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포 루이스 코르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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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제54대 대통령
아돌포 토마스 루이스 코르티네스
Adolfo Tomás Ruiz Cort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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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9년 12월 30일
멕시코 베라크루스 주 베라크루스
사망
1973년 12월 3일 (향년 83세)
멕시코 베라크루스 주 베라크루스
재임 기간
제54대 대통령
1952년 12월 1일 ~ 1958년 11월 30일
직업
군인, 회계사, 정치인
종교
가톨릭
국적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정당
경력
베라크루스 주지사
노동복지부 장관
제54대 멕시코 대통령 (1952 - 1958)

1. 개요
2. 생애
3. 정계 입문
4. 베라크루스 주지사
5. 대통령 시절
6. 퇴임 후



1. 개요[편집]


멕시코의 제54대 대통령. 카란사오브레곤 파로 멕시코 혁명에 참전한 마지막 대통령이다.

2. 생애[편집]


1890년 베라크루스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16살 때부터 방직공장에서 회계원으로 일했다.

19살 때 프란시스코 마데로의 책을 읽고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물러나고 마데로가 취임한 직후인 1912년 멕시코시티로 왔다.

하지만 이듬해 마데로 대통령은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장군에게 축출되어 암살당하고 만다. 그때 코르티네스는 우에르타를 인정하지 않고 베누스티아노 카란사의 혁명군에 가담했다.

혁명군 시절 코르티네스는 전투에도 일부 참가하긴 했지만 주요 업무는 회계 업무였다.

3. 정계 입문[편집]


혁명 이후 코르티네스는 사회통계국에서 근무했다. 1926년에는 사회통계국장에 올라 1935년까지 재임했고, 이후 마누엘 아빌라 카마초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4년 후인 1944년 베라크루스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4. 베라크루스 주지사[편집]


베라크루스의 주지사를 역임하던 코르티네스는 조례를 개정해 여성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멕시코의 주요 항구 도시였던 베라크루스에 도로와 다리 같은 기반 시설을 건설했다.

그러다가 1948년 내무장관 헥토르 페레스 마르티네스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자 그 후임으로 임명되면서 주지사직을 내려놓았다.

그 후 1951년 미겔 알레만 발데스의 지명으로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고, 이듬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다.

5. 대통령 시절[편집]


발데스 시기의 부패 스캔들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전 정부들과 달리 긴축 정책을 시행했고, 도덕성을 내세웠다.

공공 지출을 줄이고, 도로, 철도, 댐, 학교 등 근대적 인프라 구축을 지원했다. 또한 고지대에 몰린 인구를 해안 지역으로 분산시키고 해양 자원을 더 유용하게 쓰기 위한 정책도 시행되었다. 이 정책의 결과로 말라리아 환자가 감소했다.

또한 농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토지 분배에 적극적이었고, 이 일환으로 대규모 외국 부동산이 몰수되기도 했다.

가장 기억되는 업적은 바로 여성 참정권이다. 당시 여성 참정권을 제한하던 헌법 제34조를 개정해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였다.

그 외에도 석유화학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고, 당시 부상하던 원자력 기술에도 투자를 하여, 국가 원자력 위원회를 설립했다. 보건 정책에서는 예방접종을 장려하였다.

예산을 아낀 덕인지 정부 예산이 코르티네스 정부에서 흑자를 기록했지만, 민간 투자가 감소하여 인기를 잃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6. 퇴임 후[편집]


1958년 아돌포 로페스 마테오스에게 정권을 넘기고 퇴임했다.

퇴임 후 고향 베라크루스로 돌아가 친구와 동거하며 여생을 보내다 1973년 동맥경화로 인한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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