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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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 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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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계열은 원리주의적 강경파, 노란 계열은 탈이념적 정파, 푸른 계열은 개량주의적 온건파
조선의 붕당
(관학파 · 훈구파 · 사림파 · 동인 · 서인 · 남인 · 북인 · 소론 · 노론 · 개화당 · 수구파 · 정동파 · 위정척사파 · 급진개화파 · 온건개화파)







1. 개요[편집]


경종 즉위 후 형성된 중립파로 형성되었으나, 진정한 강경파가 사리지고 난 후 상대적 강경파로 취급되었다.


2. 상세[편집]


경종조 주류 세력 소론 내에서는 노론의 처벌과 남인의 등용 문제를 둘러싼 견해차로 인해 완소(緩少)와 급소(急少), 준소(峻少) 등으로 나뉘었다. 완소는 적대관계였던 영조탕평책에 적극 동조하는 지지파로 입장을 바꾼 것과 달리 준소는 영조조에도 여전히 경종과 관련된 소론의 원래 의리를 지키며 활동하였다.

숙종조 초 서인 내에서 산당, 한당, 원당낙당이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정리되었다. 이후 경종 1년인 1721년과 2년 1722년에 있었던 신임옥사(辛壬獄事)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처리를 두고 소론 내에서 내분이 생겼다. 이는 적대 관계이자 상대당인 노론의 처벌을 둘러싼 입장차에서 비롯되었다. 즉 노론 자체에 대해 강경파 스탠스를 유지하는 급소(急少)로, 처벌 대상을 노론 주모자로 한정하자는 주장과 함께 급소의 맹주인 김일경(金一鏡)에 대해 비판적인 인사들이 완소로 구분된다. 그리고 이들 대결 구도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던 세력들이 준소라 분류되었다.

준소는 이후 남인 인사 중 한 명인 심단(沈端)의 등용을 둘러싸고 급소와 대립하며 완소와 뜻을 같이하였다. 즉 완소 측에서 심단에 대해 늙고 쓸모없다며 그의 등용을 반대하자, 준소는 이에 동조하였다.

소론 내 세력 가운데 급소는 경종조 신임옥사 이후부터 영조 즉위 바로 직후까지 국정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영조조 초반 노론의 진출이 본격화되며 진출이 차단되고 사실상 사라졌다. 반면 중도 스탠스를 취한 완소와 준소는 정치에 참여하였다. 완소는 영조조 탕평 형성의 핵심 세력 역할을 하였으나, 준소는 여전히 소론의 정치 의리를 지키며 소론의 한 분파로 존재하였다.

이렇듯 원 신념을 지키며 상대적 강경파에서 진짜 강경파로 바뀔 무렵, 이인좌의 난이 터지며 사실상 사라지고, 일부 유림과 유생은 완소로 전향했다.


3. 주요 인물[편집]


  • 이광좌 ?[1]
  • 심수현 [2]
  • 조태구(趙泰耈)
  • 최석항(崔錫恒)
  • 이태좌(李台佐)
  • ·조태억(趙泰億)
  • 김상성(金尙星)
  • 이종백(李宗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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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완소 계열이나 사실상 모든 소론을 대표했기에 기재.[2] 강화학파의 핵심인물로 아들 대사헌 심육(沈錥)도 소론 산림으로 강화학파의 핵심인물이었고, 외손자 대제학 홍양호(洪良浩)도 강화학파의 핵심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