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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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6·7·9·10·13·14대 국회의원
이종근
李鍾根 | Lee Jong-keun


파일:이종근의원.jpg

출생
1923년 10월 22일
충청북도 충주군
사망
2003년 10월 22일 (향년 80세)
서울특별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1묘역-192
본관
전의 이씨[1]

월촌(月村)
배우자
주용출
자녀
4남 3녀
학력
충주고등농림학교 (졸업)
육군사관학교 (졸업 / 8기)
육군보병학교 (졸업)
육군공병학교 (졸업)
육군대학교 (졸업)
국방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 석사)
종교
기독교
신체
O형
의원 선수
6
의원 대수
6, 7, 9, 10, 13, 14
경력
제1군사령부 작전과장
대한민국 육군 준장 예편
민주공화당 중앙상임위원
오월동지회 중앙감찰위원장
민주공화당 충북 제3지구당위원장
제6대 국회의원 (전국구 12번 / 민주공화당)
국회 교통체신위원장
제7대 국회의원 (충북 3[2] / 민주공화당)
국회 국회농림위원회 위원장
제9대 국회의원 (충북 2[3] / 민주공화당)
제10대 국회의원 (충북 2[4] / 민주공화당)
제13대 국회의원 (충북 충주시·중원군 / 신민주공화당)
신민주공화당 부총재
국회 선거부정조사특별위원장
제14대 국회의원 (충북 충주시·중원군 / 민주자유당)
민주공화당 당무위원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군사 경력
임관
육군사관학교 (8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49년 ~ 1963년
최종 계급
준장 (대한민국 육군)

1. 개요
2. 상세
3. 여담
4. 선거 이력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이다. 호는 월촌(月村), 본관은 전의이다.


2. 상세[편집]


1923년 충청북도 충주군에서 태어났다. 충주농업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8기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에 참여했고, 쿠데타 지지를 거부한 이한림 제1야전군사령관의 체포조 조장을 맡아 이한림을 서울로 압송한다. 1963년 육군 준장으로 진급한 뒤 예편한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국독립당 이희승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농림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 이택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해원과 민주공화당 복수공천을 받아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제천군-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둘 다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단수공천을 받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이택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대한민국 국회 교통체신위원장이 되었다. 또한 당시 김종필의 영원한 동지라고 불릴 정도로 김종필계의 최측근으로 활동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해원 후보와 민주한국당 김영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농사를 지으면서 잠시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신민주공화당 부총재, 대한민국 국회 선거부정조사특별위원장이 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윤리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노환을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생전에 청렴한 생활로 유명[5]하였으며, 의원 임기 동안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유치, 충주대학교의 4년제 승격, 충주여성회관과 충주재향군인회관 준공 등의 많은 업적을 이뤄내며 충주시 발전에 이바지했다. 이 덕분에 한동안 이시종 이전 충주의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다.

2003년 80세 생일에 사망하였다.


3. 여담[편집]


  • 국회의원 재직 동안 청렴한 생활 탓에 "한국의 간디"와 "대꼬챙이" 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회의원이면서도 서울에 본인 소유의 집 조차 하나 없었는데, 매번 상경할 때마다 18평짜리 딸의 아파트에 기거하면서 사위의 눈치를 봐야만 했었다.

  • 1970년 국회의원 재임 당시 그의 지역구인 충주에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관을 건립하고자 할 때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가 그 소식을 듣고 이종근을 청와대로 불렀다. 당시 민주공화당 국회의원들 가운데 서울에 집 한채없는 사람은 그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박정희가 "사람이 왜 그리 융통성이 없냐"라며 집을 사라고 3백만원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 돈으로 충주에 어머니회관을 짓고 남은 30만원을 박대통령에게 도로 가져왔다. 그랬더니 박정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비서들에게 집 한칸 마련해 주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생긴 집이 바로 그가 남은 여생동안 살아왔던 용두동의 한옥집이었다. 박정희는 또 그에게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으나 생활태도는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 1980년 5.17 내란 당시 정권을 잡은 신군부 세력에서 김종필과 김종필의 측근 수백명을 부정축재자로 몰아 피선거권을 박탈할 때 조차도, 김종필의 최측근이었던 이 의원은 숙청대상에서 제외되어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다. 신군부 세력에서 털어도 먼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 1993년 김영삼 정권이 출범한 후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파동으로 현역 국회의원과 장관 수십명이 사퇴하거나 제명되는 와중에 본인과 네아들과 맏며느리의 재산을 합쳐 총 재산이 국회의원 299명 중 꼴찌에서 11번째 밖에 안된다는게 공개되어 검소함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4.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63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민주공화당|
파일:민주공화당_글씨만.png
]]

3,112,985 (33.47%)
당선 (12번)
초선
1967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충북 3[6]
56,242 (67.72%)
당선 (1위)
재선
1971
제8대 국회의원 선거
38,831 (48.68%)
낙선 (2위)

1973
제9대 국회의원 선거
충북 2[7]
73,320 (42.95%)
당선 (1위)
3선[8]
1978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76,693 (38.71%)
4선[9]
198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충북 2[10]

[[한국국민당(1981년)|
파일:한국국민당(1981년) 글자.svg
]]

41,321 (19.79%)
낙선 (3위)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충북 충주시·중원군

[[신민주공화당|
파일:신민주공화당 글자.svg
]]

50,370 (49.76%)
당선 (1위)
5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32,452 (33.16%)
6선

역대 선거 벽보

[ 펼치기 · 접기 ]

파일:이종근7대.jpg


파일:이종근8대.jpg

제7대 총선 (충북 3[a])
제8대 총선 (충북 3[a])

파일:이종근9대.jpg


파일:이종근10대.jpg

제9대 총선 (충북 2[b])
제10대 총선 (충북 2[b])

파일:이종근11대.jpg


파일:이종근13대.jpg

제11대 총선 (충북 2[c])
제13대 총선 (충북 충주시,중원군)

파일:이종근14대.jpg


제14대 총선 (충북 충주시,중원군)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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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사성공파 중추원사공파 30세 "鐘" 자 항렬이다.[2] 충주시, 중원군[3] 충주시, 중원군, 제천군, 단양군[4] 충주시, 중원군, 제천군, 단양군[5] 본인 명의의 예금과 주식이 없었고, 정기국회 기간에는 딸의 서울 집에서 더부살이했다고 한다. JP의 측근임에도 불구하고 3김의 측근들이 무더기로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던 5.17 내란도 무사히 넘기고 11대 총선에 출마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6] 충주시, 중원군[7] 충주시, 중원군, 제천군, 단양군[8] 민주공화당 이해원 후보와 동반 당선[9] 신민당 이택희 후보와 동반 당선[10] 충주시, 제천시, 중원군, 제원군, 단양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