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다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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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젠다리움의 등장인물
엘다카르
Eldacar


파일:엘다카르.jpg

본명
Vinitharya
비닛하랴
Eldacar
엘다카르
성별
남성
종족
인간 (두네다인)
출생
T.A. 1255
거주지
로바니온곤도르(오스길리아스)로바니온곤도르
가문/왕조
House of Elendil
엘렌딜 왕조
Anárioni
아나리온 왕조[1]
직책
King of Gondor
곤도르의 왕
재위기간
T.A. 1432 - 1437 (친족분쟁 이전)
T.A. 1447 - 1490 (곤도르 탈환 이후)
가족관계
발라카르 (아버지)
비두마비 (어머니)
오르넨딜 (아들)
알다미르 (아들)

1. 개요
2. 이름
3. 작중행적
4. 이후



1. 개요[편집]


레젠다리움의 등장인물. 곤도르의 제 21대 국왕이다.


2. 이름[편집]


  • 비닛하랴(Vinitharya)[R] - 정확한 뜻은 불명이지만 로멘다킬, 즉 '동부의 승리자(East-Victor)'와 거의 같은 의미라고 한다.

  • 엘다카르(Eldacar)[Q] - '요정의 투구(Elf-Helm)'라는 뜻이다. elda[2] + -car[3]


3. 작중행적[편집]


제3시대 1255년, 로바니온에서 발라카르비두마비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릴 적 이름은 로바니온의 언어로 된 비닛하랴였다. 그는 곤도르 건국된 이래로 국외에서 태어난 첫 왕이었다.[4]뿐만 아니라 그는 순수한 두네다인이 아닌 혼혈이었고, 이것은 후술할 친족분쟁의 원인이 되어 재위 기간 내내 그를 괴롭혔다.


3.1. 친족분쟁[편집]


곤도르의 첫 번째 시련

1432년에 부왕 발라카르가 서거하자 왕세자인 그가 즉위했지만, 열등하다고 여겼던 북부인과의 혼혈인 그가 왕위에 오르자 전국에서 반대파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특히 작은할아버지 칼리메흐타르의 손자인 6촌 동생 해군 사령관 카스타미르가 이끄는 반란군의 세가 가장 강하였고, 나머지 반군도 그들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엘다카르를 꺾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는데, 그에게는 위대한 누메노르인의 피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모르는 북부인의 기백도 있었던 것이다. 결국 반군이 반란 시작 후, 수도인 오스길리아스를 포위하는데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5]

하지만 엘다카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437년에 반군은 수도 오스길리아스를 포위하였고, 치열한 전투 끝에 오스길리아스는 함락되었다[6]. 엘다카르는 차남 알다미르와 함께 간신히 수도를 탈출하였지만 장남 오르넨딜은 반군에게 붙잡혀 처형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카스타미르는 전쟁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약탈과 학살을 필요 이상으로 자행하였고 이로 인해 이실리엔아노리엔지역의 백성들의 인심이 카스타미르에게서 떠났다.

이후 곤도르를 떠나 외가인 로바니온으로 망명한 엘다카르는 북부인과 부근의 두네다인을 모아 반격을 준비하였다. 그동안 카스타미르는 수도를 자신의 본거지인 펠라르기르로 옮기려하다가 수도권 백성들의 인심을 잃게 되었다.

1447년, 엘다카르가 군사를 이끌고 카스타미르를 응징하러 오니, 이실리엔아노리엔, 칼레나르돈도 이에 호응하였다. 마침내 에루이 여울목에서 엘다카르와 카스타미르의 큰 전투가 벌어졌고, 이를 에루이 여울목 전투(Battle of the Crossings of Erui)라 한다. 결국 엘다카르가 카스타미르를 죽이고 승리, 왕권을 회복하였다. 카스타미르의 아들은 펠라르기르로 달아나고, 엘다카르는 펠라르기르를 포위하였으나 제해권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반군은 바다를 통해 움바르로 달아나 그 곳에서 분조를 세우고 곤도르와 대립하게 되었다.


4. 이후[편집]


친족분쟁의 결과 곤도르움바르를 다시 빼앗김으로써 남쪽영토를 많이 상실하고, 다시 해적과 하라드림의 위협을 받게 됐을 뿐만 아니라, 과거 아르파라존사우론을 사로잡은 상징적인 지역을 잃었다는 점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7].

친족분쟁으로 곤도르의 인구도 많이 감소했지만, 엘다카르와 함께 온 북부인들이 곤도르에 많이 머물면서 어느 정도 보충이 되었고 누메노르와 북부인의 피는 점점 섞이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누메노르인의 지혜와 수명이 북부인의 피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누메노르인의 권능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고, 이는 축복의 땅이었던 옛 누메노르를 잃은 누메노르인에게서 발라의 축복이 서서히 떠나갔기 때문이었다.[8]

곤도르의 국력은 친족분쟁과 대역병을 거치면서 반지의 제왕 시점의 쇠퇴한 모습까지 이어진다.

엘다카르는 1490년에 235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왕위는 아들 알다미르가 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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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렌딜 왕조의 분가이자 곤도르 왕가.[R] 로한어/북부어[Q] 퀘냐[2] Elf/Star-Folk(요정/별의 민족). 'Star(별)'을 의미하는 원시 요정어 어근 EL, 또는 'Star-Folk(별의 민족)'을 의미하는 원시 요정어 어근 ELED에서 파생된 중기 원시 요정어 단어 eledā에서 비롯됐다.[3] Helmet(투구). 'Head(머리)'를 의미하는 원시 요정어 어근 KAS에서 파생된 kasma에서 비롯된 carma의 접미사 형태이다.[4] 엘렌딜, 이실두르, 아나리온, 메넬딜누메노르에서 태어났지만, 이들이 태어난 시기는 곤도르가 건국되기 이전이다.[5] 반지의 제왕에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지만, 엘다카르가 비록 부족한 정통성을 가졌으나 인품이나 지도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반군에 맞설 정도의 세력을 모을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6] 이때 오스길리아스의 팔란티르안두인 대하에 빠져 소실되었는데 이 돌은 다른 팔란티르를 도청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곤도르 측에서는 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끝내 찾지 못하였다.[7] 나중에 텔루메흐타르가 되찾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잃어버린다.[8] 누메노르의 망명왕국인 아르노르곤도르의 왕들의 수명이 대를 이을수록 점차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