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대 말레이시아 총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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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13년 5월 5일 말레이시아에서 총선거가 열렸다. 총선거라는 말답게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였으나, 사라왁을 제외한 전국에서 지방선거 또한 동시에 치러졌다.

총선 결과 여권연합인 국민전선(BN)이 승리하여, 나집 라작 총리는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였다.


2. 선거 전[편집]


지난 2008년 총선에서 야권 연합인 인민동맹(PR)이 돌풍을 일으키며, 그동안 원내 ⅔ 이상은 차지하여 단독으로 개헌선 이상을 차지하던 국민전선(BN)이 개헌선 밖으로 밀려나면서 BN으로서는 비상이 걸렸다.

야권의 이러한 돌풍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대표적인 이유를 꼽자면 다음을 들 수 있다. 우선 한때는 여권의 수뇌부였다가 쫓겨나면서 반정부 인사로 탈바꿈한 안와르 이브라힘의 복권 시기가 다가왔고, 민주행동당(DAP)과 인민정의당(PKR)은 이를 노려 정권 교체를 목표로 연대하여 이른바 인민동맹(PR)이라는 연합을 결성했다. 당시 BN, 그 중에서도 집권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은 무려 50년이라는 장기집권 중이었으며, 이에 대한 중국인인도인 유권자들의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말레이인을 편애했던 이들로서는 그만큼 말레이인 편애를 반대하는 PR로 서서히 표심이 옮겨갈 수밖에.

물론 그들의 포퓰리스트적인 면모에도 비말레이인들의 표심이 그쪽으로 이동한 이유는 다름아닌 야권의 위장전략이었다. 야당은 BN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을 "민주화 세력"으로 자처하면서 BN 정권에 반대하던 사람들의 표심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당연하겠지만 저들은 진짜 민주화 세력이 아니다. 허나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강했기 때문에, 정권 교체를 갈망하려는 차원에서라도 야권에 표를 몰아준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인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도 이 기회를 노려 PR에 가담했다. 덕택에 야권은 단일화를 이루었고, 이를 바탕으로 단독으로 개헌저지선을 차지하면서 급격한 돌풍을 일으키게 된다. 덕분에 BN은 비상이 걸렸고, 이어 반정부 단체인 버르시가 지속적으로 시위를 벌이면서 BN으로서는 정권 연장에 발목이 잡혔다.


3. 전개[편집]


날이 갈수록 PR의 압승이 유력해졌고, 드디어 총선을 치러야만 하는 2013년이 오면서 BN으로서는 휴식을 취할 상황도 아니게 되었다. 원래 총선은 6월 27일까지 치러져야 했으며, 4월 28일까지는 국회 해산을 해야만 했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늦어도 3월에 치를 가능성을 제기하였으나, 나집 총리는 4월 3일 국회 해산과 동시에 5월 5일을 총선일로 잡았다.

지방 의회의 경우, 3월 28일 느그리슴빌란 주가 먼저 지방의회를 해산했다. 4월 3일 국회 해산과 동시에 믈라카, 페락, 사바 주가 지방의회를 해산했고, 4일에는 클란탄, 파항, 슬랑오르, 트릉가누, 5일에는 조호르, 크다, 풀라우피낭, 퍼를리스가 추가적인 지방의회 해산을 마쳤다.

사라왁은 지난 2011년 지방선거를 치른 관계로, 이번에는 지방선거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1]


4. 선거 운동[편집]



5. 결과[편집]



두 연대만이 전 의석을 차지하였는데, 이로서 미국처럼 양당제와 비슷한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 나머지 군소정당들이나 무소속은 단 한 명도 당선되지 않았다.

득표율에서는 인민동맹이 50.87%를 득표하며 47.38%을 득표한 국민전선에 앞섰으나, 선거구가 여당에게 유리하게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국민전선이 전체 의석의 60%인 133석을 차지했고, 인민동맹이 차지한 의석은 89석에 불과했다.

6. 부정선거?[편집]


야권에서는 이번 선거가 "사상 최악의 부정선거"였다며 대투쟁을 선포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탄핵 집회처럼 대놓고 민중봉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대신에 지속적인 반발을 했다.

야권 일각에서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들을 모아보자면, 투표권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2]에게 "여당연합에 표를 던지면 주민등록증을 주겠다"는 식으로 유인해 강제로 투표를 강요하게 했다니, 지워지지 않는 잉크[3]라면서 쉽게 지워진다니 등이었다. 또 추가적으로 제기된 의혹은 개표 과정에서 정전사태가 발생했는데, 전기가 돌아왔더니 개표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하자면 이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100% 사실인지도 알아낼 수 없다.

물론 말레이시아의 선거제도 자체가 다소 여당에게 유리하게 짜여있는 것은 사실이다. 선거구도 게리맨더링이라고 하여 여당에 유리하게 짜여있는 편이며, 말레이시아의 사회 등을 감안할 때도 여당의 승리를 위해서 선거공작이 일어날 만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말레이시아가 3.15마냥 대놓고 일을 낼 나라는 아니며, 게리맨더링은 대한민국은 물론 심지어는 미국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7. 이후[편집]


비록 BN이 승리하면서 정권을 연장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는 PR의 지지율이 BN보다 살짝 더 높은 편이어서 BN 입장에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나집 총리는 다음 날 압둘 할림 국왕 앞에서 선서를 하고 총리 제2기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야권은 지속적으로 반발했고, 후에 나집의 지지율이 서서히 하락하는 등 다소 혼란이 빚어졌으며 버르시의 대규모 집회 등 BN은 혼란기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2016년 사라왁 지방선거에서 BN이 압승하면서 아직 여력이 있음을 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편 포퓰리스트 세력의 급부상으로 말레이시아는 전반적인 제노포비아적 분위기가 돌기 시작했다. DAP가 집권한 풀라우피낭에서는 바로 이듬해인 2014년, 외국인 요리 금지법를 통과시키는 만행을 저질렀고, 근래에도 반외국인 악법들을 추진하면서 서서히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말레이시아 또한 유럽이나 미주대륙의 포퓰리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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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사라왁은 유일하게 지방선거를 따로 치른다.[2] 말레이시아는 외국인참정권을 부여하지 않는다.[3] 새끼손가락에 찍는 것으로, 투표 후 중복투표를 막기 위한 조치이다. 대한민국은 시행하지 않아서 잘 모를 수도 있는데,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