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잉 셔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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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구조와 성능
3. 효과



1. 개요[편집]


플라잉 셔틀(Flying shuttle) 또는 나는 북은 1733년 영국의 존 케이(John Kay)에 의해 발명된 면직물 직조 기계이다. 산업 혁명을 일으킨 주요한 원동력 혹은 첫 계기이기 때문에 역사학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2. 구조와 성능[편집]



현대에 복원한 플라잉 셔틀의 작동 방식을 담은 영상.
이 기계는 기존의 면직물 직조기구였던 베틀 중 북 부분을 자동화시킨 것으로, 스프링베어링을 이용해서 북이 좌우로 이동하는 과정을 자동화한 것이었다. 이 자동화로 인해 짤 수 있는 베의 폭이 2배 가량 늘어났고 베짜기의 속도도 그와 비슷하게 늘어났다. 총합 생산 효율은 거의 4배 가량 늘어났다.


3. 효과[편집]


이 플라잉 셔틀은 면직물 산업분야에서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이전까지 영국은 국가적으로 직물 산업을 육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섬유와 실과 직물을 수출하는 입장이었으나, 플라잉 셔틀의 발명 이후 직물을 뽑는 속도가 너무나 급증해서 직물 생산을 위한 수요만으로도 섬유와 실 생산이 따라가지 못해 직물만 수출하고 실과 섬유는 수입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영국의 국제 무역 수지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목화에서 실을 뽑아내는(방적) 속도보다 직조속도가 빨라지게 되자, 한 번에 8가닥을 뽑아낼 수 있는 제니 방적기가 등장한다. 이후 방적기직조기가 경쟁적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나중에는 증기기관까지 도입된다. 바로 이 연쇄 반응으로 인한 산업의 기계화가 1차 산업 혁명이다.

이 기구 덕분에 영국의 1인당 GDP 성장률은 지구 상에서 최초로 0.27%까지 펌핑됐다. 오늘날 보면 거의 성장률이 없어 보이지만, 이 직전에 가장 발전했었던 영국네덜란드는 약 0.14%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아시아 국가들은 0.04%에 불과했다. 산업 혁명으로 인해 인류에게 역사상 처음으로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이 시작된 것이다.

이 산업혁명이 만든 변화를 체감하기 쉽게 미시적으로 비유를 하자면, 1년에 한번 새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던 정도만으로도 중산층 정도의 소득이었던 것이 전근대의 경제력이었다. 프릴이 잔뜩 달린 드레스 같은 것은 수백명의 빈민들이 투입되어야 겨우 만들 수 있는 귀족들만의 옷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로는 중산층도 1년에 몇번 정도 있을 경조사마다 새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플라잉 셔틀을 개발한 존 케이는 이 기계의 발명에 의해 실직한 사람들의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프랑스로 이주해서 살 수밖에 없었다. 존 케이 외에도 이 시기 영국의 발명가들 상당수가 실직자나 경쟁자들의 위협때문에 피신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제니 방적기를 발명한 제임스 하그리브스도 경쟁자들의 등쌀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다. 이와 같은 산업 혁명기의 실업자 증가는 당시의 자유방임주의 경제논리에 저항하는 러다이트 운동 등의 사회 운동을 촉발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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