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실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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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가이 실크우드
Karen Gay Silkwood

파일:카렌 실크우드.png
출생
1946년 2월 19일
텍사스주 롱뷰
사망
1974년 11월 13일(향년 28세)
미국 오클라호마 주 74번 국도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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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분야
화학

1. 개요
2. 생애
3. 연합 활동
4. 죽음
5. 사후 소송
6. 미디어에서



1. 개요[편집]


카렌 실크우드(1946년 2월 19일 - 1974년 11월 13일)는 미국화학 기술자이자 원자력 시설의 위험성을 알린 노동 조합 운동가이다.

2. 생애[편집]


카렌 가이 실크우드(Karen Gay Silkwood)는 텍사스주 롱뷰에서 태어나 텍사스 주 네덜란드에서 자랐다. 실크우드에게는 린다와 로즈메리라는 두 자매가 있었다. 그녀는 텍사스 주 보몬트 에 있는 라마 대학교(Lamar University)에 다녔고 1965년에 송유관 노동자인 윌리엄 메도우즈(William Meadows)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으나 메도우즈의 과도한 지출로 인해 1972년 부부는 파산하고 이혼했으며 실크우드는 오클라호마 시티로 이사하여 잠시 병원 직원으로 일했고 이후 커-맥기 시말론(Kerr-McGee Cimarron) 연료 제조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3. 연합 활동[편집]


그녀는 1972년 오클라호마 주 크레센트 근처의 커 맥기 시말론(Kerr-McGee Cimarron) 연료 제조 현장 공장에 고용된 지역 석유, 화학 및 원자력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공장 파업에 참여했다. 파업이 끝난 후 그녀는 공장에서 최초의 여성 노조 교섭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어 건강 및 안전 문제를 조사하도록 배정되었다. 실크우드는 작업자의 위험 노출, 호흡기 장비 결함, 샘플의 부적절한 보관 등 수많은 보건법 위반이라고 생각되는 사실을 발견했다.

석유화학원자력노조는 "커-맥기 공장에서 결함이 있는 연료봉을 제조했고, 제품 검사 기록을 위조했으며, 직원의 안전을 위협했다"고 밝히며 소송을 제기했다. 1974년 여름, 실크우드는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원자력 위원회(AEC)에 오염에 대해 증언하면서 생산량 증가로 인해 안전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1974년 11월 5일, 실크우드는 정기적인 자가 진단을 실시한 결과 그녀의 몸이 법적 수치를 거의 400배 이상 초과하는 플루토늄으로 오염된 것을 확인했다. 다음날 아침 노조 협상 회의를 위해 떠날 때 실크우드는 그날 아침 다시 플루토늄 양성 반응을 보였다. 실크우드는 더욱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았으나 11월 7일 공장에 들어가던 중 피를 토하는 등 위험할 정도로 오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건강 물리학 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고 집에서도 욕실과 냉장고 등 여러 표면에서 플루토늄이 검출되었다. 나중에 집이 철거되고 오염이 제거되었을 때 집 대부분의 가구는 너무 오염이 심각해 버려져야 했다. 실크우드의 남자친구 드류 스티븐스(Drew Stephens)와 룸메이트 엘리스(Ellis)도 정밀 검사를 위해 로스 알라모스의 국립 연구소로 보내졌다.

이 11월 5일에서 8일까지 3일의 기간 동안 실크우드가 어떻게 오염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추정 컨대, 11월 7일 아침 실크우드가 자신의 소변 샘플을 흘렸을 때 화장실에서 오염이 발생했을 수 있다고 추정되었다. 이는 공장과 로스 알라모스의 연구소에서 채취된 샘플은 오염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반면 집에서 채취한 샘플은 오염 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증거와 일치했기에, 사실 실크우드가 실제로는 그렇게 심한 오염상태에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실크우드 본인은 공장에서 오염됐다고 말했다. 공장의 경영진은 실크우드가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돈을 받기 위해 고의적으로 스스로를 오염시켰다고 주장했다. 일부 서적에 따르면 공장의 보안이 너무 느슨했기에 작업자가 완성된 플루토늄 펠릿을 쉽게 빼돌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조사 결과, 실크우드의 몸에서 발견된 유형의 플루토늄은 그녀가 지난 4개월 동안 접근하지 않은 생산 구역에서 생산된 종류였다. 실크우드의 주장 이후 완성된 플루토늄 펠릿은 시설 금고에 보관되기 시작했다.


4. 죽음[편집]


실크우드는 회사 기밀 문서를 포함하여 자신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수집했다고 말하며 이 증거를 공개하기로 결정하고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뉴욕 타임스 기자인 데이비드 번햄(David Burnham)에게 연락했다. 1974년 11월 13일, 실크우드는 크레센트의 허브 카페에서 열린 노조 회의를 떠나 혼다 시빅을 타고 약 48km 떨어진 오클라호마 시티로 혼자 차를 몰고 가서 번햄과 노동조합 전국 사무소 직원인 스티브 보드카를 만났다.

파일:카렌 실크우드 사고 차량.jpg
사고 충격으로 부서진 차량과 당시의 신문 기사.

그날 저녁, 실크우드의 시신은 도로를 벗어나 서부 산업 도로(West Industrial Road) 교차로에서 남쪽으로 180m 떨어진 74번 국도 동쪽의 방벽에 부딪힌 차에서 발견되었다. 실크우드는 운전석에 앉은 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 차에는 허브 카페에서 열린 노조 회의에서 그녀가 들고 있던 문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며 진정제인 메타콸론(Qualude) 한두 알이 발견됐고, 대마초도 발견되었다. 검시관은 사망 당시 혈액 100밀리리터당 메타콸론 0.35밀리그램을 발견했는데, 이는 졸음을 유도하기 위한 권장 복용량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양이다. 실크우드의 친척들에 의하면 그녀가 사라진 문서들을 노동조합 회의에 가져간 후 그녀 옆 조수석에 놓아두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실크우드는 죽기 직전에 여러 차례 위협적인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일부 언론인들은 실크우드가 그녀를 사망하게 할 목적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뒤에서 다른 차량에 강하게 부딪혔다는 이론을 세웠다. 실크우드의 차에 미끄러진 자국이 도로에 남아 있었고, 충돌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차량 후면의 손상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충돌은 전적으로 전면 충돌이었기에 차량 후면에는 손상이 발생할 이유가 없었다. 차량 후면을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다른 차량의 후면 충격으로 인해 발생한 페인트 조각이 발견되었다. 실크우드의 가족은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없었으며 그녀가 운전하고 있던 1974 혼다 시빅은 구입 당시 새 차였으나 해당 차량에 대해 보험 청구가 제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중의 의심으로 인해 공장 보안 및 안전에 대한 연방 조사가 이루어졌다. 국립 공영 라디오(National Public Radio)는 이번 조사 결과 20~30kg(44~66lb)의 플루토늄이 발전소에서 분실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커-맥기 공장은 1975년에 폐쇄되었고, 에너지부 (DOE)에 의해 남아있던 발전소도 1994년에 오염 제거 및 해체되었다.


5. 사후 소송[편집]


실크우드의 아버지와 그녀의 아이들은 커-맥기 공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은 1979년에 시작하여 10개월 동안 지속되었는데, 이는 1980년까지 오클라호마 역사상 가장 긴 소송 기간이었다. 실크우드 측 수석 변호사는 게리 스펜서(Gerry Spence)였으며 다른 주요 변호사로는 다니엘 시한(Daniel Sheehan), 아서 앤젤(Arthur Angel) 및 제임스 이카드(James Ikard)가 있었다. 윌리엄 폴(William Paul)은 공장 측의 수석 변호사였다. 실크우드 측은 부검 결과 실크우드가 사망 당시 플루토늄에 오염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했으며 그 오염이 공장에서 지속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해당 시설의 전직 직원들의 증언을 증거로 제출했다.

공장 측 변호인은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의 고위 과학자인 전문가 조지 보엘즈(Dr. George Voelz) 박사에게 의존했다. 보엘즈는 실크우드의 체내 오염 수치는 법적 수치 안에 있는 정상적 수치였다고 주장했고 실크우드가 스스로 플루토늄으로 자신을 오염시켰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총합 변론 후 배심원단은 손해 배상금으로 505,000 달러, 징벌적 손해 배상금으로 1천만 달러를 평결했다. 항소에서 징벌적 손해 배상 지급은 취소되었다. 1984년 미국 대법원은 "안전 표준을 설정하는 NRC의 독점 권한이 국가 불법 행위 구제 수단의 사용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판결하며 1심 배심원단의 판결을 복원했다. 커-맥기 공장 측은 138만 달러(2021년 달러로 375만 달러)에 합의했지만 아무런 잘못도 인정하지 않았다.

실크우드의 죽음과 공장의 작전을 조사하는 관리들은 대부분 살해 위협을 받았고 수사관 중 한 명은 실종되었다. 증언자 중 한 명은 공장에서 일어난 혐의에 대해 재판에서 증언하기 직전에 자살로 사망했다. [실크우드 가족의 법무팀은 미행을 당하고 누군가에게 신체적 폭행을 당했다.


6. 미디어에서[편집]


1983년 영화 실크우드(Silkwood)는 노라 에프론(Nora Ephron) 과 앨리스 알렌(Alice Arlen)이 쓴 원작 각본을 바탕으로 실크우드의 삶과 그녀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에 대한 영화다. 메릴 스트립이 카렌 실크우드 역할을 맡아 아카데미상과 BAFTA 후보에 올랐고 처(Cher)는 실크우드의 가장 친한 친구 듀스티 엘리스(Dusty Ellis)역을 맡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감독 마이크 니콜스(Mike Nichols)는 최우수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리차드 L.레셔(Richard L. Rashke)의 저서 The Killing of Karen Silkwood 및 The Whistleblower's Dilemma는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사하여 작성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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