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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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풍(馮)
이름
야부(野夫)
생몰년도
미상
국가
백제
활동시기
5세기


1. 개요[편집]


백제의 인물. 국내 기록에는 없고 송서, 남사에 등장한다.


2. 생애[편집]


450년 비유왕유송에 방물을 바치면서 국서를 올려 대사(臺使) 풍야부(馮野夫)를 서하태수(西河太守)로 추인해 주도록 요청하고, 표문으로 역림(易林)·식점(式占) 및 요노(腰弩)를 요구했다고 한다. 송문제 유의륭은 백제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다.

서하군(西河郡)은 오늘날의 산시성(섬서성) 옌안시, 웨이난시 일대로 비정되는데 당시에는 북중국을 통일한 북위가 지배하고 있어서 유송이든 백제든 실제 영향력 없었고 그래서 북위와 대립관계였던 유송 측에서 명목상으로 추인해준 것으로 보인다.


3. 기타[편집]


풍야부의 출자에 대해 북연 황실 출신의 인물이 아니냐는 설이 있다. 436년 북연이 북위에게 멸망당한 후 고구려로 망명한 마지막 황제 풍홍 및 그 일족들은 438년 장수왕에 의해 제거당했는데 이 과정에서 백제로 유입된게 아니냐는 것.[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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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중국, 「百濟의 姓氏와 貴族家門의 出自」, 대구사학 89, 2007. 74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