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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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북한 개성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개성시 용흥동 오관산에 있다.
2. 역사[편집]
919년 고려 태조 왕건에 승복원에 있던 자리에 1027년에 확장해서 지었고 1118년에 중건했다가 16세기에 전소되었다고 한다. 2005년에 중건했지만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없다. 승복원은 왕건이 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살던 암자이고 이 작은 암자를 왕건이 확장해서 설립한 사찰이 영통사.
때문에 영통사는 고려왕실과 역사가 아주 깊은 사찰이다. 고려시대에 왕실의 여러 재사도 이곳에서 지냈다. 그러나 16세기에 화재로 전소되어서 폐사지로 남아있었는데 1998년 북한이 3년에 걸쳐서 발굴해서 2002년 11월부터는 대한불교천태종과 함께 복원사업을 시작했고 드디어 2005년 복원되었다. 총 29개의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통사는 대각국사 의천이 출가해 35년간 주석하며 한반도 천태종을 개창한 유서깊은 고찰이다.
북한이 고려 왕실사찰을 고려시대 양식을 사용하여 복원한 사례는 사실상 영통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1] 영통사 이후로는 남북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한국 불교계가 북한에 힘을 끼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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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온전한 고려시대 양식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조금 있다. 단청도 조선시대 단청에 보다 더 가까운 형태이며, 다포양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보다 더 고려시대의 양식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서는 단청은 적색 위주로 칠하고, 금동장식과 금색 안료로 건물을 장식해야 했으며, 공포를 주심포양식으로 체택하고 지붕도 청기와 같은 화려한 기와와 도금한 치미와 용마루를 올린 상당히 화려한 외관을 지녔어야 할것이다. 다만 세부적인 양식은 몰라도 장식같은 경우는 예산이 부족해서 일부러 안한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