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왕자{{{-1 [[틀:고려의 왕자/선종 ~ 공양왕| 선종 ~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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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영종의 왕자 한양후 | 漢陽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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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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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현(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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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개성 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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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 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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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명순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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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슬하 1남 아들 - 계양후 왕광(桂陽侯 王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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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작
| 한양후(漢陽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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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임시 국왕
영종의 장남.
충렬왕 즉위년(1274) 10월, 왕이
제국대장공주를 맞이하러 신하들과 서북면으로 갔을 때 한양후도 수행했다. 이 때
변발 문제를 두고 왕이 대신들에게 잔소리를 했다. 왕은 몽골의 제도를 따라 일찍이 변발을 했지만 수행하던 대신들 중에는 변발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고, 한양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양후를 비롯한 대신들은 변발하기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상례가 되기를 기다렸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처 명순원비는 한양후의 사촌
충렬왕과
정화궁주의 딸이다. 아들 계양후 왕광은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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