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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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의 모습[1]
최근의 모습
1. 개요
2. 역사
3. 영향력
4. 기타
5. 주요곡
6. 디스코그래피


1. 개요


イエロー・マジック・オーケストラ (Yellow Magic Orchestra)
일본의 3인조 신스팝, 테크노, 일렉트로니카 그룹. 일본의 팝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룹으로, 줄여서 YMO로 부르기도 한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 음악그룹인 YMO의 위엄-[2]

2. 역사


일본 록의 전설로 불리우는 핫피 엔도베이시스트로 예전부터 명성을 떨치던 호소노 하루오미 (細野晴臣)[3][4]가 솔로앨범 작업 도중 만난 사디스틱 미카 밴드[5]의 드러머인 타카하시 유키히로 (高橋幸宏)[6]와 훗날 마지막 황제의 사운드트랙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해 널리 알려진 키보디스트 사카모토 류이치 (坂本龍一)와 합심해서 1978년 결성되었다. 1983년까지 5년 가량 활동하였으나 1993년 깜짝 재결성 이후 2007년 본격적으로 재결성되었다. 실질적으로 3인이 모인 유닛인 현재의 Human Audio Sponge(HAS)와 과거의 YMO(Yellow Magic Orchestra)를 합쳐서 요새는 HASYMO라는 이름으로 다시 활동중. 유럽 투어의 기타 서포트로 코넬리우스로 알려진 전 플리퍼즈 기타의 한 축이자 시부야계의 중핵인 오야마다 케이고가 참여했다고 한다.
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신스팝 (일렉트로닉 팝)을 주로 다루었으나 영미 신스팝 밴드와 달리 아시아풍의 독특한 분위기를 추구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뉴 로맨틱스' 열풍을 타고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자국 내에서도 사잔 올 스타즈 수준의 국민 밴드로 대접받고 있다.

3. 영향력


내 인생 최대의 충격, 'YMO'

그들은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다.

게임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이노 켄지[7]

의 자서전 '게임'의 내용 中[8]

일본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슈퍼 밴드답게 그 영향력 또한 막대하다.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던 80년대 버블 최전성기의 경제 상황 덕에 돈 걱정이 없던 야마하, 코르그, 롤랜드 등 양질의 신디사이저를 만들어내는 일본 악기 업계의 융성이 함께 만들어낸 일본 최초의 수퍼스타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지금처럼 전자음악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들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크라프트베르크에 의해 창시된 전자음을 중심으로 하는 크라우트 록을 받아들여 여기에 자신들의 팝적 감각을 덧붙여 전자음악에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확보하였다. 이러한 이들의 업적은 전기 그루브, 플리퍼즈 기타 등으로 상징되는 시부야계 음악의 시조로 평가받는다. 또한 90년대 일본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프로듀서인 코무로 테츠야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로도 유명하다.[9] 90년대 중반에는 YMO의 이니셜을 거꾸로 해 만든 'Oriental Magnetic Yellow'라는 카피밴드도 나왔는데 카피밴드라고 얕봤다가는 큰 코 다칠 정도로 YMO의 스타일을 잘 살렸다. OMY 말고도 미디/일렉트로닉 계열의 능력자들은 대부분 YMO의 음악을 기본적으로 카피한다.
지금이야 사카모토 류이치가 대내외적으로 유명하지만, 나머지 두 멤버도 상당한 네임드. 이 두 멤버의 커리어를 따라가기만 해도 일본 대중 음악을 거의 섭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BL 그룹access의 리더이자 일본 최고의 키보디스트로 언급되는 아사쿠라 다이스케도 고딩 시절에 YMO의 노래를 듣고 컬쳐 쇼크를 받아 본격적으로 키보디스트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한때 디지털드림도어라는 사이트에서는 '최고의 일렉트로닉/디스코 뮤지션' 순위에 크라프트베르크에 이어 2위에 올라와 있었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순위가 내려앉은 상태.

4. 기타


  • 왜 저런 밴드가 당대 한국에선 나타나지 않았을까 안타깝지 아니할 수 없다. 전자음악이 태동할 시절 심성락 선생[10]의 '무그 경음악' 시리즈가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고, 그 밖에 조용필뭐 결국 2013년 19집에서 일렉트로니카를 시도하긴 했으니이나 나미 같은 이들의 시도는 있었지만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당시 한국의 창작 환경은 엄혹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급격히 위축되어 있었고 게다가 한국은 유러피안 팝의 영향으로 이러한 경향의 음악은 다소 생소한 편이었다.[11] 결국 전자음 자체에서 나오는 뿅뿅거리는 소리가 뽕짝 전용 반주로 흡수되고 만다(...). 트로트 메들리 특유의 반주가 이런 과정으로 스테레오 타입화 된 것.[12] 가장 큰 문제는 당시 심각한 검열 때문에 무슨 음악을 발매하든 갖가지 이유로 검열의 벽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YMO가 한국에 있었다면 앨범에 건전가요 한 곡 확정 그리고 당시 한국은 일본과 달리 이런 음악이 대중화되기에는 경제적, 사회적 수준이 영 좋지 않았다(…). 일본은 버블 경제가 한창이던 시기로 일본이 영국을 남아서고 미국과 경쟁하게 될 것이라는 소리마저 나오던 시기였다.
  • 예나 지금이나 이 세 멤버가 함께 뭉쳐 다니지만 전성기 시절 월드투어 돌 때는 멤버들 뿐만 아니라 세션 몇몇도 함께 움직였다. moog 엔지니어인 마츠타케 히데키(松武秀樹)[13], 키보디스트인 야노 아키코(矢野顕子)[14] 등과 함께했다. 그 밖에 필요에 따라 기타 세션을 구하는 식으로 투어를 다녔다. 함께 작업했던 유명 기타리스트로는 퓨전 재즈 계열에서 명성이 높은 기타리스트인 와타나베 카즈미(渡辺香津美), 스트라토캐스터의 명인으로 유명한 오오무라 켄지(무도관미국 투어 멤버) 등이 있다. 오오오!
  • 최근에 재결성한 유닛 HASYMO가 2012년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No Nukes!'(반핵운동) 집회에서 공연했다고 한다. 이 공연에는 일렉트로니카의 아버지인 크라프트베르크도 참석했다고.
  • 과거 팀의 해체 사유가 "지나치게 인기가 많은 것이 두려워서"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도 사카모토 류이치는 자신의 지나친 인기로 인해 대인기피증이 잠시 생기기도 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호소노 하루오미의 할아버지 호소노 마사부미는 타이타닉호 침몰사고의 생존자이다. 당시 몰래 보트에 탔었다는 오해를 받아 (손자 쪽인지 할아버지 쪽인지는 몰라도)일본에서 욕을 먹었다.

5. 주요곡



Computer Game
  • 데뷔앨범 첫 트랙으로, 지금보면 꽤 촌스러운 느낌을 풍기지만, 백남준의 영향을 받은 전위적인 뮤직비디오임을 예상할 수 있다.[15] YMO 1집의 를 한데 이어붙였는데, 제작사의 오기로 인해 이런 되도않는 제목을 갖게 되었다.


원곡(YMO)
제니퍼 로페즈의 "I'm Real"

Tong Poo
  • 당시 초창기 전자오락음이 뮤직 비디오에서 사용되고 있어 특이한 느낌을 준다. 곡의 실질적인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독주회에서 자주 연주하는 곡이며 YMO 버전 뿐만 아니라 피아노 버전도 많이 퍼져있다. 생각없이 듣다보면 어느새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의 리듬감과 흥겨움을 연출하는 노래이다.

Behind The Mask
  • 2집 'ソリッド・ステイト・サヴァイヴァー (Solid State Survivor)'에 수록된 곡으로, 당시에 생소하던 전자음이 주가 된 전위적인 음악이었음에도, 특유의 적인 사운드 덕에 영미권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에릭 클랩튼마이클 잭슨 등의 뮤지션에 의해 커버되기도 했는데, 세상에 나온 건 에릭 클랩튼의 락 버전이었지만, 실제로 먼저 만들어진 건 마이클 잭슨의 댄스 버전이라고 한다.[16] Thriller 앨범에 수록하려고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제외되고 결국 마이클 잭슨의 사후 기념 앨범 Michael에 댄스로 어레인지되어 신곡으로 포함되었다.

Rydeen
  • 국내에서도 나름 유명한 곡으로, 제목의 어원은 애니메이션 용자 라이딘이라고 한다. 본래는 전설의 스모선수인 라이덴 타메에몬(雷電 爲右エ門)의 이름에 착안해 '라이덴'으로 표기했으나, "요즘은 미국에서 '용자 라이딘'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인기라니까, 라이딘으로 하자!" 라는 호소노의 제안으로 라이딘이 되었다고 한다.

Seoul Music
  • 한국에 대해 애정을 과시하듯 국악 리듬이 담긴 'Seoul Music'이라는 곡이 앨범에 실린 적이 있다.[17][18]


원곡(YMO)
마리아홀릭 1기 ED (아메노키사키 여자합창단)[19]
  • 당시 오리콘 차트 2위 곡이자[20] YMO 싱글 최다 판매 곡으로, 당시 가네보 화장품 광고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고 지금도 일본 내에서는 자주 리메이크되는 유명한 곡이다. 사실 원곡 뮤직비디오는 무심코 봤다가는 손발이 오글거림과 동시에 심장에 심각한 부담이 올 수도 있다!더블어택 도수체조를 연상케 하는 댄스와 부담스럽게 번질거리는(…) 여자가 압권.지금 와서 들어보면 거의 전파송급이다[21] 진중한 전자음악을 구사하던 그룹이 갑자기 깨는 모습으로 나왔다는 것에 당시에도 상당한 충격을 줬던 걸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곡은 아니나 2006년에 나온 공각기동대 S.A.C. 3기의 부제인 'Solid State Society'는 이들의 앨범인 'Solid State Survivor'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제작진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물론 차용 외의 관계는 하등 존재하지 않음.
후일 라제폰 음악감독과 카미나 마야 성우, 그리고 루카스아츠 제작의 어드벤처 게임 LOOM 일본판 음악 감독으로 유명해진 하시모토 이치코가 당 밴드의 서포트 멤버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23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하츠네 미쿠 오케스트라 라는 하츠네 미쿠 패러디 음반에서 뮤직비디오가 나왔는데...
이게 넨도로이드로 나왔다! # 지갑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엥? 하츠네 미쿠가 DX7이 아니라 TRITON EXTREAM이잖아?

6. 디스코그래피


  • イエロー・マジック・オーケストラ - YELLOW MAGIC ORCHESTRA (Alfa ALR-6012、1978年11月25日)[22]
  • イエロー・マジック・オーケストラ (US版) - YELLOW MAGIC ORCHESTRA (Horizon SP736 / Alfa ALR-6020、1979年5月30日[23]
  • ソリッド・ステイト・サヴァイヴァー[24] - SOLID STATE SURVIVOR (Alfa ALR-6022、1979年9月25日)
  • 増殖 - X∞MULTIPLIES (Alfa YMO1、1980年6月5日)
  • BGM (Alfa ALR-28015、1981年3月21日)
  • テクノデリック - TECHNODELIC (Alfa ALR-28030、1981年11月21日)
  • 浮気なぼくら[25] - NAUGHTY BOYS (Alfa YLR-28008、1983年5月24日)
  • サーヴィス- SERVICE (Alfa YLR-28013、1983年12月14日)
  • テクノドン - TECHNODON(東芝EMI TOCT-8010、1993年5月26日)[26]
2010년 10월, 한국에 아래 디스코그래피에 굵게 강조된 앨범이 발매되었다. 2015년에는 YMO의 주요 앨범들이 네덜란드에 위치한 'Music On CD'라는 업체를 통해 발매되었다. 슈퍼 쥬얼 케이스가 기본 사양이며 가격은 일본판에 비해 저렴하니 일본원판이 아니라도 괜찮다면 구입을 고려해 보는 것도 괜찮다. TECHNODON 음반은 Music On CD에서 아직 발매를 안했으니 주의.
[1] 동년 발매된 싱글앨범 '過激な淑女'에도 사용되었다.[2] 일렉트로니카,신스팝이라는 당시 첨단 장르의 음악을 하는 딱딱한 아저씨들 이미지라고 하기엔 멤버들 모두 생각보다 유머감각이 꽤 있는 편이다.[3] 최근 애플 시드 엑스 머시나 음악 감독과 영화 감독 잇신 음악 파트너로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상승했다.[4]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밴드의 리더이다. 뒤이어 나오는 용일이형의 모자센스가 압권[5] 7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록밴드 중 하나.이 밴드의 리더인 가토 카즈히코(加藤和彦)는 국내에서도 알려진 임진강의 일본어판을 부른 포크 크루세이더스의 멤버이기도 하다. 또 보컬인 후쿠이 미카와는 부부였다. 밴드의 해산도 부부가 이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나 멤버들의 뛰어난 연주력과 창작력은 후대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참고로 밴드 명은 존 레논의 백업 밴드인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패러디이다(…).[6] YMO에서 보컬을 담당했다. 당시 로맨틱한 보컬과 일본인 답지않은 꽤 유창한 영어발음을 구사했다. 2010년대에도 죽지 않은 로맨틱한 보컬을 뽐내면서 토와 테이의 곡을 피쳐링해주는 등 괜찮은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세월이 지날수록 영어 발음이 더 좋아짐을 느낄 수 있다 ![7] 비디오게임 'D의 식탁'과 '에너미 제로' 등으로 유명한 크리에이터. 2013년 향년 43세(만 나이)의 나이로 작고했다.[8] 이노 켄지가 비틀즈아버지보다도 YMO를 더 좋아했다. 또한 YMO로 인해 디지털과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YMO가 해산하자 이노 켄지는 그 충격으로 한 동안 컴퓨터를 멀리 했다고.[9] TM NETWORK를 결성 시 YMO같은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싶었으며 약칭인 TMN도 YMO에서 유래했음을 코무로가 밝힌 바 있다.[10] 아코디언 연주자로 유명하다.[11] 심지어 당시 무그 건반이나 녹음 설비는 국가의 관세 정책(악기와 녹음장비를 사치품 취급 했다)때문에 엄청난 고가였다. 지금이야 현재 시세로 100만원~200만원의 신디사이저가 흔하지만 당시에는 신디 한대를 사려면 지금 돈으로 7~800만원은 가뿐히 넘겼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가 되어야 좀 나아진다. 그때까지 녹음실 수준도 엉망진창이었다[12]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 심성락 선생의 '무그 경음악' 시리즈가 블로그에 자주 포스팅이 될 만큼 재조명 받고 있기는 하다.[13] 지금은 유튜브에서 활동 중이지만 이 사람도 일본 키보디스트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고 방송 나올 때도 가끔씩 있다.[14] YMO 세션으로 활동 중에 사카모토 류이치와 결혼(야노로서는 재혼)하여 슬하에 사카모토 미우(坂本美雨)를 낳았고, 2006년에 사카모토 류이치와 협의이혼을 했다. YMO 멤버들의 프로듀싱으로 솔로가수로서 아트 팝, 테크노 가요 장르에서 큰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15] 사카모토 류이치가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16] 추가된 가사와 보컬 멜로디는 마이클 잭슨이 직접 만든 것이다.[17] 나름 친한(親韓) 아티스트에 속하는 사카모토가 5.18 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 만든 음악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점이 사실인지는 불명확하지만, 암울한 분위기의 이 음악을 들으면 당시 독재 정권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을 음악으로 표현해냈으리란 점은 예상할 수 있다. [18] 2017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과 한국이 EU와 같이 여권이 없이 자유로이 왕래하는 사이가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19] 카나코,마리아,마츠리카[20] 이 시기에 호소노는 지금으로 비유한다면 음원차트 킬러 레전설급 아이돌인 마츠다 세이코에게 곡을 주기도 했었는데, 웃기게도 이 노래가 2위하는 동안 1위는 호소노가 작곡한 마츠다 세이코의 노래에 빼앗기고 말았다.이 노래도 결국은 콩라인[21] 사실 이러한 컨셉은 전년 Taiso(体操)의 뮤직비디오로 맛보기선보인 바 있다. 미국의 뉴웨이브 밴드인 토킹 헤즈가 제작 감독을 맡았는데 체육복을 입은 여성는 당시 타카하시 유키히로의 매니저이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캐릭터는 호소노가 직접 그린 것이다.[22] 일본반에만 Acrobat (アクロバット)#이 수록되어 있다.[23] 일본반과 비교해 일부 곡의 효과음이 변하고 Tong Poo에 보컬이 들어가는 등의 변화가 생겨났다. 현재 일본반과 미국반의 합본이 해외에 발매되어 있다.[24] Rydeen과 Technopolis, 그리고 마이클 잭슨, 에릭 클랩튼 등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한 명곡인 Behind The Mask 수록[25] 君に、胸キュン 수록[26] 도시바 EMI(현재는 EMI 레코드 재팬)으로 이적한 후 나온 앨범인데 YMO와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의 권리가 전 소속 레이블인 Alfa Records에 있었던 탓에 YMO(YMO에 가위표, Not YMO라고 읽는다.)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 합의가 된건지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로 2011년 재발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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