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석(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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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석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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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 등번호 13번
이경수
(1982)

최홍석
(1983)


권두조
(1984~1988)
삼미 슈퍼스타즈 등번호 18번
김호인
(1982~1983)

최홍석
(1984~1984.7.1.)


김유동
(1984.7.2.~1984)
삼미 슈퍼스타즈 등번호 51번
결번

최홍석
(1984.7.2.~1984)


신완근
(1988)
{{{#ffff00 [[MBC 청룡|MBC 청룡]] 등번호 5번}}}
이종도
(1982~1984)

최홍석
(1985~1988)


김경표
(198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2번
장길영
(1990)

최홍석
(1991)


김정민
(1992~1995)



최홍석
崔洪錫
출생
1960년 3월 28일 (64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신일고 - 고려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3년 1차 지명 (MBC)[1]
소속팀
삼미 슈퍼스타즈 (1983~1984)
MBC 청룡 (1985~1988)
삼성 라이온즈 (1991)
지도자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타격코치


1. 개요
2. 선수 경력
3. 은퇴 이후
4. 기타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전 삼미 슈퍼스타즈, MBC 청룡,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하던 야구선수. 아마야구 시절에는 우승팀에서 활약하였으나 프로 입문 후에는 그저 그런 성적을 거두었다.


2. 선수 경력[편집]


신일고 야구부 창단과 함께 입단하였다. 신일고는 창단하자마자 박종훈, 양승호, 김정수 같은 전력을 수급하여 1976, 1978년 황금사자기 대회에 우승하였고 최홍석도 이 전력 중 하나였다. 고려대 입단 이후에도 양상문-김호근 배터리와 김근석 등의 전력과 함께 1982년 대통령기 우승을 경험하였다.

1983년 MBC 청룡에 1차 지명을 받았으나 전력이 허약했던 삼미에게 MBC가 지명권을 양도하였다.[2]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시범경기 타격 1위를 마크해 삼미의 주전 외야수 자리를 꿰차며 59경기 0.252의 타율을 기록, 프로 첫 시즌에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984 시즌에는 전년도에 부진했던 베테랑 외야 자원인 김우근, 정구왕이 부활하자 41경기 출전에 그치며 외야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는 모양새를 보였고 결국 1984 시즌이 끝난 뒤 MBC 청룡의 김바위를 상대로 1:1 트레이드되어 MBC로 이적하였다.

MBC 외야진은 연봉 협상에서 마찰이 있었던 이해창과 30대 중반의 나이였던 이종도가 빠지며 공백이 생겼던 상황에서 새로 합류한 최홍석의 활약을 기대했다. 하지만 3루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이광은과 1985년에 입단한 신인 박흥식, 윤덕규가 활약하면서 청룡의 물방망이 타선 문제를 해결하며 외야 주전 자리를 꿰찼고 수비력이 약하다는 평을 받은 최홍석은 주전으로 받돋움하지 못하고 대타 자원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최홍석은 1986 시즌 79경기 타율 0.296, 1987 시즌 67경기 타율 0.281을 기록하며 백업으로도 괜찮은 활약을 했지만 1988 시즌 타율 0.132의 최악의 성적을 내고 만다. 결국 88 시즌 이후 최홍석은 MBC 청룡에서 방출된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계속 야구에 도전하였고 1991년 김성근이 감독으로 있던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하며 한국 프로야구에 복귀한다. 하지만 1991 시즌 5경기 무안타에 그치는 등 별 활약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시즌 후 은퇴하였다.


3. 은퇴 이후[편집]


모교 신일고에서 타격코치를 하는 등 고교 야구 지도자로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이민, 2009년 PGA 시니어 투어 멤버에 도전하여 골프선수의 길을 걸었다. 현재도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는 모양.
최태원 선수의 일화인데, 최홍석이 신일고에서 있던 시절 경희대 강병철 감독의 부탁으로 경희대 야구부 학생들을 잠시 봐줬는데, 4학년이던 최태원이 그 때 어퍼스윙을 배워서 타격에 도움이 많이됐다는 증언이 있다. 4학년 때 대학리그 홈런 17개, 타율왕.

4. 기타[편집]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우승의 꿈을 좌절시킨 김진영 감독 구속사건 당시 적시타를 쳤던 타자였다. 자세한 사항은 김진영 항목을 참조.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타자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83
삼미
59
163
.252
41
5
0
3
11
17
1
13
25
.307
.337
.644
1984
41
72
.208
15
1
0
1
9
2
0
7
15
.275
.264
.539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85
MBC
37
76
.145
11
3
0
2
7
2
0
6
17
.205
.263
.468
1986
79
142
.296
42
7
0
2
19
13
1
7
21
.327
.387
.714
1987
67
114
.281
32
4
0
0
14
6
1
9
12
.331
.316
.646
1988
23
38
.132
5
2
0
0
2
2
0
6
6
.250
.184
.434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91
삼성
5
6
.000
0
0
0
0
0
0
0
1
1
.143
.000
.143
KBO 통산
(7시즌)
311
611
.239
146
22
0
8
62
42
3
49
97
.294
.314
.608

6. 관련 문서[편집]


[1] 지명권 양도로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헸다.[2] 이렇게 지명권 양도로 삼미에 입단한 선수는 정구선, 이선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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