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희 실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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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희 실종 사건
발생일
1999년 2월 13일 22시 경
발생 위치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하리마을
실종자
송혜희 (당시 만 17세)(현재 만 42세)
유형
실종(9201일 경과)

파일:external/image.newsis.com/NISI20160508_0011667665_web.jpg

1. 개요
2. 사건 전개
3. 수사
4. 사건 이후
5. 다른 사건과의 연관성?
6. 방송
7. 둘러 보기



1. 개요[편집]


1999년 2월 13일 밤 10시경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하리마을에서 당시 송탄여자고등학교[1] 3학년이던[2] 송혜희 양(당시 17세)이 실종된 사건. 사실 이 사건은 후술하겠지만 납치 후 실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송혜희 양은 1981년 7월 14일 생으로, 만약 생존해 있다면 현재 나이는 42세이다.


2. 사건 전개[편집]


당일 송 양은 3학년 반 편성이 있어서 오전에 학교에 갔다가 하교 후 오후 5시 30분경 남자친구를 만나러 남자친구의 집이 있는 평택시 서정동에 갔다. 친구들과 놀다 보니 이윽고 밤 10시가 되었고, 막차 시간이 되자 송 양은 막차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막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친구들이 배웅했으며 남자친구가 살던 서정동과 송 양의 집이 있던 도일동은 불과 5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갈 경우 10~20분 거리에 불과했지만 도일동 하리 지역이 원래 주민이 적은 지역이었고 막차 시간이라 당시 버스 안에는 송혜희 양과 30대로 보이는 남자 한 명만 있었다.

당시 송 양이 탑승한 노선의 운행사인 서울고속에서 송 양이 탑승한 노선의 막차를 운행했던 버스 기사는 밤 10시 15분경 송 양이 도일동 하리 입구 도일주유소 앞에서 내리는 것을 기억했다. 좀 신경이 쓰였던 점으로, 술 냄새가 나는 의문의 남자가 송 양과 같이 내렸다고 증언했다. 당시 송혜희 양이 내린 버스 정류장은 집에서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고 때는 야간이었다. 게다가 집으로 가는 길은 논밭, 야산뿐인 어두운 골목길이라 항상 우범지대였다. 버스에서 내린 송 양은 앞에서 걸어가고, 남자는 조용히 송 양의 뒤를 따라 같이 걸어갔다. 이것이 송 양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며, 송혜희 양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3. 수사[편집]


송혜희 양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밤 11시경 아버지 송길용 씨는 송 양의 친구들에게 전화로 확인했지만, 친구들은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는 말뿐이었다. 마침내 다음 날 새벽 6시경 가족은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단순 가출로 처리했다가 사건 발생 3일 후에야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송혜희 양의 일대 탐문 조사, 우범자 조사 등을 통해 단서를 잡으려고 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송혜희 양이 버스에서 내릴 때 같이 내렸다는 남자가 사건과 관련된 용의자 또는 최후의 목격자일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그 남자를 찾기 위해 버스 기사를 불러 조사했다.

이때 버스 기사는 그 남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 30대 정도 되는 남자였다.
  • 오리털 파카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으며,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다.
  • 평택 시내에서 버스를 탔다.
  • 이 동네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에[3] '어디를 가느냐'라고 물었더니 '도일동 하리부락'이라고 대답했다.
  • 몸에서 술 냄새가 났다.
  • 버스에서 내린 후 도로를 건너지 않고 지하도로 향했다.

마지막 진술에서 주목할 점이 있는데, 당시 송 양은 버스에서 내린 후 도로를 건너 하리 마을로 향했지만, 남자는 지하도로 들어갔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도로를 건너든, 지하도로 들어가든 하리 마을 방향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경찰은 이 의문의 남자를 찾기 위해 주변 마을까지 찾고 야간 기술 학교와 일대 성매매 업소까지 수색했으나 끝내 남자를 찾을 수 없었고 송 양도 찾지 못했다. 만약 당시 버스에 CCTV가 있었으면 희망이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버스에 CCTV가 없었다. 당시 송 양이 내린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은 한밤중인 데다 인적도 드물고 가로등이 없어 어두운 좁은 골목길이었다. 따라서 경찰은 인원을 투입해 논밭, 갈대숲, 하수구, 산 등 인근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송혜희 양은 끝내 발견되지 못했다.

수사에 진전이 없자 경찰은 때마침 사건 발생일이 설날 사흘 전이었다는 사실에서 착안해 설을 보내기 위해 귀성한 전입자일 수 있다는 것에 가능성을 두고 도일동 일대, 평택 일대를 샅샅이 조사했으나 별 다른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다.

사건 발생 5년 후인 2004년, 경찰은 수사에 별 진전이 없자 송혜희 양이 스스로 잠적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가족은 그럴 리가 없다고 극구 부인했으나 경찰은 여기에 희망을 걸었다. 2월, 부산광역시에서 송 양의 명의로 인터넷에 접속한 것을 포착한 경찰은 급히 부산으로 내려가 잠복 수사를 했다. 다시 접속 흔적이 나타나자 경찰은 해당 PC방을 급습해 확인했다. 하지만 접속자는 엉뚱하게도 어느 젊은 남녀 커플이었다. 조사 결과 이들은 송혜희 양의 아버지가 딸을 찾기 위해 붙여 둔 전단지에 있던 송 양의 주민등록번호 등 신상정보를 무단도용해 접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이 사건 역시 장기 실종 사건 중 전북대 수의대생 실종 사건과 더불어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사건이다. 다만 전북대 수의대생 실종 사건은 사건 현장을 방문한 실종자의 친구들이 현장을 훼손하는 바람에 수사에 난항이 생긴 반면[4], 이 사건은 납치임이 확실한데도 경찰이 단순 가출로 처리해 버려 3일이나 방치하다가 부랴부랴 수사를 하지를 않나, 목격자를 상대로 용의자의 몽타주 작성과 탐문 수사 또한 하지 않았다. 또 스스로 잠적했다고 단정짓는 등 사실상 경찰 스스로가 이 사건을 미제사건으로 만들어 버렸다.[5] 안타까운 것은 송혜희 양이 실종된 동네는 작은 동네였고 당시 범인을 목격한 목격자도 있었기 때문에 몽타주 작성과 탐문 수사만 제대로 했다면 많은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인지 송혜희 양의 아버지는 사건 이후 경찰을 불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김해 부산 부녀자 연쇄실종 사건처럼 2000년대 초중반(정확히는 강호순 검거 이전)까지만 해도 경찰의 (성인에 대한) 실종 수사가 기본기부터 매우 부실한 경우가 많았다. 성인(혹은 성인에 가까운)의 실종에 대해 강력범죄와의 연관성을 진지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 현재까지도 성인 실종에 대한 안일한 인식이 완전히 고쳐지지 않아 고유정 전 남편 살해 사건 등 초동 수사 부실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송 양이 사라진 버스 정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중장비 교육 학원과 합숙소가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전국 미아·실종자 찾기 모임의 회장인 나주봉 회장은 송 양을 따라 간 남자가 아마도 이 학원의 수강생이자 송 양을 납치한 유력 용의자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다.


4. 사건 이후[편집]


수사에 계속 진전이 없자 경찰은 수사를 잠정 중단했으며, 납치인신매매 사건으로 추정되던 이 사건은 결국 2014년 2월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송혜희 양의 아버지 송길용 씨는 도일동에서 아내와 두 명의 딸과 함께 살고 있던 평범한 자영업자였다. 특히 차녀 송혜희 양은 학교에서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영특한 아이였고 지역구 국회의원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기도 했던 아버지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무엇보다 송혜희 양은 밝고 성실한 성격으로 주변에서 인기도 많았다고 한다.

송혜희 양의 실종 후 부모님은 생업을 포기하고 딸을 찾아나섰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딸을 찾지 못한 절망감에 우울장애알코올 의존증으로 괴로워하다 결국 전단지를 품은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송혜희 양의 언니는 결혼 후 자식을 낳아 아버지를 모시며 살고 있지만, 송 양의 아버지는 딸의 방을 당시 그대로 보존해 놓고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트럭을 송 양의 사진으로 도배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25년째 딸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 동안 송 양의 아버지는 딸을 봤다는 수백 번 가까이 되는 제보를 받고 전국 어디든 찾아갔으나, 안타깝게도 모두 송혜희 양과 비슷한 사람이거나 장난전화 또는 착오였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전단지와 현수막을 거는 등 개인적으로 조사를 계속했다. 하지만 생업을 그만두고 무리하게 많은 양의 전단지와 현수막을 배부하며 돌아다니느라 상당한 금액의 빚이 쌓여 신용불량자가 된 데다 건강도 악화되고 말았다.

사건 이후 송혜희 양의 고등학교와 집 일대는 개발이 이루어져 사건 당시의 모습과 상당히 달라졌으며, 송혜희 양의 집도 개발 지역에 포함되어 결국 이주하게 되었다. 송 양의 사연은 그 후 2004년 KBS 프로그램 '공개수사 실종'과 2011년 '채널뷰 사라진 가족'에도 나왔지만 현재까지도 별 진전이 없다. 아직도 송 양의 행방은 알 수 없으며, 송 양의 아버지는 지금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현수막을 걸어 딸을 찾고 있다. 2013년까지만 해도 평택시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 송 양의 사진을 내건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 주세요!!!'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볼 수 있었는데, 2014년 들어 많이 없어졌다가# 2017년부터 평택 일대에서 현수막을 다시 붙이기 시작했고 여전히 서울 시내 주요부에서도 이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현재도 서울 시내 및 수도권 지역에서 송혜희 양을 찾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담으로 여대생 등 부녀자를 한적한 버스 정류장 등에서 납치 살해한 강호순 사건과의 유사성 때문에 강호순이 체포되었을 때 송 양의 아버지는 혹시나 딸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010 번호 통합 정책에 반대하는 주요 사례로 송 양의 아버지가 자주 오르내리곤 하는데, 실종된 딸이 전화를 걸어 올까 봐 자신이 쓰는 016 번호를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2015년 5월 7일 조선일보가 송혜희 양의 아버지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시간이 흘러 70세가 되었지만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사용한 자동차를 폐차한 뒤 새로 산 차의 주행 거리가 20만 km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4년 전 현수막을 교체하던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쳤다고 한다. 그래도 기초생활수급 60만 원 중 40만 원을 현수막 및 전단지 제작에 쓰는 등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015년 대한민국 메르스 유행 당시 송 양의 아버지가 메르스에 감염되었으나, 완치되었다고 한다. 딸을 찾기 위한 일념으로 메르스를 이겨냈다고 한다.#

서울동부지방법원문유석 판사가 그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 초반부에 이 사건을 짧게 4줄 정도 언급했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한 것은 아니고 한남대교를 지나며 마주치는 이 사건의 현수막에 대한 안타깝고 슬픈 감정을 서술했는데, 이 책이 2018년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사건에 대해 잊고 있거나 모르던 사람들에게 다시금 송 양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5. 다른 사건과의 연관성?[편집]


공교롭게도 2002년 9월 실종되었다가 141일 만에 인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전옥분(당시 42세) 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버스 정류장이 송혜희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같은 버스 정류장과 일치한다.[6] 게다가 당시에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모녀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대한 소문이 많이 돌았고 실제로 당시 이 일대는 치안이 좋지 못해서 성범죄 피해가 빈발하였으며 의문점이 남은 채로 종결된 사건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정황을 감안할 때 전옥분 살해 사건도 송혜희 실종 사건과의 정황상 한 연쇄살인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프로파일러들은 현재 이 사건과 송혜희 양의 사건의 범인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고, 또한 2004년에 발생한 화성 여대생 살인 사건 역시 이 두 건과 수법이 비슷해 이 세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2020년 2월 29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전옥분 씨 사건을 다룰 때 이 사건도 잠깐씩이나마 언급되었다.#


6. 방송[편집]



  • 이후 2004년 KBS 2TV 공개수사 실종을 통해서도 송혜희 양을 찾는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 송혜희 아버지 송길용 씨가 딸을 찾아 달라고 직접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1, #2

  • 법률방송 13회에서도 사건을 다루었다.#


7. 둘러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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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례 : 병사(D), 아사(H), 의료사고(M), 실종(V), 자살(S), 교통사고(T), 기타(E), 의문사 및 경위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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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 송탄제일고등학교, 2018년 라온고등학교로 교명 변경.[2] 정확히는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3] 보통 인적이 드문 곳을 자주 운행하는 버스 기사들은 자주 타는 승객들의 얼굴을 잘 안다.[4] 일부가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경찰서로 향한 사이 남은 인원들이 어지럽혀진 방을 청소했기 때문에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현장이 훼손된 뒤였다.[5] 사실 미제사건의 대다수가 범인이 치밀해서가 아니라 경찰이 허술해서 미제가 된 경우가 많다. 청주 물탱크실 주부 살인 사건 등이 그 단적인 예.[6] 송혜희 양의 본가와 전옥분 씨의 본가는 걸어서 5분도 안 걸릴 만큼 가까우며, 두 사람이 걸어왔을 실종 지점도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