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고려 거란 전쟁)

덤프버전 :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이 배역의 실존 인물에 대한 내용은 현종(고려) 문서
현종(고려)번 문단을
현종(고려)#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고려 제8대 황제
현종
顯宗


캐릭터
이름
왕순(王詢)
지위
대량원군 (1 ~ 3회)
고려 황제 (3회~ )
묘호
현종(顯宗)
가족
원정황후 (배우자)
원화황후 (배우자)
등장회차
1 ~ 32회
배우
김동준 (아역: 유지완)

1. 개요
2. 배우
3. 작중 행적
3.1. 1회
3.2. 2회
3.3. 3회
3.4. 4회
3.5. 5회
3.6. 6회
3.7. 7회
3.8. 8회
3.9. 9회
3.10. 10회
3.11. 11회
3.12. 12회
3.13. 13회
3.14. 14회
3.15. 15회
3.16. 16회
3.17. 17회
3.18. 18회
3.19. 19회
3.20. 20회
4. 인간관계
5. 묘사
6. 총평
7. 어록
8. 여담



1. 개요[편집]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1 '''운명의 저주를 짊어진 19살의 어린 황제.'''
'''거란의 침략을 격퇴하고 고려의 번영을 이룩하다!'''

천추태후의 아들 목종이 남색에 빠져 후사를 두지 못하는 동안,
마지막 용손인 대량원군은 후계 서열 1순위였다.

천추태후의 위협을 당하던 어느 날, 강조라는 신하가 군사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승려의 삶을 살고 있던 대량원군은 하루아침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런 어린 황제를 향해 40만의 거란군이 침략해 들어왔다.

승리를 위해선 백성들을 두고 몽진을 떠나야 한다는 신하들의 말에
현종은 개경을 두고 도망쳤고... 지방 호족들의 위협에 시달린다.

"고려가 하나로 뭉치지 않고서는 거란을 이겨낼 수 없다."

현종은 그렇게 고려의 황제가 해야 할 책무를 깨달아간다.





열아홉에 갑자기 황제가 되었을 때, 나의 눈앞에는 40만의 거란군이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두려웠지만 항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쳐야 했다. 그 죄를 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고려를 하나로 만들어 그 힘으로 거란을 격퇴하는 것 뿐이다.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주인공으로 작중 고려의 제8대 황제이다.[1] 배우 김동준이 맡았다.


2. 배우[편집]


김동준은 대하드라마 연기가 본작이 처음이다.[2] 제작사인 몬스터유니온의 김형준 대표가 인터뷰에 언급하길, 성장하는 걸 멈출 줄 모르는 전형적인 성장형 캐릭터로 묘사될 것으로 보인다.


3. 작중 행적[편집]



3.1. 1회[편집]


천추태후에 의해 억지로 소군이 되어 신혈사로 쫓겨났다. 승려 행색에도 개의치 않고 저잣거리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법공에게 자기야말로 다음 황제가 될 사람이라고 떠벌리다가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어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그러다 조부인 태조대왕을 모욕하는 말이 나오자 분노해 뺨까지 때리고, 이에 격분한 불량배들이 단검을 뽑아 죽이려들자 도망친다. 그런데 이 불량배들은 사실 시비를 빌미로 그를 제거하기 위해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보낸 자객들이었고, 산 속에서 궁지에 몰렸다가 신혈사 주지 진관과 무장한 승려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이를 진관이 질책하자 절에 갇혀 사는 자신의 처지는 대웅전 뜰에 사는 고양이만도 못하다며 한탄한다. 강제로 출가시킨 것도 모자라 이제는 틈만 나면 자신을 해치려 하는 이모 천추태후를 원망하며 혼자 눈물을 쏟는다.

자기를 말렸음에도 억지로 따라 나섰다가 억울하게 대신 회초리를 맞은 동자승 법공에게 자신은 용손이라 어쩔 수 없으니 서운하게 생각 말라며 뻗대다 결국 멋쩍게 사과하고 간식도 쥐여준다. 동자승의 상처를 돌봐주면서 어렸을 때 출가하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천추태후에게 매를 맞은 때를 떠올린다. 울고 있는 어린 왕순을 목종이 달래주며 ‘널 잊지 않고 꼭 다시 개경으로 불러주겠다’고 했었는데, 세월이 지나 결국 자신을 잊은 것 같다고 좌절한다.

암살에 실패한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다시 한번 대량원군을 죽이기 위해 독이 든 음식을 든 상궁과 궁녀들에 무장병을 딸려 보낸다. 처음에 진관이 만약을 대비해 신혈사 전각 바닥에 파놓은 비좁은 밀실을 보여줬을때는 자신을 모욕한다며 화를 냈지만, 결국 상궁 무리를 피해 거기에 숨는다. 하지만 기다려도 대량원군이 나타나지 않자 식은 음식을 데우겠다며 화로를 들여 방바닥에 놓다가 바닥이 너무 울리는 것에 위화감을 느낀 상궁에 의해 밀실이 발각된다.


3.2. 2회[편집]


상궁과 마주하여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스스로 죽지 않으면 신혈사의 승려들을 다 죽일 수밖에 없다는 회유 겸 협박을 듣는다. 하지만 자기가 죽는 방식에 상관없이 결국 뒤탈을 없애기 위해 승려들을 다 죽일 것이니 자신이 살아야만 모두 산다고 반박하면서, 반드시 살아남아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일갈한 뒤 도망친다. 독살이 실패하자 상궁과 나인들은 결국 그 음식들을 다 맨땅에 버리고, 잠시 후 전날 사찰에서 뒹굴던 고양이가 그 음식들을 먹고는 죽게 된다.

상궁이 외곽에 이중으로 깔아놓은 군사들에게 쫓기지만, 과거 거란의 1차 침공 당시 승려들이 마련한 피신처였던 산중 바위 틈의 공간으로 우연히 피신하여 간신히 따돌리는데 성공한다. 그곳에 놓인 작은 석불을 바라보면서 제발 살아만 남게 해달라고 오열한다.

이후 수색대 중 용손인 왕족을 해친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던 한 명이 산불을 일으키기 직전 쏟아진 뇌우에 역시나 용이 노했다며 극도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그를 설득해 수색대로 변장하여 인근 삼천사로 가 목종에게 상황을 알리는 서신을 보낸다.

다시 원래의 승복을 입고 신혈사로 돌아와서 승려들을 해치려 하는 최 상궁에게, 목종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렸고 만약 자신이 죽은 뒤 목종이 이 상황을 알게되면 태후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울 것이라 경고한다. 다 같이 죽든지 다 같이 살든지 선택하라며 으름장을 놓고 승려들과 법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3.3. 3회[편집]


스님들과 함께 대웅전에서 농성하다가 최 상궁김치양파 군사들에 의해 끌려나가 죽을 뻔한다. 때맞춰 삼천사에서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쓴 서신을 받은 목종의 명으로 온 황보유의의 군사들 덕분에 살아남고, 잔당을 추격하려는 황보유의를 말린 뒤 그를 정식으로 태자로 삼겠다는 목종의 서신을 받는다. 자신을 배웅 나온 진관 스님과 동자승 법공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신혈사를 떠나 개경으로 향한다.

도중에 이현운을 만나 태자가 아닌 황제가 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개경에 도착한 뒤 그저 목종의 명을 따라 보위를 잇는 줄로만 알고 명을 거두어달라며 알현을 요구하나, 백관들과 함께 그를 맞이한 강조가 반란을 일으켜 목종을 시해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결국 두려움에 떨면서 즉위식을 치르게 되고, 면류관을 벗고[3] 침전으로 들어가 혼자 주저앉아 목종을 부르며 오열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3.4. 4회[편집]


말 그대로 '얼떨결에' 황위에 오른데다 오랫동안 태자와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왔고, 또한 사찰에서만 지내와서 바깥 세상 구경을 덜 했던 탓에 정치라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지지 기반도 마땅찮은 터라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황제의 직속 비서기관인 은대와 중추원의 이름과 직무조차 파악하지 못했으며, 조정의 신하들은 강조의 눈치를 살피기 급급해 현종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지도 제대로 힘이 되어주지도 않는다.[4]

자신을 계속 꼭두각시 취급하는 강조에게 분노하여 "대의를 위해 거병했다더니 결국 권력이 탐났던 거요? 이럴 바에야 날 내세우지 말고 차라리 그대가 직접 용상에 앉으시오!"라고 일갈하지만, 되려 강조에게 이미 한 번 황제를 시해했는데 두 번은 못할 것 같냐는 말과 함께 되도 않는 짓 하지 말고 황후 들여서 후사나 보라는 말로 묵살당한다.

결국 권신의 허수아비에 불과한 씁쓸한 현실에 절망하여 거란에 보낼 표문을 읽어보지도 않는 등 잠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나, 아내 원정황후의 격려로[5] 다시 의욕을 되찾아 본격적으로 황제로서 제례도 손수 주관하고 백성들 사이로 행차하여 눈도장을 찍는 등 비록 권력을 찾아오지는 못하나 새 황제로서의 권위만큼은 차근차근 쌓아 나간다.[6] 또한 원정왕후와 밤을 함께 보낸 뒤 황후가 곧 임신을 하는데, 오랜만에 황실에 후사가 생긴다는 소식에 백성들은 "용손이 태어나신다!"라며 크게 기뻐한다.

그나마 강조 앞에서 직언을 하던 예부시랑 강감찬을 통해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며 나라 밖 상황까지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고, 거란이 정변의 실상을 알게 되면 언제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현종은 강감찬의 조언에 따라 정변을 비밀에 부치고 외교적인 해법을 모색하여 전쟁을 막고자 하지만[7], 이미 전쟁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강조와 재차 충돌한다.

강조는 현종에게 "그리 전쟁이 두려우십니까?"라는 말로 압박을 가하는 것과 동시에 동원령을 내려 전쟁을 준비하겠다고 하는데, 현종은 이에 지지 않고 강조에게 그의 반역을 감추려고 압록강을 넘어가며 날마다 전전긍긍하는 신하들을 보면서도 감히 전쟁을 입에 올리냐고 맹비난하며 강조가 입을 다물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처음으로 군주다운 위엄을 내보인 것이 무색하게도, 이내 거란이 보낸 사신들로부터 강조의 정변을 명분으로 한 선전포고를 듣게 된다.[8]


3.5. 5회[편집]


거란의 사신이 강조의 정변을 빌미로 전쟁을 선포하자 강조를 노려보며 "경 때문에 이리 되는구려..."라고 분노에 차서 되뇌인다.[9]

전쟁을 막기 위해 강감찬 앞에서 '강조를 제거할 것'이라 선포하고 강감찬의 만류에도 내관들을 무장시킨 뒤 강조를 불러 궁궐에서 참살하려 했지만, 강조는 이미 눈치채고 이현운과 휘하 군사들을 동원해 반대로 제압한다. 물론 강조는 "고려를 위해 죽기야 하겠지만 전장에서 죽겠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이 일을 묵과하고 넘어간다.[10] 강조 암살에 실패하고 역신을 처단하지도 그렇다고 백성을 위해 죽지도 못했다고 좌절한다.

한편, 거란 사신 한기의 귀국하기 전 알현에서 강조가 사신을 멈춰 세우고 자신을 지금 당장 죽이고 그 수급을 가져가거나 아니면 순순히 따라갈 터이니 자신을 압송해 가라면서 뻗대자 한기가 당황하여 그를 당장 물리라고 요구하는데, 이에 현종은 강조의 물음에 답하는 게 먼저라면서 재차 한기를 압박하고, 한기가 대답을 거부하고 돌아가자 거란의 목적이 애초부터 전쟁이었음을 확신하게 된다.

결국 강조를 도통사로 삼음과 동시에 전쟁 준비를 시작한다. 재상들과 같이 강조와 함께 싸울 장수를 임명하거나[11] 전쟁 준비 중 각 부서를 돌면서 격려한다. 이와중에 강감찬에게 자신의 고뇌를 털어놓고 그의 위로를 받는다.

이후 자신을 알현한 양규에게 "흥화진을 반드시 지켜달라."고 부탁을 하다가 '군주는 명령을 하는 존재'라고 양규가 일깨워 주자 다시 "흥화진을 지켜내라."는 명령을 하고, 이후 양규의 부탁에 따라, 출전을 앞둔 강조에게 부월을 하사하면서 "승리로써 온 백성을 지켜낸다면, 한 명의 황제를 시해한 죄는 용서할 터이니 반드시 승리하시오."라고 격려한다.[12][13]


3.6. 6회[편집]


6회에서는 대부분의 초점이 양규가 분전한 흥화진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큰 역할 없이 유진, 채충순, 최항, 강감찬과 함께 전황을 보고받거나 강감찬의 조언에 따라 민간인들을 위무하기 위해 사찰의 불공에 참석하거나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강감찬의 조언을 듣고 사찰에서 열린 불공에 참석한 자리에서 양규의 처와 아들, 강조의 처를 처음으로 만났으며, 이후 자신감을 얻었는지 저자거리의 백성들을 만나 어려움을 직접 듣고 위무한다. 하지만 환궁한 이후에 원정황후에게 "군주의 위엄을 위해서라도 백성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마십시오."라는 고언을 듣는다.

3.7. 7회[편집]


야밤에 거란군의 남하 소식과, 흥화진이 함락된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에 크게 낙심하고, 그 와중에 조정 대신들이 가족들을 몰래 개경 이남으로 피신시키고 있다는 소식에 진노하여 바로 단속에 나선다. 상서좌복야 유진이 가족들을 피신시키려고 할 때 그의 집에 들이닥친 뒤 당장 신료들을 소집하라고 명령한 뒤, "조정 대신들도 고려군을 믿지 못하는 데 백성들은 믿을 수 있겠느냐, 자신은 전쟁을 경험해본 적도, 군사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뒷걸음질 칠 생각을 한다면 절대 승리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안다"며 일갈한다. 그러나 유진이 엎드리면서 "가족들은 피신시킬 지언정 자신들은 폐하를 지킬 것이며, 김치양이 변란을 일으켰을 때에도 그랬듯 우린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라며 항변 섞은 호소를 하자 달리 더 꾸짖지는 못한다.

이후 원정왕후에게 이 일을 말하며 외톨이가 된 것 같다고 토로하자 "신하들을 너무 믿지 말라"는 충고를 받는데, 이에 현종은 "지난 번엔 백성들을 믿지 말라더니 이젠 신하들까지 믿지 말라고 하면 누구를 믿어야 하냐"고 되묻자,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라는 답을 받는다.

이후 다시 무장들의 일가가 불공을 드리는 사찰을 찾아가며, 양규의 아들 양대춘에게 흥화진은 아직 버텨내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 가서 어머니 안심 시켜 드리라고 위로해주고, 이후 강조가 검차진을 통해 거란의 철갑 기병을 격퇴하고, 흥화진의 봉화 소식을 듣고는 기뻐하며 백성들에게 친히 나서서 희소식을 선포하는 모습을 보인다.

3.8. 8회[편집]


고려군이 거란군에게 대패하고 강조가 거란군에게 사로잡혔다는 패전 소식을 듣자 충격에 빠지고, 성 밖에서는 백성들이 또 승전보를 들고 온 줄 알고 있었기에 백성들에게 이를 어찌 전해야하나 고민한다.[14] 이후 재상들과의 조정 회의에서 유진과 강감찬이 강조의 전술을 두고 서로 격한 논쟁을 벌이자 둘을 중재한 뒤, 강감찬으로부터 통군사가 흩어진 병사들을 모아 전열을 정비할 것이라는 말을 듣자 통군사에게 전령을 보내 전열을 가다듬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개경의 조정에 요청하라는 황명을 내린다.

조정 회의 후 궐 밖의 백성들에겐 어떻게 소식을 전해야할지에 대해 강감찬의 의견을 묻는데, 강감찬은 개경의 백성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함구할 것을 조언한다. 그러나 현종은 며칠 전만해도 백성들과 함께하라 해놓고선 왜 이번엔 백성들을 속이라는 거냐며 반문하나, 강감찬은 그것들은 전부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라고 답한다.

현종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백성들과의 신의를 저버릴 수는 없다고 반대하지만, 강감찬은 "그건 폐하의 욕심일 뿐이옵니다"이라고 직언을 날린다. 이에 화가 난 현종은 신의를 지키면서도 승리할 수 있고, 설령 패배해도 신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극복할 수 있다며 뜻을 굽히지 않으나, 강감찬이 현종의 전쟁에 대한 무지를 지적하며 신의를 지키려다가 도리어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며 언성을 높이자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한다.[15] 강감찬의 뜻에 따라 양협으로 하여금 고려군이 잘 싸우고 있다고 달래며 성 앞에 모인 백성들을 해산시키게 하고, 유일하게 강조의 부인에겐 진실을 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종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강조의 휘하 장수였던 이현운이 거란 쪽으로 배신해 정보를 팔아넘김으로써 곽주성과 영주성이 순식간에 함락되고, 여기서 도망친 사람들이 개경으로 피난하면서 결국 개경 백성들의 귀에도 패전 소식이 전해지게 된다. 결국 직접 행차하여 백성들에게 말리진 않겠지만 부디 자신과 함께 개경에 남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이후 열린 조정 회의에서 재상들로부터 항복을 청하는 친조를 올리라는 간언에 대노한다. 하지만 재상들은 송나라가 거란과 맺었던 전연의 맹을 언급하며 친조를 올릴 것을 청하고, 믿었던 강감찬마저 재상들의 뜻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실망하는 기색을 내비친다.

이후 강감찬을 따로 불러 분노에 찬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해보라고 명하고, 강감찬이 계속해서 친조를 주청하자 점점 그에게 다가가 분노와 실망의 기색을 역력히 표출한다. 그러나 현종이 어느 정도 가까이 왔을 즈음에 강감찬이 친조를 청하는 척하며 거란을 속인 뒤, 그 사이에 동북면 병사들을 서경으로 보내 재정비를 하자는 본래 목적을 밝히자 크게 감탄한다. 현종과 다른 재상들은 친조를 올리는 건 곧 항복하겠다는 의사로 알고 있었지만, 강감찬은 애초에 친조와 항복을 별개로 보고 있어서 '친조를 올리겠다고 했지, 항복하겠다고는 안했다'는 논지로 타파하였고, 친조의 날짜도 딱히 명시해두지 않았다. 이에 현종은 그래도 국가 간 외교엔 신의가 필요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강감찬은 먼저 거란이 신의를 저버렸는데, 우리라고 구태여 신의를 지킬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문제는 이제 그 일을 맡을 사람이 필요했는데, 강감찬이 스스로 그 일을 맡겠다고 하자 그를 거란의 사신으로 보내며 그의 지략과 승리에 대한 집착에 놀라워한다.

3.9. 9회[편집]


강감찬을 거란 진영으로 보낸 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가운데 원정왕후가 찾아오자, 어떤 신하는 끝까지 싸우기 위해 목숨을 걸고 거란 진영으로 들어갔는데, 어떤 신하들은 벌써 항복을 논하고 있다며 그 괴리감에 고뇌를 표한다. 원정왕후로부터 충신과 역신도 지나가는 신하에 불과하니 황실의 안위만 생각해야 한다는 말과, 싸워 이길 수 없다면 땅을 떼어주고 항복하더라도 황실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듣자 왜 자신이 가려는 길을 이해해주지 못하냐고 역정을 내며 돌려보낸다.

이후 개경으로 돌아온 최사위에게 남도에서 더 군사들을 모아올 것을 명하며, 왜 다른 신하들 냅두고 자신에게 맡기냐는 최사위에게 다른 신하들은 벌써 항복을 논하고 있으니 본인에게 맡기는 것이라며 그를 내려보낸다.

3.10. 10회[편집]


강감찬이 계획대로 거짓 친조로 시간을 벌어 서경성의 항전 대비를 마치고 돌아오자 그를 반겨주며 항전의 의지를 조정대신들에게 선포한다. "항복을 대가를 내놓아야 하는 땅은 후손들이 터를 잡고 싸워야 하는 땅이고, 그들에게 바쳐야 할 세폐 또한 후손들에게 남기는 우리들의 빚이다. 우린 후손들을 대리하여 이 전쟁에 임하고 있으며, 항복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며 조정 대신들에게 다시는 항복을 입에 올리지 말라고 선언한다. 당연히 항복과 친조를 할 줄 알았던 조정 대신들은 경악하고, 이로 인한 후폭풍으로 상서좌복야 유진이 사직을 청한다. 현종은 상의 없이 일을 진행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만, 유진은 "폐하께서 굳은 항전의 의지를 보이시니 대신들도 의견이 맞는 사람들로 채워야 일사분란하게 조정이 움직일 수 있다"며 물러날 의지를 표명하고, 현종은 달리 붙잡을 말이 없어 그의 사직을 윤허한 뒤, 그 감상을 강감찬에게 이야기하며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서경성에서 지채문과 대도수가 번갈아 거란군을 격퇴하고 있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조정 대신들에게 "하면 되지 않냐"며 기쁨을 표하고, 사직했던 유진을 찾아가 조정으로 복귀할 것을 요청하여 그를 복귀시킨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지채문이 패퇴하고 대도수가 포로로 잡혔으며 탁사정의 도주로 인해 서경성에서 전투를 지휘할 지휘관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저앉아 좌절하면서 회차가 종료된다.[16]

3.11. 11회[편집]


예고편에서 개경을 끝까지 지키겠다며 자결용 단도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17]

3.12. 12회[편집]



3.13. 13회[편집]



3.14. 14회[편집]



3.15. 15회[편집]



3.16. 16회[편집]



3.17. 17회[편집]



3.18. 18회[편집]



3.19. 19회[편집]



3.20. 20회[편집]



4. 인간관계[편집]


  • 강감찬 - 아버지와도 같은 신하이자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정치 스승. 갑작스레 왕위에 올라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과 즉위한 지 얼마 안 돼 터진 제2차 여요전쟁으로 혼란해진 상황에서 진솔함과 견고한 조언과 위로를 직설적으로 건네며 힘을 주고 있다. 처음에 모두가 강조의 눈치를 보느라 현종의 기초적인 질문에도 대답을 안해주는 마당이라 포기하려던 현종에게 직설적으로 답해주면서 현종의 눈에 들었고 그 후로 거란에 대해서 묻거나 모두가 친조를 주장하자 강감찬에게 따로 의견을 물었다가 똑같이 친조를 주장하자 크게 실망하는 등 많이 기대고 있다.

  • 목종 - 천추태후와 김치양 일파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절로 쫓겨나면서 헤어진 이후로는 오랫동안 얼굴조차 보지 못했고, 결국 목종에게 후계자로 선택받아 궁궐로 복귀하지만 이미 강조에게 시해당해 마지막까지 재회하지 못한 비극적인 사이가 되었다.[18]

  • 천추태후 - 혈연상 이모와 조카 사이[19]이지만 이모가 사생아를 낳은 이후 자신을 적대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끝끝내 승려로 만들어 개경에서 내쫓을뿐더러 아예 죽이려고 사람을 보낼 정도로 관계가 나빠졌다.

  • 강조 - 자신을 왕으로 올려준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왕권을 위협하는 권신이다. 게다가 자신은 이미 목종에게 후계자로 선택받고 입궁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딱히 강조 덕을 본 것도 없었다.[20] 게다가 친형과도 같은 목종을 멋대로 시해했으니 현종 입장에서는 역적이자 불구대천의 원수로, 이 때문에 즉위 초반부터 강조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자 앙금은 잠시 접어두고 고려군의 총지휘관으로서 부월을 하사하며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용인술을 보여준다. 다만 이는 정치적인 수만으로 보긴 어렵다. 자신의 궁전 기습을 강조가 묵인한 것과 거란의 사신 앞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보인 것도 컸다. 또한 이 장면에서 거란의 진정한 야욕을 깨달아 강조라는 인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게 크다.[21] 그래서 양규의 충고가 더욱 잘 받아들여졌고, 이후 부월을 내리며 강조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후에 강조의 처에게 그의 소식을 알려주며 오열하는 모습으로 이들의 새로운 군신관계를 잘 표현하였다.[22]

  • 원정황후 - 얼마 안 남은 용손이자 사촌누이이며 현종이 황제가 되자 원성왕후와 함께 황후가 된다. 강조에게 짓눌려 있던 그에게 황제의 권위, 그 권위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깨우쳐주며 큰 정신적 지지를 준다.


  • 진관법공을 비롯한 신혈사 승려들 - 어린 시절 억지로 머리를 깎고 사찰로 오게 되면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 절 안에 머무르라고 해도 절대 듣지 않는 자신을 걱정하고 때로 위험에서 구해주기도 했다. 그들이 자기 때문에 덩달아 위험에 처하게 되자 자책감을 느끼게 된다.

  • 양협 - 자신이 고려의 국왕이 된 후 처음으로 말을 제대로 터놓고 신뢰하게 된 내관. 강감찬과 더불어 가장 신뢰하는 신하다.

5. 묘사[편집]


이모에 의해 강제로 출가하여 쫓겨난 안습한 처지임에도 자신은 태조대왕의 피를 이어받아 언젠가 황위에 오를 용손이라고 확신하는 등, 자신의 핏줄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인물이다. 그래서 항상 위험을 피해 절에 숨어 있어야만 하는 신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철부지 도련님의 모습으로 진관 몰래 절 밖으로 빠져 나가거나, 숨어있을 곳을 마련한 진관에게 화를 내는 등, 이성적인 판단을 잘 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23]

전체 회차가 적은 탓에 인물의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인데, 첫 회에서 자기의 철없는 행동 때문에 동자승이 진관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다음 회에서 승려들의 목숨이 위협받자 위험을 무릅쓰고 은신처 밖으로 나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승려들을 구하며 빠르게 강단 있고 현실적인 캐릭터로 변해 간다. 또한 자신을 죽이려한 최상궁과 병사들도 살리려 할 정도로 자애로운 성품을 지녀 성군으로 성장할 자질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출가했고, 여기에 더해 늘 위협을 받았던 영향으로 황제에 즉위한 이후에는 정사와 주변 상황에 미숙한 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점은 원정황후와 강감찬의 조언을 받아가면서 착실히 성장해가기 시작하며, 4회 후반부터 전쟁의 명분이 강조라는 것을 파악한 후 5회에서 그를 자신의 손으로 제거하려고 하는 등 점차 강인한 모습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물론 요나라 측에서는 애당초 고려를 침공할 구실을 엿보고 있었던 만큼 그 상황에서 강조를 제거한다 한들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까지 눈치채지는 못한다.[24]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요나라 사신과의 대면에서 강조의 목숨을 건 사신과의 대화로 점차 이 전쟁이 강조가 죽더라도 멈춰지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작품 외적으로 이 미숙하게 묘사되는 주인공 군주 캐릭터란 점이 사극 각본에서 꽤 유용한 구조를 가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존 사극에서처럼 작중 인물이나 해설 등으로 부자연스럽게 혹은 스토리의 흐름을 끊으면서 시청자에게 상황 해설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진행하면서 당시 정국을 모를 수밖에 없는 군주가 시청자들 역시도 모를만한 상황을 질문하고 이를 신하들이 답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보 해설로 이어지는 해설 유도 역 캐릭터로서 큰 역할을 하는 것. 여말선초 같은 사극으로 자주 다뤄진 시대와 달리 작중 시대가 그동안 거의 사극으로 다루어지지 않은 만큼, 시청자 역시도 사전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인공의 비중을 가지고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이용해 자연스럽고 풍부한 해설을 만들어 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미숙해 보이는 연출과 아이돌 출신 연기자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연기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평이 있었지만, 다행히 4회 이후 권신에게 맞서는 군주의 위엄을 제대로 보이고 있어서 우려를 상당수 불식시키고 있다.

6. 총평[편집]




7. 어록[편집]



이 고려에서 용손을 해친 자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소.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거병하였다더니, 실은 황실의 권력을 탐했던 것이오? 차라리 경이 용상에 앉으시오. 더는 날 내세우지 말고, 경이 용상을 차지하란 말이오. 만백성들을 향해 의 본심을 드러내란 말이오!

우리에게 신의를 맹세한 자들[25]을 무참히 학살한다면, 거란이 고려의 신의를 팽개치고 침략해 오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

지금 누구 마음대로 동원령을 내리겠다는 것이오! 이 무슨 권한으로 전쟁을 시작한다는 것이오! 경이 무슨 자격으로! 이 고려를 전쟁의 참화 속으로 몰아넣는단 말이오! 경 하나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신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소?! 경이 저지른 반역을 감추려 수없이 압록강을 넘어가는 사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소?! 그걸 날마다 지켜보고서도 감히 전쟁을 입에 올리는 거요...?! 경 때문에 죄 없는 군사들이 죽어가고... 경 때문에 온 백성이 피눈물을 흘려도 상관없다는 거요?! 다시는, 전쟁을 입에 올리지 마시오. 내 아무리 힘 없는 황제라 해도...그것만큼은 묵과할 수 없소! 아시겠소!!!

꼭 승리하시오. 승리하여 고려의 백성들을 구원하시오. 그대가 온 고려의 백성들을 구한다면, 단 한 명의 황제를 시해한 죄는 모두 사라질 것이오. 다시는 그 누구도 경을 반역자로 칭하지 않을 것이며, 나 또한 경을 향해 더는 역적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오. 진심으로 경을 이 고려의 충신으로 생각할 것이며, 경을 이 고려를 구한 영웅으로 생각할 것이오. 그러니 부디... 잘 싸우시오.

패전의 고통이 아무리 극악하다 하여도, 황제와 백성간의 신의만 살아 있다면 이겨내지 못할 것은 없소!

대체... 은 어떤 사람이오? 처음에는 아버지처럼 자상한 늙은 신하였소... 그 다음에는, 바른 말하기 좋아하는 고집쟁이 신하였소. 한데, 이제 보니 승리에만 미쳐있는, 광인 같소...[26]

솔직히, 두렵소... 도망치고도 싶었소. 이 황제자리가, 너무 버겁소...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 경들에게는 미리 소상히 논의하지 못하였소.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오. 허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지금 거란에게 항복하는 것은 옳지 못하오. 한번 적국에게 엎드리면 다시는 그들과 동등해질 수 없소. 항복하면 내어주는 것들도 결코 되찾을 수 없소. 경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이 나라를 보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리하여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후손들은 분명 우리를 원망할 것이오. 지금 우리들은 후손들을 대신하여 이 전쟁을 치르고 있소. 우리가 지금 적들에게 갖다 바치려는 강토는 후손들이 집을 짓고 농사를 지을 땅이오. 우리가 지금 적국에게 갖다 바치려는 세패 또한 후손들이 고혈을 짜내 갚아야하는 빚이오. 부디 그걸 명심해주시오. 우린... 항복할 권한이 없소.

거란 놈들을... 살려보내지 마시오!


8. 여담[편집]


  • 1회~4회까지 엔딩 크레딧 이전 회차가 끝나는 지점에 그의 모습이 비쳤다. 이후 5회와 6회는 양규, 7회에는 강조가 끝나는 지점에 비쳤다가 8회에 다시 현종으로 비쳤다.

  • 대사에 "그래"가 많은데, 같은 작가가 집필한 전작 태종 이방원에서도 기본적으로 왕족들이 하대하는 투로 말할 때 이렇게 시작한다.

  • 김동준은 드라마 방영 기준으로 30대지만 워낙 동안이라 10대 연기를 맡아도 무리 없는 외모를 보여준다. 현재 KBS 대하드라마 제작진은 사극 연기자 층에 꾸준히 젊은 피를 유입 중인데 최수종의 사례처럼 연기력과 동안을 갖추고 배우 교체 없이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는 대하드라마에 적격이다. 마침 현종은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기 때문에 굳이 중노년기의 모습을 묘사할 필요도 없다. 또한 자신과 같은 길을 걸은 최수종[27]은 드라마의 끝까지 같이할 입장인 점에서 많은 조언을 기대할 수 있을것이다.

  • 사극 특성상 주연 배우의 액션 연기도 중요한데, 김동준은 과거 아육대출발 드림팀 등의 예능에서 보여준 뛰어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작중 산 속에서 벌어진 치열한 추격전에서 엄청난 달리기 실력을 보여주며 열연했다. 이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역시 런건의 후손답다'(...)는 드립도 나왔다. 실제 역사의 현종도 왕위에 오르기 전이나 제2차 여요전쟁 당시 조상인 왕건처럼 한동안 열심히 도망을 다녀야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지는 배우 개그이기도 하다.

  • 본 드라마 중간 광고 중에 김동준이 출연하고 있는 변비약 광고[28][29]에 출연하다보니 일부 전쟁 장면에서 중간 광고가 들어갈 때 '황제는 놀고먹고 있다'는 밈이 생기기도 했다. 특히 6화에서 '양규 장군을 비롯한 흥화진을 지키는 고려군이 잠도 제대로 못 자고[30] 활 시위를 당기는 손이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와중에도, 성상 폐하께선 너무 잘 드셔서 변비에 걸려 '메이#'라는 서역에서 구한 약을 사드신다더라'는 우스개소리까지 나왔다. 8화에선 포로로 잡혀 입막음[31]을 당할 만큼의 고초를 겪은 소녀들이 함께 포로로 잡힌 고려 장수들에게 밥을 차린 장면이 나온 뒤에 해당 광고가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광고가 나오기 전의 마지막 대사도 "잘 먹으마."였다.

  • 김동준이 현종 역을 맡으면서 제국의 아이들이 왕을 네 명이나 배출한 아이돌 그룹이라는 농담도 나왔다.# 본작의 김동준에 화랑에서 진흥왕을 맡은 박형식, 왕은 사랑한다에서 충선왕을 맡은 임시완, 그리고 네고왕황광희까지 네 명이다. 이 중 예능인 네고왕은 제외하고, 충선왕은 고려 현종의 후손이고, 진흥왕은 부계는 아니지만 현종의 할머니인 신성왕후의 모계 직계 조상[32]이니 세 명이 모두 조상-후손 사이이다.

  • 담당 배우 김동준이 현종의 몽진에 함께하거나 도움을 준 사람들[33]을 맡은 배우들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 아이돌 시절의 실력을 보여주듯이 현란한 춤사위가 돋보인다는 반응이 많다.

[1] 다만, 역사에서 현종이 실제로 추존받은 호칭은 원문대왕(元文大王)으로 황제가 아닌 대왕이었다.[2] 사극으로는 <천명>과 <조선구마사>에 조연으로 출연하긴 했지만, 전자는 퓨전사극에 시청률이 부진했고, 후자는 역사왜곡 논란으로 폐기처분된 적이 있었다. 이번 작품은 그의 군 복무 이후 복귀작이기도 하다.[3] 승려였던 상태에서 바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옷은 화려하지만, 머리는 빡빡 밀어서 시원해보이는 언밸런스한 모습이 연출되었다.[4] 일반적인 사안이 아니라 강조가 권력을 독점하고자 행한 조직개편이었기에 함부로 사실을 말했다간 강조에게 찍힐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나마 예부시랑 강감찬이 나서 은대와 중추원의 역할을 알려주고, 이를 혁파한 뒤 중대성을 설치해 권력을 독점하려는 강조의 주장에 반대하여 현종에게 힘을 실어주지만, 다른 대신들이 강조를 두려워해 통 따라주지 않는데다 강감찬 본인도 인맥이 재앙 수준이다보니 무위에 그친다.[5] 이때 빡빡이던 머리가 시간이 지난 걸 반영해 더벅머리로 자란 디테일을 보여준다.[6]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백성들을 위무하는 건 전제군주제 국가에서는 오로지 군주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 자체가 군주의 권위와 위상을 과시하는 일이 된다.[7] 현종부터 시작해 정변을 주도한 강조 휘하 세력, 조정의 중신 세력 모두가 합심하며 아직 동원령이 내려지지 않은 민간사회를 제외한 모든 부처에서 군수물자를 비축하는 등 전쟁을 대비함과 동시에 외교적으로 동분서주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최전방인 흥화진에 있던 양규가 꼬리를 무는 사신단의 왕복을 바라보며 "황제가 이제 국경을 바라보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것만으로도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는 평을 한다.[8] 이 장면은 현종 - 강감찬 - 양규, 이 세 주인공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자리에서 다 모인 의미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9] 아직까지는 현종의 정치 내공이 부족하여 강조의 정변은 거란에게 있어 전쟁 명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준다.[10] 이 시점에서 현종을 향한 강조의 인식도 어느 정도 변한 듯 하다. 현종이 "고려를 위해 죽으시오."라고 말할 때 강조는 한시도 현종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데 현종에게서 황제로서의 가능성을 본 듯 하다.[11] 처음에 현종은 도통사(강조)가 원하는 인물로 임명하라 했지만 재상들이 반대하며 전쟁 이후의 상황도 생각해야 된다 간언하자 그 의견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도통사가 알면 반대할까 걱정하지만 도통사도 용인했다는 말을 들었고, 이후 양규에게서도 강조가 현종과 같이 전쟁을 치르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된다.[12] 이 장면으로 현종과 강조 두 사람의 캐릭터성이 더욱 일신했다는 평을 받는다. 황제로서 역적을 향한 일차원적인 적대감을 버리고, 양규의 고언을 듣고 자신의 적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용인술을 보여주는 현종의 성장과 잠재력을 알려주는 부분.[13] 김빠지는 소리지만 연개소문의 사례를 참고하자면 강조가 승리한다 해도 이 말은 지켜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강감찬 이상의 무명을 떨친 동시에 군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음에도 역적의 오명을 벗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14] 어찌보면 백성들을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던 원정황후의 간언을 무시한 댓가인데, 아랫 사람을 시켜도 충분할 일을 황제 신분인 자신이 직접 나서서 승전보를 전하고 거기에 더해 무턱대고 전쟁이 곧 끝날것이란 희망적인 발언까지 해버렸기 때문이다. 현대에서도 국가 원수의 발언이 불러오는 파장을 생각하면 상당히 경솔한 행동이었던 셈이다.[15] 즉, 어떠한 잡생각 없이 전쟁을 이기는데만 신경써야한다는 논리이다. 군주로서의 책임감이나 인성에 확연한 차이가 있지만 조선 시대의 선조가 이러한 케이스에 속하는데, 선조는 임진왜란 도중에나 휴전 중에도 왕권 강화에 집착하다 결국 전쟁을 재확전시킬 수준의 삽질을 저질렀다.[16] 그러나 실제로는 서경성은 조원과 강민첨의 잔류해 있었으며 묘사상 일부 병력이 여전히 주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앞선 회차에서도 흥화진이 함락되었을 것이라는 거짓정보가 받아들여지는 등 당대의 미비한 정보전달체계로 인해 개경 수뇌부가 종종 오판을 저지르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17] 천운인지 거란이 개경으로 가려는 순간 돌풍이 불어 귀중한 시간을 벌고 거란의 보급점에 운석이 떨어지는 등 마치 고려가 망할 때 가 아니라는 듯 기록이 되어 있다.[18] 이후 4화에서 자신의 내관 양협으로부터 목종의 시신을 불태운 뒤 아무데나 묻어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 분을 삼키면서 절대 잊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대가를 치루게 할 것이라며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나왔다.[19] 또한 사촌 누나이기도 하다.[20] 목종에 의한 권력 기반 마련이 안 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즉위했으니 힘 없는 꼭두각시 황제가 되었을 것이고 현종 입장에서는 덕을 보기는 커녕 오히려 마이너스 상황이 된 셈이다.[21] 이 이전까지는 어린 군주라 거란이 강조 때문에 공격하겠다는 거짓 명분을 있는 그대로 믿어서 강조에 대한 분노가 매우 컸었다.[22]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해당 사극에서의 현종은 강조를 역적이자 불구대천의 원수에서 자신과 고려의 참된 충신이자 잠시나마 승리를 안겨준 영웅으로 생각이 바뀐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강조가 거란의 황제에게 현종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하고 최후를 맞이하고, 이어 현종이 강조의 처에게 강조가 용맹스러웠고 고려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하며 치하한다. 이들이 처음에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헤아려 본다면 서로에 대한 평가가 180도 바뀐 것을 알수가 있다. 다만 실 역사에서 2차 여요전쟁이 끝난 이후 현종은 탁사정 등 조정 내 남아있는 강조 일파를 숙청하는데, 해당 내용이 극에서 어떻게 반영되는지에 따라 마지막으로 그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을 것이다.[23] 물론 이때의 현종은 고작 10대 후반에, 절에서만 있어서 더더더욱 식견이 짧을 수밖에 없다.[24] 오히려 강조를 제거하면 전쟁이 끝나기는커녕 수십만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최고 지휘관을 잃는 것이므로 앞으로의 전세가 매우 불리해진다. 게다가 강조가 사라진다 해도 강조가 옹립한 현종 본인이 있는 한, 명분은 남아있는 셈. 극중 통찰력이 높은 인물인 강감찬은 현종의 결단을 듣자마자 무모한 일이라며 무릎을 꿇고 제지하려 했다.[25] 당시 하공진 등이 죽인 고려에 귀부한 여진족들을 가리키는 부분이다.[26] 8화 마지막에 남긴 말. 글로만 보면 강감찬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강감찬의 기만작전에 감탄하는 것이다.[27] 전술한대로 젊은 나이에 사극에 채용됐고, 동안이라 나이에 구애받지 않은 배역을 맡았으며, 초기엔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 연기력을 가졌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28] 참고로 드라마의 시작과 끝 부분에는 최수종과 관련된 광고들이 등장하며, 9화의 엔드롤에서 박진이 아들을 잃고 오열하는 장면에 상조업체 광고가 나온 것으로 노렸단 이미지를 가져갔다.[29] 광고 내용은 잘 먹고 잘 자면서 좋은 하루를 보내는 밝은 이미지의 광고다. 무거우면서 떄론 처절한 드라마와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인 셈.[30] 심지어 해당 화에선 밥도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었단 묘사를 위해 수염이 밥풀을 덕지덕지 붙인 병사가 나오거나 그 자리에서 물통에 물을 떠다 마시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31] 상처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잘못한거고 황제는 포로들을 잘 보살피고 있다'고 말했다.[32] 신성왕후는 신라 문성왕의 후손이고, 문성왕은 원성왕의 현손이며, 원성왕은 무열왕의 딸의 증손자이고, 무열왕은 부계로 진흥왕의 증손자이다.[33] 양협(내관), 채충순, 장연우, 황보유의, 김은부. 이중 황보유의는 실제로 함께했다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장연우와 함께 세트로 몽진 길에 같이 나올 듯하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932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9.2;"
, 9.2번 문단}}}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932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9.2;"
, 9.2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16:11:39에 나무위키 현종(고려 거란 전쟁)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