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덤프버전 :




1. 개요
2. 법적근거
3. 연혁
4. 참고문헌



1. 개요[편집]


조선로동당 초기에 존재했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산하의 중요 기구.

창립 당시에는 정치국과 비서국이 혼합된 위치였으며, 1956년부터 1961년 폐지 시점까지는 오늘날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2. 법적근거[편집]


북조선로동당 당규약(1946.8)
제3장 당의 조직체와 그의 의무
제1항 중앙조직
제14조 중앙위원회는 회의와 회의 간에 당사업을 지도하며 집행하기 위하여 위원 중에서 11~13명을 선거하여 중앙상무위원회를 구성함.

북조선로동당 당규약(1948.3)
제3장 당의 조직체와 그의 의무
제1항 중앙조직
제14조 중앙위원회는 회의와 회의 간에 일반적 당사업을 지도하며 집행하기 위하여 위원 중에서 중앙상무위원회를 선거함.

조선로동당 당규약(1956.4)
제5장 당 중앙 기관
제35조 당중앙위원회는 전원회의와 전원회의 사이에 당중앙위원회의 사업을 지도하기 위하여 상무위원회를 조직하며, 당의 결정 집행 검열의 조직과 간부 선발 배치에 대한 당면 사업들을 집행하기 위하여 조직위원회를 구성한다.
당중앙위원회 위원장들과 부위원장들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거한다.

3. 연혁[편집]


1946년 8월, 1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간의 사업을 지도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이는 훗날 정치국이 물려받게 되는 업무인데, 이 시기까지만 해도 동유럽과 소련에서도 당대회-중앙위원회-정치국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오늘날의 정치국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는 '일상적 정치지도'를 위하여 설치되었다. 1기 상무위원으로 김두봉, 김일성, 주녕하, 허가이, 김책, 최창익, 태성수, 김교영, 박일우, 김창만, 박정애, 박효삼, 오기섭 13인이 선거되었다.

1948년 3월, 2차 당대회에서 당사업이 일반적 당사업이란 문구로 수정되었고, 정원 규정도 사라졌다. 2차 당대회에서는 김두봉, 김일성, 주녕하, 허가이, 김책, 최창익, 박일우, 박정애, 박창옥, 김일, 김재욱, 진반수, 기석복, 정준택, 정일룡 15명이 선거되었다. 1948년 9월, 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회의에서 상무위원회 규모를 17명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하면서 김열, 박영성이 상무위원으로 보선되었으며 따로 조직위원회가 설치되어 '당중앙의 일상적인 사업을 조직지도' 하기로 하였다. 조직위원들은 상무위원들 중에서 선거되어야 했으며, 허가이, 김일성, 김열, 박창옥, 박영성 5명을 선거하고 허가이를 조직위원장으로 선출했다.

1949년 6월, 남로당과 북로당이 합당하여 조선로동당이 되면서 상무위원회는 일시적으로 폐지되어 조직위원회 산하로 흡수되었다. 그러다가 1953년 8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에서 상무위원회가 부활하면서 김일성, 김두봉, 박정애, 박창옥, 김일, 박영빈, 최원택, 최창익, 정일룡, 김황일, 강문석, 김승화, 김광협, 박금철, 남일 15인을 선거하였다.

1956년 4월, 3차 당대회에서는 기존의 정치위원회를 흡수하여 오늘날의 정치국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1952년 10월, 소련 공산당이 정치국을 간부회로 확대개편한 것과도 외견상 유사해보인다. 그러다가 1961년 9월, 4차 당대회에서 정치위원회로 개편되면서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4. 참고문헌[편집]


  • 서동만,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서울: 도서출판선인, 2005).
  • 조선대백과사전.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7 02:09:55에 나무위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