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기 산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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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業界一(ぎょうかいいち大人(おとなげない社長(しゃちょう / Big Boss>
高木(たか ぎ 三四郎(さん し ろう / Sanshiro Takagi



(주) CyberFight 대표이사 사장 겸 DDT 선수
링네임
타카기 산시로(高木(たか ぎ 三四郎(さん し ろう)
본명
타카기 타다시
高木(たか ぎ (ただし
생년월일
1970. 1. 30 (54세)
신장
175cm
체중
105kg
혈액형
A형
출생지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오사카부 토요나카시
학력
코마자와대학 (학사)
유형
쇼맨
시그니쳐 무브
플라잉 크로스촙
리버스 STF
텍사스 클로스라인[1]
스피콜리 드라이버[2]
산시로 스터너[3]
싯다운 히마와리 밤[4]
피니시 무브
스터너[5]
별명
일본산 스톤 콜드
(和製(わ せいストーンコールド)
대사장(大社長(だいしゃちょう)
업계에서 가장 어른스럽지 못한 사장
(業界一(ぎょうかいいち大人(おとなげない社長(しゃちょう)

테마곡
(You Gotta) Fight For Your Right (To Party) - Beastie Boys
(1997 - 2000)
FIRE - Scooter[6]
데뷔
1995년 2월 16일 (25세)
도쿄도 시부야구 시부야ON AIR EAST
PWC[7] 들개전설(野良犬(の ら いぬ伝説(でんせつ)
vs 트러블슈터 코우치
SNS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주요 커리어
도쿄우련대 도쿄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바브드와이어 스트리트 파이팅 월드 6인 태그팀 챔피언 1회
DDT 익스트림 챔피언 2회
대중화통일 나카하라 태그팀 챔피언 2회
아이언맨 헤비메탈웨이트 챔피언 13회
지유가오카 6인 태그팀 챔피언 2회
킹 오브 다크 챔피언 1회
KO-D 오픈웨이트 챔피언 6회
KO-D 태그팀 챔피언 4회
KO-D 6인 태그팀 챔피언 4회
KO-D 8인 태그팀 챔피언 1회
O-40 챔피언 1회
시 오브 재팬 6인 태그팀 챔피언 1회

1. 개요
2. 커리어
3. 여담



1. 개요[편집]


"ファイアー! "
(파이어!!!)


" ウソじゃー! "[8]


(구라여!!!)


일본프로레슬러.

DDT 프로레슬링프로레슬링 NOAH, 도쿄 여자 프로레슬링을 산하에 보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CyberFight의 대표 겸 DDT 소속 선수.


2. 커리어[편집]



2.1. 초창기[편집]


어린 시절 타카기 산시로는 MBS 편집부에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방송국 스튜디오에 가는 등 아버지와 함께 방송국을 체험하다 프로레슬링 중계를 접하게 되었으며, 더 펑크스(도리 펑크 주니어 & 테리 펑크) vs 압둘라 더 부처 & 더 쉬크전을 처음으로 보러 가게 되었다. 특촬물 내지 애니메이션을 보는 느낌으로 이 경기를 봤던 타카기는 다음날부터 초등학교에서 프로레슬링 놀이를 시작했는데, 프로레슬링 놀이를 하면서도 흐름을 보고 쇼를 구축하는 경영자로서의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이미 프로레슬러가 되겠다는 꿈이 생기면서 뭔가 스포츠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와중 중학교에 진학했으나 중학교에는 별다른 운동부가 없었다. 칸사이 오오쿠라 고교에 진학했을 때는 선배도 동기도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던 유도부에 입부했다.[9]

고교 졸업 후에는 코마자와대학에 진학했으나, 코마자와대학에는 학생 프로레슬링(프로레슬링 동아리)가 없어 관객으로 돌아갔다.[10] 그러다 3학년 무렵 프로레슬링 열기가 식어 이벤트 업계에 눈독을 들였고, 실제로 여러 성과를 거둬 방송국 등에서 스카웃 요청이 들어오던 상태였던 타카기였으나 갑자기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망이 돌아와 대학을 휴학하고 유급까지 하던 도중 브레멘 오오시마를 만나 요코하마시 츠루미구의 '야타이무라 욘돈'이라는 이자카야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던 노상 프로레슬링의 홍보 스텝으로 프로레슬링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

1994년 3월, 유급을 계속하던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같은 해 8월 IWA 격투지숙에 입문하며 노상 프로레슬링에 참가했다. 12월 31일의 카모이 쵸타로와의 시합에서 데뷔했지만, 노상 프로레슬링은 정식 기록이 아니라서 다음 해인 1995년 2월 16일 프로레슬링 크루세이더 시부야 대회에서의 트러블슈터 코우치 전이 공식 데뷔전으로 기록되었다. 당일 벌어진 7 VS 1 핸디캡 매치에 7명중 1명으로 등장해 타카노 슌지[11]를 상대하지만 패했다.


2.2. DDT 프로레슬링[편집]


PWC가 망한 이후 여러 단체를 돌며 프로레슬러 활동을 하던 중 1997년에 노사와 카즈시게와 함께 DDT 프로레슬링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DDT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며 2000년에는 해외 무대 진출까지 하고, 미국의 Revolution Pro Wrestling(RPW), 멕시코의 CMLL에서도 경기를 가지게 된다. 계속 무관왕이었던 타카기 산시로는 포이즌 사와다 JULIE, 수퍼 유쿠 파워, 하시모토 토모히코를 상대로 페이탈 4 웨이 매치에서 승리를 거두며 새로운 KO-D 오픈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며 첫 커리어를 만든다.

DDT에서 활동하며 다른단체에서도 간간히 모습을 보이다가 2003년에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에도 첫 출연해 혼마 토모아키 & 미야모토 카즈시 & 하시모토 토모히코와 팀을 이뤄 히지카타 류지 & 오쿠무라 시게오 & 아이지마 유토 & 호사카 히데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이후로도 태그팀 경기위주로 출연하게 된다. 2005년에는 대일본 프로레슬링과 DDT 프로레슬링의 합동무대에서도 경기를 가지며 MIKAMI & KUDO와 팀을 이뤄 이토 류지 & 세키모토 다이스케 & 압둘라 코바야시를 상대하나 시간경과로 인한 무승부를 기록하고, 이때부터 이토 류지와 만나게 된다. 몇달후에 열린 합동무대에서 이토 류지와 팀을 이뤄 히어로! & 세키모토 다이스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대일본 프로레슬링 본무대에서도 이토 류지와 팀을 이뤄 멘즈 테이오 & 남색 디노를 상대하지만 패하고, 2006년에는 모로하시 세이야와 팀을 이뤄 콘도 히로유키 & 이노우에 카츠마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2007년에는 드래곤 게이트와 DDT 프로레슬링의 합동무대에 출연해 고져스 마츠노와 팀을 이뤄 돈 후지이 & 스토커 이치카와 Z를 상대하나 양팀의 더블 핀으로 끝나며 무승부가 나오고, 2008년에는 KAIENTAI-DOJO에도 첫 출연하며 조 & 야코 요시아키와 팀을 이뤄 TAKA 미치노쿠 & 그레이트 사스케 & 토나이 히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DDT 프로레슬링 외에도 여러 단체에 출연하며 활약하지만 DDT 프로레슬링에서의 활약이 많아 DDT 프로레슬링에서 챔피언 경력을 무수히 늘려나가고 있었고, 2012년에는 여자 레슬링단체인 아이스 리본에도 등장해서 마츠모토 미야코와의 인터잰더 매치까지 가지는 모습을 보여 여자인 마츠코토 미야코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2013년에는 WAVE에서 벌어진 77인 배틀로얄에 참가하는 모습도 보인다.

2015년에 WRESTLE-1의 CEO(나중에 상담역)를 겸임했으며, 2017년에 WRESTLE-1의 CEO에서 퇴임했다.

2016년에는 WRESTLE-1에 첫 출연해서 쿠로시오 지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요시오카 세이키 & 후지무라 코헤이 & 앤디 우와 팀을 이뤄 무라세 히로키 & 오오카 켄 & 미토미 마사유키 & 쇼타를 상대하지만 패한다.

2018년에는 프로레슬링 NOAH에도 첫 출연하며 HARASHIMA & 남색 디노와 팀을 이뤄 코토우게 아츠시 & 권왕 & 마이바흐 타니구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DDT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는 나날을 보내다가 2021년에 DDT 프로레슬링 & NOAH & 도쿄 여자 프로레슬링이 합동으로 벌인 무대에서는 6 VS 6 태그팀 매치에서 타카기 산시로가 속한 팀이 승리를 거두고, 2022년에도 합동무대가 벌어지면서 4 VS 4 혼성 태그팀 매치가 확정되지만 패한다.

2023년에는 DDT 프로레슬링이 미국에서 열리면서 마이클 나카자와와 팀을 이뤄 남색 디노 & 이이노 유키와 경기를 가지나 제대로 끝나지 않았고, DDT 프로레슬링과 하드코어 레슬링 단체인 GCW의 합동무대에서는 사사키 다이스케 & KANON & 마사다 타케시와 팀을 이뤄 그링고 로코 & 잭 카트휠 & 딜런 맥케이 & 마커스 매터스를 상대로 패한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로도 DDT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다가 오랜만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도 경기를 가지며 오카다 유스케 & 아키야마 쥰과 팀을 이뤄 스와마 & 타무라 단 & 사토 히카루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12]


3. 여담[편집]


  • 츠루미 고로의 제자이다.

  • 코바야시 마코토의 만화 1,2의 산시로(1・2の三四郎)의 어마어마한 팬. 링네임부터가 이 만화의 주인공 히가시 산시로(東 三四郎)에서 따 왔으며, DDT의 이름도 히가시 산시로가 세운 단체인 '드림 팀'에서 맨 앞에 '드라마틱'을 붙인 것이다.

  • 스티브 오스틴의 엄청난 팬으로, 피니시 무브부터 그의 상징인 스터너를 사용한다. 오스틴이 첫 주연인 영화 The Condemned가 2009년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는 특별선전부장으로 취임한 바가 있으며, WWE의 일본 흥행 시 스태프의 주선으로 해설석에서 스톤 콜드 본인과 맥주를 주고받기도 한다.

  • 2004년 일반인과 결혼하였으며, 롯폰기 벨파레에서 열린 피로연에서 프로레슬링 이벤트를 개최하는 어마어마한 짓을 벌였다. 아내는 프로레슬링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는데도 당일 링기어까지 입고 막판에는 문설트까지 시전했으며, 이벤트 도중 타카기가 피를 흘리자 타카기보다도 렌탈한 예복에 피가 묻지 않을까 걱정하는 대범함을 보여주었다. 슬하에 딸 둘을 두고 있으며 딸들도 아마추어 레슬링을 하는 등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2008년 서점 프로레슬링을 시작으로 통상의 링이 아닌 곳에서 프로레슬링을 하는 '노상 프로레슬링'을 시작해 DDT의 명물 흥행으로 만들었다. 캠핑장, 상가, 상업빌딩, 공원, 공장, 놀이공원, 락 페스티벌장 등에서 경기를 치렀으며, 스즈키 미노루와 무관객 도쿄돔 노상 프로레슬링을 벌인 적까지 있다.

  • 매운 음식과 오코노미야키를 잘 못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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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닝 래리어트.[2] 변형 데스 밸리 드라이버. 파이어맨즈 캐리 상태에서 상대를 옆이 아니라 앞으로 떨군다.[3] 더블 암 페이스버스터.[4] 일렉트릭 체어 인투 싯다운 파워밤. 상대를 목마 태운 상태에서 180도 돌린 후 싯다운 파워밤으로 내려찍는다.[5] 스티브 오스틴정도의 위력은 당연히 없기 때문에 한 경기에도 몇연발을 연속으로 사용한다. 온갖 응용법을 보여준다.[6] 타카기 산시로의 상징곡 아니 상징. 등장 시 이 곡의 '쓰리, 투, 원, 파이어!'부분에 맞춰 양 손을 번쩍 들어올리는 것이 타카기의 상징 그 자체이다.[7] Pro Wrestling Crusaders. 망한 단체 중에서도 전설급으로 망한 걸로 유명한 SWS가 붕괴하여 선수가 WAR과 NOW로 나뉘게 된 후 NOW로 갔던 죠지 타카노와 타카노 켄지 형제가 SWS의 스폰서였던 '메가네 슈퍼'가 NOW로 들어오는 거에 반대하여 탈단 후 W★ING 출신 선수 등을 받아들여 세운 단체. 처음부터 자금 사정이 매우 안 좋아 사실상의 자금원 죠지 타카노가 탈단 후 타카노 켄지의 개인 단체화 되었으며, 이후 탈단이 이어져 소멸하였다. DDT 프로레슬링의 창립 주축 타카기 산시로와 NOSAWA논외의 소속 단체로 DDT의 사실상 전신이 되었으며, DDT의 명물 중 하나인 '싸우는 비어 가든'이 원래 이 단체의 작품이었다.[8] 어른스럽지 못한 대사장의 진수를 보여주는 타카기의 상징같은 말. 꼭 한번씩 본인 은퇴 암시 등 진지한 얘기를 해서 분위기를 잡다가 이걸 외치며 분위기를 깨며, 심지어 경기 도중에 좀 크게 당한 척을 하다가 이걸 외치면서 갑자기 상대를 기습하는 경우도 있다.[9] 고문 교사가 나이가 많아 부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을 빌미로, 유도 대신 서로에게 백드롭이나 브레인버스터를 걸면서 접수를 몸에 익혀 갔다고 한다. 유도장에서의 연습은 프로레슬링 기술뿐이여서 거의 유도부를 가장한 프로레슬링부라고 해도 좋았을 정도라고. 실제로 타카기는 유도의 승단 시험에서 백드롭으로 한판승을 거두기까지 했다. 유도를 하고 있었다는 의식은 전혀 없었고, 3년간 가장 좋아하는 프로레슬링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10] 1988년 신생 UWF가 스타트를 끊은 봄에 당일권을 노리고 전날 저녁부터 코라쿠엔 홀 밖까지 줄을 서서 표를 사기도 했다.[11] = 타카노 켄지. 죠지 타카노의 동생이자 PWC의 창립자. 별명은 들개.[12] 경기가 끝난 후 스와마가 링안으로 올라와 아키야마 쥰을 발로차면서 화를내자 나야 유키오까지 링안으로 들어와 스와마와 몸싸움이 벌어져 양 단체의 선수들과 안전요원들이 둘을 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