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테 투포우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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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alote_Tupou_III_of_Tonga_in_coronation_robe-crop_(Colourised).jpg

1. 개요
2. 생애
3. 재위
4. 가족관계
5. 여담



1. 개요[편집]


Sālote Tupou Ⅲ
Sālote Mafile‘o Pilolevu

살로테 투포우 3세는 통가의 첫 여왕이다.
살로테는 Charlotte의 음차이다.


2. 생애[편집]


1900년 3월 13일 통가 왕궁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지 투포우 2세였고 어머니는 라비니아 베이옹고 왕비였다.

1902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통가 귀족 사회에서 힘을 잃은 집안 출신이어서 살로테는 어릴 적에 밖에 나가기도 어려웠다. 이후 아버지인 조지 투포우 2세는 재혼하여 자녀를 둘 더 낳았으나 둘 다 딸이었고 왕자는 낳지 못했다.

1909년 살로테는 뉴질랜드로 가서 5년간 현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914년 아버지가 귀국을 명령해 다시 통가로 돌아왔다.

1916년 빌리아미[1]와 결혼하였다. 빌리아미는 통가의 유력 귀족 집안이었고, 시아버지인 시아오시(Siaosi Tukuʻaho)는 1890년부터 1893년까지 통가의 총리를 지냈다.

1918년에 아버지 조지 투포우 2세가 스페인 독감으로 서거하면서, 왕위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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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대관식 때의 살로테 투포우 3세. 뒤에 서 있는 남성은 남편인 빌리아미 퉁이 마일레피히이다.

1965년 12월 16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아오테아병원에서 서거했다. 통가 왕실의 장지인 말라에쿨라(Malaʻekula)에 묻혔다.


3. 재위[편집]


영국의 보호령이라 권한은 별로 없었다.

1940년에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1941년 진주만 공격이 있자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통가인들은 주로 뉴질랜드군에 입대해서 참전했다.

1953년에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 참여하러 유럽을 방문했다.

1954년부터 65년까지 통가전통위원회 의장을 지냈고, 1945년부터 65년까지 통가적십자사 총재를 지냈다.


4. 가족관계[편집]


  • 남편 빌리아미 퉁이 마일레피히(Viliami Tungī Mailefihi, 1888-1941)
    • 1남 시아오시(Siaosi Tāufaʻāhau Tupoulahi, 1918-2006)
    • 2남 윌리아미(Uiliami Tuku‘aho)
    • 3남 파타헤이(Fatafehi Tuʻipelehake, 1922-1999)[2]


5. 여담[편집]



키가 어마어마하게 컸는데 191cm나 되었다.


살로테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와, 엘리자베스 2세가 통가를 방문했을 때를 찍어둔 영상이다. 2분 28초 경을 보면 163cm 키에 힐을 신은 엘리자베스 2세 보다 훨씬 큰 키임을 알 수 있다. 옆의 남성은 필립 마운트배튼(183cm)인데, 이로 보아 중년에는 180대 정도의 키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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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편인 빌리아미는 1923년부터 사망한 1941년까지 통가의 총리를 지냈다. 당시 통가는 영국의 보호령이어서 실질적인 권한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2] 통가의 귀족 직책 중 하나인 Tuʻipelehake의 5대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