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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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재위
4. 가족관계
5. 기타



1. 개요[편집]


Tāufaʻāhau Tupou Ⅳ

통가의 제4대 국왕.

키가 무척 커서 198cm이었다. 70년대엔 몸무게가 200kg을 넘어 세계의 국왕 중에 가장 뚱뚱한 사람이기도 했다.


2. 생애[편집]


1918년 7월 4일, 통가 왕궁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3개월 전에 외할아버지인 조지 투포우 2세가 서거하면서 어머니인 살로테 투포우 3세가 왕위에 올랐다.

세례명은 시오아시(Siaosi Tāufaʻāhau Tupoulahi)였다. 시오아시는 George의 음차이다.

1937년에 타우파하우는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어릴 적엔 스포츠를 좋아했고 독실한 감리교도였다.[1] 시드니의 뉴잉턴 칼리지에서 공부했고, 시드니 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통가인 최초의 대학 졸업자였다. 관련 블로그 1943년에 귀국하여 교육장관이 되었다. 44년엔 보건장관이 되었다. 1949년부터 타우파하우는 1965년 어머니의 서거까지 통가의 총리를 지냈다.

1941년에 아버지 빌리아미 퉁이 마일레피히[2]가 서거하면서, 퉁이(Tungī) 작위를 상속받았다.

1965년에 어머니가 뉴질랜드에서 서거하면서 왕위를 계승했다.

2006년 9월 10일,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88세로 서거했다.


3. 재위[편집]


그의 시대에 통가는 권위적인 전제군주제였다. 통가 의회의 70%는 귀족으로 임명되었다.

1968년 통가는 외교권 등을 다시 되돌려 받으며 보호령에서 벗어났다. 비서구권 국가로서는, 1875년에 헌법을 갖출 만큼[3] 근대화를 일찌감치 시도했던 통가였지만, 서구의 침략에 대비해 빠른 변화를 위해 전제군주제에 가까운 헌법을 지닌 채 국체를 유지하는 바람에 20세기 말에 들어선 오히려 역효과가 났던 것.

1996년에 한국인들에게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 이후 2002년 8월에 통가는 한국을 무사증 입국허가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당시 외교부는 이를 두고 한국인의 사기 행각이 원인인 것 같다고 추정하였다. 이에 한국도 비례적으로 같은 해 11월부터 통가를 무사증 입국허가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 이후 2007년 9월에 다시 회복되었다. #

4. 가족관계[편집]



  • 왕비 할라에발루(Halaevalu Mataʻaho ʻAhomeʻe, 1926-2017)
    • 1남 시아오시(Siaosi Tāufaʻāhau Manumataongo Tukuʻaho Tupou, 1948-2012)
    • 1녀 살로테(Salote Mafileʻo Pilolevu Tuita, 1951-)
    • 2남 파타헤이(1953-2004)
    • 3남 아호에이투(‘Aho‘eitu ʻUnuakiʻotonga Tukuʻaho, 1959-)


5. 기타[편집]




뉴질랜드 국립 기록보관소에서 보관 중인, 1968년에 촬영된 투포우 4세의 대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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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생 감리교 전도사 직위를 유지했다.[2] 아버지도 귀족이었다.[3] 일본의 제국 헌법이 생긴 게 1889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