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위상 및 파급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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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S.E.S.의 위상 및 파급력을 정리하는 문서.
S.E.S.는 1세대 걸그룹을 대표하는 한 팀으로서 음반 판매량, 1위, 수상, 공식 팬클럽 외 수치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지표에서 수많은 기록을 써 내려갔지만, 이러한 수치적인 지표를 넘어 사회 여러 분야에서 큰 위상을 보유하며 큰 파급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아래 서술되어 있는 내용에서 알 수 있 듯이, 위상과 파급력은 가요계를 넘어 각 여러 사회 분야에 발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가요계[편집]
2.1. 20년 만에 걸그룹 계보[편집]
S.E.S.가 해체를 선언했던 2002년 이후 가요계에는 한동안 걸그룹 암흑기라고 불릴 정도로 딱히 큰 반향을 일으키거나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인기를 얻는 걸그룹이 전멸한 상태였다. 그러다 2007년 2세대 걸그룹의 양대산맥인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등장하여 큰 인기를 얻으며 다시 한번 걸그룹 신드롬이 일어났다. 침체된 걸그룹 시장이 다시 살아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런데 S.E.S.는 이들보다 훨씬 오랜 기간인 무려 20년만에 걸그룹 암흑기를 깨고 걸그룹 역사를 써내려갔다.
S.E.S.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요계에서 큰 인기를 얻거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는 걸그룹의 부재는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만큼 걸그룹의 암흑기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다.참고 기사 S.E.S.를 시작으로 확립된 걸그룹은 아니지만 이전에 그나마 괄목할만한 큰 성과를 냈던 걸그룹이라고 하면 1968년에 데뷔해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 걸그룹 최초로 가요대상을 수상한 펄 시스터즈, 1978년 데뷔해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 중창부문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희자매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후 한국 대중 음악사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걸그룹의 부재는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나마 소녀형 걸그룹을 표방하고 나왔던 세자매, S.O.S, 애플 등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데 실패하고 얼마 안 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만 했다. 이런 칠흑 같은 20년이라는 세월을 걷어내고 걸그룹이 큰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S.E.S.의 등장이었다. 당시 각종 언론들은 S.E.S.에게 이전 세대의 걸그룹들과 견주며 다시 한번 촉발된 걸그룹 전성시대를 재확인했다.
2.2. 성공 후 3인조 걸그룹 범람[편집]
S.E.S. 등장 이전에도 3인조로 구성된 트리오 걸그룹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 수가 절대적으로 넘쳐나는 건 아니었다. S.E.S.가 큰 성공을 거두고 난 후 가요계에는 제2의 S.E.S.를 노리며 3인조로 구성된 걸그룹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범람하기 시작하였다.
한스밴드, 쿠키, 클레오, 씨유, 아이다, C.O.C, SZ, 가이, 티니, 투야, 걸프렌드, 민트, 키스, 데이지, 티키, 스위티, 신비, 러브, 아이다, F.O.X(이상 총 20팀)등 모두 S.E.S.가 큰 성공을 거둔 후 음악시장에 문을 두드린 3인조 걸그룹들이다. 하루 아침에 사라진 그룹과 그 이후에 나온 그룹[1] 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3인조 걸그룹 붐 현상은 모든 그룹이 지양하는 음악이나 콘셉트가 S.E.S.와 동일했다는 게 아니다.[2][3] 다만 그 당시 대세를 이끄는 그룹의 구성이 다른 팀을 꾸리는 데 영향을 준 것만큼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먼저 나와서 성공이라는 검증을 받은 상품을 토대로 시장에 내놓는 것만큼 안전한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만큼 수요가 증명 됐기 때문이다. 2세대 대표 걸그룹 소녀시대가 큰 성공을 거둔 후 다인원으로 데뷔하는 걸그룹이 넘쳐날 정도로 대세 된 것도 이러한 벤치마킹 사례의 좋은 예시다.
3. 방송계[편집]
3.1. 지상파 저녁 메인뉴스에 단독 소식으로 보도[편집]
1998년 11월 9일 월요일 SBS '저녁 8시 뉴스'에 S.E.S.의 일본 진출 소식이 단독[5] 소식으로 보도됐다. 걸그룹이 단독 소식만으로 지상파 저녁 메인 뉴스에 보도되는 것은 최초였다.
당시 10대 아이돌 스타였던 S.E.S.는 주로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등의 소식이 보도되는 뉴스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인물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문화계 인물이고 문화계 인물 조차도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나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웬만해서는 벽을 뚫기 힘든 곳이다. 더군다나 연예인 그 중에서도 10대 아이돌 스타에겐 더더욱 그렇다. 시간대가 저녁 메인 시간대라면 그 벽은 더 높아진다.
지상파 뉴스 시간대는 주로 아침, 정오, 오후, 저녁, 새벽 시간대로 나뉘는데 그 중에서도 저녁 시간대는 꽃이라 할 수 있다. 뉴스의 주 시청자인 중장년층이 퇴근하고 집에서 뉴스를 시청하는 황금 시간대이기에 하루의 여러 뉴스 시간대 중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당시 고작 10대 아이돌 스타에 불과했던 S.E.S.의 소식이 문화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단독 보도됐다는 것은 단순히 10대 아이돌 스타를 넘어서는 큰 의미를 가진다.
당시 일본문화 정책개방이 사회적으로 크게 대두되고 있는 시기였는데, 일본에 진출한 S.E.S.는 팬과 대중, 언론 너나 할 거 없이 일본문화와 견주어도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하였다. 때문에 일본 데뷔 소식 자체가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고 많은 기대를 받고 있었기에 보도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역대 아이돌을 통틀어서 아이돌 가수의 단독 소식만으로 지상파 저녁 메인 뉴스에 나온 사례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극히 적다. 특히 걸그룹이라면 더욱더 그렇다.[6][7]
3.2. 활약상을 조명하는 지상파 예능 코너 편성[편집]
2015년 1월 18일, MBC 해피타임에서는 스타열전 코너 주인공으로 S.E.S.를 집중 재조명하는 약 13분 가량의 방송을 내보내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스타의 활약상만 다루는 해당 코너에서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등장하였다.[8]
2000년대 중반 정도 MBC에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와 비슷한 포맷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스타들의 과거 활약상을 집중 조명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까지 포함해도 걸그룹이 지상파 프로그램을 통해서 과거의 활약상이 단독으로 집중 조명받는 내용이 방송은 S.E.S.가 최초이자 유일하다.[9]
3.3. 지상파 단독 특집 프로그램 편성[편집]
모바일 동영상 앱 oksusu를 통해 2주간 총 10회로 방송된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1시간 분량으로 편집되어 2016년 12월 24일 MBC에서 방송되었다. 모바일 앱으로만 공개 예정이었던 해당 프로그램은 S.E.S. 브랜드 파워로 지상파에 특별편성 됐다.
걸그룹의 이름을 내세운 지상파 특집 프로그램이 편성되는 사례는 소녀시대 이후 역대 두 번째이며, 1세대 걸그룹으로서는 최초이자 2024년 현재까지도 유일하다. 또한, 걸그룹이 해체 및 활동 종료 후 자신들의 이름을 내세운 지상파 특집 프로그램이 편성된 것도 최초이자 2024년 현재까지도 유일하다.
역대 모든 여자 연예인을 통틀어서 자신들의 이름을 내세운 지상파 특집 프로그램이 편성된 사례는 배우 김희선, 2세대 걸그룹 걸그룹 소녀시대, 1세대 걸그룹 S.E.S. 총 세 팀만 존재할 정도로 희귀한 기록이다.[10]
4. 연예계[편집]
4.1. 같은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화제[편집]
데뷔 당시 S.E.S.는 같은 연예인들 내에서도 큰 이슈거리였다. 팬을 스스로 자처해서 직접 대기실에 찾아가거나 사인을 받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 하였다. 한 마디로 연예인의 연예인이었던 셈.
5. 문화계[편집]
5.1. 성별과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편집]
데뷔 당시 S.E.S.를 어떻게 읽고 인지 유뮤에 따라서 세대와 성별을 구분한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얼핏 들으면 왜?라고 물음표가 지어질 수 있지만 들어보면 그럴싸하다. S.E.S.를 발음법 '세스'라고 읽으면 구세대고 알파벳 '에스이에스'라고 읽으면 신세대며, S.E.S.를 모르면 남자도 아니고 미디어와 담을 쌓은 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S.E.S.를 모르면 화젯거리에서 제외되고, 이들을 알아야만 유행을 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S.E.S.의 등장이 얼마나 파급력이 컸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5.2. 국가 행사를 대표하는 국민 아이돌로서의 위상[편집]
데뷔하고 6개월 남짓 '전 세계에 송출되는 대한민국 홍보 CF 모델로' 각계 각층의 대표 인물들이 발탁되었는데 연예인 모델 중 '걸그룹으로서는 S.E.S.가 유일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로 발탁'되었다. 한국인에게는 잊지 못할 레전드 월드컵으로 남아있는 '2002 한일 월드컵을 홍보하는 대표 모델을 인터넷 여론조사로 선정'하였는데, '여자 가수로는 가장 많은 득표수를 얻어 홍보대사로 발탁' 된다. 함께 치러질 '일본 홍보용 CF 대표 한국 모델로도 발탁'되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젊은 층의 투표 독려를 위하여 S.E.S.를 이미지를 차용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선거만화홍보가 전국적으로 발매될 정도'였다.
5.3.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오찬에 초대[편집]
2000년 8월 22일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이 일본 마지막 체류날 일본 현지에 진출해서 활동하고 있는 대중가수들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 S.E.S.는 김연자, 계은숙, 이수만등과 함께 초대되었다.
6. 메이크업계[편집]
6.1. 투명 메이크업 유행 주도[편집]
1990년대 연예계의 메이크업 트렌드는 주로 피부 표현은 매트하게, 눈썹은 갈매기 모양으로, 눈은 진한 아이라인과 색조 섀도우로, 입술은 원래 라인보다 두껍게 그리고 꽉 채워놓는 것이었다. 그 당시 베이비복스, S.O.S, 애플 등의 걸그룹들도 무대에서 이러한 메이크업을 하고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S.E.S.가 무대에 보여준 메이크업은 이와는 완벽하게 반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강한 아이라인과 형형색색의 섀도우, 두꺼운 립라인과 브라운 립색, 강한 셰이딩 등은 과감하게 걷어냈다. 화장은 최소한으로 하고 입술은 립글로스나 챕스틱 정도만 할 정도로 10대 소녀 본연의 폿풋한 매력을 한껏 살렸다. S.E.S.가 선보인 이런 투명 메이크업은 그 이후 걸그룹들의 메이크업을 바꿔놨으며, 더 나아가 연예계 전반적으로 투명 메이크업으로 유행이 개편되는 계기가 되었다.
7. 주식계[편집]
S.E.S.는 대형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H.O.T.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음반 판매 수익을 가져다주었고, H.O.T. 해체 이후에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음반 판매 수익 일등공신이었다. 음반 판매뿐 아니라 공식 팬클럽, 광고 등 다방면의 활약에서도 황금알을 낳아주는 효녀였다.
S.E.S.가 캐시카우로서 가지고 있던 힘은 해체 발표 후 바로 지표를 통해 나타났다. 다음 날 주가가 무려 6.5% 하락한 것이다. 걸그룹은 돈이 안 된다는 통념을 깨고 기획사의 캐시카우 가 될 수 있으며, 그들의 작은 행보 하나만으로도 회사의 기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최초의 사례라 할 수 있다.
8. 교육계[편집]
교과서에 1990년대 K-POP을 대표하는 인물로 등재.
8.1. 천재교과서 중학교 통합 음악 교과서에 수록[편집]
2018년 천재교과서가 출판한 중학교 1~3학년 음악 통합 교과서에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1990년대를 대표하는 K-POP 인물로 사진이 실렸다. 또한 1990년대를 대표하는 노래 중 하나로 이들의 데뷔곡 I'm Your Girl이 걸그룹 노래로는 유일하게 소개됐다.
8.2. 동아출판 중학교 1학년 음악 교과서에 수록[편집]
2018년 동아출판이 출판한 중학교 1학년 음악 교과서 52페이지에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김건모,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1990년대를 대표하는 K-POP 인물로 사진이 실렸다.
9. 글로벌 위상[편집]
9.1. 韓 여자 가수 최초로 美 billboard에 소개[편집]
1999년 5월,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잡지 billboard는 IMF 한파에도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S.E.S.의 활약상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billboard에 한국 가수가 소개되는 것은 신승훈 이후 두 번째이자, 여자 가수로서는 최초였다.
9.2. 취재를 위해 외신들의 방한 세례[편집]
2000년 3월 19일 개최한 첫 단독 콘서트 《A Sweet Kiss from The World of Dream》에는 취재를 위해 일본 외신 기자들 60명, 대만 외신 기자들 40명 총 100명의 외신 기자들이 방한했다. 걸그룹을 취재하기 위해 외신 기자들이 대규모로 한국까지 방문한 사례는 최초였다. 아시아에서 인기와 위상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9.3. 韓 가수 최초로 한중일 삼개국어 기자 회견 실시[편집]
2000년 3월 19일, 첫 단독 콘서트 《A Sweet Kiss from The World of Dream》 성료 후 일본, 대만 기자들과 함께 한국어·일본어·중국어로 질의응답 기자회견을 실시하였다. 한국 가수가 한국어·일본어·중국어로 기자회견을 실시하는 것은 최초였다.
9.4. 그 외[편집]
韓·中·日 문화 가교자 역할.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많은 팬을 보유한 그룹답게 팬들 사이에서도 이색적인 교류가 피어났다. 한국 팬은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팬은 한국어를 배우고, 대만과 중국 팬은 한국어와 일본어를 배우며 비록 국적과 문화는 다르지만 서로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은 스타를 응원하는 양상이 펼쳐진 것이다.[11] 비록 각 국가들 간의 역사적, 정치적 이념 대립은 있을 지 몰라도 S.E.S.는 그 사이에서 아시아 팬들을 이어주는 문화적 가교를 놓으며 서로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이해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1] S.E.S.가 활동한 2002년까지 기준으로 정리한 것이며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져서 포함되지 않은 그룹도 있을 정도다.[2] 이 중에서 투야가 멤버 구성과 일본 진출 마케팅 등에서 가장 유사했으며 포스트 S.E.S.로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3] 클레오는 데뷔 초기 S.E.S.의 이미지나 콘셉트 등을 노골적으로 벤치마킹했다.[4] 기사 본문은 삭제 되었다.[5] 다른 가수들이나 분야와 함께 묶어서 보도됐다는 게 아니라 오직 S.E.S. 소식만 단독으로 보도 됐다는 것을 말한다.[6] 베이비복스의 중국 공연과 관련된 인터뷰가 MBC 뉴스데스크에 나온 적은 있지만 단독 소식은 아니었다.[7] 원더걸스가 2007년 당시 <Tell Me> 신드롬으로 SBS 저녁 8시 뉴스에 단독 소식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해당 영상[8] 해피타임과 방영 시기와 포맷이 엇비슷하고 각각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 아침 시간대라는 점이 겹쳤던 KBS2 세대공감토요일은 라이벌 스타를 엮어서 재조명 하는 코너는 있었지만 스타 단독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없었다.[9] 2019년, 핑클이 캠핑클럽으로 컴백한 후 MBC ON에서 '접속하시겠습니까? 핑클'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성기 당시 이들이 MBC에 출연했던 방송분을 편집해서 재방송해준 적은 있지만 앞서 서술된 것처럼 지상파가 아니다.[10] 예능 형식이 아니라 콘서트 형식의 특집 프로그램까지 포함하면 송가인도 꼽을 수 있다.[11] S.E.S.가 2001년 2월 23일 MBC 웹 투나잇에 출연해서 직접 밝힌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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