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찬
덤프버전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법조브로커 이동찬에 대한 내용은 정운호 게이트 문서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기업인. 호는 우정(牛汀)이다. 본관 여주(驪州).
1922년 4월 1일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 우각리(현 포항시 북구 신광면 우각리)에서 아버지 이원만과 어머니 경주 이씨 이위문(李渭文, 1901 ~ )[5] 사이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코오롱그룹 창업주이자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냈던 이원만이다. 일본 명문 와세다대학에 입학하고 졸업 직후인 1944년 1월 조선학도특별지원병으로 입대하였다.
1977년부터 이원만의 뒤를 이어 코오롱그룹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직전에 코오롱그룹 승계를 놓고 막내 숙부 이원천(李源千, 1914. 4. 9 ~ )[6] 과 갈등이 있었다.
이 무렵, 이동찬은 코오롱그룹을 기업공개(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주식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코오롱그룹의 주주가 된 장영자와 친분을 맺게 되었다. 그리하여 장영자와 식사도 자주 하고 골동품 구경도 하였다. 참고로 이동찬의 취미는 골동품 수집이었다. 장영자와 친해지면서 1982년 5월경 이동찬은 장영자에게 코오롱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코오롱건설을 팔려고 하였다. 그런데 팔기 직전 장영자가 검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바람에 다행히 이동찬은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으로 기소되는 화를 면하였다. 당시 이동찬 회장도 검찰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았는데, 사기 사건에 직접 얽힌 것은 아니지만 장영자와 접촉한 것 자체는 사실이므로 참고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끝난 듯.
1995년 12월 아들 이웅열에게 코오롱그룹 회장직을 물려주고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되었다. 이듬해인 1996년부터 1998년까지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수상 경력으로는 1984년 제16회 한국의 경영자상, 2003년 제3회 서상돈상 본상 등이 있다.
스포츠에도 관심이 있었던지 1971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실업농구연맹 회장, 1980년부터 1983년까지 대한농구협회 회장, 1985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골프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2014년 11월 8일 별세하였다.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기업인. 호는 우정(牛汀)이다. 본관 여주(驪州).
2. 생애[편집]
1922년 4월 1일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 우각리(현 포항시 북구 신광면 우각리)에서 아버지 이원만과 어머니 경주 이씨 이위문(李渭文, 1901 ~ )[5] 사이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코오롱그룹 창업주이자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냈던 이원만이다. 일본 명문 와세다대학에 입학하고 졸업 직후인 1944년 1월 조선학도특별지원병으로 입대하였다.
1977년부터 이원만의 뒤를 이어 코오롱그룹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직전에 코오롱그룹 승계를 놓고 막내 숙부 이원천(李源千, 1914. 4. 9 ~ )[6] 과 갈등이 있었다.
이 무렵, 이동찬은 코오롱그룹을 기업공개(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주식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코오롱그룹의 주주가 된 장영자와 친분을 맺게 되었다. 그리하여 장영자와 식사도 자주 하고 골동품 구경도 하였다. 참고로 이동찬의 취미는 골동품 수집이었다. 장영자와 친해지면서 1982년 5월경 이동찬은 장영자에게 코오롱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코오롱건설을 팔려고 하였다. 그런데 팔기 직전 장영자가 검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바람에 다행히 이동찬은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으로 기소되는 화를 면하였다. 당시 이동찬 회장도 검찰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았는데, 사기 사건에 직접 얽힌 것은 아니지만 장영자와 접촉한 것 자체는 사실이므로 참고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끝난 듯.
1995년 12월 아들 이웅열에게 코오롱그룹 회장직을 물려주고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되었다. 이듬해인 1996년부터 1998년까지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수상 경력으로는 1984년 제16회 한국의 경영자상, 2003년 제3회 서상돈상 본상 등이 있다.
스포츠에도 관심이 있었던지 1971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실업농구연맹 회장, 1980년부터 1983년까지 대한농구협회 회장, 1985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골프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2014년 11월 8일 별세하였다.
3. 여담[편집]
- 이복동생으로는 이동보 전 코오롱TNS 회장이 있다.[7]
- 우리나라 전체 재벌가문 인사들중 극히 드문 참전용사. 6.25전쟁중에 경찰에 자원입대하여 대구경찰서 경북지역 특경대장(전투경찰대장)으로 죽음의 위기를 넘기며 공비 토벌작전 대장으로 공훈을 세웠다. 1992년에 발간한 회고록 [벌기보다 쓰기가 , 살기보다 죽기가]에 관련 에피소드가 나온다.
4. 둘러보기[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3 11:23:31에 나무위키 이동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