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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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2 김창현 · 73 오윤 · 74 문찬종 · 78 홍원기 [[감독#s-1.1|

]]
· 80 마정길 · 85 권도영 · 87 이승호 · 89 박도현
· 90 박정음'''

《2군》
70 김동우 · 76 채종국 · 81 설종진 · 82 김태완
· 83 노병오 · # 박준태


《잔류군》
# 오주원 · # 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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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기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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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s20.postimg.org/doosan2001.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1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2001 준플레이오프 MVP




한화 이글스 등번호 23번
박승윤
(1995)

홍원기
(1996~1999.5.14.)


김경원
(1999.5.15.~1999)
두산 베어스 등번호 13번
캐세레스
(1998)

홍원기
(1999.5.15.~1999)


손시헌
(2003~2006)
두산 베어스 등번호 5번
김정규
(1998~1999)

홍원기
(2000~2005)


장교성
(2006)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번
장교성
(2005)

홍원기
(2006~2007)


팀 해체
서울
/
넥센
/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78번

김정수
(2008)

홍원기
(2009~)


현역




키움 히어로즈 No.78 [[감독#s-1.1|

]]
홍원기
洪源基 | Hong Won-Ki

출생
1973년 6월 5일 (50세)
충청남도 공주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공주중동초 - 공주중 - 공주고 - 고려대
신체
187cm, 92kg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1차 지명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1996~1999)
두산 베어스 (1999~2005)
현대 유니콘스 (2006~2007)
지도자
서울-넥센-키움 히어로즈 1군 수비코치 (2009~2019)
키움 히어로즈 1군 수석코치 (2020)
키움 히어로즈 감독 (2021~)
프런트
우리-서울 히어로즈 전력분석원 (2008)
계약
2023 - 2025 / 14억원[1]
연봉
2023 / 4억원
상훈
체육훈장 백마장
본관
남양 홍씨 당홍계[2]
SNS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가족
아내 이혜숙[3], 딸 홍수아[4], 형 홍헌기
1. 개요
2. 선수 경력
3. 연도별 성적
4. 지도자 경력
4.1. 코치 시절
4.1.1. 2015 시즌
4.1.2. 2017 시즌
4.1.3. 2018 시즌
4.1.4. 2020 시즌
4.2. 감독 시절
6.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야구인. 現 키움 히어로즈 감독. 한화 이글스두산 베어스를 거쳐서 현대 유니콘스에 은퇴한 내야수로 주로 내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활동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한화 이글스[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19990218000047112.jpg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 한화 이글스 선수시절

박찬호, 박재홍, 정민철, 조성민, 임선동, 염종석, 송지만, 이영우, 박종호. 차명주, 김종국, 최기문, 손혁 등과 함께 한국 야구 최고의 황금세대로 꼽히는 전설의 92학번 중 한 명이었다.

박찬호, 손혁공주고 동기생으로[5] 고려대학교를 거쳐서[6], 1996년 1차 지명으로 계약금 2억원과 함께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한화의 주전 유격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3루수로 뛰게 되었다. 하지만 파워 포지션인 3루수치고는 거포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교한 3할 타자도 아니고 그저 2할 6푼 ~ 2할 7푼 정도의 어중간한 타율을 기록하는 타자라서 확실하게 주전을 꿰차지는 못했다.

하지만 클러치 능력은 어느 정도 있어서 강석천을 대신하여 3루수 포지션을 반 고정으로 맡았으며[7] 타선은 주로 하위타선에 기용되었다. 선발 출장을 하지 않을 때에는 대타로도 종종 기용되었다. 화끈한 타격과 세밀한 주루플레이로 한화의 주축으로 떠오른 입단 동기인 이영우송지만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2.2. 두산 베어스[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0515185823176A5.jp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 두산 베어스 선수시절

1999년 5월 15일 전상렬과 묶여서 김경원과의 2:1 맞트레이드를 통해서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8] 그러나 3루에는 김동주, 2루에는 안경현이 버티고 있는 두산의 내야진에선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1999년엔 박정태의 31경기 연속안타 행진을 끝낸 다이빙 캐치를 선보이기도 하였다.[9]

2000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는 3연패를 당해 팀 분위기가 어두웠지만 선취점을 얻는 안타를 쳤고 그 후 팀은 3연승을 거두어 7차전까지 이끌고 갔다. 2001년 포스트시즌에선 주전 유격수인 김민호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그 자리를 메우면서 수비 면에서는 아주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공격면에서 맹활약하면서 2001년 준플레이오프 MVP에 오르는 등[10], 2000년과 2001년 두산에서 나름대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데다 포스트시즌에서도 맹활약하면서 '가을 사나이' 이미지도 쌓았고,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도 하나 꼈다. 그 이후에도 기복이 제법 심하기는 했지만, 내야 유틸리티로[11] 2005년까지 1군에서 꾸준히 모습을 보였다.


2.3. 현대 유니콘스[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70330180754018.jpg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선수시절

2005 시즌 종료 후 FA 신청을 하였다. 하지만 두산 베어스는 당시 장원진-안경현-손시헌-김동주라는 준수한 내야진이 있었고, 홍원기는 준수한 백업이긴 하지만 기복이 심했고, 04~05시즌의 성적이 영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점차 나이가 들어 노쇠화 기미가 보인다고 판단하고 홍원기와의 계약을 거절했다. 이로 인해 하마터면 FA 미아가 될 뻔도 했다. 당시 두산 김경문 감독이 은퇴 후 코치로 전업할 것을 권유하기도. 미아가 될 뻔하다 결국 두산과 재계약에 성공했다.

다행히 박종호박진만이 삼성으로 이탈하면서 채종국서한규가 센터라인을 보던 현대가 홍원기의 영입을 시도했다. 그래서 마감 직전 사인 앤드 트레이드의 형식으로 장교성을 상대로 트레이드되며 현대 유니콘스로 건너가게 된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이 둘에 비해 타격은 준수했지만 차화준과 더불어 백업으로 나왔고 2007년에는 젊은 김일경, 지석훈이 주전이 되면서 아예 자리조차 없었다.[12] 결국 자리가 아예 없어지면서 2008 시즌 초에 박노준 단장에게 전력분석원 제의를 받고 은퇴했다.

한편 현대 팬들과는 여러가지로 감정이 좋지 못했는데, 현대만 만나면 타이론 우즈, 장원진과 더불어 날아다녔을 정도였기 때문이다.[13] 더군다나 2001년 플레이오프에서도 맹활약을 해서 현대를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다.


3.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1996
한화
123
382
.262
100
20
0
9
47
46
5
53
.385
.347
1997
90
253
.265
67
13
1
4
30
21
1
20
.372
.318
1998
28
63
.222
14
2
0
2
9
6
1
7
.349
.292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1999
두산
98
118
.161
19
6
0
4
13
14
0
13
.314
.242
2000
113
221
.271
60
8
2
5
30
31
2
31
.394
.360
2001
84
242
.264
64
13
1
6
42
34
1
34
.401
.353
2002
109
170
.171
29
6
0
1
11
17
1
17
.224
.242
2003
124
384
.273
105
13
1
8
42
43
0
57
.375
.365
2004
101
160
.213
34
5
0
2
18
16
0
22
.281
.303
2005
92
139
.230
32
6
1
3
22
17
0
18
.353
.316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06
현대
56
148
.270
40
6
0
4
20
16
0
15
.392
.335
2007
25
28
.071
2
0
0
0
0
2
0
3
.071
.161
KBO 통산
(12시즌)
1043
2308
.245
566
98
6
48
284
261
11
270
.355
.326


4. 지도자 경력[편집]



4.1. 코치 시절[편집]


은퇴 후에는 넥센 히어로즈의 전력분석원을 거쳐서 2군 수비 코치로 부임했다. 2012 시즌을 앞두고 김성갑 1군 수비코치가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기자, 1군 수비코치로 보직 이동했다. 2011시즌부터 2015까지 꾸준히 1군 수비코치를 맡았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다. 팀이 암흑기 탈출의 가능성을 보여준 12시즌 이후 결정적인 순간마다 내야수비가 발목을 잡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팀 DER수치를 보면 넥센은 항상 하위권이며, 12시즌 이후로는 오히려 매년 퇴보하고 있다. 내야 수비진 한 명 한 명의 이름값은 국가대표 수준이지만, 실제 내야수비 조직력이 좋다고 보긴 힘들며 페넌트레이스나 포스트시즌의 결정적인 고비마다 불안한 수비가 팀을 무너뜨리곤 했다. 그래도 강정호가 버텨주던 14시즌까지는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강정호가 피츠버그로 떠나고 서건창이 부상 후유증으로 수비가 무너진 2015시즌에 히어로즈 수비의 실체가 드러나며 까임의 빈도가 늘어났다.


4.1.1. 2015 시즌[편집]


2015년 히어로즈의 수비율은 0.980으로 뒤에서 세번째이며, 평균 대비 수비 승리 기여라는 스탯은 뒤에서 9위이다.[14] 그럼에도 매년 코치진에 잔류하기 때문에 철밥통이라고 불리고 있다.

2015년도 가장 잘한 일로는 김하성을 키워낸 일 같다. 그리고 항상 선수들이 주변에 많은 코치인 걸 보면 성격이 좋고 친근한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4.1.2. 2017 시즌[편집]


파일:external/www.heroesbaseball.co.kr/d25ff626-e30e-4feb-a918-38d93de537a2.jpg

2017년 그나마 수비를 잘하던 박정음부터, 무릎부상 이후로 수비력이 저하된 서건창도 미숙한 플레이를 종종 보여주면서 다시 까임의 지분이 늘고 있다.


4.1.3. 2018 시즌[편집]


2018년 스프링캠프부터 박찬호를 임시 인스트럭터로 불렀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농담 삼아서 "식사 2끼로 수락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두 사람은 공주고 동기동창이며 홍원기는 박찬호 결혼식에 초대받은 30명 중 한 사람으로 상당히 막역한 사이다.


4.1.4. 2020 시즌[편집]


2020년 시즌을 앞두고 공주고-고려대 동기인 손혁이 키움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자, 그를 보좌하여 수석코치직을 맡게 되었다. 수비코치로는 무능하지만 팀 내 인심은 골고루 얻고 있는 만큼 이쪽이 낫긴 하다. 그리고 그해 1월 야구 코치 최초로 1급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4.2. 감독 시절[편집]


손혁 감독이 1년만에 자진사퇴 형식으로 경질되면서 1월 21일 오전, 키움 히어로즈 새 감독으로 선임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돌았다. 일단 구단에서는 "면접을 본 유력 후보군 중 1명이지만 감독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대 선수 - 히어로즈 전력분석원/수비코치/수석코치를 거치면서 선수단과 오랫동안 함께 한 시간이 긴 코치 중 한 사람으로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만큼, 과거 감독 후보군으로 꼽혔던 동갑내기 설종진 고양 히어로즈 감독과 함께 유력한 차기 감독으로 언급되고 있다.[15]

오전 10시 30분, 곧바로 홍원기 코치를 제6대 감독에 선임하고 고형욱 전 단장을 2년 만에 다시 단장으로 선임했다는 구단의 공식 발표가 나왔다.

최근 수년 동안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축 선수들 대다수가 그의 감독 재직 기간 중 이적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으므로, 성적과 전력 재구축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선수 수급 방법이 한정적인 팀 특성을 고려할 때, 팀의 장래가 홍원기 감독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홍원기의 선임으로 2021 시즌 KBO 리그 10개 구단 감독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4.2.1. 2021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원기/202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2. 2022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원기/202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3. 2023 시즌[편집]


2022년 11월 9일, 계약금 2억원, 연봉 4억원 등 총액 14억원에 3년 재계약 소식이 전해지며 2025 시즌까지 키움 히어로즈의 지휘봉도 홍원기 감독이 잡게 되었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원기/202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비판[편집]


투수교체는 결과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좋은 투수를 썼다면'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 2021년 10월 27일, 전날 치러진 두산전에서 김성진을 올린 이유에 대하여[16]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원기/비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기타[편집]


  • 무한도전 타인의 삶 정준하 편에 잠깐 출연했다. 당시 이숭용과 역할을 바꾼 정준하의 타격을 보고 강하게 질책하는 모습이 나온다.#[17]

  • 홍원기보다 2년 선배인 이숭용이 워낙 선수로서 오래 활동했고, 홍원기는 일찍 은퇴했기 때문에 이숭용은 선수 말년에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홍원기 코치에게 절대 "코치님"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인지 이숭용이 1루로 출루하고 홍원기 코치가 이숭용의 장비를 받아줄 때 농담 섞인 욕설도 자주 했다고. 뭐 그래도 둘이 친하니 그랬겠지만. 그 예로 2009년 어느 날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서 이숭용이 출루한 후 홍원기 코치와 나누었다던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숭용 : "야, 장비."
홍원기 코치 : ….
이숭용 : "안 받고 뭐해~ X바~"
홍원기 코치 : "아 형, X바가 뭐에요…. 그래도 명색이 제가 코치인데…."
이숭용 : (수비하는 김주찬을 힐끗 보며) "야, 니가 듣는 건 안 괜찮고, 뒤에 주찬이가 듣는 건 괜찮냐?"

  •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팀이 역전패를 당하거나 반대로 역전승을 거둘 때도 무표정으로 일관한다.[18]

  • 선수 시절 때부터 별명이 원기옥이었다. 처음엔 이 별명에 대해 심리적 부담감을 느껴서 좋아하지 않았지만, 동료들과 팬들이 오랫동안 그렇게 부르면서 세월이 지나고 나서는 익숙해졌다고 한다.

  • 특이한 기록으로는 한 경기에서 무려 3개의 포지션을 소화한 적이 있다. 두산 소속이던 2001년 4월 6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잠실 경기에서 1루수, 2루수, 3루수로 모두 투입되어 소화한 것.[19]

  • '넥센 팬이 선수에게 준 초콜릿을 선수 몰래 빼돌려서 딸에게 선물했고 아내가 그걸 SNS에 인증했다'라는 오해가 있었다. 당시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를 비롯한 넥센 팬덤에서 들고 일어났었는데, 이후 딸의 SNS에 이는 사실이 아니고 그냥 한 투수가 조공받은 물품을 두고 갔고 그걸 가져왔다는 말로 해명했다.



  • 형인 홍헌기도 야구선수였다. 1988년 홍익대 야구부 창단멤버였으나,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뒤 실업야구 포스콘 야구단에 입단해 활동했다.

  • 팀이 연승을 하면 사복을 갈아입지 않는 루틴이 있다.

  • 지도자 시절 내내 히어로즈에서만 활동했으며, 등번호도 78번만 사용해왔다.

7. 관련 문서[편집]



[1] 계약금 2억원 / 연봉 총액 12억원[2] 남양 홍씨 당홍계 36세손 '基'자 항렬, 성우 홍범기의 친척뻘에 해당된다.[3] 기사 1~2살 연상이다.[4] 배우 홍수아와는 다른 사람이다. 홍원기의 딸은 본명이고, 배우 홍수아는 본명이 아니다. 아내 관련 기사에서 2012년 기준 만 14세였으니 97-98년생 정도로 추정된다.[5] 박찬호손혁, 홍원기 세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같이한 죽마고우이다. 참고로 공주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박찬호가 3루수, 홍원기가 투수였으나 박찬호가 투수로 전향하자 홍원기가 박찬호 대신 3루수를 보게 돼서 홍원기가 타자로 전향하게 되었다. 당시에 박찬호의 투수 전향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투수들의 학부모의 반대가 더욱 심했는데, 더군다나 홍원기는 당시 공주중학교의 에이스였다. 홍원기 본인이나 부모로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게된 셈이라 자연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세 사람의 졸업 이후 감독은 경질되고 야구계를 떠나게 된다.[6] 고교 동기인 손혁과 함께 진학했으며 조성민, 김종국과 같은 92학번이다.[7] 강석천은 홍원기 입단 후 포지션을 중견수로 옮긴 뒤 이영우 - 강석천 - 송지만으로 이어지는 외야진을 구성했다. 홍원기가 두산으로 떠나고 제이 데이비스가 영입되면서 다시 본래 포지션인 3루수로 되돌아 온 것.[8] 당초 한화 이글스가 투수진 보강을 위해 홍원기를 트레이드 카드로 쓰려고 했는데, 원래는 현대 유니콘스조웅천과의 트레이드를 제안했으나 결렬됐고, 곧바로 두산 베어스김경원 카드를 제안해 전상렬과 묶여 트레이드된 것. 결론만 보면 김경원이 한화에서 불만 지르다가 2001년에 은퇴한 반면 홍원기와 전상렬은 두산에서 쏠쏠하게 활약하면서 두산의 승리로 끝났다.[9] 정작 홍원기는 아웃을 시키고 벙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홍원기는 직후 롯데 팬들에게 걸쭉한 욕설을 들어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마산아재 문서 참조. 하지만 당시 박정태 본인은 오히려 홍원기 때문에 자신의 기록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면서 고맙게 여겼다고 한다.[10] KBS N SPORTS 더 레전드 "믿음으로 이룬다 국민감독 김인식" 편을 보면 자세히 나온다. 다만 이때는 배경이 2001년 플레이오프. 1차전 1:1 동점 상황에서 8회말에 결정적인 알까기 실책으로 분위기를 현대 유니콘스에 내어준 후 5:1로 경기가 종료된 후 홍원기는 메일로 욕을 수십 통 받고 새벽 4~5시까지 못 자고 있었는데, 그 다음 날 자신도 모르게 '아 오늘 선발 라인업에 안 들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인식은 특유의 믿음의 야구를 발휘, 그냥 유격수 9번타자로 넣었다고 한다. 그에 감명받아서 무엇인가라도 보답할 생각이었나 홈런을 계속 때렸다고. 김인식 특유의 믿음의 야구를 잘 보여준 사례로 나온다.[11] 특히 2003년에는 김동주를 지명타자로 돌린 뒤 홍원기가 주전 3루수로 투입되며 무려 124경기나 나왔다. 그 외에도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김동주를 지명타자로 돌리고 홍원기를 3루수로 출장시킨 적이 많았다.[12] 차화준은 수비가 영 시원찮은 선수였고, 채종국은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면서 잉여 전력으로 판단되어 SK에 조중근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었다. 서한규와 홍원기는 얼마 나오지 못 하고 둘 다 시즌 끝나고 은퇴했다.[13]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했다면 MVP는 홍원기가 받았을 것이 유력했다.[14] 포지션 조정 포함.[15] 설종진은 1996년 현대 유니콘스에 선수로 입단했고, 2002년부터 2017년까지는 프런트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이다. 지도자 경력은 크게 짧지만 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16] 해당 경기는 두산의 베테랑 김태형 감독의 기가 막힌 투수 교체가 빛난 경기였다. 이후 김태형 감독은 인터뷰에서 선발 투수를 일찍 내린 이유에 대해 "이기려고 뺐다"며 "뒤에 좌타자들의 타이밍이 워낙 좋았고 거기서 점수가 나면 끌려가는 상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홍원기 감독은 줄 점수를 다 내준 다음에야 투수를 교체하는 등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며, 덕분에 키움은 이정후김혜성의 노력에도 2:7로 대패했다. 선수 탓을 일삼는 수준 미달의 감독이 팀을 어디까지 나락으로 이끌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17] 물론 프로 시범경기를 뛰기에 사회인 야구 수준인 정준하의 실력이 많이 모자란 것도 있었겠으나 사실 이숭용과 홍원기는 절친한 선후배 사이로, 평소 선배 이숭용이 후배지만 코치였던 홍원기에게 장난스러운 행동을 하던 터라 일종의 앙갚음식으로 했던 것도 있다.[18] 경기 중에만 그런 듯 하다. #[19] 당시 주전 1루수는 우즈, 2루수는 안경현, 3루수는 김동주였다. 이들의 대수비 등올 계속 자리를 옮겨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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