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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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1959년 출생
- 2020년 사망
- 간암으로 죽은 인물
- 나주 정씨(丁)
- 안양공업고등학교 출신
- 연세대학교 출신
-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대한민국의 축구감독
- 부산 아이파크/은퇴, 이적
- 부산 아이파크/역대 주장
- 원클럽맨/축구
- 부산 아이파크/역대 감독
- 감독 대행/축구
- 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
- 1980 AFC 아시안컵 쿠웨이트 참가 선수
- 1988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1988 서울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
-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병역특례자/축구
- 세컨드 스트라이커
- 윙어
- 공격형 미드필더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출신 감독. 포지션은 공격수 또는 미드필더였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1983년 개막한 K-리그에 실업 구단 대우 로얄즈 선수로 뛰었으며, 프로 전환 후 1986년 득점왕, 1987년 MVP에 뽑혔다. 1991년 은퇴할 때까지 대우 로얄즈에서만 뛰었다.
2.1.1. 1986년 2경기 연속 해트트릭[편집]
10월 19일 대우-유공전에서 4:3 승리를 이끄는 해트트릭을 작성하더니 사흘 뒤 10월 21일 한일은행전에서도 해트트릭에 성공했다. 연속 해트트릭에 힘입어 정해원은 총 10골로 86년 득점왕에 올랐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그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활약하기도 했는데, 58경기에 나와 21골을 넣었다. 1980년 AFC 아시안컵[4] , 1988년 하계 올림픽[5] , 1988년 AFC 아시안컵[6] 과 1990년 FIFA 월드컵[7] 에 출전했다.
1980년 아시안컵 4강전인 북한과의 경기에서 경기 막판 두 골을 몰아치며 기적같은 역전승을 만들어내며 일약 국민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결승전에서는 쿠웨이트에게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2.3. 플레이 스타일[편집]
균형잡힌 체격에 빠른 발과 득점력을 겸비한 측면 공격수. 주로 투톱의 중앙 공격수나 윙포워드로 출전했다. 보디밸런스가 유달리 좋아 체격이 큰 수비수들에게 거칠게 마크당해도 좀처럼 쓰러지지 않았고 볼을 받으면 멈추지 않고 바로 진행시켰다. 수비 가담도 좋았기에 미드필더로 활약하기도 했다.
3. 은퇴 이후[편집]
1994년 성적 부진으로 해임된 조광래 감독을 이어 대우 로얄즈 감독 대행에 선임되었다. 월드컵이 끝난 직후 약 두 달 동안 팀을 이끌었고, 9월에 김희태 감독에게 자리를 내주며 팀을 떠났다.
이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으로 부임해 활동하다가, 1998년 이회택 감독의 부름을 받아 전남 드래곤즈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약 3년 간 재임하다가 2001년 팀을 떠났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자신의 이름을 딴 정해원 축구 교실을 운영하다가, 2008년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스카우터로 1년 간 활동했다.
4. 사망[편집]
2020년 5월 1일 간암으로 사망했다. 2019년 가을부터 복수가 차오를 정도로 증세가 심해졌고 사망 사흘전인 4월 28일에 입원했는데 결국 5월 1일 0시 42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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