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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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호
증약(曾若) / 순초(筍樵)
본관
풍천 임씨[1]
출생
1851년 11월 13일
충청도 청풍도호부 원남면 괴곡리
(現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사망
1907년 7월 7일[2] (향년 55세)
경상북도 풍기군 죽령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1851년 11월 13일 충청도 청풍도호부 원남면 괴곡리(現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서 아버지 임백간(任百幹, 1811 ~ 1868. 1. 25)과 어머니 평창 이씨 사이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896년 을미의병 당시 유인석의 제천의진(堤川義陣)에 입대한 뒤 참모장(參謀將)에 선임되었다. 이후 충주부 충주군·단양군·원주군, 강원도 영월군, 안동부 안동군·문경군 등지에서 크게 활약했다. 같은 해 제천의진이 해산되고 의병장 유인석과 그 부대원들이 청나라로 망명하자, 1907년 제천군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 의진에 입대해 좌종사(坐從事)에 선임되었다. 이후 충청북도 충주군·단양군·제천군·연풍군·청풍군, 강원도 원주군·영월군·횡성군·강릉군, 경상북도 문경군·안동군·예천군·영주군·봉화군 등 3도 14군을 휩쓸며 적과 대적했다.

특히 1907년 7월 5일의 제천군 전투에서 500여 명의 적을 토벌해 사기가 하늘을 찔렀고, 같은 해 9월 16일 제천군 추치에서 대전하여 적 200여 명을 사로잡았다. 같은 해 9월 27일 죽령에서 다시 적 200명을 생포하는 등 전과를 올렸으나, 불행히도 죽령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에 전사, 순국하였다.

2001년 8월 15일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유해는 2012년 9월 8일 제천시 수산면 수산리 야산에 이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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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사공파(牧使公派) 25세 준(準) 항렬.[2] 풍천임씨세보 제2권 447쪽에는 10월 8일 순국한 것으로 등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