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 베른하르트 폰 보이츠레츠

덤프버전 :




독일 제국군 보병대장
콘스탄틴 베른하르트 폰 보이츠레츠
Konstantin Bernhard von Voigts-Rhetz


이름
Konstantin Bernhard von Voigts-Rhetz
콘스탄틴 베른하르트 폰 보이츠레츠[1]
출생
1809년 7월 16일 프로이센 왕국
사망
1877년 4월 14일(향년 67세) 독일 제국
복무
프로이센군(1827년~1871년
파일:독일 제국 전쟁기.svg 독일 제국군(1871년 ~ 1873년)
최종계급
파일:General_(Wurttenburg).gif 독일 제국군 보병대장
주요참전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서훈
푸르 르 메리트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콘스탄틴 베른하르트 폰 보이츠레츠는 프로이센군과 독일제국군의 장성으로 최종계급은 보병대장이다.


2. 생애[편집]


콘스탄틴 베른하르트 폰 보이츠레츠는 프로이센 왕국에서 태어났다.

1827년 입대, 제9 보병 여단에 배치되었다. 1883년부터 1885년까지 보이츠레츠는 프로이센 전쟁 대학에 다녔다. 1839년 장군참모 과정을 시작하였으며, 1841년에는 대위, 1849년에는 소령이 되었다. 1847년 그는 5군단의 참모장교가 되었으며, 1848년 혁명이 일어났을 때, 포젠에서 진압을 도왔다. 1852년, 보이츠레츠는 5군단의 참모총장이 되었으며 1855년에는 대령이 되었다. 1858년 제9보병 여단의 여단장이 되었고, 소장으로도 승진하였다. 1859년 그는 전쟁부의 이사가 되었다. 보이츠레츠는 룩센부르크에 있는 독일 연방의 요새를 지휘하였으며, 중장이 되었다.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당시 그는 프랑크푸르트의 주둔 사령관이 되었다.

보오전쟁이 발발하자 보이츠레츠는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가 이끄는 제1군의 참모총장이 되었다. 쾨니히그레츠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으며, 하노버의 총독과 10군단의 사령관이 되었다. 보불전쟁이 발발하자, 10군단은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가 이끄는 제2군의 소속이 되었다. 메스 행진과 본 라 롤랑드 전투에 참여하며 승리하였다.

전후 보이츠레츠는 건강 문제로 1873년 전역하였으며 150,000탈러를 받았다. 1877년 사망하였고, 사후 그의 이름을 딴 보병연대가 창설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1 00:16:11에 나무위키 콘스탄틴 베른하르트 폰 보이츠레츠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보이츠레츠'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 또한 붙임표로 이어진 인명 등의 경우, 여러 요소가 하나의 단어를 이루는 복합어로 보고, 한글로 표기할 때에는 붙여 적는 것이 규정 용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