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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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求中
1918년 10월 24일 ~ 1999년 5월 3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연일(延日)[1], 자는 공명(公明), 초명은 정구창(鄭求昌).

제10대 국회의원을 지낸 설인수와는 사돈지간으로, 장남 정우영(鄭宇永)이 설인수의 딸과 혼인하였다.


2. 생애[편집]


1918년 10월 24일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아버지 정학수(鄭鶴洙)[2]와 어머니 창원 황씨(昌原 黃氏) 황종표(黃宗杓)의 딸 사이의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3]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일본제국 내무성의 관리국에서 근무하였다.

귀국 이후 대한건설업협회 사무국장을 지냈고 국정교과서주식회사 사장을 지냈으며 1971년 당시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충북 영동군 선거구에 출마했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민주공화당 충북제6지구당의 위원장도 지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출마를 포기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충북 보은-옥천-영동 선거구로 출마를 시도했지만 현직 국회의원이던 육인수[4]에게 밀려 공천탈락 되었다.

이후 1999년 5월 3일 미국 하와이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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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정공파-이의공파 28세 구(求) 항렬.[2] 초명 정학수(鄭學洙).[3] 어머니 창원 황씨는 아버지의 둘째 부인으로 첫째 부인인 경주 김씨 김재구(金載久)의 딸은 자식을 낳지 못하고 1909년 요절하여 새로 맞아들인 것이다.[4]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친오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