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크와 에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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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에리크와 에리크(스웨덴어: Erik och Erik, 생년 미상 ~ 1067년)는 스웨덴의 왕위 경쟁자들이다. 1066년 스텐실 왕이 사망하면서 두 사람이 왕위 경쟁에 나섰지만 모두 사망했다. 스웨덴의 왕위는 스텐실의 아들인 할스텐이 승계받았다.

당대를 기록한 브레멘의 아담에 따르면 에리크와 에리크는 스텐실 왕이 사망한 후인 1066-67년경 스웨덴 왕권을 놓고 경쟁한 두 인물이였다. 그들은 두 에리크의 전쟁을 서로 벌였고 둘다 그때 죽었다. 이렇게 왕족 전체가 완전히 소멸되었을 때, 왕국의 상태가 바뀌었고 스웨덴의 그리스도교가 심하게 혼란스러워졌다. 브레멘의 대주교가 이 땅을 위해 기름 부음을 준 주교들은 박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집에 머물렀다. 오직 스카니아의 주교만이 게이츠 교회를 돌보았고, 스웨덴의 야를 그니프는 오히려 기독교 신앙으로 그의 백성을 단결시켰다.

두 에리크에 대해 더 이상 알려진 것은 없지만 일부 현대 역사가들은 그들 중 한 명은 스텐실의 기독교도인 아들이고 다른 한 명은 이교도라고 추측했다. 따라서 그들은 때때로 에리크 스탠실손과 이교도 에리크라는 이름을 할당받았다. 그러나 그 이름에 대한 근거는 그 시대로부터 입증될 수 없으며 따라서 역사적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브레멘의 아담에 의해서만 언급되고 그 기간에 대한 다른 출처에서 생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레멘의 아담이 자신의 집필 시기(1070년대)에 가까운 인물을 창작했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에리크와 에리크는 자체는 역사적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느 쪽이 에리크 7세이고 에리크 8세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므로 본 문서에서도 기독교도인 에리크 스탠실손과 바이킹 전통 종교를 믿는 이교도 에리크로 서술한다.


2. 에리크 스텐실손[편집]


선왕 스텐실 왕의 여러 아들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 가톨릭교 신자였으므로 같은 가톨릭교를 믿던 영주들과 교황령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지지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교도 에리크와의 왕위경쟁에서 둘다 사망하면서 스텐실의 또다른 아들, 즉 에리크 스텐실손의 형제인 할스텐이 스웨덴 왕위를 승계받았다.


3. 이교도 에리크[편집]


아직 스웨덴의 기독교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였던 만큼 기존의 바이킹 전통 신화를 믿던 에리크이다. 혹자는 이 에리크가 스텐실 왕조 이전 왕조인 아프 문쇠 왕조의 일원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즉, 스텐실의 즉위로 잠깐 밀려났던 이전 왕조의 일원이 스텐실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왕위를 되찾으려 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더욱이 아직 잔존하던 같은 이교도 바이킹 영주들의 지지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4. 두 에리크의 전쟁[편집]


공교롭게도 에리크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왕위 요구자들이 스웨덴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벌인 내전이다. 기독교도인 에리크 스텐실손이든 이교도 에리크이든 둘 다 에리크라는 이름을 썼기에 두 에리크의 전쟁이라고 불린다. 이 전쟁은 단순한 왕위 쟁탈전이 아니라 기독교를 믿는 신왕조와 옛 바이킹 신화를 믿는 구왕조 간의 대립이었다. 즉, 아직 기독교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당시 스웨덴에서 기독교를 믿던 신흥 세력과 기독교를 믿지 않았던 기존 세력 간의 내전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전쟁의 결과 두 에리크 모두 사망했으며 에리크와 에리크가 죽은 후, 스텐실 왕의 아들인 할스텐이 왕위에 올랐다. 비록 두 에리크는 모두 사망했으나 스텐실의 다른 아들인 할스텐이 즉위하였으므로 결과적으로는 사실상 기독교를 믿는 스텐실 왕가의 승리였다고 볼 수 있다.


5. 대중매체에서[편집]


1066년 경을 다루는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에서 나온다. 에리크 스텐실손과 이교도 에리크 둘 모두 플레이 가능하며 난이도가 조금 있겠으나 원래의 역사와 다르게 이교도 에리크가 왕위 경쟁에서 승리하여 바이킹 신화를 유지하는 스웨덴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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