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키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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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제1차 포에니 전쟁 시기인 기원전 258년 로마군고대 카르타고군의 해전.


2. 상세[편집]


기원전 258년, 로마 공화국은 하밀카르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테르마에 전투에서 승리한 뒤 시칠리아 중심부의 엔나 시, 시라쿠사 인근의 카마리나 시를 잇따라 공략한 것에 대응하기 위해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카이아티누스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파테르쿨루스에게 군대를 맡겨 시칠리아로 파견했다.

카이아티누스는 하밀카르가 거점으로 삼은 파노르무스에 접근한 뒤 적군을 성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도발했지만 별다른 응답이 없자 히파냐, 미티스트라티온, 엔나를 공격해 모조리 함락시켰다. 특히 기원전 259년 로마군의 공성을 7개월간 버텨냈던 미티스트라티온은 이번에도 처절하게 저항했으나 수비대가 야밤에 빠져나가자 항복했다. 그러나 도시는 로마군에 의해 철저하게 약탈당하고 불태워진 뒤 주민 전원이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팔려나가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이후 카이아티누스는 카마리나로 이동하던 중 매복 공격을 받아 죽을 뻔했지만, 대대장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플라마가 분견대를 이끌고 적의 주의를 산만하게 한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뒤이어 카마리나를 포위한 뒤 시라쿠사에서 보낸 공성 무기 덕분에 공략에 성공했다.

한편, 동료 집정관 파테르쿨루스는 함대를 조직한 뒤 사르데냐 섬으로 항해했다.[1] 그는 사르데냐 섬을 약탈하던 중 한니발 기스코가 이끄는 카르타고 함대가 접근해오자 함대를 이끌고 출격해 맞섰지만 승패를 가리지 못한 채 쌍방간에 손실을 입히고 철수했다. 이후 카르타고군이 술키 항구에 정박한 사이, 로마군은 안개가 짙게 깔린 틈을 타 안개 속으로 진격해 적 함대를 기습했다. 이로 인해 40척의 함대를 속절없이 상실한 한니발 기스코는 본국으로 패주한 뒤 십자가형에 처해졌다.[2]

로마군은 이 승리 덕분에 올비아 요새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르데냐 일대를 복속시켰다. 그러나 올비아에 자리를 잡은 카르타고군이 거세게 저항했기 때문에 올비아 탈환에 실패했다. 이후 로마는 2년간 소규모 접전을 치르다가 기원전 256년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의 주장에 따라 전쟁을 끝내기 위해 아프리카 원정을 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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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설에 따르면, 그는 본래 아프리카를 치려 했으나 바람 때문에 사르데냐로 밀려났다고 한다.[2] 일설에 따르면, 한니발 기스코는 함대를 잃고 육지로 도주한 뒤 그의 무능을 성토한 장병들에 의해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