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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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원
申昌源

파일:attachment/신창원/신창원.jpg

출생
1967년 5월 28일 (56세)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74cm, 74kg
학력
중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합격)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합격)
가족
5남매 중 넷째(3남)
형량
무기징역(강도치사죄)
징역 22년 6개월(도주죄 등)[1]
현재지
대전광역시 유성구 진잠동 대전교도소[2]

1. 개요
2. 생애
2.1. 유년 시절
2.2. 범죄자의 길
2.4. 사건 이후 근황
3. 발언
4. 대중매체
5. 여담
6. 같이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범죄자.

1997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일명 한국판 쇼생크 탈출로 불리우는 희대의 탈옥수이며, 탈옥한 이후로 무려 907일 동안 잡히지 않고 지내다가 1999년 7월 16일 어느 한 시민의 제보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의 탈옥과 도주가 워낙에 충격적이었고 거기에 세기말 분위기와 겹쳐서 신창원 신드롬이라는 문화현상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탈옥 이전에 강도치사죄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고, 탈옥 이후에는 오랜 기간 동안 절도, 주거침입 등 여러 범죄를 범하며 도망 다니다가 다시 체포된 뒤 도주죄[3]으로 징역 22년 6개월 추가되었다.[4]

2. 생애[편집]



2.1. 유년 시절[편집]


파일:신창원 유년기.jpg
초등학생 시절의 신창원

1967년 5월 28일 전라북도 김제군 금구면(現 김제시 금구면)에서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린 신창원에게는 지독한 가난도 고통이었지만, 어머니가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견딜 수 없는 슬픔이었다. 아버지 역시 부인을 잃은 슬픔으로 도박과 술에 빠져 지냈지만 얼마 후 20대 후반~30대 초반 정도의 후처와 그녀의 아들을 집에 들였다. 하지만 신창원의 동생이 아파서 신창원이 약을 사달라고 하자 계모는 신창원을 꾸짖고 막상 자신의 아들은 과일 등을 깎아주었다고 한다. 다음 날 신창원은 칼을 들고 '학교 다녀오기 전까지 안 나가면 죽여 버린다'며 협박했고 계모는 죽은 전처(신창원의 친모)의 패물을 모두 들고 도망갔다. 아버지는 평소에 엄한 성격이라 신창원이 잘못을 저지르면 폭행을 했고 신창원은 아무 말 없이 며칠 나갔다 들어왔다고 한다. 계모가 나간 그날도 폭행이 있었다.

범죄자가 된 것은, 본인 주장에 따르면 남양국민학교 5학년 때 선생으로부터 "XX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5]라는 막말을 듣고 큰 상처를 받은 것이 계기라고 한다.

어쨌건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그때 자신의 마음 속에서 악마가 태어났다'. 결국 학교 생활에서도 학우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였었고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신창원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출을 시작했었으며, 결국 중학교에 진학한 지 3달 만에 퇴학당했다.

가난, 가족의 죽음, 아동 학대, 가정폭력, 교사폭력, 언어폭력을 모두 겪은 암울한 인생을 살았다. 물론 이러한 일들을 겪었다해도 신창원이 저지른 범죄는 정당화 될 수 없다.[6] 그러나 사회 질서적인 면에서 정당화되기는 어렵더라도 충분히 인간인 이상 교화의 여지는 있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이 그 여지를 없앤 것.


2.2. 범죄자의 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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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불우했던 환경은 점점 신창원을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만들었으며,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남의 밭과 가게에서 먹을 것을 훔쳐먹고 동네에서 닭서리나 수박서리를 상습적으로 하기 시작한 게 도둑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는 달리기가 빨라 도망치면 아무도 못 잡았다고 동네사람들이 전한다. 또한 무작정 멀리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나무 위에 올라가 숨어서 추적자의 동향을 살피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경찰서에 처음으로 끌려간 때가 14살 때였다. 어느 날 좀도둑질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이때까지는 신창원을 범죄자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창원의 아버지는 아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답시고 경찰관들도 훈방 조치한 신창원을 굳이 다시 끌고 와서 소년원에 넣어 달라고 사정을 하여 잡아넣었다. 다른 부모들은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면 보통은 풀어주거나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는데, 이 경우는 특이한 사례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의도야 정말 좋은 뜻이었는지 어떤지 몰라도[7] 이 때문에 신창원의 인생은 제대로 망가졌다. 소년원을 다녀온 일을 계기로 감옥에 한 번씩 갔다 올 때마다 그의 범죄는 나날이 대담해졌으며, 결국에는 강력 범죄까지 저지르게 되었다.[8]

신창원은 어릴 때부터 싸움을 잘 했다.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했고,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9] 성격이었다. 이에 복싱을 배워 걸핏하면 남의 싸움판에 느닷없이 끼어드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다 한 번은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한 일이 있었는데, 합의금으로 줄 돈이 없어 후배들과 함께 돈 있어 보이는 아무 잘못 없는 행인을 협박해 돈을 뺏기도 했다.[10]

이후 서울에서 고향 선후배 4명과 모의해 슈퍼마켓과 금은방 등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다 1989년 3월 28일에 공범 김양훈이 문구점을 운영하는 피해자를 살해하게 된다.[11] 다른 일당 4명은 닷새 뒤인 4월 1일에 다 체포되었지만 신창원은 총상을 입고도 도주에 성공했고 반년 뒤에야 간신히 체포되었다.

이후 강도치사죄무기징역을 받고,[12] 부산교도소에서 복역한다.


2.3. 탈옥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창원 탈옥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 사건 이후 근황[편집]


청송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신창원은 공부를 시작해 2004년 중졸, 고졸 검정고시에 연이어 합격해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사건 이후 한동안 모범수로 잘 지내고 있는 모양. 한때 개신교를 믿은 적이 있었으나, 개신교 측의 문제로 냉담자가 된 듯하다.

2010년 6월에 강력범을 수감하는 청송 2교도소에서 일반 교도소인 제1교도소로 이감되었다고 하며, 상담사 자격증을 목표로 감옥 내에서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고 한다. 2011년에는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학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감옥에서 주고 받은 편지들을 보면 매우 논리적이고 지적인 문장과 내용이 인상적이다. 법을 공부해서 국가와 교도소장을 상대로 4건의 소송을 제기했는데 승소했다.

2011년 8월 18일 감방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했다. 시도 이유는 1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고 한다. 신창원은 복역 초기엔 자신에게 신경쓰지 않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으나, 다시 감옥에 들어간 뒤로 그를 찾아온 건 아버지 뿐이었다고 한다. 신창원은 극심한 저산소증으로 상당히 위중했으나 얼마 후 의식을 회복했고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늦게 발견된 탓에 뇌손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 8월 22일, 그가 지난 1월에 한국의 교도소 행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낸 편지를 문성호 자치경찰연구소장에게 보냈다는 기사가 실렸다. 관련 뉴스 문 소장은 이 때문인지, 아버지의 죽음보다 장기수에 대한 절망적인 수용 실태 때문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신창원의 편지

이후 광주교도소로 이감됐으며, 2021년 5월 기준으로 상담 공부를 하는 것이 밝혀졌다. 꿈이 소년범들을 상담해서 더 이상 범죄를 막는 것이라고 한다. 교도소를 나갈 수 없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다고. 또한 쉽고 편한 길을 택해 범죄의 길을 들어선 것이 안타깝고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1 #2[13]

한편 2000년대 초반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이후론 몸상태가 많이 나빠져서 현재는 교도관이 대놓고 도와줘도 탈옥이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언급했다.

2023년 5월 21일 오후 8시경에 대전교도소에서 자살을 시도하다가 교도관에게 발견돼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직원의 신속한 대처로 생명엔 지장이 없는 상태이다. #

2023년 5월 25일 자살을 시도했던 신창원은 사흘 만에 치료를 마치고 대전교도소로 복귀했다.#


3. 발언[편집]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 하고 머리 한 번만 쓸어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XX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 속에 악마가 생겼다.

신창원 907일의 고백 中


난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부럽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사는⋯

신창원의 일기장 中


저 같은 범죄자가 다시는 없게, 사회와 가정에서 문제아들에게 사랑을 주십시오.[14]


안녕하세요? 편지 잘 받았습니다. 이틀 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만, 사형도 부족한 중죄를 지은 죄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모두 자기 변명에 불과할 뿐이지요. 저는 그저 이곳에서 조용히 속죄하며 남은 생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신창원 드림.

2020년 10월 8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1' 방송에서 신창원이 보낸 편지 내용


이제 교도관이 대놓고 도와주어도 탈옥 못합니다

허리디스크 수술 받은후


4. 대중매체[편집]


일부 팬들 사이에선 검거 당시 SBS에서는 카드캡터 체리 1기 7화를 방영하다가 이 소식을 속보로 보도하면서 해당 분량의 대부분이 방송되지 못했다는 설이 있으나, 모 유튜버가 TJB 방영 당시 녹화본을 공개하면서 사실무근으로 보인다. 실제 신창원 검거 시점은 오후 5시 20분경, SBS에서 검거 속보를 처음 띄운 날짜는 5시 24분, 뉴스속보 편성은 25분 뒤였다.[15](한국경제신문 기사)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020년 10월 8일자 방영분에서 신창원의 근황이 공개되었다. 이 방송을 통해 아직까지도 심리학을 공부함과 동시에 같은 재소자들의 심리 상담을 해주고 있다는 등의 근황을 전하면서 신창원의 자필 편지가 공개됐는데, "중죄인으로서, 교도소 안에서 조용히 살다가 가겠다."라는 요지의 말을 남겼다.
  • 럭키짱: 김성모의 만화로 4부에 신창원 - 신상원 쌍둥이가 등장한다.
  • 스타크래프트/유즈맵: 탈옥이 이슈가 되었을 때 존재했었는데, 이를 가지고 지상파 뉴스(KBS? SBS?)에서 신창원 찬양하는 게임이 돌아다닌다고 비난했다. 다만 맵이 돌아가는 게임의 명사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그냥 '신창원 탈옥게임'으로 보도했다.
  • 엄마, 신창원 참 나쁜 사람이죠~ 미친년아 니 애비야~: 엄마 세상은 참 따뜻한 거죠~ 우리 문화방송~이라는 MBC 로고송을 개사한 구전 동요이다.
  • 좀비고등학교: 신창완이 나온다.
  • 탈옥수를 잡아라! 일명: 신창원 체포 게임: 신창원의 탈옥을 소재로 한 부루마불, 도둑잡기같은 보드게임인데 이게 쓸데없이 고퀄리티다. 일단 신창원에게 초상권에 관한 로열티를 줬는지 의문이다.
  • 탈옥수 신창원: 만화가 박인권이 1998년에 그를 주인공으로 다룬 만화를 그린 바 있다. 출간 당시 신창원을 미화한다며 수거되는 소동도 있었는데, 관점에 따라 미화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만화에서의 신창원은 평면적인 흉악 탈주범의 이미지로만 그려지지 않으며, 그의 유년기 시절부터 검거되기 직전까지의 그의 인생사가 자세하게 다루어져 있다. 만화에는 신창원을 홀대하는 아버지와 계모, 돈이 없어 방황하는 그의 성장기가 담겨져 있고 독자들에게는 그의 범죄 행위가 단순히 그의 잘못만이 아닌 환경과 주변 사람들의 잘못도 있다는 동정심을 유발시킨다. 더욱이 아무리 악인을 소재로 한다 하더라도 작품의 주인공은 주인공 보정이라는 특수한 요소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아마 박 작가 본인도 신창원의 범죄행위를 적나라하게 그렸다고 할지라도 만화 중간마다 빠지지 않는 그의 인간적인, 사람을 동정하고 인간미를 좋아하는 모습을 단순하게 신창원을 위한 변명거리로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화 서문에서 "신창원은 결국 범죄자이고 검거되어야 할 사람이다"라며 그의 불운한 인생과는 별개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선을 긋고 있기도 하다. 결국 정리하자면 만화 자체가 어느 정도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으나, 그것은 만화가 그의 인생을 자세하게 담으면서 그의 어려웠던 환경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을 뿐, 이걸 범죄자를 미화한다고 평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는 것이다.
  • 포조리: 검거 후 신창원이 도주 중에 쓴 일기 내용이 화제가 되었다. 앞에서 언급된 잠복수사 중이던 형사가 신창원의 동거녀를 성폭행한 사실도 여기서 알려졌으며 그 외에도 도주 중 생활이나 심리 등 그의 단면이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는 편이다. 이 사건은 2000년에 나온 DJ DOC의 이 노래에서 '민중의 지팡이가 휘두른 지팡이에 무너진 신씨의 동거녀' 라는 가사로 짤막하게 인용되었다.[16]


5. 여담[편집]


  • 정신력이나 운동신경이 굉장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탈옥 후 도주 당시에 눈앞에서 마주친 경찰을 뿌리치고 도망친 것만 무려 13번이다. 첫 번째는 원종렬 경장이 멧돼지도 때려 잡을 수 있으면서도 한 발 맞으면 1분도 아예 못 버티는 초강력 최신형 가스총을 신창원한테 오른쪽 눈 밑에 한발 그리고 머리에 한발 총 2발을 쏘면서 정확히 명중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신창원은 경찰에게 잡히기는 커녕 오히려 그대로 도망쳤다. 그만큼 대단한 정신력이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서도 전무후무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정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두 번째는 원 경장과 친분이 있는 검도유단자 출신 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를 팔목으로 막으면서 방어했다. 그런 상황에서 뼈가 부러진 상태로 2미터나 되는 담을 훌쩍 뛰어넘는 것은 가히 맷집면에서도 보통 일반 운동선수보다도 엄청 뛰어난 걸로 추정된다. 현재는 상술했듯이 허리 수술을 받았고 나이도 중년에 이르렀기 때문에 운동 능력이 젊은 시절보다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 탈주 중일 때 친누나가 방송에 직접 출연해 본인의 신원까지 공개하며 자수를 권유하기도 했던 것을 볼 때, 친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남매는 관계가 괜찮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영상

  • 신창원은 탈옥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모범수로 그럭저럭 지냈다고 알려져 있는데, 만약 탈옥하지 않고 20년간 그렇게 잘 지냈으면 2010년대에 무기수 가석방을 받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17] 물론 탈옥 때문에 이는 물 건너갔다.

  • 신창원이 기부를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부자들만 턴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신창원에게 우호적인 혹은 대리 만족을 요구하는 여론이 신창원 신드롬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청소년을 비롯해서 젊은층 사이에 신창원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18] 실제로 어떤 심정으로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본인만 아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기부를 몇 번 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짜 의적 행위를 하려고 돈을 훔친것은 절대 아니다. 신창원이 기부에 쓴 돈은 정말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은 도주 비용과 동거녀와의 생활비에 썼다. 거기에 부자들만 턴 것도 아니었다.

  • 신창원이 체포될 당시 입었던 옷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19] 그래서 당시 전문가들이 방송에서 이것을 사회 병리 현상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2022년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도 해당 옷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 아이의 아빠가 될 뻔했다고 한다. 한 내연녀와 사이에서 아이를 갖게 되자 태어날 때까지 잘 보살피자고 약속을 했는데, 신창원이 도망을 가 버렸고 내연녀는 혼자 아이를 기를 자신이 없어 낙태했다고 한다. 신창원은 이에 죄책감을 느꼈던지 도주 중에 쓴 일기장에서도 '나 살자고 여자와 자식을 버린 놈'이라며 자책했다.

  • 본의 아니게 이름이 똑같은 동명이인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실제로 법원에 소송해서 개명하는 동명이인도 있을 정도였다.

  • 디시인사이드 막장사고 갤러리가 한창 리즈 시절이었을 때 난데없이 신창원의 이름을 네이버실시간 검색어 검색 순위 1위로 올려놓는 검색 순위 조작을 한 적이 있다. 이는 전국구급 낚시로 사람들은 당시 신창원이 또 뭔가 저질렀나 의아해했다고 한다.

  • 신창원 탈옥 사건이 전국적으로 큰 화제였던 당시 신창원과 이름이 같은 신창원역의 인지도가 상승하기도 했다. 물론 신창원역이라는 이름은 신창원이 탈옥 사건을 일으킨 시기보다 앞서 나온 것이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 부산광역시 성지곡동물원에서 1997년 12월 히말라야원숭이들 15마리가 집단으로 탈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대부분은 곧바로 붙잡아서 다 동물원으로 돌아갔지만, '치타'라는 이름의 남은 1마리는 1년 2개월 동안 부산 전역의 주택가를 배회하면서 개밥을 훔쳐먹고 지능이 높은 동물답게 묶여 있는 를 목줄 범위 바깥에서 구타하거나 만만한 여자, 노약자, 어린이만 골라 괴롭히면서 온갖 말썽을 일으켰다. 당연히 경찰 인력이 투입돼 잡으러 다녔지만 얼마나 도망을 잘 쳤는지 당시 유명하던 범죄자 신창원의 이름을 따서 '신창원 원숭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였다. 신창원이 탈옥해 있던 시기와 도망다닌 시기가 거의 겹쳤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당시에 널리 쓰였다. 이 원숭이는 1999년 2월이 되어서야 간신히 포획할 수 있었다. 검거 과정은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1999년 2월 11일 방영분에서 다뤄졌고,[20] 동물원 측은 이 녀석이 일으킨 문제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따지러 오는 통에 보상하느라 미칠 지경이었기에, 포획 후 동물농장에서 취재하니 엄중히 가둬서 다시는 못 나가게 한다고 할 정도였다. 현재는 성지곡동물원이 망해버려서 이 원숭이의 근황조차 불명인데, 사실 원숭이의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20년이 넘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살아 있을 확률은 희박하다.

파일:external/jungho.net/avi_000945911.jpg

  • 파일:신창원2009.jpg
2009년의 사진[21]. 탈옥 이후의 사진을 보면 나이가 많아져 탈모로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있는 상태다.

  • 스티븐 러셀과 유사하다. 공통점이라면 어릴 때부터 인생이 좋지 않았고 교도소에서 탈옥했으며 스티븐 러셀은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 도망자 생활하면서 사기쳤으나 신창원은 탈옥 후 절도 생활을 이어나갔다. 또한 둘 다 최후의 탈옥 이후에는 탈옥을 하고 있지 않고 있다. 다만 신창원은 이미 나이가 들어 체념하고 지내고 있고, 스티븐 러셀은 자기 딴에는 할 수 있지만 안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스티븐 러셀은 신창원보다 더 지능적이었다. 스티븐 러셀은 한번은 무전기를 훔쳐서 탈옥했으며 나중에는 녹색마카를 하나씩 훔쳐서 그걸로 옷을 염색한 다음 의료팀으로 위장 후 탈출했다. 하지만 신창원은 교화시간에 울리는 방송에 소리가 묻힌 틈을 타서 조금씩 환풍구의 창살을 잘라내어 탈옥했다.

  • 신창원보다 훨씬 오래, 아직까지 안잡히고 무려 15년동안 도주 생활 중인 범죄자가 있다. 범인의 이름은 황주연으로, 체격은 신창원보다 건장하며, 범죄의 죄질이나 도망 기간이나 체격이나 모든 면에서 신창원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다만, 신창원처럼 싸움을 잘 하는지는 불확실한데, 신창원과 달리 형사들을 제압하고 도주했다든지, 자신한테 덤비는 남성들 3명 이상을 상대로 한번에 싸워서 이겼다든지 하는 식으로 실전 강자임이 증명된 적은 없다. 기껏해야 무에타이 수련을 했었다는 얘기만 있다. 또한 황주연은 신창원과 달리 일말의 동정의 여지도 없는 상당히 악랄한 범죄자로, 신창원의 경우 본인이 저지른 죄라곤 강도죄가 전부고, 살인은 다른 동료가 한 걸 방관해 적용된 거지, 황주연은 시내 한복판에서 본인 손으로 손수 전처를 살해했다. 그리고 신창원은 위에서 말했듯이 불우한 가정사가 그를 범죄로 이끈 거지만, 황주연은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황주연의 경우 신창원과 달리,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행방불명이여서, 이미 사망했거나 외국으로 밀항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우세하다. 사실 밀항 가능성은 예상과 달리 낮은데, 선박 관련 종사자들의 증언이 있는 반면 황주연은 범행 직후 주변에 자살을 암시하는 말과 함께 절대 안 잡힐 자신이 있다고 한데다, '이 절대 안 잡힐 자신이 있다'라는 게 아무도 모르는 장소거나 혹은 산을 예로 들면, 현지 주민들도 잘 모르는 장소인 동굴이나 폐광, 폐채석장 같은 곳에서 자살해버려서 잡을 수 없게 된 건지도 모른다. 좀 다른 경우지만, 신호수 의문사 사건이 바로 현지 주민들도 잘 모르는 장소인 동굴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사례인데, 최초 목격자인 방위병들도 해당 동굴을 존재조차 몰랐으나 그 동굴이 있는 산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고, 그 곳에서 시신까지 발견한 케이스다.

  • 김종국이 신창원과 외모가 닮아서 경찰 검문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얼굴도 별로 안 닮았고 신장도 다른데다 나이도 1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어째서 경찰이 검문을 했는지는 의문이다.#[22]


6.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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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존 무기징역형에 추가 형벌[2] 1989년부터 1994년, 검거 직후엔 경북북부제2교도소에,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부산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2020년도 초반까지는 광주교도소에 있었다.[3] 탈옥한 이후로 도망 다닌 2년 여 간 무려 144개의 범죄(강도 5건, 강간 1건, 절도 105건 등)로 검찰에 송치 되었으며 이후에 무죄로 처리 된 강간죄를 빼면 모두 병합되어 함께 처리되었다.[4] 나중에 사정이 바뀌어 모범수로서 감형이나 가석방 등을 받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나, 신창원의 과거 행적상 실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무기징역형과 유기징역형(22년 6월)이 합산되어 집행 중에 있으며, 매우 위독한 병에 걸리는 등 특수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 한, 절대로 나올 수 없다고 보면 된다. 사실상 종신형인 셈.[5] 초등학교는 1952년부터 의무교육이었으므로, 신창원보다 훨씬 윗 세대들도 초등학교 때는 학비를 내지는 않았으나 교사, 교직원의 봉급이 박봉이다보니 1990년대까지 학교 자체적으로 육성회비, 운영회비, 어머니회비 등의 온갖 명목을 만들어 소액이나마 강제로 돈을 뜯어내는 사실상 비리나 다름없는 일들이 존재했다. 이런 것들은 1996년 정부가 육성회비를 공식적으로 폐지하면서 사라졌지만, 공식적인 폐지 이후에도 지금 기준으론 꽤나 과도한 스승의 날 선물 관행 등으로 잔존하기도 했고, 2000년대 이전 선생들이 학생에게 가하는 폭력은 매우 심했었다. 영화 친구에서 나오는 아버지 직업을 물어보며 싸대기를 올려대는 식의 폭력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2004년에 핸드폰 카메라에 찍힌 영상 속의 폭력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6] 살인은 일당 중 다른 사람이 저질렀다고 쳐도 본인이 명백히 저지른 특수강도 역시 정당화될 수 없는 중범죄이다.[7] 신창원의 아버지가 그를 귀찮아한 점을 미루어 보아 그저 자신의 편의만을 위해 수감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가사소송법에는 이런 의도를 충족하기 위한 법적 절차인 '감화 또는 교정기관 위탁허가' 사건이 있다. 1960년대 당시 인사(人事) 소송법 및 가사심판법에는 이와 같은 규정이 없었다.[8] 이러한 현상을 잘 설명하는 이론으로 미국의 범죄학자 서덜랜드가 제시한 '차별적 접촉이론'이 있다. 감옥에서 다른 범죄자들과 접촉하면서 그들로부터 범죄 기술뿐만 아니라 범죄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도 학습된다는 이론. 그러므로 엄벌주의는 당장은 속 시원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재범률을 크게 높인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그들이 출소 이후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여론과 판결과의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9] 유년기에 고립과 결핍을 겪어본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패턴 중 하나이기도 하다.[10] 이를 두고 돈 안 가져왔다고 꺼지라고 한 선생을 신창원의 성격이 원래 못났으니 신창원이 그런 말 들어도 싼 짓을 했다고 하는 자가 있는데, 선생의 그런 폭언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될 수 없다.[11] 강도 범행 중 다른 공범이 피해자를 살해했을 경우 피고인에게는 살인의 고의가 없었더라도 강도 범행 중 공범에 의한 피해자 사망이라는 결과를 피고인이 예견할 수 있었다고 인정되면 강도치사죄로 의율된다.[12] 당시 시행 중이던 형법에는 강도살인치사죄의 법정형을 사형 또는 무기징역으로만 규정하고 있었다. 신창원에게는 자수나 심신미약 등의 다른 법률상 감경 사유가 없었고, 다수의 동종 전과 기록과 그로 인해 실형이 선고되어 이미 복역했던 사실, 범행 후 검거될 때까지 반년 동안 도주행각을 이어온 점 때문에 판사의 재량인 작량감경도 기대하기 어려워 무기징역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13] 수감 이후 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렇고, 수감생활을 보아도 그렇고, 또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언행을 보아도 신창원은 상당히 지적인 또다른 일면을 자주 보여주었다. 어쨌건 신창원은 범죄자이며 지금부터 서술할 내용 역시 '가지 않은 길'이기는 하지만 이렇듯 상당히 지적인 면이 부각되는 것으로 보아서 불우한 가정환경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범죄자 신창원이 아닌 정상적인 사회인 신창원으로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14] 1999년 탈옥 후 재검거 당시 한 말들. 당시 10대 청소년들이 그를 우상으로 받든다는 사실을 안 이후 한 말이다.[15] KBS는 통합방송법 반대 총파업으로 인해 6시 5분 뉴스속보에서, MBC도 같은 사유로 6시 30분 정규 뉴스를 통해 속보 보도.[16] 그런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무위키를 비롯한 각종 음악사이트에는 해당 가사가 '실시에도 걸려'로 표기되었다.[17] 공범들이 감형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이라면 아마 그 시기에 감형되었을 듯하다.[18] 유튜브 댓글등을 보아도 유독 신창원은 다른 범죄자들보다 옹호 여론이 많다.[19] 미쏘니 티셔츠라고 알려졌으나 후에 가품으로 밝혀졌다.[20] 1탄, 2탄. 당시 이 녀석 때문에 얼마나 약이 올랐으면 포획에 참가했던 경찰관 한 명이 이 녀석의 뒤통수를 때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21] 당시 42세[22] 1997~1999년 당시 신창원은 30~32세, 김종국은 21~23세였다. 9살 차이라 해도 20대 초반과 30대 초반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외모차이가 상당히 적은 때이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30대 초반이면 다소 나이가 있어보이니 외모차이가 상당히 나는 편이긴 하다. 그리고 김종국이 신창원보다 키가 조금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