두 사람도 성향이 달라 지향점에 차이가 있다.[25][26]
그래도 순욱이 한 황실의 부하로써 조조와 반목하려는 것에 걱정을 품고 있었으며, 끝내 조조가 위공 즉위를 두고 이를 반대한 순욱을 토사구팽하며 자살을 종용하자 조조의 옷자락을 붙들고 말렸지만, 조조는 도리어 하비 공방전 당시 결정타가 되어준 강둑을 터뜨리는 작전을 언급하며 순유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순욱 사후 순유는 순욱에 대해 '우리 꿈에 침을 뱉고 도망쳤다'며 원망하고 자신은 다르다고 여기며 무리해 가면서까지 조조를 위해 일하려고 했지만, 조비가 조식과의 후계자 경쟁 중에 병문안 오면서 언플의 도구로 이용하려 하자, 그제서야 순욱의 심정을 이해하며 홧병으로 사망함으로써 뒤를 따랐다.

한때는 동료였지만 서주 대학살을 기점으로 적이 된 사이. 두 사람은 조조군 책사진의 창립 멤버였으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진궁은 순욱이 명문가 자제임을 알아보고 살갑게 대해주었다. 이후 함께 조조 휘하에서 활동했지만, 두 사람 모두 서주 대학살을 계기로 조조에게 크게 실망하게 되었는데, 순욱은 "조조는 잠시 길을 잘못 든 것이고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내 책임이 크니 내가 그를 원래대로 바로잡겠다"며 잔류를 택했고 진궁은 "길을 잘못 든 게 아니라 이게 조조의 본성이니 그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며 그를 제거하기 위해 떠나서 여포에게 합류했다.[27]
비록 진궁의 반란은 실패했지만 그는 절개와 지조를 지키고자 조조의 회유를 거절하고 사형당하는 비장한 최후를 택했으며, 훗날 순욱은 마지막 순간에서야 진궁의 말이 맞았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으며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28]

순욱의 소개로 조조에게 임관하게 되었으나 서주 대학살 이후 조조를 도구로써 여기게 된 순욱과는 달리, 정욱은 조조를 자신의 태양으로 여기기에 조조의 흑역사들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충성한다. 곽가의 사망 이후 정욱은 순욱이 황실의 신하로서 행동하고 조조와 거리두고 있음을 눈치채고, 순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무릎도 좋지 않은데 자네들 무덤에 절 시키지 말라"며 얌전하게 굴라고 경고한다. 동작대 완공 축하 연회에도 불참하는 순욱의 사정을 듣고는 꽉 막힌 사람이라고 독백하는 등 뜻은 다르지만 사적으로는 순욱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결국 정욱 역시 순욱과 순유의 무덤 앞에서 그들을 늙은 자신이 젊은 그들의 무덤을 보게 했다며 "괘씸한 친구들"이라고 말하면서도 "나도 곧 따라감세..."라고 말하며 그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고, 결국 갑질 자작극 영상을 올린 뒤 조조로부터 벗어나면서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


순욱의 소개를 통해서 조조군에 새롭게 들어온 명문가 사마씨 출신의 신입 참모. 그 역시 명문 거족인 영천 순씨 일가 출신에 학식과 인품이 높았던 순욱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있었으나, 그가 조조에게 비참하게 버림받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조조의 성품에 정나미가 떨어진 사마의는 지금은 일단 참고 조조가 죽은 후에 그의 복수를 하기로 결의하게 된다. 실제로도 사마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중국 드라마 대군사 사마의 역시 해당 부분에서 순욱이 빈 찬합을 조조에게서 전달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이 작품의 주인공 사마의의 인물 묘사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5. 여담[편집]


  • 청량하고 유순해 보이는 사슴상 외모 때문에 독자들에게 밤비라는 애칭을 얻었다. 또 먼 훗날 비참한 최후를 두고 찬합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훗날 순욱은 조조의 위공 즉위를 반대한 건으로 그와의 사이가 심하게 틀어지며 이후 조조가 순욱에게 빈 찬합을 보냈는데, 순욱은 '너에게는 더 줄 것이 없다'는 뜻으로 파악하고 음독자살한다. 이를 비유한 것. 사실 사서 중에 빈 찬합을 언급하는 건 위씨춘추뿐, 빈 찬합 얘기 없이 그냥 좌천으로 추정되는 보직변경을 당한 뒤 근심 속에 병으로 죽었다, 혹은 후한서나 자치통감 등에서는 그냥 음독자살했다고만 한다. 하지만 애초에 순욱씩이나 되는 사람을 좌천해버리는 거 자체가 빈 찬합과 동급의 선언이나 마찬가지긴 하다. 무엇보다 대부분 삼국지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놈의 찬합 장면이 워낙 강렬한 탓에 본토 중국에서도 삼국지 창작물 만들 때는 역사적 사실이 어쨌건 간에 순욱 퇴장할 때 되면 여지없이 빈찬합 드립을 치는 마당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별로 없다.

  • 역사에서는 형인 순심이 TS되어 누님이 되어 등장한다.[29] 덤으로 협천자 시점부터 합류하는 연상조카 순유도 TS되었다.

  • 임관 초창기에는 항상 조조의 전투에 종군하며 옆에서 보좌하다가 세력이 커지자 2인자로서 본진 담당을 전담하게 되는데,[30] 삼톡은 정사의 사소한 내용도 어느정도 신경쓰는 편이지만 이 부분은 잘 알려진 일화가 없는 편이라서 그런지 생략하고 처음부터 내정 담당 스페셜리스트로 묘사되는 편이다.[31]

  • 시즌 8 14화에서 사마의가 올린 단톡방 음료취향에서는 대식가답게 음료 취향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래서 팬들은 이렇게 잘 먹는 사람에게 기간이 만료된 기프티콘을 줬느냐며 조조를 극딜하는 중.

  • 관도대전 이후 합류한 가후와 여러모로 반대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독자들의 의견도 있다. 자세한 건 아래 표를 참조.

순욱
가후
머리 색
흑발 / 푸른 브릿지

백발 / 붉은 브릿지
인상
순수한 인상

음흉한 인상
나이
중년

중노년
성격
감정적

이성적
일에 대한 태도
열의

냉소
계책의 목적
나라를 위함

자기 자신을 위함
특화된 능력
내정

처세
백성을 대하는 태도
적의 백성이라도 생명을 존중하려 하나, 자신의 백성이라도 죄를 지으면 가차없이 벌함

다스리는 백성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으며, 수단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여김
말년
버림받고 자살

천수를 누리고 감

  • 작중에서 헌제가 진심으로 자신의 편이었다고 인정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신하들의 압력에 못 이겨 조조를 위공으로 임명하는 부분에서 헌제가 하는 독백부터 '미안하오, 순욱 선생. 그대는 목숨 걸고 나와 황실을 지켰건만, 짐은 배신으로 답하는구려!..."이다. 실제로도 순욱은 왕윤 등과 더불어 후한 말의 인물 중에서 후한의 충신이었다고 인정받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 팬들 사이에서는 '조조 진영에 속했지만 한나라에 충성한 인물'이라는 독특한 입지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2] 삼국전투기에선 저수와 전풍을 필두로 한 막강한 모사진에 밀려서 물셔틀 하다 조조에게 간다.[3] 실제로 시즌 6 하비 전투 시점에서도 순유가 '숙부의 일은 내정이고 전쟁은 내 담당'이라는 요지의 말을 한 적 있다.[4] "오로지 뜻에 살고 뜻에 죽는 자를 일러 덕德지조操가 있다 한다. 권세나 이익에도 유혹당하지 않으며 이익에 흔들리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이 뜯어말려도 한 번 마음먹은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니, 천하조차 이 자의 뜻을 꺾지 못하리라." 순자 1장 권학편 덕조. 이 구절에서 조조의 이름과 자를 따 왔다고 한다. 한편, 작중에서 이를 인용한 순욱 자신이 순자의 후손이기도 하다. 쬬승상과는 거리가 좀 있는 구절 같은데[5] 조조에게 이렇게 권유하면서 속으로 자신의 현 주군인 원소를 평하는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하늘이 아닌 사람인데 원소는 천하를 탐할 뿐 바꾸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조조는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6] 진궁은 그를 보고 곧바로 '명문가인 순씨 가문의 순욱'임을 알아봤는데, 조조는 첫인상이 꽤 강렬했는지 '먹보'로 기억하고 있었다[7] 이때, 순욱은 죄책감 및 조조에 대한 실망과 충격으로 한숨도 못자고 와이셔츠의 단추까지 어긋나게 잠그는 등 엉망이 된 몰꼴을 하고 있었다.[8] 순욱은 단순 인재만 끌어 모은게 아니라 호족까지 끌어들이는데 큰 도움이 되는 인물이다. 실제로 순욱이 인재를 추천하고 이로 인해 인재가 많아지고 이를 기반으로 세력이 확대되어 대군을 이끌고 서주를 침공할 만큼 세력이 커지는데 순욱의 도움이 굉장히 컸다.[9] 구체적인 일화들은 다 생략하고 글로만 서술.[10] 정욱은 경멸하듯 째려보고 있었고, 악진은 입술을 꽉 물었으며, 여건은 골치 아픈 듯 머리를 싸매고 있다. 공통점은 할 말이 많은데 꾹 참는 태도.[11] 그런데 조조가 순욱에게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훗날 조조가 순욱을 어떻게 죽였는지 알면 매우 섬뜩한 복선이다.[12] 순욱이 순유를 말리다가 조조가 덜컥 순유의 작전을 수락할 때, 하비성 수몰 시뮬레이션이 100%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뜨는 연출이 나온다.[13] 빈 식판이 떨어지는 묘사가 나오면서 그의 사망플래그를 암시했다.[14] 사실은 당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수틀리면 최후의 수단으로 받은 독약이었다. 당시 있던 장수진과 책사들은 아직도 가지고 있던 것.[15] 이때 조조를 저 병을 바라보며 "관도에서 이기고도 인생 어찌될지 몰라 일단 들고 다녔는데, 이제 진짜 버려야겠다"라고 말하는데, 단순히 독약 얘기라기엔 분위기가 매우 의미심장하다. 버린다는 것은 독약이 아니라 순욱이라는 해석도 가능한 셈.[16] 肉形. 몸을 해치는 잔혹한 형벌. 고대 중국에 자주 시행되었으며 전국시대 진나라에서는 오형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17] 공교롭게도 잘 알려진대로 공융은 성선설을 주장한 공자의 직계후손이고 순욱은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직계후손이다. 이 부분을 주목해서 본다면 매우 의미심장한 연출.[18] 이때 조조만을 저주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일들, 자신이 꾸어왔던 꿈들을 저주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삶마저 저주하는 것.[19] 사실 이 시호는 한참 이후인 265년에 순욱에게 태위를 추증할 때 같이 내려진 시호라 조조가 생전에 직접 추증한 시호는 아니다.[20] 정사에서 병사한 내용을 작중에서 진실을 숨기기 위한 언론 공세로 묻은 것으로 묘사했다.[21] 서주 대학살 이전에는 마음 속으로까지 조조를 어르신, 조조님으로 부르며 진심으로 존경했지만, 학살 이후부터 속으로는 그냥 조조라고 부르며 그를 대업을 위한 도구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순욱이 조조에게 인간적으로 얼마나 실망했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22] 이런 묘사는 정사의 묘사와도 일치하는데 역사적으로 순욱은 조조 뿐 아니라 한나라의 충신으로도 평가받는다. 물론 조조의 오른팔로서 한나라를 무너뜨린 것에 대한 책임은 결과적으로 있지만, 당시 순욱의 입장에선 한나라를 위협하는 '역적'들을 제압할 사람이 조조 밖에 없었고, 실제로 조조도 처음엔 헌제를 모시는 등 한나라의 신하라는 입장을 취했기에 그의 수하로서 힘을 빌려준 것이다. 이후 조조가 황실을 능멸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도 조조를 제외하면 마땅한 대안이 없기에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조가 위공의 작위를 받는 것을 기점으로 둘은 타협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던 것이다. 조조가 아무리 나쁜 신하라도 어쨌거나 그전까진 한나라의 신하였는데, 노골적으로 야망을 드러냈기 때문. (물론 공이나 왕도 황제 아래이긴 하지만 국공 작위와 더불어 천자의 예에 버금가는 구석을 받는 것은 사실상 왕위 찬탈의 필수코스나 다름없고, 황제가 자발적으로 내린 것도 아니라 이 쪽에서 사실상 요구해 받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불보듯 뻔하다.)[23] 정사에서는 당연히 남성이지만 삼톡에서 TS되었다.[24] 순욱도 첫 등장 때 그 말을 염두에 둔 듯한 대사를 날리기는 했다.[25] 연의에선 나관중이 순유에게 의도적으로 순욱과 유사한 이미지를 부여, 순유 또한 조조의 위왕 즉위를 반대했다가 노여움을 산 뒤 충격으로 근심하다 병사했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조의 위왕 즉위에 별 말 없이 찬성했으며, 그의 죽음은 해당 건과 전혀 무관하다. 삼톡에서는 순욱과 순유가 군사 작전에서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묘사를 넣어, 후일 위왕 즉위라는 더욱 중대한 사건에서도 역시 의견이 갈릴 것을 암시한 듯하며, 따라서 순유의 최후는 정사를 따라갈 듯.[26] 그러나 이후 조조가 여포를 죽이기 전 희망고문을 하며 갖고 노는 걸 못 견디는 모습도 나와서, '위왕 즉위 건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정사) 이후 결국은 조조를 따른 것을 후회하며 화병으로 죽는(연의)' 연출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삼국지톡에서는 정사와 연의의 내용을 둘 다 반영한 사례가 꽤 있기 때문. 예를 들어 독우를 패는 것도 정사는 유비 연의는 장비인데 삼국지톡은 둘 다 같이 패는걸로 나온다. 적벽대전 시즌에서 순유가 순욱의 지시에 따라 황실의 예복을 입었던 것으로 밝혀져 연의의 최후를 따를 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왔다.[27] 진궁은 순욱에게 여백사 일가 살해 사건을 말하지 않고 일단 '내가 순간 이성을 잃고 막말을 했다'며 둘러대어 넘어갔다가, 그 날 밤 아무도 모르게 떠났는데, 순욱이 여백사 사건을 직접 본 게 아니라서 말해도 믿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백사 사건을 목격한 것이 본인뿐이기 때문에 조조의 진짜 밑바닥을 아는 것도 본인뿐이라 생각하고 있다.[28] 순욱의 자살 에피소드 이후 무적핑크 작가는 SNS에 푼 후일담에서 '많은 삼국지의 순욱은 "승상께선 내가 필요 없어지셨구나"라고 슬퍼하며 곱게 자결하지만, 삼톡에서는 자신의 뜻을 무시하고 버린 조조를 향한 원한에 악귀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토리를 짰다고 한다. 덤으로 함께 첨부된 사진도 먼저 죽은 진궁이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뒤를 따라와 할 말이 없어진 순욱을 한심해하며 한숨쉬는 이미지다.[29] 순심이 연의에서는 일절 등장이 없고 정사에서도 별 언급이 없는 인물인데도 삼톡에서는 비중이 높은 편인데 순욱과의 관련성을 살리려고 비중을 준 듯.[30]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부터인지는 모르나 서주 대학살 즈음에는 이미 본진을 담당하기 시작하였으며(그래서 진궁의 반란을 막아내는 주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장막을 대표로 한 진궁의 반란으로 인해 조조 세력이 크게 위축되자 또 다시 종군하다가 어느정도 세력이 회복된 후 다시 본진관리에 전념한 것으로 보인다.[31] 정사에선 굳이 따지자면 전체적인 세력을 관리하는데 업적이 많다. 초기에 조조를 따라 종군하는 참모 역할은 정욱이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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