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타 시게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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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서브컬처에서



1. 개요[편집]


古田重然. 1543~1615.

전국시대부터 에도시대 초기에 걸친 일본의 무장이자 다이묘. 일반적으로 후루타 오리베(古田織部)라고 알려져 있다. 다인으로 유명하며 리큐 7철 중 한 명이다.


2. 생애[편집]


1543년 미노국에서 태어났다. 오다 노부나가의 아래서 전령직을 맡거나 아케치 미츠히데의 탄바 공략, 하시바 히데요시의 하리마 공략 등에 참전했다. 혼노지의 변 이후 히데요시에게 붙어 손윗처남 나카가와 키요히데를 끌어들이고 인질을 내도록 해서 신임 받았다. 임진왜란에는 참전하지 않았으며, 이후 센 리큐에게 사사(師事)하였고 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밉보여 죽을땐 홀로 배웅하였다. 리큐 사후엔 천하제일의 다인(茶人)이 되어 전국에 영향력을 가져 히데요시나 도쿠가와의 다도 사범이 될 정도였다. 의외로 첫 다과회 기록이 40세였을 때 처음 기록되어 있어 젊을 적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듯.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 이에야스의 편에 서서 1만 석을 추가 받아 4만 5천 석의 다이묘가 되었지만 오사카 전투 중 가신이 도요토미 가문과 결탁해 교토 방화를 꾸몄다는 의심을 받아 이에 대해 변명하지 않고 아들과 할복했다. 후루타 가문은 이 일로 개역되었다. 오늘날의 골프와 같이 상류층의 사교 문화였던 다도에 능통한 시게나리가 다테 마사무네, 가토 기요마사 등의 다이묘들에게까지 영향력이 커져 누명을 씌웠다는 설이 있다. 도쿠가와 히데타다도 이 후루타를 스승으로 해 다도를 배웠다.

<다도백개조(茶道百箇条)>라는 저술을 남겼으며 오리베야키(織部焼)는 그가 좋아하던 초록색[1] 유약을 사용하고 그 이름을 딴 도자기 종류이다.

예술에 대한 집착이나 열심을 알려주는 여러 일화를 남겼는데, 후술할 만화에 대부분 소개되었다.

  • 스승인 리큐가 모임에서 "세타 다리의 난간에 있는 동그란 장식 중 하나가 우아하게 잘 빠진 모양을 하고 있다"고 언급하자 그 자리에서 나가 몇 시간이나 말을 달려서 왕복해 그 다리를 보고 돌아와서는 "몇 번째의 어느 것이 아닙니까?"라고 짚어내 리큐를 감탄하게 했다.

  • 오사카 성 전투 당시 적의 사정거리 안에 있는 대숲에 들어가 찻숟가락 재료로 쓸 대나무를 모으는 데 열중해 있다가 그의 대머리에 반사된 달빛을 보고 적군이 조총으로 저격하는 바람에 다쳐서 황급히 도망쳤다.

강항간양록에서도 '굴전직부'라는 잘못된 한자 표기로 소개되었는데, '천하일(天下一)'라는 업계 최고의 명인의 직함을 숭상하는 풍조가 유독 강한 일본인들의 풍조에서 후루타는 다도, 화도 등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이 늘 그에게 거금을 내며 감정을 부탁하는 최고의 예술인으로 이름이 드높았으며 그의 인정만 받으면 뭐든 고가의 명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지라 그가 긁어모은 부가 가히 이에야스와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2] 여기에 다도와 예술이 당시 사회에서 가진 정치적 영향력까지 더하면 이에야스가 오리베를 숙청한 이유가 엿보인다.

3. 서브컬처에서[편집]



3.1.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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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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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나가의 야망 전국입지전

고만고만한 정치력(100 기준으로 50 남짓)에 바닥을 기는 무력과 통솔력, 지력을 가지고 있다. 통무가 10을 못 넘기고, 지력도 30이 안된다. 무장풍운록에서는 교양 스탯이 있어서 87의 높은 스탯을 찍기도 했다. 국내에서 유명했던 천상기장성록에서는 아예 결장하고 만다. 천도에서는 지력이 64, 정치가 70로 후방내정용이다. 100만인의 노무나가의 야망에서는 통솔 65, 정치 86으로 지나치게 높아졌다.

창조에서는 효게모노의 모습을 많이 닮은 모습으로 등장. 부하로 데리고 있으면 최고의 다기 3가지를 구해달라고 퀘스트를 준다. 그런데 이때 다이묘가 듣다가 그냥 나가버리는 모습들을 볼때 괴짜 성격때문에 상사에게도 어이없는 놈 취급을 받는다.


3.2. 효게모노[편집]


만화 효게모노의 주인공으로 등장. 얼빠진 괴짜에서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캐릭터로 나온다. 실제 역사에서 오리베는 센 리큐 생전에 많은 부분 리큐를 능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중에서는 리큐의 자결 전까지는 그저 속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또 여러 관직을 선택할 수 있었으나 '오리베'의 관직을 받은 것은 올리브(Olive) 색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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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얼빠진 느낌이다.[3]

약간의 영지를 가진 동네 말단 무사에 지나지 않는 자신의 현실에 의문을 느끼다가, 교섭을 하러 가서 마츠나가 히사히데와 만나 인생관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아라키 무라시게가 노부나가에 대한 반란에 실패해 비무장 상태로 수집품을 싸들고 토굴로 도망치는 걸 마주치게 되는데, 이 때 아라키가 차 그릇 하나를 흘린다. 고민하던 사스케는 아라키의 목 대신에 차그릇을 챙긴다. 아라키를 잡아 목을 노부나가에게 바쳤다면 그가 가지고 있던 다기들도 몽땅 노부나가에게 내놓아야 했을 것이므로, 하나만 챙기고 보내준 것이다. 무사로서의 출세와 예술 덕질 중 덕질을 택한 셈이다.

이후 평생의 스승인 센 리큐와 만나게 된다. 스승에게 깨지기도 하고 인정도 받으며 다도와 예술에 몰두하다가 천하인이 되어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엮이고, 상당히 강압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이후 서로 감정을 터놓는 묘한 친구이자 주종 사이가 된다. 히데요시의 다두였던 리큐는 히데요시와 갈등을 빚게 되고, 결국 할복으로 내몰리게 되자 가이샤쿠를 맡아, 눈물을 머금고 제 손으로 스승의 목을 치게 된다. 리큐는 살벌한 할복 자리에서 어이없는 몸개그를 선보여 후루타를 폭소하게 만든 다음 "그것이 당신입니다. 잊지 마십시오."[4]라고 말해 후루타를 삽시간에 눈물 범벅으로 만든다.

이후 몇 년이 지난 임진왜란 시기에 히데요시의 예술 스타일을 선두에서 구현하는 예술인이자 다도인으로 재등장한다. 소박함과 검소함, 완성도를 중요시하는 리큐 스타일과 달리 유머와 뒤틀림, 일탈을 중시하는 스타일이 특징.[5] 조선 도자기와 예술이 일본에서 갖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전쟁에는 관심이 없고 조선의 예술과 도자기에만 몰두하는 오덕 기질을 발휘해서, 아예 조선에 도기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밀항을 한다. 이후 조선식 가마, 도자기 제작법과 여러 한류 예술을 배우고, 서녀라서 앞길이 막힌 조선 여인 영자를 꼬셔서 일본으로 귀국하고 그녀와의 사이에 애도 만든다.[6]

임진왜란이 끝나갈 즈음엔 노부나가를 배신한 데 대한 갈등과 침략전쟁의 좌절로 비참하게 늙어가는 히데요시를 옆에서 지켜보며, 쓸쓸히 죽어가는 히데요시의 최후를 장식하기 위해 다이묘들을 불러서 히데요시의 성공신화 인생을 재현한 쇼를 벌여 보여주면서 히데요시가 웃으면서 죽을 수 있게 해 준다.

히데요시 사후 유머나 예술의 여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시다 미츠나리를 싫어하게 되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에 가담하지만, 이에야스도 풍류를 받아들이는 척은 하나 그 본성은 검소하고 예술의 가치도 잘 모르는 터라 이에야스와도 거리감이 다소 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일전에 잠깐 가르친 적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빨리 가서 설득하라며 투석기로 코바야카와 히데아키의 진영에 던져진다. 그 결과로 히데아키가 이시다군 진영으로 돌진하며 전투의 승패가 갈린다.

중증의 진지병 환자이던 미츠나리는 최후의 순간에 비로소 후루타가 늘 강조하던 예술과 유머의 여유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개드립[7]을 치며 칼날을 받게 되고, 미츠나리가 남긴 다기[8]를 보고 미츠나리 자신의 쪼잔함을 다기 조각으로 표현해 놓은 것에 웃음을 터뜨린 후루타는 최후에 미츠나리에게 졌다는 걸 알고 씁쓸해한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는 일본 문화계의 거물로 성장하고 늙은이가 되어 재등장하는데, 격식과 사색을 중시하는 스승 리큐의 '코우' 및 자신이 창작한 여유와 일탈의 '오츠(오리베류)'가 사회의 주류이지만 전국시대를 모르고 태어난 새 세대가 과격함과 방종, 반사회 성향으로 치닫는 '가부키'라는 새 예술 유파를 만들어내 그의 오리베류 예술과 서로 충돌하게 된다.[9] 만민의 행복이야말로 여유와 유머를 중심으로 한 자신의 예술을 구현하는 것이라는 모토 하에, 자신의 영향력을 총동원해서 유혈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일본에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려고 한다.[10] 그 방법은 바로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의 혼인관계와 정치적 역할분담을 통한 일체화였다. 하지만 오해와 불운이 겹쳐서 사태는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된다.[11]

이에야스는 일부러 무뚝뚝하고 무자비한 냉혈한인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여유와 깊이를 가르치기 위해 강제로 후루타를 히데타다의 다도 사범으로 배속시켜버리는데, 당연히 전혀 안 맞는 성격이지만 히데타다의 바람기로 인한 삐걱이는 부부관계에 성공적으로 상담을 해 준 일로 둘은 급격하게 친해진다.

히데요시의 처 코다이인을 짝사랑하는 것으로 나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코다이인과 갈라놓고 거꾸로 요도도노와의 혼인을 몰래 주선해 두 가문의 완전 결합을 꾀하지만 성사되지 못하고, 결국 역사와 같이 낭인들의 책동 때문에 오사카 성 전투가 발발한다. 이 전투에 참전한 후루타는 대포를 쏘아넣어서 성 안의 인물들에게 겁을 주어 항복시키려고도 해 보고 온갖 수를 쓰지만 결국 성은 전멸한다. 단, 역사와 달리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그의 자손은 어찌어찌 탈출해 몰래 후손을 남기는 데 성공한다. 유명한 음모론인 히데요리 생존설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이때 아들인 시게츠구가 토요토미를 지키기 위해 내부에서 이에야스를 치려는 음모를 꾸미다 들키자 그를 위험시한 이에야스에게 일당으로 간주되어 할복을 명령받는다. 후루타와 사이가 좋던 히데타다는 어차피 죽어가는 이에야스를 죽이고 카게무샤를 준비하려고까지 하지만 후루타가 "내게 신경쓰지 마십시오"라는 유서를 남겨서 말리고[12], 할복하러 가면서 에도 시대의 무사 정장인 '카미시모'를 입고 마지막 패션쇼를 벌여 사람들이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사구나..."하고 가슴을 치며 감탄하게 만든다.[13] 한 술 더 떠 할복할 때의 카이샤쿠 역할로 본래 예정되어 있던 코보리 대신 이에야스 본인이 중병을 무릅쓰고 칼을 차고 나타난다.

그런데 정말로 할복해 죽으려던 찰나 스승인 센노 리큐가 자신의 죽빵을 때리는 환상을 보고, 이에 큰 깨달음을 얻고 그를 모방해 할복을 하면서 비명을 지르고 독한 방귀를 뀌어 진지충인 이에야스를 폭소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것으로 패배했음[14]을 깨달은 이에야스는 칼을 내려치지만......

그의 사후 지인, 친지들이 하나둘씩 죽고, 십수 년이 지나 폭삭 늙어버린 후루타의 수제자 우에다 소타츠는 그의 친지들이 별로 슬퍼하지 않는 것이나 소탈하던 그가 너무 무사답게 죽은 것을 수상히 여겨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오리베를 추억할 수 있는 지인인 마타베와 함께 그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데, 사카이와 사쓰마를 거쳐 도착한 머나먼 류큐 땅에서 멀리서 온 노인이 창작했다는 전위적인 예술품을 발견한다.[15][16] 그가 더 머나먼 남방으로 떠나갔다는 소문에 피식 웃으면서 "효게모노(괴짜) 녀석..."하고 돌아가는 것으로 만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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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옥색 청자와는 다르게 잎사귀나 말차의 것과 유사한 진한색이다.[2] 강항은 장시간 교토 및 사카이 언저리에서 비교적 느슨하게 포로로 잡혀 있어서 학술, 상업, 문화 계열 인사들과 접촉하며 그들을 관찰할 기회가 유독 많았다.[3] 2권 18석에서 상관인 히데요시가 보낸 하사품이 빈궁해서 마음에 들지 않자 순간적으로 지은 표정. 사실 이렇게 망가지는 장면들을 감안하더라도 작중에 등장하는 무장들중에선 꽤 미중년 축에 들어가는 작화로 그려졌다.[4] 후루타의 예술의 본질이 진지함이나 격조(갑, 코우)가 아니라 유머와 여유, 뒤틀림(을, 오츠)이라는 것.[5] 리큐의 단아함과 절제, 진지함을 위주로 하는 무사의 예술을 '갑(코우)'이라고 하고, 유머와 일탈, 재미를 위주로 하는 후루타의 예술은 '을(오츠)'이라고 표현된다. 리큐는 실용성(와타리)과 심미성(케이)의 비중을 6:4로 맞췄는데, 후루타는 이것을 4:6으로 재조정한다.[6] 훗날 이 아이가 "노기" 가문에 입양되어 "마레스케"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는 걸 보면, 조선인과의 혼혈인 이 아이가 아이러니하게도 구 일본군 장군 노기 마레스케의 조상이 될지도 모른다. 창작이지만.[7] 사형 직전에 목이 마르다고 하자 간수가 '물은 없는데 이거라도 먹을 것이냐'하며 곶감을 내미는데, 곧 죽을 몸인 주제에 '곶감은 가래에 안 좋아서 안된다'라고 받아쳐서 간수들을 실소하게 만든다.[8] 후루타에게 고별 선물로 받은 차통을 이게 무슨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집어던져 놓고서, 그것을 아주 잘게 조각내어 집요하게 짜맞추고 다시 죽기 전에 후루타에게 전달했다.[9] 실제 가부키를 창시한 인물 이즈모노 오쿠니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예술을 창작하는 유파라기보다는 일종의 폭주족이나 반역자 갱 집단처럼 묘사된다. 오쿠니는 작중에서 다테 마사무네의 정부가 되는 등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여걸로 활약한다.[10] 재밌는 건, 스승인 센 리큐는 자신의 예술을 구현하겠다며 이것과는 정반대의 일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예술관을 세상에 퍼뜨리기 위해서 정치적 음모와 유혈사태, 분쟁을 조장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11] 실제 역사에서 후루타는 애초부터 도요토미 계의 인물이었는데다가 다도라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위력을 가진 커넥션을 가진 것이 위험시되어서 도요토미 가문이 멸망할 때 할복을 명령받고 멸문당한다.[12] 작중에서 그의 스승인 리큐도 할복을 할 당시 반역을 무릅쓰고 리큐의 구출을 꾀하는 호소카와 타다오키, 가모 우지사토등의 제자들에게 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겨 말린바 있다.[13] 작중에서는 후루타가 이 옷을 창시한 것으로 나오는 것이다.[14] 도요토미는 후루타의 작품을 보고 웃은 뒤 웃었으니 자기가 졌다면서 포상을 했고, 그 뒤로 이 만화에서 상대의 유머에 웃어버리는 건 패배(...)로 취급된다. 유머의 가치를 모르는 이시다 같은 상대가 친 드립에 웃어버렸든가, 이에야스 같은 진지충이 그만 상대의 유머에 웃어버렸든가.[15] 히데요리가 그랬듯이 도쿠가와가 몰래 그를 살려주었고, 류큐 땅으로 도망쳐 유유자적 자신이 하고 싶었던 창작을 하다 늙어 죽었다는 의미. 이에야스는 죽기 전에 발신인 불명의 서찰을 읽으며 시종에게 "냄새가 생각났으니 차를 주게"하고 쿡 웃는데, 독한 방귀를 뀌어대 그를 웃긴 장본인인 후루타가 도피처에서 안부를 전하는 서찰일 것이다.[16] 이에야스가 도미 튀김을 먹고 죽었다는 고사를 반영해 건강에 나쁘다는 시종의 만류를 무릅쓰고 "도미 튀김을 다오"라고 조르면서 죽는데, 죽으면서 건강 드립을 쳐서 도쿠가와군을 웃긴 이시다와 필사적 조크로 그를 웃긴 후루타에 대한 존경을 담아 진지충인 그가 마지막 농담을 남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