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이스라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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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2.2. 21세기
2.2.1. 2000년대
2.2.2. 2010년대
2.2.3. 2020년대
3. 문화 교류
4. 대사관과 교통 교류
5.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이라크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이라크와 이스라엘은 중동전쟁 당시 전쟁을 치루었던 사이이며 걸프전쟁 때에도 간접적으로 대립 관계였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20세기[편집]


1930년 영국은 이란에서 모술을 거쳐 하이파로 통하는 송유관을 건설한 바 있었다.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시절 유대인 무장조직이었던 이르군(Irgun)은 1941년 영국의 이라크 침공에 참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독립 전쟁(제1차 중동전쟁) 당시 이라크 왕국은 이스라엘을 합법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아랍 연합국 측으로 참전하였던 바 있으며, 이 외에도 이라크는 제3차 중동전쟁제4차 중동전쟁 당시 참전하였던 바 있다.

이스라엘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바트당 정권을 자국 안보의 주적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1981년 당시에는 이스라엘에서 이라크의 핵무장을 저지하기 위해 오시라크 원자로 공습을 실시했던 바 있다.#


2.2. 21세기[편집]



2.2.1. 2000년대[편집]


2000년 10월 12일,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및 제2차 인티파다 시기 때 앞장서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

2000년 10월 18일, 이라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중 하나인 인민해방전선을 지원하기도 했었다. #

2000년 10월 21일과 22일, 이라크는 이스라엘과의 성전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

22일, 이라크 정예부대는 요르단-이스라엘 국경 일대에 이동을 했다. #

2.2.2. 2010년대[편집]


2017년 12월, 미스 이라크에 참여한 이라크인인 사라 이단이 이스라엘 여성 모델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협박을 받기도 했다. #


2.2.3. 2020년대[편집]


2023년 10월 18일, 19일에 이라크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및 반이스라엘 시위가 일어났다. 동시에 반미 시위가 나타나기도 했다. #, #


3. 문화 교류[편집]


바빌론 유수 이후 이라크 일대는 고대 이래 유대교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맡아왔다. 탈무드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라와 품베디타의 예시바에서 만들고 다듬어진 것이다. 그러나 몽골 제국의 바그다드 침공과 약탈 이후 이라크 일대의 도회지들이 황폐화되는 과정에서 이라크의 유대인 공동체는 심각할 정도로 약화되었다.[1]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 일대를 중심으로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공동체들이 일부 잔류하기도 했으나, 이들은 대개 제1차 중동전쟁 전후하여 대부분 고향을 버리고 이스라엘로 이주하게 되었다.


4. 대사관과 교통 교류[편집]


두 나라는 현재 갈등이 심각하고, 이라크는 팔레스타인만 인정하다보니 두 나라를 잇는 항공 노선과 대사관들은 현재 없는 편이다.


5. 기타[편집]


2000년 5월 28일, 성폭력 문제로 물러난 이츠하크 모라데차이 이스라엘 부총리는 이라크 출신의 유대인이었다. #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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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완전히 사멸한 것은 아니다. 이라크 남부의 도회지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영국령 인도 제국 등으로 이주하여 부를 축적하기도 했는데, 이들 중 영국의 유대계 재벌로 성장한 서순 가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