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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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안갑남.png

1930년 1월 29일, 경성부 서대문경찰서에서 촬영된 사진.
본관
죽산 안씨(신)
출생
1901년[1] 8월 7일
전라남도 보성군 문전면 외우리
(현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우산리 외우마을)[2]
사망
1992년 8월 28일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안갑남은 1901년 8월 7일 전라남도 보성군 문전면 외우리(현 순천시 송광면 우산리 외우마을)에서 모친 김계중(金季中)의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후 상경하여 경기도 경성부 계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에 거주했다. 근화여학교에 입학했다가 1년이 안 되어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했다.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14일, 그녀는 휘문고등보통학교 학생 장홍염,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박선봉, 경성여자상업학교 학생 송계월(宋桂月),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김진현(金鎭賢) 등 경성부내 각 학교 대표 16명과 함께 가회동 송계월의 하숙방에 모여 근우회의 허정숙을 고문으로 삼고 이튿날인 15일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한 동조시위를 전개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15일 오전 9시 30분 정각에 각 학교에서 학생 전부가 만세를 부르며 종로네거리로 나와 숭례문 방면으로 시위행진을 하고, 설령 경찰에 구류되더라도 이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의 성명을 발설하지 않을 것, 경찰서에 송치된 후에는 단식투쟁을 실시할 것 등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담임교사의 엄중한 감시로 만세시위를 실행하지 못했으며#, 같은 달 18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경성부 서대문경찰서에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송치되었다가, 불기소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석방된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이후 1992년 8월 28일 별세하였다.

201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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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0년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1908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2] 죽산 안씨(신)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