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열(야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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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유신고 이성열 감독님.jpg

이성열
LEE SUNGYUL

생년월일
1955년 2월 27일 (69세)
출신지
경상북도 대구시 서부출장소
(現 대구광역시 서구)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학력
대구달성초 - 경상중 - 배문고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1]
소속팀
한국전력 야구단 (1974)
지도자
이문초등학교 야구부 감독 (1979~1983)
덕수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1984~1987)
진흥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1988~1992)
유신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1995~2022)
-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6~2017, 2019)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우승경력
5.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야구감독. 1995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27년 동안 유신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역임한 인물로 유명하다.


2. 선수 경력[편집]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대구달성초등학교와 경상중학교를 거쳐 서울 배문고등학교로 유학을 왔다.[2] 포지션은 포수였으며 고등학교 시절 그를 지도한 은사는 배문고 9년 선배이자 지금도 이성열 감독이 멘토로 삼는 김인식 감독이었다.

배문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 입단했지만, 군복무를 마친 후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두고 건설사에 취직해 아예 야구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지냈다. 본인에 의하면 건설사에서 현장소장까지 해봤으며 당시 한창 유행이었던 중동 건설현장 진출 붐에 힘입어 쿠웨이트로 나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3. 지도자 경력[편집]


1979년 서울 이문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은 것으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1984년 덕수상고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덕수상고 부임 당시 창단 직후라 1985년 1무 16패를 기록할 정도로 전력이 처참했는데 선수들을 맹조련하여 1986년 덕수상고의 청룡기 제패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 즈음 덕수상고에 부임한 신임 교장과 갈등을 빚었고, 나중에는 라인업 짜는 것부터 해서 야구부 운영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등 월권 행위를 저지르자 결국 교장과 갈등 끝에 사임했다.

이후 1988년부터 진흥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1992년까지 재임했다. 이 시절 있었던 진흥고의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이대진이다. 1993~94년에는 대한야구협회 심판으로 일했다. 원래는 포철공고의 감독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이 즈음 찾아온 건강 악화로 인해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으면서 야인으로 지낸 것.

1995년부터 유신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하여 무려 27년 동안 감독으로 재임했고, 감독 재임 시절 전국대회 3회 우승을 이끌었다. 그의 지도력을 높이 산 타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유신고와의 신의를 져버릴 수 없어 지금까지 잔류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시절 키워낸 선수는 유한준, 최정, 배영섭, 정수빈, 최항, 소형준, 김주원, 박영현 등이 있다.

하지만 U-18 대표팀 감독 시절 곽빈을 혹사시킨 일로 인해 두산 베어스 팬들에게는 평가가 나쁘다.

2019년 황금사자기청룡기를 차례대로 제패하며 고교야구 우승 그랜드슬램[3]를 눈 앞에 두고 있었으나 대통령배 준결승전에서 충암고에 2-3으로 아쉽게 패하며 그랜드슬램은 다음 해로 미루게 됐다.[4]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동메달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지만 투수 혹사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또한 청소년 야구대표팀 감독 선임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5]

그러나 2022년 6월 학생을 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결국 자진사퇴하면서 감독 생활을 좋지 못하게 마무리하게 됐다.기사


4. 우승경력[편집]


1986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2005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201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201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5. 여담[편집]


  • 프로야구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유신고에서는 유한준, 최정, 배장호, 정수빈, 김민, 소형준, 허윤동, 김주원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지금도 스승의 날이나 생일에 제자들이 선물을 챙겨준다고 한다. "아직 멀었다", "건방떨지 말라" 고 말은 하지만 제자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 최재호 강릉고 감독의 배문고등학교 야구부 선배로 평소에도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두 사람 모두 김인식 감독을 은사로 모셨다. 이성열 감독은 "만약 김인식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뒷골목에서 주먹질이나 했을 것"이라 술회했다. 2004년 김인식 감독이 뇌줄중으로 쓰러져 병상에 누워 있을 때도 간호했던 사람도 이성열 감독이었다.관련기사

  • “제1의 고향은 대구, 제2의 고향은 광주, 제3의 고향은 서울 구의동”이라고 말한다. 광주가 제2의 고향인 이유는 진흥고 감독을 역임했기 때문에[6], 구의동이 제3의 고향인 이유는 구의동에서만 30년 넘게 살아서다.

  • 2023년 11월 9일에 모친상을 당했다. 향년 98세로 상당히 장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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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구할 때 오른손으로 공을 던졌다.[2] 당시 집안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배문고 측이 진학 조건으로 숙식 및 생활비를 모두 지원해 준다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3] 대통령배, 황금사자기, 청룡기, 봉황대기[4] 2019년에는 고교야구 일정의 과밀화로 전국대회 및 전국체육대회 지역예선까지 연달아 지도하고 휴식기 없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감독까지 맡아 과로가 걱정될 정도였다.[5] 후배 감독들에게 이제는 기회를 나눠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6] 객지 생활을 홀로 했고 사람과 술을 좋아해서 이 시기에 건강을 해쳤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