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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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좌시중(左侍中)[A] , 우시중(右侍中)[A] 등을 역임한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2. 생애[편집]
1387년(우왕 13) 아들인 반복해(潘福海)가 우왕의 총애를 받아 양자가 되자, 친부인 반익순(潘益淳)은 문하평리(門下評理)에서 우시중(右侍中)으로, 아들인 반복해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임명되었다. 동년 수상(首相)직인 좌시중(左侍中)에 이르렀으나 이듬해인 1388년(우왕 14) 정월 아들인 반복해가 염흥방, 임견미의 일파로 몰리자 이에 연좌되어 부자가 모두 처형되었다. 소위 무진피화(戊辰被禍) 또는 정월지주(正月之誅)라고 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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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387년 8월 우시중에 임명되었고 동년 11월에 좌시중으로 언급되고 있다. 동년 8월~11월 사이에 좌시중 이성림(李成林)은 우시중으로, 우시중 반익순은 좌시중으로 자리를 옮겼다.[2] 우왕(禑王)의 양자가 되어 왕씨(王氏) 성을 하사받아 왕복해(王福海)로 개명하였다.[A] A B 고려의 최고 관직은 광평시중, 문하시중, (도)첨의중찬, 도첨의시중, 도첨의정승 등으로 이어진다. 도첨의정승은 다시 우정승과 좌정승으로 나뉘었는데 상우(尙右) 원칙을 취해 우정승이 좌정승보다 높은 고려 최고 관직이었다. 이후 관제 개편으로 최고 관직으로 다시 문하시중을 두었고, 문하시중은 다시 문하좌시중과 문하우시중으로 나뉘었는데 이때는 상좌(尙左) 원칙을 취해 문하좌시중이 문하우시중보다 높은 최고 관직이었다. 이후 관제 개편으로 문하좌시중은 문하시중으로, 문하우시중은 수문하시중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