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리크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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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프레드리크 1세는 스웨덴의 국왕이자 헤센카셀의 방백으로, 원래는 국서였는데 아내 울리카 엘레오노라 여왕에게서 양위를 받아 1720년에 왕위에 올랐다.[1] 부인 울리카 엘레오노라도 스웨덴 의회의 지지를 받아 스웨덴 국왕으로 즉위했고, 본인도 외국인 출신이라 의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본국인 헤센카셀은 부친 카를 1세 사후 동생 빌헬름에게 대리 통치시켰다.
2. 여담[편집]
사실 이 사람의 행적보다는 그가 기른 사자가 더 유명하다. 사자를 한 마리 선물받아 키웠었는데,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최초로 사자를 키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후 이 사자가 죽자, 묻어주었다가 마음을 바꾸고 박제를 했을 정도. 하지만 당시 박제사가 사자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2] 사자 목격자들을 통해서 생김새를 듣거나 교회에 있는 부조상의 측면 모습만 보고 복원을 해야 했다. 그 때문에 옆모습은 그나마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묘사되던 "용맹한 사자"의 모습과 흡사하게 묘사했지만, 문제는 앞모습을 우스꽝스런 강아지의 모습으로 복원시키는 바람에[3]
아내 덕분에 국서에서 국왕으로 신분이 상승했음에도 정부를 두었다. 당시 스웨덴 왕실에서는 왕이 결혼 전에 잠깐 시시덕거리는 여인은 있어도 결혼 후에는 애인을 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프레드리크 1세는 마치 영국의 로얄 미스트리스처럼 애인 헤드비그 토브를 궁에 데려다 왕비의 시녀로 만들고 계속 만나며 아이를 셋이나 두었다. 그리고 아내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죽자 헤드비그와 결혼하려고 했지만 헤드비그는 아이를 낳고 사망했다.[6] 프레드리크 1세는 낙담했지만 얼마 안 가 다른 애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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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후 울리카 여왕은 프레드리크 1세의 왕비가 되었다.[2] 게다가 박제사가 왕의 부름을 받고 왕궁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사자가 죽은 지 시간이 많이 지나 사체가 부패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박제사에게 주어진 건 부패한 살을 발라낸 후의 가죽과 뼈 뿐이었다고. 당연히 원래의 모습을 제대로 참고할 수도 없었다.[3] 그런데 사실 앞모습도 유럽 명문가들의 문장에 흔히 그려져 있는 사자 문양과 비교해보면 나름 비슷하다. 2D로 그려져 있는 걸 그대로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모양새가 영락없이 불쾌한 골짜기라서 그렇지(...) 노르만 왕조의 문장과 비교해보자.[4] 당시에 부르는게 값이었던 사자 가죽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버릴 수 없었던 애물단지.[5] 마리에프레드(Mariefred)에 있는 스웨덴 왕실 소유의 성으로, 시기스문드가 이 성에서 태어났다.[6] 헤드비그는 원래 왕의 애인이 되는 걸 거부했지만 아버지를 위시한 주변 사람들이 가문의 영광을 위해 왕의 정부가 되도록 종용했다. 이 불쌍한 여인은 죽기 전 자신이 왕의 애인이 되도록 부추긴 사람들을 저주하고, 불륜이라는 죄를 지어 지옥에 갈까봐 두려워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