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린반드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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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개요
2. 건국
3. 압바스 왕조와의 전쟁
4. 역사적 의의



1. 개요[편집]


550년대부터 12세기 초까지 타바리스탄 산골에 존재했던 사산 왕조의 귀족이 세운 소왕국.


2. 건국[편집]


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의 명문이던 카렌 가문의 후손이 호스로 1세를 도운 공으로 타바리스탄에 책봉된 것이 시초였다. 다만 무슬림 군대를 피하여 더욱 오지로 숨어들어간 것으로 여겨진다.

다부이 왕조의 멸망과 타바리스탄에 대한 아바스 왕조의 정복 이후에도 카린반드 조는 알려지지 않아서 생존에 성공했고, 나중에 존재가 알려졌음에도 너무나 험준한 지형 때문에 정복과 이슬람화를 피해나갔다.


3. 압바스 왕조와의 전쟁[편집]


다부이 왕조가 멸망한 후, 카린반드의 통치자 빈다후르무즈드(재위: 765년 ~ 815년)조로아스터교도들의 환영을 받으며 다일럼[1] 지방을 점령하였다. 이후, 그는 고르간[2]을 지배하던 바반드 왕조의 샤르윈 1세(재위: 772년 ~ 817년)과 함께 반(反) 압바스 봉기를 일으켰다. 이에 압바스의 타바리스탄 총독 할리드 이븐 비르마크(재임: 768년 ~ 772년)가 그들과 싸웠지만 전쟁은 장기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영웅적인 저항도 압바스의 위대한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의 대규모 공세에 분쇄되어 조공을 바치고 자녀들을 볼모로 보내게 되었다.(805년) 815년에 빈다후르무즈드가 사망하자 아들 카린(재위: 815년 ~ 817년)이 계승했고, 바반드에서는 817년에 샤르윈 1세가 죽자 샤리야르 1세(재위: 817년 ~ 825년)가 계승하였다. 817년에 마문은 두 속국의 왕들에게 동로마 원정에 참가하라 했는데, 카린은 참여했고 공을 세워 책봉을 받았다. 그러자 샤리야르 1세는 카린이 이슬람의 개가 되었다며 공격하여 죽였다.

카린에 이어 마지야르가 즉위했는데, 타바리스탄 통일을 염두에 둔 샤리야르 1세가 그마저 쫓아내버렸다. 그러자 마지야르는 마문에 의탁하여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 군대를 얻어 타바리스탄으로 돌아왔다.(822년) 몇년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마지야르와 무사 이븐 하프스는 샤리야르 1세와 그의 장남 샤푸르를 죽여 복수하였다. 826년에 무사 이븐 하프스가 죽자 그의 아들 무함마드와 마지야르가 타바리스탄을 통치했는데, 831년에 마지야르는 무함마드가 알리드[3]와 접촉한다고 고발하여 체포하여 타바리스탄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다.[4]

마문 사후 무타심도 마지야르를 타바리스탄 총독으로 유지시켰는데, 마문으로부터 호라산을 맡게된 타히르 왕조의 압달라 이븐 타히르는 타바리스탄도 자신의 관할이니 연공을 납부하고 무함마드를 석방할 것을 명하였다. 하지만 마지야르는 그 요구에 불복하였고, 이에 압달라가 무타심에게 고발하였다. 무타심은 압달라 편을 들었고, 이에 마지야르는 이슬람을 버리고 반(反) 압바스 봉기를 일으켰다.(838년)


4. 역사적 의의[편집]


조로아스터교 신앙과 고대 페르시아 문화를 11세기까지 비교적 잘 보존해 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은 이슬람화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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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바리스탄 서부[2] 타바리스탄 동부[3] 시아파로, 후에 알라비 왕조를 세운다.[4] 바반드 왕조는 마지야르에 충성하며 샤리야르 1세의 차남 카린 1세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