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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能寔(能植)/能式?
생몰년도 미상
1. 개요[편집]
후삼국시대 고려왕조의 개국공신. 대부분의 나말여초의 인물들이 다 그렇듯(...) 능식도 제대로 된 기록은 없으며 고려사에 이름이 몇번 언급될 뿐이다.
능식이 이름만 적힌 것인지 성씨인지는 불명.[1] 당대에는 신라 및 삼국 출신의 왕족, 귀족이 아닌 이상 명가 호족들도 성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2. 행적[편집]
고려 태조 천수 원년(918년) 가을 7월 임신일 광평랑(廣評郞)에서 순군낭중(徇軍郞中)으로 임명됐다.
8월 신해일 능신은 태봉의 폭군 궁예를 폐위시킨 논공행상으로 견권(堅權)·권신(權愼)·염상(廉湘)·김락(金樂)·연주(連珠)·마난(麻煖)과 이등공신으로 책봉되고 금은으로 만든 그릇, 채색 비단옷, 화려한 이부자리, 능라와 포백을 차등 있게 하사받았다.
마군장군 재직시 도안군(道安郡)[2] 에서, 청주가 은밀히 후백제와 내통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알려왔으므로, 태조가 능식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하도록 하여 청주에서는 반란을 일으킬 수 없었다.
천수 10년(927년) 4월 해군장군 영창(英昌)과 같이 수군을 지휘해 강주(康州)를 공격하여 약탈 노획하고 귀환한 동명이인 능식(能式)이 그와 동일인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사서의 기록은 영 좋지 않지만 역성혁명에 참여한 7명의 2등 개국공신으로써 고려왕조 초기 군부의 중추인 순군부의 요직에 임명되고 기병대의 장군인 마군장군(과 수군장군)까지 역임할 정도면 호족 출신 무장 지휘관으로써 나름 당대의 저명한 고관대작 겸 훈신 숙장이었을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현존하는 기록이 거의 없는 것이 영 아쉬울 따름.
[1] 1등 공신인 신숭겸은 원래 이름이 능식과 비슷한 능산이었는데, 이후 평산 신씨의 시조가 되면서 성이 생기고 이름을 개명했음에도 고려사 기록은 능산으로 되어있다.[2] 현 충청북도 괴산군 도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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